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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가3:19
시작부터 끝까지 단 조로 흘러가는 애가에서 잠시 조 바꿈이 일어나 장 조가 되는 장면입니다. 심판으로 인한 고통을 토로하다가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 안에서 진멸 하지 않으시는 신뢰를 노래합니다. 애가는 심판 중에도 긍휼을 잊지 않으시는 하나님 사랑의 본질을 노래 합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자신의 영광이자 발등상인 성전을 치시니까 예루살렘은 무너졌습니다. 하나님께서 긍휼을 거두시자 견고한 성이 잿더미로 변해버렸고 나라 전체와 지도자들이 수치를 당했습니다.
It is a scene in which a minor change occurs for a while in a minor group from the beginning to the end and becomes a major group. He sings of God's kindness and trust that does not extinguish in mercy while talking about the pain caused by the judgment. The elegiac song sings the essence of God's love, which does not forget the compassion even during the judgment. Jerusalem collapsed when God personally beat the temple, his glory and his feet. When God collected the compassion, the solid castle was reduced to ashes and the whole country and its leaders were humili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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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그럴 수 있느냐"고 물을 만큼 예상 밖의 일이었으나, 하나님보다 성전과 법궤를 우상화 한 이들을 향한 경고 (렘3:16)에 귀를 막은 결과이며 자업자득입니다. 선지자는 쓴 쑥과 쓸개 즙 같은 고난을 기억하며 낙심되었지만, 동시에 그 절망 속에서 하나님을 향한 소망을 갖게 됨은 쓰디쓴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본심은 ‘멸절‘이 아닌 ’회복‘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본문을 통해 고난에 대해 재 해석을 시도하면서 고난을 겸허히 받아들여 그 의미를 깨달으면 오히려 고난이 소망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It was unexpected enough to ask, "How can you do that?" but it is the result of blocking the ears of the warning to those who idolized the temple and the law rather than God (Rem 3:16). The prophet was discouraged by remembering the hardships such as bitter mugwort and gallbladder juice, but at the same time, he realized that God's true heart was "recovery," not "extinction," in the bitter hardships. If you humbly accept the hardships and realize the meaning while trying to re-interpret them through the text, the hardships can be a w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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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젊었을 때 멍에를 매는 것이 좋답니다. 젊었을 때 멍에를 매어야 회복할 수 있는 것이지 늙어서는 그나마 할 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멍에는 잠잠히 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주께서 그것을 메우셨기 때문입니다. 그 말은 이스라엘이 감내하여야 할 고난의 분량을 겸손하게 담당하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징계이고, 그 징계는 하나님이 백성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수단입니다. 밭을 갈 때 소가 멍에를 잠잠히 지지 않으면 아프기만 합니다.
It is good to wear a yoke when a person is young. It is said that you have to wear a yoke when you are young to recover, but you cannot do it when you are old. He said that the yoke should be silenced. Because the Lord has filled it. It means to humbly handle the amount of hardship Israel has to endure. It is God's disciplinary action, and that disciplinary action is God's means of guiding the people in the right way. When you go to the fields, if the cow does not calm down, it will only hu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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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찬가지로 피할 수 없는 멍에라면 잠잠히 지라는 말입니다. 입을 땅의 티끌에 대면 혹시 소망이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멍에가 무거워 입이 땅에 닿을 지라도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그때에 하나님이 마침내 그 멍에를 벗기고 구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절망 중에서도 소망을 잃지 말라는 뜻이지요. 왜요, 소망의 하나님이 그들에게 존재하셔서 입니다. 자기를 치는 자에게 뺨을 돌려 대 치욕으로 배불리 라고 했습니다. 고난의 때에 누군가 자기를 치면 인내하며 뺨을 돌려 대라는 주문입니다.
Likewise, it means to calm down if you are in an inevitable yoke. He said that if you put your mouth on the dust of the ground, you might have a wish. Don't be afraid if your mouth touches the ground because the yoke is heavy. That's when God finally lifts the yoke and saves you. It means not to lose your hope in despair. Why, because God of hope exists in them. He said to turn his cheek to the one who hits him and to be full with great shame. It is a request to be patient and turn your cheek when someone hits you in times of trou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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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계를 받는 내게는 산 너머 산입니다. 그러나 심판은 있어도 하나님 나라의 계획은 폐기되지 않을 것입니다. 자업자득으로 당하는 수욕을 마땅히 여기고 하나님의 인애와 긍휼에 기대어 구원을 소망 하는 자를 통해 다시 그 나라를 회복하실 것을 믿나이다. 저자는 망연자실 무너진 예루살렘 성에서 맥 놓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기록에 보면 전쟁이 흩고 간 상처가 너무 컸기 때문입니다.
I am a mountain beyond the mountains to be disciplined. However, even if there is a judgment, the plan of the kingdom of God will not be abandoned. Do you believe that you will restore the country again through those who deserve the humiliation you have earned and rely on God's kindness and mercy to hope for salvation? It seems that the author was relieved in the devastated Jerusalem Castle. The record shows that the wounds of the war were too gre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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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용사들은 거의 전사하거나 포로로 끌려갔고 남은 노인들과 아이들은 먹을 것이 없어 죽어 가고 있었는데 도움은 어디에서도 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에돔이나 모압 등 주변 나라들은 비아냥 대고 경멸하고 있었습니다. 그 옛날 다윗이나 솔로몬 시절 그리고 여로보암 때에는 꼼짝 못하고 조공을 바치던 그들이었습니다. 만약 바벨론의 점령 지라는 사실이 없었다면 그들은 이번 기회에 방어할 방법이 없는 유다를 침공해 완전히 멸절 하였을 것입니다.
The young warriors were almost killed or taken prisoner, and the remaining elderly and children were dying because they had nothing to eat, but help came from nowhere. Instead, the neighboring countries such as Edom and Moab were sarcastically despised. They were stuck and offered tributes in the days of David, Solomon, and Jeroboam back then. They would have taken this opportunity to invade and completely annihilate Judah, which had no way of defending, had it not been for the fact that it was occupied by Babel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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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집마다 초상이 안 난 집이 없었고, 어두운 데도 불을 켜는 집이 없었습니다. 이제는 다시 일어 날 수 없는 현실 앞에 그는 마치 초상집의 상주처럼 넋을 놓고 있었을 것입니다. 더 이상 울 기력도 없었던 그에게 문득 솟아오르는 것이 있었으니 그 이름은 소망이었습니다. 그는 심령에 이르기를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그를 바라리라(24)“조상대대로 내려오는 뺏길 수 없는 유산 같은 하나님을 생각했던 것입니다.
Every house had no portrait, and there was no house to turn on the lights even in the dark. He must have been mesmerized like a resident of a portrait house in front of the reality that he could not wake up again. When he had no energy to cry anymore, he suddenly thought of something that popped up, which was his wish. He said to the psychic, "The Lord is my enterprise, I hope for him." He thought of God, who is like an inheritance that cannot be taken away from generations to gener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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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망했지만 여호와는 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실패하였지만 여호와는 실패하지 않았습니다. 그 여호와가 그들의 하나님이실 진대 그는 절망할 수 없었습니다. 더 이상 낙심으로 주저앉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아침마다 그 생각은 새로워졌습니다. 그분의 성실하심에 그만 감격하였습니다. 지금은 비록 징계를 받아 처참한 처지라도 영원히 진멸 될 수 없는 것은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 하심이 무궁하니까요. 시인이 깨달은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영원히 버리시지 않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They failed, but Jehovah did not. They failed, but Jehovah did not. He could not despair if the Jehovah was their God. He could not sit down anymore with discouragement. And every morning, the thought was renewed. I was just moved by his sincerity. Now, even if I am punished and in a terrible situation, I cannot be extinguished forever because Jehovah's kindness and compassion are endless. What the poet realized is that God will not abandon them fore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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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을 부르셔 한 민족이 되게 하셨고, 모세를 통하여 한 나라를 이루게 하였고 여기까지 이끌고 오신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살아계신 하나님이 아닙니까? 이스라엘을 고생하게 하시며 근심하게 하신 것은 그분의 본심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어려움에 처해지는 경우가 두 가지가 있다고 봅니다. 하나는 본인이 잘 못해서 당하는 케이스고, 또 하나는 이유도 모르는 채 어려움에 직면하는 경우입니다. 전자는 분명히 이유를 알기에 하늘을 원망할 수 없을 것입니다.
Isn't it the living God of Israel who called Abraham and made a nation through Moses and led him to this point? It was not his true intention that caused Israel to suffer and worry. I think there are two cases where we are in trouble. One is a case where you are hurt because you are not good at it, and the other is when you face difficulty without knowing why. The former will certainly not be able to blame the sky because they know w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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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후자는 그 이유를 알 수 없기 때문에 타인에게 화살을 돌릴 수도 있고, 하나님께 섭섭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적어도 이유없는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다만, 모를 뿐이고 깨닫지 못할 뿐입니다. 막 태어난 영아가 왜 죽고, 선한 사람이 왜 그렇게 일찍 가는 지 분명히 밝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만, 우리들은 받아들일 뿐입니다. 비록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어떠한 경우에도 소망을 잃지 않는 우리들이 되면 좋겠습니다. 고난에 경거망동 하지 말고 오히려 믿음을 갖는 우리들이 되면 좋겠습니다.
However, the latter might be able to point an arrow at others or be disappointed with God because they do not know why. However, at least I don't think there is a reason without reason. However, they just don't know and they just don't realize it. No one makes it clear why a newborn infant dies and why a good person passes so early. However, we only accept it. I hope we become those of us who do not lose our hopes under any circumstances, even though we do not know the reason. I hope we don't hesitate to suffer and become those who belie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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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을 갖고 기다리는 자에게 하나님은 그 기대를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본문에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다’고 했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에게서 옵니다. 다른 곳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참 소망은 그 분께 있습니다. 다른 어떤 것에도 소망은 없습니다. 잠잠히 기다리는 자를 하나님은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 그 분을 소망하며 믿음 안에서 오늘도 이겨 나가는 우리들이 되면 좋겠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외면하시지도 버리지도 않을 것입니다. 나는 쓴 약의 소망을 아는가? 내가 혹 굽은 일에 연루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 절망의 자리에서 기억할 하나님의 성품은 무엇인가?
For those who wait with faith, God will not give up that expectation. In the text, he said, "It is good for man to hope for Jehovah's salvation and to wait quietly." Salvation comes from God. It does not come from anywhere else. True hope is with him. There is no hope for anything else. God will never forget those who wait quietly. I hope that we will be those of us who hope for him and overcome in faith today. Our God will neither turn away from us nor abandon us. Do I know the wish of bitter medicine? Am I not involved in the bending? What is the character of God to remember in the place of despa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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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성실하심에 대한 찬양(19-24)
현재 인간이 해야 할 일들(25-30)
하나님의 정의(31-36)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강조(3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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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초와 재난(19a)
곧 쑥과 담즙을(19b)
기억하소서(19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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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심령이(20a)
그것을 기억하고(20b)
낙심이 되오나(20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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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심에 회상한즉(21a)
오히려 소망이 있사옴은(21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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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자비와(22a)
긍휼이 무궁하시므로(22b)
우리가(22c)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22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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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아침마다 새로우니(23a)
주의 성실이 크도소이다(23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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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심령에 이르기를(24a)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24b)
그러므로 내가(24c)
저를 바라리라 하도다(24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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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기다리는 자에게나(25a)
구하는 영혼에게(25b)
여호와께서(25c)
선을 베푸는 도다(25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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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26a)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26b)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26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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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젊었을 때에(27a)
멍에를 메는 것이 좋으니(27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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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앉아서(28a)
잠잠할 것은(28b)
주께서 그것을(28c)
메우셨음이라(28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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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을 티끌에 댈지어다(29a)
혹시 소망이 있을 지로다(29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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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리는 자에게(30a)
뺨을 향하여(30b)
수욕으로 배불릴지어다(30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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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주께서(31a)
영원토록(31b)
버리지 않으실 것임이며(31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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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가 비록 근심케 하시나(32a)
그 풍부한 자비대로(32b)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32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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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께서 인생으로(33a)
고생하며(33b)
근심하게 하심이(33c)
본심이 아니시로다(33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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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모든 갇힌 자를(34a)
발로 밟는 것과(34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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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높으신 자의(35a)
얼굴 앞에서(35b)
사람의 재판을(35c)
굽게 하는 것과(35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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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송사를(36a)
억울케 하는 것은(36b)
다 주의 기쁘게 보시는 것이 아니로다(36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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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명령이 아니면(37a)
누가 능히 말하여 이루게 하랴(37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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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복이(38a)
지극히 높으신 자의 입으로(38b)
나오지 아니하느냐(38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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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사람은(39a)
자기 죄로 벌을 받나니(39b)
어찌 원망하랴(39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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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사랑이 희망이다_God's love is hope_
하나님의 긍휼이 희망이다_God's mercy is hope_
하나님의 의로움이 희망이다_God's righteousness is hope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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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심으로 우리가 아직 살아 있고, 이것이 아침마다 새롭고 주의 성실이 크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내가 저를 바라리라. 주님, 내 절망이 당신을 향한 소망이 되기를 원합니다. 내가 주의 긍휼과 은혜로 또 다시 힘을 얻고 삽니다. 재판을 굽게 하는 것과 송사를 억울케 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억울하다고 생각 되어질 때 잠잠히 자신을 돌아보게 하소서.
We are still alive with endless mercy and mercy, and this is the new and faithfulness of the Lord every morning. Jehovah is my enterprise, and I hope for me. Lord, I want my despair to be my hope for you. I live again with your mercy and grace. I will not let you burn the trial and make the case unfair. When you think it is unfair, let yourself be silent and reflect on yourself.
2024.10.22.tue.Cl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