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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보름코지 빌레왓디 원문보기 글쓴이: 강동수
★ 산행개요
- 산행코스 : 희어재-국기봉-청룡산-천마봉-국사봉-개이빨산-수리봉-경수산-합수점
- 산행거리 : 총 16.3km (실제 거리 14.9km, 천마봉 및 견치봉 왕복 1.4km)
- 산행일시 : 2025년 9월 10일(수) 08:35 ~ 15:25 (6시간 50분)
- 교통편 : (갈 때) 목포종합버스터미널-고창문화터미널<시외버스>, 고창문화터미널-평지마을<시내버스>
(올 때) 신원마을-해리터미널<택시>, 해리-고창터미널<시내버스>, 고창-광주-목포<시외버스>, 목포터미널-목포숙소<택시>
- 소요비용 : 46,700원 / (시외버스) 21,500원, (택시) 22,600원, (시내버스) 2,600원
★ 흔적들
어제 종아리 부상부위에는 응급조치를 잘한 것 같다. 진물이 흐르지 않고 굳어있었다. 약을 바르고 붕대를 감았다. 하루 종일 젖은 등산화를 신고 있어서 발가락 피부가 쓸린 곳은 테이핑을 하였다. 여전히 젖은 등산화를 신고 가야 해서 양말을 신은 발에 비닐을 감아 단단히 조였다. 젖은 신발로부터 발을 보호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다.
어제와 동일한 방법으로 7시 정각 고창행 시외버스를 탔다. 이번에도 승객은 나 혼자였다. 고창문화터미널에서 희어재 가는 시내버스는 5분 정도 기다리자 바로 들어왔다. 희어재를 지날 때쯤 버스기사한테 내려줄 수 없느냐고 묻자 말없이 차를 세워준다. 평지마을에서 차를 세웠으면 1km를 걸어가야 하는데 시간을 벌었다. 오늘은 저녁에 반드시 세종에 올라가야 할 일이 생겨 15시나 늦어도 15시 30분에는 산행을 마쳐야 하는 상황이었다.
마루금 진행방향에서 오른쪽으로 보면 나무농장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빵하나를 먹고 스패치를 착용한 후 나무농장에 올라섰다. 왼쪽 숲을 향해 올라가자 그럭저럭 뚜렷한 등로가 나타났다. 올라서는 길에 봉분은 없지만 비석 앞에 마치 도굴꾼이 판 것처럼 작은 굴이 있는 특이한 모습을 보게 된다. 옛날에는 도굴꾼들이 무척 많았었다. 주변의 산소란 산소는 모두 헤집고 다니면서 굴을 팠었다. 물론 도굴꾼이 판 굴은 아니지만. 30여분을 올라가자 252.7봉을 만난다. 여기서 200미터 더 진행하면 비학산 갈림길을 만나지만 그냥 진행하기로 한다. 왕복 2km 가까운 거리라 시간허비가 많을 것 같아 아쉽지만 포기하기로 한다. 비학산 가는 길에는 원래의 희어재를 보게 된다. 733번 지방도가 있기 전에 민초들은 아산면에서 무장면을 오갈 때 원래의 희어재를 넘나들었을 것이다.
주변의 경치를 감상하며 로프가 걸린 직벽바위를 타고 올라갔다. 신발 밑창이 닳아 물을 머금은 바위를 넘을 때는 무척 조심해야 했다. 사고는 항상 내리막에서 발생한다. 두어 번 넘어졌지만 다행히 다치지는 않았다. 국기봉(314m)에는 동판으로 그 이름이 박혀있지만 실제 위치가 맞는지 의심스럽다. 335.5봉으로 가는 길에는 돌탑을 쌓으며 누군가 공을 들인 흔적이 있다. 아쉽게도 335.5봉 산패는 보이지 않는다. 이어서 그다음 암봉에 이르자 멀리 배맨바위가 마치 커다란 스핑크스나 거북이 같은 모습으로 다가왔다. 지형도상 국기봉(273.4m)도 역시 산패가 없다(09:55). 아마도 누군가 고의로 치운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어서 암봉인 청룡산(315m)에 도착했다.
선운산은 한때 청룡산이라 불렸던 적이 있었다. 선운사가 이 지역 중심사찰로 부각되면서 산의 이름도 자연스럽게 선운산으로 바뀌었다. 청룡은 불교에서 사천왕 중 동방을 수호하는 상징적 존재이며 불법을 수호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산의 형상이 실제 용이 누워있는 형국이라는 이야기도 있어 풍수지리적으로 산 모양이 청룡의 형상으로 여겨진다. 그런 의미에서 선운산 청룡봉이라 하지 않고 청룡산 이름은 건들지 않은 것 같다. 삼각점(고창 408)이 있고, 다행히 준희 선생님의 산패도 그대로 있다.
각도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보이는 배맨바위로 향했다. 아주 오래전 선운산 일대가 바닷물이 들어왔을 때 배맨바위가 배를 묶을 만큼 물가 가까이에 있었고 배를 매어둔 바위라는 의미에서 배맨바위가 되었다고 한다. 물론 퇴적암으로 주변 곳곳에서 조개껍질 등이 발견되는 점에서 아주 오래전 이곳이 바다였다는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지만, 그 당시 배가 있을 리 만무하여 그냥 전설일 뿐이다. 배맨바위 대신 계선암(鷄線巖) 또는 거북바위로도 부르는데, 오히려 그 이름이 더 타당하게 들린다. 밑에서 보면 높이가 20여 미터, 둘레가 100미터 정도 되는 거대한 퇴적암이라 꽤 웅장하지만 나무에 가려 전체를 볼 수 없는 것이 안타깝다.
배맨바위를 지나자 철계단이 길게 이어졌다. 낙조대 삼거리에서 오른쪽 200미터 떨어진 천마봉으로 향했다. 천마봉(284m)에서 주변산군을 조망하며 잠시 머문다(10:47). 다시 낙조대로 되돌아와 고창갯벌을 바라봤다. 해질 무렵이면 태양이 바닷속으로 빠져드는 모습은 장관이겠다. 선운산의 기암괴석에 대한 설명문도 따로 마련되어 있다. 선운산의 기암괴석은 약 8천만 년 전 중생대 백악기의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유문암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도 새롭게 알게 되었다. 마그마로 만들어진 유문암은 단단하고 균질하여 큰 덩어리로 쪼개지는 경우가 많아 가파른 수직절벽을 만드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낙조대에서 소리재 방향으로 내려서기 시작했다. 서해랑길이 선운사에서 천마봉 계단을 따라 올라와 낙조대에서 경수지맥과 만나며 함께 가고 있다. 용문굴과 참당암이 갈라지는 소리재를 넘어 개이빨산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도천리 고인돌 여러 개가 눈에 띈다. 고창군이 고인돌로 유명한 곳이라 그런지 선운산에서도 고인돌을 보게 된다.
이정목의 거리 표시에 혼란을 불러일으킨다. 개이빨산(견치산)의 남은 거리가 0.24km라고 표기되어 있는데 100여 미터 진행하자 왼쪽으로 다시 0.5km 더 가라고 되어있다. 지형도에는 당연히 바로 앞에 개이빨산이 있는 것으로 표기되어 있지만, 과연 500미터 왼쪽에는 어떻게 되어 있는지 궁금하여 바로 내려섰다. 그곳엔 국사봉(견치산, 346m)이라는 동판이 박혀있었다(11:36). 암릉이라 조심스럽게 정상까지 올라가 봤지만 시그널만 몇 개 있을 뿐 아무것도 없다.
핑계에 나무 그늘에 자리를 잡고 점심식사를 한다. 선운산이 도립공원이라 관리주체는 전라북도이기 때문에 탐방로나 시설 유지보수가 도차원에서 이루어진다. 엉터리 같은 봉우리 표시는 전문가의 검증을 받고 대대적인 재정비가 필요하다. 다시 되돌아와서 조금 진행하자 삼각점(고창 409)이 있는 개이빨산(견치산)에 도착한다(12:24). 준희선생님의 산패가 보이질 않는다. 아마 도립공원 관리사무소에서 철거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개이빨산에서 한참을 내려선 후 안부에서 내려온 만큼 급경사길을 따라 올라가자 수리봉(336m)에 도착한다. 수리봉은 선운산의 주봉이다. 갈길이 바빠 쉼 없이 진행하여 바로 마이재로 내려섰다. 말의 귀처럼 생긴 고개라는 의미지만 주변을 둘러봐도 그런 연상은 들지 않는다. 대부분 등산객들이겠지만 마루금 좌우로 여전히 사람들의 왕래가 있는 고개다. 경수산 가는 길은 가파른 오름길을 여러 번 극복해야 했다. 335.7봉을 넘었다. 이곳에도 산패는 철거되고 없다. 마지막 급경사길은 올라서기 쉽지 않다. 올라서는 길에 계단을 만드는 인부들을 만난다. 인사를 건네고 거친 숨을 몰아쉰 후 정상석(444m)을 터치한다(14:00). 경수봉이라는 정상석이 위치한 곳은 정상이 아니다. 누가 둘러봐도 왼쪽에 훨씬 높은 곳이 정상이라는 것은 다 알 텐데 왜 이곳에 정상석을 설치했는지 의문이다. 일전에 EBS 극한 직업이라는 프로그램에 정상석을 설치하는 일은 하는 분들을 본 적이 있다. 지형, 날씨 때문에 제 위치에 정상석을 설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러나 과연 그 이유 때문에 200미터나 떨어진 곳에 정상석을 설치했는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또 이미 고개(마이재)를 넘었기 때문에 경수산을 경수봉으로 한 것도 잘못이다. 선운산 도립공원 안에 있는 여러 봉우리를 선운산이라는 울타리 안에 넣고 싶긴 하겠지만 도립공원이라 해도 다른 산을 포함하는 경우는 허다하다. 여기에도 청룡산과 견치산이 들어있지 않나. 핑계에 자리를 잡아 캔맥주를 마시고 일어섰다.
경수봉 정상석이 있는 곳에서 200미터쯤 진행하자 삼각점(부안 308)이 있는 경수산(445.3m)에 도착한다. 경수지맥 주봉이다. 다행히 산패는 철거되지 않고 남아있다. 390.3봉을 넘어서자 등로는 희미해졌지만 오른쪽으로 주진천과 함께 진행하면서 고막재에 내려섰다(15:11). 합수점까지 가려면 숲길로는 갈 수 없고 오른쪽 나무데크길로 내려서야 했다. 주진천 강물이 바닷물과 섞이는 기수역(하구역)은 소금농도가 낮기 때문에 다양한 생물이 살고 있고 경제적, 생태적 가치는 경작지의 250배에 달한다고 한다. 전 세계적으로 0.35%에 불과한 매우 희귀한 환경으로, 담수와 해수가 혼합된 반폐쇄 지역을 형성해 상당한 양의 물질이 모였다가 유출되는 육지의 여과장치 기능을 하고 있다.
좌치나루터를 넘어선 후 새우양식장이 있는 곳을 향했다. 좌치나루터는 고창군 심원면 용기리와 부안군 부안면 선운리 고룡동을 연결하던 조선시대 나루터였고, 용선교가 건설된 1995년까지 운영하다가 폐쇄되었다. 세우양식장을 지나 아카시아 나무에 경수지맥 종착점이라는 반바지님의 코팅지가 보인다. 트랙으로 보면 종착점이 맞지만 주진천이 곰소만에 합수되는 지점까지 이동하여 경수지맥을 마무리한다.
큰 도로로 나와 귀가 편을 알아봤다. 왼쪽으로도 갈 수 있고 오른쪽으로 갈 수도 있었다. 왼쪽 방향으로 향하는 버스가 들어왔지만 승차하지 않았다. 버스 노선으로는 오른쪽 해리방향으로 가는 게 맞는 것 같았다. 주민들한테 물어봐도 버스시간을 모르는 것 같아 카카오 택시를 불렀다. 고창터미널은 가겠는데 해리터미널까지는 갈 수 없다고 했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을 하다가 히치하이크를 시도했다. 그새 해리방향으로 버스가 휑하니 지나가 버렸다.
버스를 타려면 그냥 버스정류장에서 기다리든 택시를 타든 빨리 결정해야 하는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속절없이 시간만 흘렀다. 시도 끝에 열 번째쯤 화물차를 얻어 탔지만 심원까지만 가는 차였다. 심원에서 개인택시를 탄 후 해리에서 내린 다음 시내버스를 이용 고창터미널에는 무사히 도착할 수는 있었다. 문제는 목포행 버스는 16시 30분에 떠나면 그다음 버스는 19시 되어야 탈 수 있다는 점이다. 당연히 30분 단위로 버스가 운행하는 것으로 오해함으로써 귀가 편을 정말 어렵게 만들었다. 결국 19시 버스를 탈 수는 없었고 광주를 거쳐 다시 목포로 내려오는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광주 인근에 버스가 진입하자 퇴근하는 차량 때문에 지체가 심하게 발생하며, 예정 도착시간보다 30분이 늦어졌고 목포행 버스도 그 시간만큼 늦춰야 했다. 목포에 도착한 후에는 택시를 타고 숙소에 도착하여 옷을 갈아입고 대충 저녁을 먹은 후 씻지도 못한 채 바로 나와 20시 46분 KTX막차도 겨우 탈 수는 있었다.
만약 산행을 종료하고 고창터미널로 가는 택시를 탔으면 16시 30분 시외버스를 탈 수 있을 테고 여유 있게 세종 집으로 갈 수 있었는데, 바보 같은 선택을 하면서 마음 졸이며 고생하는 우를 범했다.

첫댓글 이틀간에 걸친 경수지맥 마무리를 축하드립니다.
전 날에 비해 거리는 짧고 비교적 수월한 흐름이지만 시원스런 풍광이 압도적입니다.
천마산 오름 계단이며 암릉길 주변 모습에 눈이 호강하는 느낌입니다.
주진천합수점에 이른 감회도 느껴보구요.~
수고많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