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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충청북도 제천시와 단양읍 및 강원도 영월군의 영월지맥 마루금 일대
산행날자 : 2017년 10월 29일 (일요일 당일 산행)
산행날씨 : 새벽에는 짙은 안개 후 하루종일 미세먼지와 박무로 조망이 제한되었던 흐린 산행날씨
산행온도 : 영상 05도에서 영상 17도
산행인원 : 총 4명(칠갑산과 강원도 산친구들, 동해바다, 강릉이쁜쑨, 나사)
산행코스 : 삽고개(삭고개, 2차선 포장도로, 황초와우 형제농장 입간판)-형제농장 입구-시멘트 포장도로-지하통로(38번 4차선 포장도로 통과)-농장 철조망 아치-밭 경작지-능선진입-철조망 등로-
왕박시루봉(527.8미터, 왕박산 갈림삼거리, 왕박산 시루 설명판, 무인산불감시 카메라, 이정표)-벌목 조림지 안부-이정표(왕박산 0.3 Km, 통불사 0.5 Km, 조을치)와 벤취 쉼터-자작나무 조림지-벤취 쉼터2-
왕박산(597.5미터, 정상석, 왕박산 유래판) 이정표(무등산 2.8 Km, 산불감시카메라 0.7 Km)-왕박시루봉(527.8) 복귀-묵묘1-조을재(조을치, 돌탑과 소나무) 이정표(왕박산 1.7 Km, 가창산, 흑석동)-523.4봉-
서문리 갈림삼거리 이정표(지도상 조을재, 왕박산, 가창산, 서문리)-515 무명봉-566.9 삼각점봉-문영월재 안부 이정표(가창산 3.6 Km, 왕박산, 괴골)-518 무명바위봉-519 능선(아침식사)-
설매산 갈림삼거리 이정표(설매산 2.63 Km, 가창산 2.6 Km, 문영월재 1.0 Km)-비포장임도 안부-묵묘1-692.7봉 갈림삼거리-일자봉(682봉, 바위봉)-광산터 절개지 안부-광산터 절개지 상부-파이프 등로-
709.1봉-697 무명봉-가창산(818.6미터, 삼각점) 이정표(장치미, 문영월재 3.6 Km)-태화산 조망-무명안부-674.2봉-갑산지맥 분기점(602미터)-비포장 임도-526 무명봉-청산영림 호두나무 식재지-
간벌지대-589.4봉-598.5봉 벌목지-널부러진 간벌목-무명안부-549.5 삼각점봉-길주의 지점-급경사 내리막 등로-무명안부-522.1봉-잡풀안부-519.8봉-숙부인영월신씨묘지-520 무명봉-묘지들-
중산재(2차선 포장도로, 민가1채)-천막과 그물망-벌목조림지-471.3봉-송제양천허공묘지-비포장임도 안부-475봉-검정천막-468.5 삼각점봉-로프와 그물망 급경사 내리막 등로-벌목지-
사유지 출입금지 경고판-비포장임도-밭 경작지-어상천고개(519번 2차선 포장도로)-399.5봉-390 무명봉-382 잣나무 군락지-잡목 등로-388 산불감시초소와 돌탑봉-무도리고개(1차선 포장도로)-
도로 갈림삼거리-능선진입-급경사 오르막 등로-477.3봉-인삼포-수박밭 경작지-잡초 묵밭-능선진입-비포장 임도-능선진입-바위너덜구간-857 누에머리봉 갈림삼거리-용바위골 갈림삼거리
이정표(누에머리봉, 삼태산 정상과 물푸레나무군락지나무보호, 용바위골 1 Km)-누에머리봉(867.3미터, 정상석, 벤취쉼터) 이정표(삼태산 878.8미터봉, 고수골 1.7 Km)-누에머리봉 갈림삼거리 복귀-
바위굴-삼태산875.8미터, 삼각점) 이정표(어상천면소재지, 누에머리봉 300m, 방산미 1.2 Km)-급경사 내리막 등로-방살미 갈림삼거리 이정표(삼태산 주차장 1.56 Km, 삼태산정상 60m, 방살미)-
이정표(삼태산주차장 700m, 삼태산 정상 920m)-무명안부 이정표(만존 주차장 1.2 Km, 정상 0.6 Km)-821.6봉-급경사 내리막 등로-417 무명봉-386 무명봉-물탱크-시멘트 포장도로-
밭 경작지-잡목능선 진입-묘지들-해고개(59번 2차선 포장도로)-산행종료
산행거리 : 약 22.84 Km (스마트 폰의 GPX 기준)
산행시간 : 빨래판 등로를 따라 너무나 어렵게 진행하여 11시간 43분 (06시 15분부터 17시 58분까지)
산행트랙 : 20171029 영월지맥6구간 삭고개-해고개.gpx (산행 중 뱃떠리 출전을 하면서 트랙과 산행거리가 이상하게 기록되었음)
교통편 : 05:30 애마로 해고개 공터까지 이동
06:10 강원도 산친구 애마로 해고개를 출발해 산행 들머리인 삽고개(삭고개)까지 이동 후 산행시작
18:30 애마로 산행 들머리인 삽고개(삭고개)까지 이동해 강원도 산친구들과 헤어져 귀가
영월지맥이란 ???
영월지맥이란 한강기맥 상에 있는 삼계봉(1065봉)에서 남동쪽으로 분기한 산줄기가 태기산(1261봉), 덕고산(705봉), 봉화산(670봉), 풍취산(699봉), 매화산(1085봉), 치악산 비로봉(1288봉), 향로봉(1043봉), 남대봉(1182봉), 감악산(954봉), 감악봉(886봉), 석기암(906봉), 용두산(871봉), 왕박산(598봉), 가창산(820봉), 삼태산(876봉), 국지산(626봉), 영월의 태화산(1027봉)을 거쳐 남한강에서 가라 앉는 산줄기를 말하며 삼계봉(1065봉)은 홍천군, 평창군, 횡성군 등 3개 군이 만나고 홍천강, 평창강, 섬강 등 세 강이 갈리는 곳이나 이름이 없어 신산경표 저자 박성태님이 종주한 후 셋의 경계가 되는 봉우리란 뜻으로 삼계봉으로 부르기로 했다고 한다는 설명이 보인다.
신산경표 저자 박성태님이 영월지맥과 춘천지맥을 종주한 후 지맥이 갈리는 한강기맥의 청량봉에서 장곡현, 구목령, 삼계봉 구간 11 Km를 합하여 약 272여 Km를 영춘지맥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 산객은 분기점에서 시작하여 강이나 바다로 그 맥이 다하는 방향으로 진행을 했기에 이 영춘지맥 산행도 춘천지맥과 영월지맥으로 분리하여 별도로 진행하도록 한다.
이 영춘지맥은 지맥중에서 가장 긴 지맥이다.
빨래판 마루금을 타고 너무나 힘들게 진행하며 어렵게 산행을 마무리했던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지도와 산행후기를 참고한 후 난해하고 어려운 마루금 잇기 산행을 무탈하게 완주하고 돌아왔기에 단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이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토요일 하루 일이 있어 집에서 쉬면서 목요일 금곡님과 다녀 온 성골지맥 산행후기를 정리하고 막바지로 향하고 있는 영월지맥 산행을 위해 배낭을 준비하는데 내일 오후부터 찬바람이 불면서 올 들어 가장 추운 날씨가 된다는 일기예보에 여름용 등산복 대신 봄 가을용 옷으로 갈아입고 두꺼운 방풍 자켓과 패딩 그리고 아침식사 용 물 1리터를 더 배낭에 넣다 보니 생각보다 제법 무게감이 느껴진다.
또한 추위에 대비해 준비한 비닐텐트를 넣으니 부풀어 오르며 배낭이 꽉차는 느낌인데 아침식사를 하는 동안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기를 바래보는 시간이다.
잠시 깊은 잠에 들었다 새벽 2시 30분에 일어나 옆지기가 준비해 준 과일과 약밥을 챙겨 가족들이 깨지 않토록 조심하며 집을 나서니 생각보다 춥지는 않는데 홀로 떠나는 기분이 왠지 쓸쓸하기만 하다.
새로 생긴 도로와 제2영동고속도로를 타고 여유있게 산행들머리인 해고개에 도착을 하니 강원도 산친구들도 같은 시간에 함께 도착을 해 짙은 안개속에 이 산객의 애마를 해고개 아래 사이곡리 방향의 삼거리 공터에 주차시키고 강원도 산친구의 애마를 이용해 지난 구간 내려왔던 형제농장 입간판이 서 있는 삭고개 공터에 주차를 시키고 산행 준비를 한다.
생각보다 지욱한 안개가 피부에 와 닿으며 생각보다 더한 한기를 느끼기에 두꺼운 자켓을 입고 산행을 시작하는데 선답자들의 산행후기를 살펴보면 오늘 올라야 할 삼태산 구간의 경사도에 모두 악명이 높다고 적고 있어 조금은 부담으로 다가오는 시간이다.
산행을 시작하자마자 약간의 헤프닝이 있어 기다리는 동안에 이 산객 홀로 왕박산을 다녀 와 큰 어려움 없이 중산재까지 진행을 하였는데 강원도 산친구 중 동해바다 친구가 발목이 삐었는데 완전하게 치료가 안되었는지 조금은 산행속도가 뒤처지기 시작하고 이곳 중산재에서 두 팀으로 나눠 산행을 진행하기로 하고 나사님과 둘이서 빠르게 걸어 무두리 고개를 넘고 묵밭을 지나 능선으로 오르기 직전 잠시 뒤돌아 보니 우측 저 멀리 오늘 올랐던 가창산을 기점으로 좌측으로 빨래판 능선이 길게 이어지고 475봉에서 다시 방향을 바꿨다 ㄷ자 형태로 이어지는 난해한 영월지맥 마루금이 한눈에 보이길래 잠시 더 발걸음 멈추고 살펴보는 시간은 참으로 행복하기만 하다.
앞으로 올라야 할 지독한 경사도를 자랑하는 삼태산은 잠시 잊고 나사님과 환상의 풍경을 감상하는데 오늘따라 약간의 황사예보가 있고 박무로 인해 선명한 풍경을 만날 수 없음이 안타까운 시간이었다.
6시를 조금 넘겨 지난 구간 날머리였던 삽고개(삭고개) 좌측 형제농장 입간판이 서 있는 곳에 도착을 해 간단히 산행 준비 후 단체 사진 한장 남기고는 곧바로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형제농장 방향으로 산행을 시작하는 시간이 6시 15분을 넘기고 있다.
원 마루금은 2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조금 더 남쪽으로 올라 좌측 능선을 타고 진행을 해야 하지만 잡목이 우거져 있고 잠시 후 만나는 38번 4차선 포장도로를 통과해야 하기에 어둠속에 보이는 것 하나 없는 마루금을 짧은 시간 포기하고 넓은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지하통로까지 걸어가기로 한다.
무도리의 삭고개는 삭고개 마을로 올라가는 고개이다.
삭고개가 있는 무도리는 충청북도 제천시 송학면에 있는 리로서 동남쪽으로 왕박산이 병풍처럼 둘러 있고 서쪽으로 안산이 용의 모양으로 마을 입구까지 감싸고 있다.
전형적인 농촌으로 제천 시내와 인접하여 교통이 편리한 무도리는 뭇두, 뭇도, 뭇도위, 무도, 무도위라 하였다.
만전리와 신문리를 병합하고 동면 송티리의 일부 지역을 편입하여 무도리가 되었다.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 개국하면서 이성계가 고려의 왕씨 일가를 처형하자 왕씨의 한 사람인 왕을규가 지금의 왕박산으로 피신하였고 성씨를 박씨로 고치고 숨어 살았는데 그때부터 왕씨가 박씨가 되었다고 하며 또 그 산은 왕박산이라 불리고 있다.
토착 성씨가 박씨이며 의홍 박씨가 제천, 단양 등지에 분포되어 살고 있으며 자연마을로는 윈무도, 음만전, 음방학, 음지만지실, 기동 등이 있다.
오늘 산행이 끝나 애마를 회수하고 나면 언제 다시 이곳에 들릴 수 있는 기회나 있을지 기액도 할 수 없기에 어둠속에서도 그 풍경 하나하나를 기억해 보려 애써 본다.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38번 포장도로 방향인 남동쪽으로 걸어가니 갈림삼거리가 나타나고 우측 도로를 따라 진행하니 잠시 후 좌측으로 형제농장 입구를 만나지만 아직 어둠속 에상이다 보니 거대한 축사만 어렴풋이 눈에 들어 온다.
우측에 정상 마루금을 두고 계속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르니 드디어 38번 4차선 포장도로를 안전하게 건널 수 있는 지하통로가 보이고 그 통로를 통해 38번 4차선 도로를 건너니 다시 갈림삼거리가 나타난다.
그곳 갈림삼거리에서는 우측으로 진행하고 잠시 후 만나는 철조망과 둥그런 아치형태로 보이는 곳을 지나 좌측으로 들깨를 심었던 밭을 통해 능선 방향으로 오르며 산행을 이어가 본다.
잠시 난해한 능선을 올라 뚜렷한 등로를 만나 우측으로 걸어 진행을 하니 등로 좌측으로 견고한 철조망이 보이는데 등로는 한동안 그 철조망과 함께 진행이 되고 있다.
그러헤 걸어 진행하니 철조망과 헤어지고 등로는 조금 더 가파르게 오르기 시작하는데 그곳에서 강원도 산친구 한명이 버너와 가스통을 잘못 가지고 왔다며 다시 삭고개를 다녀오겠다고 전하기에 이 산객은 잠시 왕박산을 다녀오기로 한다.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잠시 넓은 비포장 임도같은 등로가 나타나고 곧이어 왕박산갈림삼거리인 527.8봉의 왕박시루봉에 도착을 하는데 그곳에는 이정표와 무인산불감시커메라 그리고 왕박산 시루에 관한 설명판이 보인다.
나머지 산친구 2명에게 잠시 왕박산을 다녀오자고 제안을 하니 모두 이곳에서 기다리며 쉬겠다고 말해 이 산객 홀로 왕복하는 왕박산이 되었다.
왕박산갈림삼거리에 배낭을 벗어 놓고 카메라와 모바일 폰 그리고 스틱만 가지고 낙엽 깔린 넓은 비포장 임도같은 등로를 따라 빠르게 내려가니 억새가 등로를 막고 있는 안부를 지나 벌목된 넓은 개활지가 나타나는데 그곳에도 나무들을 식재한 듯 보인다.
잠시 더 걸어 내려가 무명 안부를 지나고 다시 능선으로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 이정표 하나와 그 아래 벤취 쉼터 하나도 눈에 들어 오는데 살펴보니 조을치 방향에서 직진의 통불사 가는 방향의 등로를 버리고 우측 능선 방향의 왕박산으로 올라야 할 갈림삼거리 이정표이다.
우측 왕박산 방향으로 오르니 자작나무들이 식재되어 잇는 오르막 등로를 지나 조망처가 나타나는데 방금 전 올랐다 내려 온 왕박시루봉 방향의 안부에는 하얀 안개가 자욱하게 깔려있고 그 위로 봉우리만 올라 온 왕박산갈림삼거리인 왕박시루봉이 아름답게 올려다 보인다.
다시 나타나는잡목을 헤치니 벤취 쉼터2개가 보이고 그곳을 지나 빠르게 오르니 드디어 해발고도 597.5미터인 왕박산 정상에 도착을 해 추억 한장 남겨 본다.
왕박산(597.5봉)은 충북 제천시 송학면과 강원도 영월군 남면에 걸쳐 있는 산으로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 개국하면서 이성계가 고려의 왕씨 일가를 처형 하자 고려의 왕족으로 승지벼슬을 지낸 왕을규가 화를 피하기 위해 이 산으로 숨어들어 성씨를 그의 외갓집 성씨인 의흥 박씨로 고치고 살았다 하여 그 후로 이 산을 왕박산이라 부른다.
고려의 장수였던 이 성게가 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을 개국하여 새 왕조 개창에 반대하는 권문세족들을 무너뜨리고 온건개혁파인 사대부들을 축출하는 과정에서 고려의 왕족이었던 왕을규도 멸족을 당할 처지가 되었는데 그의 형인 이부상서 왕갑규는 중국으로 망명하고 고려에 남은 왕을규는 외갓집 성을 따라 의흥 박씨 즉 박을규로 행세하며 영춘현 차의곡(현 단양군 가곡면 어의곡리)에 피난와 살았다.
그래서 의흥박씨를 흔히 왕박씨라고 하며 3대까지 영춘에 살았으나 영춘에는 현청이 있고 남한강 수로를 이용하는 비교적 교통이 편리한 곳이라 신변의 불안을 느끼자 4세손 박근부터 왕박산 아래인 제천시 송학면 만지동(음지 만지실)에 은거하며 살게 되었다고 한다
의흥박씨의 관향조인 박을규의 본성은 왕씨로 고려 말에 병부상서를 지냈는데 조선이 개국을 하자 화를 피하기 위하여 춘성(현재 단양군 영춘면) 거의동에 둔거하였다가 조선 태종 때 외가의 성인 박씨를 따랐다.
그 후 후손들은 관향을 의흥으로 삼아 세계를 계승하였으나 중간 계대가 실전되어 후손인 박득서로부터 대를 이었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세조 때 좌익공신인 박근, 중종 때 박승종 등이 저명하다.
잠시 그 왕박산 주변을 살펴보고 있으니 좌측 저 멀리 동쪽에서 안개를 뚫고 일출이 시작되고 있지만 잡목들과 안개로 인해 제대로 된 일출을 감상하기는 어려워 보여 곧바로 왕박산 정상을 내려가 본다.
이곳 왕박산(597.5봉)은 충청북도 제천시 송학면 무도리와 강원도 영월군 남면 토교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이름의 유래를 살펴보니 왕박산은 왕씨에서 박씨로 성을 고친 의흥 박씨와 관련이 있는 곳이다.
의흥박씨세보에 따르면 시조 박을규는 본래 왕씨로 고려 말에 병부 상서를 지낸 인물인데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하자 멸족의 화를 피해 단양의 영춘 차의곡(지금의 단양군 가곡면 어의곡리)에 숨어 살았다.
이곳에서 본디 성씨인 왕씨를 버리고 외가의 성을 따서 박씨로 고쳤는데 사람들은 이들을 왕박씨라 하였다.
이후 4세손 박근이 제천시 송학면 무도리 음지만지실로 옮겨와 은거하면서 뒷산을 자신의 성을 따서 왕박산이라 하였다고 한다.
만지실에는 왕박씨들이 이주하여 서당을 열었다는 서당댕이, 병자호란 중에 식구들과 음지만지실 뒷산 고개 넘어 피난했다는 승지골, 왕박산 중턱에 피난했던 자리로 전하는 북바위, 자연 마을인 삼박의 자취가 전해 온다.
왕박산은 높이 597.5미터로 북쪽에 청룡산(574.6봉), 송학산(819.1봉), 북동쪽에 무동산(620봉), 남쪽에 조올치(450봉), 호명산(475봉), 금수산(1015.8봉), 남동쪽에 가창산(819.5봉), 동남쪽에 삼태산(864봉), 갑산(776.7봉), 남서쪽에 구진산(485봉), 성산(426.7봉), 국사봉(632.3봉), 서쪽에 박달산(691봉)·주유산(902.7봉), 구학산(971봉), 북서쪽에 감악산(885.9봉)이 있다.
왕박산 안부에 있는 조올치(일명 조리재)는 무동산, 왕박산, 삼태산이 삼각형으로 우묵하게 둘러싸고 있는 모양이 조리와 같아 붙여진 이름이다.
조올치와 가창산 사이에 제천 방향으로 나란히 솟은 산봉우리는 아래부터 차례로 1봉, 2봉, 3봉, 땀봉으로 부른다.
제천 시내에서 국도 38호선을 타고 뱃재를 지나 송학면 통불사 입구 시내버스 정류장에 이르러 약 190미터 지점에 다다르면 갈림길 냇가에 대한불교 조계종 왕박산 통불사 1.5 Km라고 적힌 안내판이 보인다.
통불사에서 남동쪽으로 약 500미터 떨어진 고개에 이르면 서쪽으로 점재는 1.2 Km동쪽으로 왕박산은 0.2 Km라 쓰여진 표시목이 서 있다.
왕박산 정상부로 이어지는 길은 칡넝쿨과 잡초가 무성하고 정상에 오르면 남서쪽으로 제천 시내, 동쪽으로 강원도 영월군 남면 토교리가 한눈에 들어온다.
왕박산은 서고동저 지형이어서 냇물이 동쪽으로 흐르고 남동쪽으로는 가창산, 북쪽으로 송학산, 북동쪽으로 무동산이 바라보인다.
왕박산 정상부는 남서에서 북동 간 약 30미터, 너비는 10미터로 일명 시루봉이라 일컫는다.
표고석에는 왕박산 해발 597미터라고 쓰여 있고 표시목에는 남서쪽으로 조리재 0.2 Km북동쪽으로 무도리 1.4 Km라 표기되어 있다.
일제 강점기에는 왕박산 조올치에 쇠말뚝을 박아 지맥을 끊기도 하였다 하는데 최근 왕박산 진입로에 태백선 경사 굴이 건설되었고 더불어 도로 확장 공사가 진행되면서 자연 환경이 빠르게 훼손되고 있다.
왕박산 정상에서 잠시 시간을 보내며 추억 한장 남기고는 곧바로 뒤돌아 내려오니 방금 전 오르며 바라본 왕박시루봉은 이제 하얀 안개속에 파묻혀 전혀 보이지 않고 그 대신 우측 저 멀리 제천의 진산인 송학산이 하얀 안개 띠를 두르고 봄으로도 당당히 솟아 있다.
송학산(819미터)은 강원도 영월군 주천면 용석리, 충청북도 제천시 송학면 시곡리에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819미터로서 수종이 거의 소나무로 이루어져 있고 학이 소나무에 둥지를 틀고 있다 하여 송학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원래 계획은 이곳 왕박산은 들리지 않고 진행을 하려고 하였지만 잠시 헤프닝이 일어 나 사이 홀로 다녀오며 생각지도 못한 환상의 풍경들을 만나는 행운을 얻었던 시간이다.
조망을 즐긴 후 다시 자작나무 군락지를 따라 내려가니 올라갈 땐 없었던 안개가 밀려 와 앞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이다.
다시 통불사 갈림 이정표를 지나고 안부를 통과하여 벌목 후 조림된 지역으로 오르니 예쁜 쑥부쟁이가 가을이 가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이 쑥부쟁이는 가을의 대표적인 야생화인 구절초 및 벌개미취와 닮아 있어 헷깔리기만 한데 오늘은 그 구별법을 한번 배워보기로 한다.
구절초는 꽃대 하나에 하나의 흰색 꽃으로 피어나고 쑥부쟁이에 비해서 꽃잎이 굵고 벌개미취는 잎 가장자리가 물흐름모양으로 약간 올록볼록하며 톱니의 형태처럼 보이기도 하고 꽃잎이 겹겹(겹잎)이며 꽃이 줄기위에 무더기로 피어난다.
반면 쑥부쟁이는 꽃대 하나에 여러 개의 보라색 꽃이 피며 전국의 논과 밭 등에서 가장 쉽게 만날 수 있는 꽃이다.
쑥부쟁이를 조금 더 상세히 알아보니 우리나라에 가을이 다가오면 비슷하게 보이는 꽃이 많이 피는데 그 중에서도 쑥부쟁이와 구절초 그리고 개미취가 함께 피어나 구별이 쉽지 않다.
구절초는 쑥부쟁이보다 꽃과 꽃잎이 크고 흰색이며 쑥부쟁이는 꽃잎 사이가 촘촘한데 구절초는 약간 틈이 있는 점도 다르다.
흰색은 구절초이고 자주색은 쑥부쟁이로 알기도 하는데 하얀 쑥부쟁이도 있어서 색깔로만 구별하기는 더욱 어렵다.
쑥부쟁이의 잎은 길이가 약 5 Cm 정도이고 폭이 약 3 Cm로 타원형이며 잎자루가 길고 잎 끝에는 큰 톱니와 털이 있으며 처음 올라온 잎은 꽃이 필 때 말라 죽는다.
잎의 겉면은 녹색이고 윤이 나며 위쪽으로 갈수록 크기가 작아지며 7~8월에 가지 끝과 원줄기 끝에 여러 송이의 꽃이 달린다.
쑥부쟁이는 가을 산과 들 어느 곳에서나 쉽게 볼 수 있어서 아주 정겨운 야생화로서 꽃은 국화나 장미처럼 화려하지 않고 그저 수수하기만 하다.
우리나라 각처의 산과 들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풀로 반그늘 혹은 양지에서 자라며 키는 약 40 Cm 전후이다.
뿌리줄기가 옆으로 벋으며 원줄기가 처음 나올 때는 붉은빛이 돌지만 점차 녹색 바탕에 자줏빛을 띠기도 한다.
쑥부쟁이를 사진에 담고 빠르게 다시 왕박시루봉으로 오르니 버너와 가스를 가지러 내려간 산친구는 아직 도착을 하지 않아 기다리고 있기에 잠시 왕박시루봉 정상으로 가 사진 몇장 담아 본다.
정상 옆에는 왕박산시루봉이라는 종이코팅지가 보이고 그 앞에는 왕박산 시루에 대한 설명판이 서 있어 읽어 본다.
왕박시루봉(해발 527.8봉)은 충북 제천시 흑석동과 송학면 및 영월군 남면에 걸쳐 있는 봉우리로 개념도상에는 527봉 또는 왕박산 갈림길로 되어 있고 왕박산 시루라고 한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건국되자, 고려의 왕족과 유신들은 뿔뿔이 흩어져 초야에 묻히거나 멀리 낙도에 은신하였는데 조선의 조정에서는 고려 유신들을 찾아 회유하여 등용하기도 하였지만 많은 왕족과 유신들은 숨어 버리고 말았다.
왕박산에도 개경에서 고려 왕족이 내려와 은신하고 성을 박씨로 고쳐 살았다.
성을 바꾸어 박씨가 된 고려 왕족은 그 후 별 탈 없이 조용히 살았으며 자손들도 번성해 나가 사람들은 고려 왕족인 왕씨가 박씨로 성을 바꿔 살았던 곳이라고 하여 왕박산 또는 왕박산 시루라 하게 되었으며 마을 사람들은 새로 생긴 박씨 자손들을 왕박씨라 불렀다.
조선 건국 이후 고려 왕족들이 성을 왕씨에서 전씨, 옥씨 등으로 바꾸어 살아남았다는 이야기를 추강 남효온(1454-1492)이 지은 수필집 추강냉화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잠시 더 기다리니 드디어 버너와 가스를 가지러 갔던 산친구가 도착을 해 왕박산을 다녀오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며 이곳 왕박시루봉에서 단체 사진 한장 남기고 곧바로 출발을 해 본다.
왕박시루봉을 출발하니 깊은 낙엽이 쌓여있는 등로는 뚜렷하게 나 있어 진행에는 큰 어려움이 없지만 보이지 않는 일출 후 안개가 밀려오며 온 세상을 축축히 적시고 있다.
안개를 머금은 나무에서는 이 산객이 지날때마다 굵은 물방울을 등산복과 배낭에 떨어 뜨리고 있다.
잠시 후 이장된 듯한 묘지 한기를 지나 평이하게 걸어 진행을 하니 등로는 직진의 뚜렷한 등로를 버리고 좌측으로 크게 꺽어 급경사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고 있어 주의가 필요한 구간을 지난다.
키 큰 소나무와 키 작은 잡목들이 조합된 급경사 내리막 등로를 타고 조심스럽게 내려가니 잠시 후 잡목과 잡풀들이 우거진 안부에 도착을 하는데 보기에는 조을치처럼 보이는데 지도에는 조움재라 되어 있고 조을치는 조금 더 진행을 해야 만나는 곳이다.
하지만 이곳을 조을치 또는 조을재로 인식하는 지도와 산꾼들도 많아 혼용되고 있는 듯 보이기도 한 곳이다.
돌탑 하나와 소나무에 성황당 같은 천들이 달려 있으며 좌측 옆으로는 이정표가 서 있는데 왕박산에서 1.7 Km 진행해 왔다는 거리 표시만 있을 뿐 가야 할 가창산과 우측으로 흑석동 방향의 거리 표시는 없어 조금은 아쉬운 이정표이다.
조움재를 지나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잡목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그 잡목에 내려 앉은 이슬이 물방울이 되어 이 산객이 지날 때마다 비산하며 온 몸을 적시고 있어 등산화와 등산복이 축축하게 젖어 버렸다.
그렇게 잠시 더 오르니 등로는 더욱 몽홪넉인 분위기로 변하면서 523.4봉에 도착을 하고 가지가 잘린 벗나무 한그릇을 사진에 담고 곧바로 출발을 한다.
다시 낙엽 깔린 안부를 지나 오르니 커다란 참나무가 꺼여있는 무명봉을 지나고 약간의 단풍이 남아있는 곳을 넘으니 지도 상 조을재인 서문리 갈림 이정표가 서 있는 안부에 도착을 한다.
서문리를 찾아보니 제천시의 동북쪽에 위치하며 서문리를 포함하는데 본래 제천군 동면의 지역으로서 검은 빛깔의 돌이 많으므로 거믄돌 또는 흑석이라 하였고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송티리 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흑석리라 해서 읍내면(제천면)에 편입되었다가 1940년 제천읍에 편입되었다가 1980년 제천시의 법정동이 된 제천시 흑석동의 자연마을 중 한곳인 서문리(서무니)는 흑석동의 북쪽 전체의 통칭하는 명칭이다.
조을재는 또한 조리재라고도 불려졌는데 조리재는 강원도 영월군 남면 토교리에서 제천시 점제로 넘어가는 길에 위치한 고개로서 왕박산 줄기이다.
그 지형이 조리형국이라 조리재라고 부르며 곡식이 많이 모여들어서 큰 부자가 나는 명당이 있다는 얘기가 전해오고 있으며 조리재 명당 자리에 일제가 박아 놓은 쇠말뚝이 발견되어 1995년 8월 이를 제거하는 행사가 있었다.
조을재(조을치, 조리재, 490미터)는 강원도 영월군 남면 토교리에서 제천시 흑석동 서문리로 넘어가는 길에 위치한 고개이다.
그 지형이 조리 형국이라 조리재라고 부르며 곡식이 많이 모여들어서 큰 부자가 나는 명당이 있다는 얘기가 전해오고 있으며 조선시대에는 영월로 가는 관행 길이었다고 한다.
무동산, 왕박산, 삼태산이 삼각형으로 우묵하게 둘러싸고 있는 모양이 조리와 같아 붙여진 이름으로 조올치와 가창산 사이에 제천 방향으로 나란히 솟은 산봉우리는 아래부터 차례로 1봉, 2봉, 3봉, 땀봉으로 부르며 영진지도에는 조을치로 표기되어 있고 이 지역 사람들은 조리재로 부른다.
조을재 정상에는 민초들의 만든 듯한 돌탑 하나와 이정표가 서 있고 커다란 소나무 한 그루 위에 무속인들이 걸어 놓은 듯한 천들이 있다.
조을재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옛날 충청도 지방에 김씨 성을 가진 이가 살고 있었는데 이 사람은 키도 작고 성품이 몹시 경망스러워 주위 사람들은 이름 대신 조리라는 별명을 만들어서 불렀다.
그런데 김조리는 하는 일마다 제대로 되는 것이 없었으며 그러던 어느 날 김조리는 혹시 아버지의 묘를 잘못 써서 그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유골을 괴나리 봇짐 속에 소중히 모신 다음 명당이 많다는 강원도를 향하여 발길을 옮겼다.
김조리가 충북과 강원도의 경계인 왕박산 밑 점제에 도착하자 날이 저물었다.
그는 주막집의 목로방에서 장사꾼들과 함께 자면서 아버지의 유골이 든 봇짐을 가슴에 안고 있다가 잠자리에 들 때 에야 머리맡에 모셔 놓고 잠이 들었으나 그 다음날 눈을 떠보니 아버지의 유골이 든 봇짐은 없어지고 참빗 장사꾼의 큰 보따리만 덩그렇게 남아 있었다.
유골 봇짐을 잃어버린 그는 대성 통곡을 했지만 찾을 길이 없었다.
김조리는 유골 봇짐과 바뀌 어진 참 빛 보따리를 가지고 다니면서 장사를 했는데 이상하게도 가는 곳마다 참빗이 잘 팔려 큰 돈을 벌었다.
그 후에도 하는 일마다 모두 잘되어 몇 년 안가서 장가도 들고 땅도 많이 사서 큰 부자가 되었다.
한편 그 주막집에서 함께 자던 참빗 장수는 김조리가 봇짐을 소중하게 여기므로 혹시 무슨 보물이라도 있는게 아닌가 하는 욕심으로 그날 새벽 봇짐을 훔쳐 가지고 도망을 쳐서 조리재 중턱에서 봇짐을 풀어보니 뜻밖에도 사람이 유골이 나왔던 것이다.
참빗장수는 어처구니가 없고 화가 나서 그 유골 봇짐을 큰 참나무 밑에다 휙 던져버리고 조리재를 내려오다가 자신도 조상을 모시는 사람인데 하는 죄책감에 사로잡혀 참나무 밑에 유골을 묻어준 후 남의 집 머슴살이를 전전하다가 10여년이 지난 후 충청도의 큰 부자 집 머슴으로 가게 되었다.
그런데 그 집 주인은 추석이 다가와도 아버지 산소에 벌초할 생각은 하지 않고 한숨만 쉬고 있었다.
머슴은 숫돌에다 낫을 갈면서 주인 어른 올해도 벌초를 안 가십니까 하고 물으니 나도 예전에는 자네처럼 머슴살이도 하고 행상도 했으나 하도 되는 일이 없어서 아버님의 유골을 강원도의 명당 자리로 모시고 가던 중에 어느 참빗장사가 실수로 봇짐을 바꾸어 가는 바람에 아버님의 유골을 잃어 버렸다고 이야기 해 주인의 말을 들은 머슴은 갑자기 무릎을 꿇고 엎드려 제가 바로 그 때 유골을 훔쳐간 참빗 장사입니다라고 말하면서 용서를 빌었다.
주인은 오히려 반가워하면서 아버님의 유골을 찾게 해 달라고 말했다.
그 다음날 김조리는 이름난 지관을 모시고 머슴과 함께 이곳 왕박산 줄기의 큰 참나무 밑에 있는 아버님의 묘를 찾아냈고 지관은 패침을 놓고 유골이 묻힌 묘를 한참 주시하더니 무릎을 치면서 어느 유명한 지관 어른이 당대에 발복하는 조리 형국의 혈에다 묘를 잡아 주었냐라면서 놀라는 것이었다.
그 후 김부자는 참빗 장사였던 머슴에게 많은 재산을 나누어 주고 친형제처럼 의좋게 살았다고 한다.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출발하며 영월지맥 산행을 이어가 본다.
서문리 갈림삼거리 이정표가 있는 조을재를 지나 완만하게 오르니 커다란 참나무 두 그루가 서 있는 515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다시 약간의 잡목들의 저항이 있는 낙엽 등로를 따라 걸어 전진하니 약간의 바위 등로를 지나 평이한 능선상에 삼각점이 박혀있는 566.9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뒤따르는 산친구들을 기다려 본다.
잠시 기다리는 동안 흐르던 땀방울이 마르며 약간의 한기를 느끼기에 계절의 변화가 실감나는 시간이기도 하다.
잠시 후 산친구들 모두 도착을 하고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바위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등로는 완만하게 내려간다.
잠시 내려가니 키 작은 가시 덩쿨식물들이 여전히 푸르름을 유지하며 계절의 변화를 거부하고 있지만 조만간 곧 순응하며 겨울을 준비할 것이다.
곧이어 등로 우측으로 괴골로 내려가는 갈림삼거리 이정표가 보이는 문영월재 안부에 도착을 하는데 문영월재는 충북 제천시 흑석동에서 강원도 영월군 남면 토교리를 넘어가는 고개로서 자료를 찾아보니 그 어디에도 문영월재에 관한 자료가 없어 아쉬운 시간이다
이정표에 나타난 괴골은 제천시 두학동의 자연마을 중 한곳으로 두학동은 제천시의 중앙 동쪽에 위치하며 본래 제천군 동면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상풍리, 하풍리, 응동, 유곡리, 부곡리를 병합하고 단양군 어상천면의 자작리 일부 지역을 편입하여 학들의 머리 쪽이 되므로 두학리라 해서 읍내면에 편입되었다가 1940년 제천읍에 편입되면서 자작동과 흑석동으로 분리된 후 1980년 시승격에 따라 두학동이란 지명을 얻은 두학동의 상풍 동북쪽에 있는 마을과 골짜기로서 앞에 괴목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두학동 괴골마을 하산 갈림삼거리 이정표가 서 있는 문영월재를 지나 완만하게 오르니 등로는 여전히 잡목들이 보이는 몽환적인 모습으로 다가온다.
잠시 후 바위와 참나무가 뒤엉켜 있는 518 무명봉에 도착을 하는데 시간이 벌써 아침 8시를 넘기고 있어 적당한 장소를 찾아 아침식사를 하고 출발하기로 한다.
등로에는 여전히 키 작은 가시 덩쿨들이 빼곡히 자라고 있어 자리 잡기가 쉽지 않아 계속 걸어가니 커다란 소나무들이 서 있는 519미터의 능선에 좁은 자리가 보여 그곳에 자리를 잡고 맛 있는 아침식사를 즐기며 잠시 쉬어 간다.
다시 잡목들이 보이는 내리막 등로를 타고 걸어 내려가니 등로 옆으로는 커다란 낙엽송들이 보이고 곧이어 나즈막한 안부를 통과한다.
안부를 지나 이슬로 젖어 있는 잡목들을 헤치며 완만하게 오르니 안개층을 뚫고 들어오는 빛내림이 황홀한 아침을 보여주고 있어 사진 몇장 더 남기고 올라 본다.
다시 평이한 참나무 등로를 따라 걸어 진행을 하니 등로 우측으로 설매산 갈림삼거리 이정표가 보이고 사진 한장 남기고 들리지 못하는 설매산에 대한 자료를 찾아 보지만 찾을 수 없어 설매산이 있는 두학동을 찾아 본다.
설매산이 있는 두학동은 충청북도 제천시에 속하는 법정동으로서 옛날에 제천향교 뒷산 독순봉에서 학 두 마리가 날아오다가 한 마리는 학다리에 떨어져 죽고 한 마리는 바람부리 서쪽에 있는 학들에 떨어져 죽었다 전하는데 학들 동쪽의 단양군 어상천면 자작리를 편입하면서 학의 머리 쪽이 되므로 두학이라 하였다.
학들은 두루미 서식처로 작은황새골, 큰황새골, 오리골 등의 지명이 전하며 학들 옆에 있는 마을은 학평으로 불린다.
부곡산까지 이어진 가창산 지맥인 장치미골에 계곡이 흐르고 한천 야산 북쪽 골짜기에서 아래알미까지 이어지는 들판과 구릉지에 맛골구렁을 막은 맛골저수지가, 중말 구릉지에 싸리재구렁을 막은 싸리재저수지가 있다.
두학동은 제천시 중앙부 동쪽에 자리 잡고 있으며 동쪽으로 강원도 영월군과 충청북도 단양군의 경계인 가창산이 솟아 있고, 남동쪽으로 자작동, 남쪽으로 고명동, 서쪽으로 흑석동과 이웃한다.
이곳 제천에는 자연 환경이 좋은데 지명과 관련해서는 제대로 된 자료 정리가 되지 않아 아쉬움을 느끼는 지자체이다.
설매산 갈림삼거리 이정표를 지나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갑자기 드넓은 비포장 임도가 지나는 무명 안부에 도착을 하는데 처음에는 잘 몰랐는데 잠시 후 만나는 폐광터를 보니 아마도 그 폐광터와 관련이 있던 비포장 임도가 아닐까 생각을 해 볼 수 있는 임도이다.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분봉이 없는 묘지들을 연속으로 지나 잡초 지대를 통과한다.
잡목과 잡초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어 등로도 갈지자를 그리며 오르게 되는데 그렇게 어ㅗ르다 보니 등로 좌측으로 692.7봉으로 오를 수 있는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해 우측으로 휘어지며 진행을 해 본다.
다시 참나무가 보이는 평이한 등로를 따라 걸어 진행을 하니 이곳 등로는 이제 막 가을로 접어드는 빛깔이 눈에 들어 온다.
그렇게 잠시 더 평이하게 걸어가니 커다란 바위와 소나무가 보이는 능선상 나즈막한 봉우리에 도착을 하는데 지도를 보니 이곳을 682미터의 일자봉이라 해 놨는데 그 어디에서도 일자봉에 관한 자료를 찾을 수 없어 조금은 의심이 가는 곳이기도 하다.
특별한 볼 것도 없고 이정판 하나 없으니 주의하지 않으면 일반 무명봉으로 알고 지나칠 수 있는 일자봉이다.
일자봉을 지나 잠시 더 걸어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 절개지가 내려다 보이는데 살펴보니 처음에는 채석장이라 생각을 했는데 나중에 자료를 찾아 보니 폐광산터였다.
그 폐광산터의 직벽 절개지는 한동안 등로 좌측으로 뒤따라 오고 그 아래 토교리 마을에는 안개가 자욱하게 깔려 있어 보이지 않지만 그 뒤로 무명 산줄기가 아름답게 그 하얀 안개위로 솟아 있다.
나즈막한 잡목 안부를 지나 가파르게 오르고 그렇게 그 폐광산터 상부로 올라 등로 좌측을 살펴보니 저 멀리 하얀 안개 위로 승리봉과 왕박산이 고개를 내밀며 존재감을 알려온다.
그 폐광터를 지나 조금 더 걸어 오르니 등로에는 갑자기 굵은 파이프가 보이는데 아마도 폐광산터에서 사용된 파이프가 아닐까 생각되는 시간이다.
그 파이프를 타고 조금 더 걸어 오르니 말라 죽은 붉은 단풍이 단풍나무에 매달려 가는 세월을 아쉬워하는 듯 보이고 잠시 후 고사목과 소나무가 혼합되어 있는 709.1봉에 도착을 해 심호흡 한번 하고 다시 출발한다.
잠시 사라진 듯 보였던 안개가 다시 자욱하게 밀려오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고도를 높이니 이곳 등로는 이제 가을을 넘어 겨울을 준비중인데 이상하게도 단풍나무에는 울긋불긋 물들은 단풍들이 말라 죽어 떨어지지 못하고 나무에 매달려 있어 아쉬운 풍경이다.
그래도 단풍나무들이 많지 않아 말라죽은 단풍들을 사진에 담고 걸어 완만하게 오르니 등로에는 바위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잠시 후 바위 안부를 지난다.
안부를 지나 다시 나타나는 바위 등로를 따르니 바위와 참나무가 혼재되어 있는 697 무명봉에 도착을 해 진행 방향으로 가창산 방향을 살펴보지만 짙은 안개로 인해 보이는 것이 없어 다시 출발한다.
다시 낙엽이 수북하게 깔려있는 바위 등로를 타거ㅗ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 바위와 천길 낭떨어지가 내려다 보이고 잠시 후 좌측으로 휘어 걸어가니 삼각점이 박혀있지만 오래된 이정표 하나 달랑 서 있는 가창산 정상에 도착을 해 추억 한장 남겨 보는데 조금은 아쉬움이 남는 시간이다.
가창산(818.6봉)은 강원도 영월군 남면 토교리와 충북 제천시 고명동의 경계에 위치한 산으로 해발고도는 818.6미터이다.
석회암으로 형성된 산으로 태영석회, 장자광업소, 석교광업소 등 석회광산이 많고 일명 까창산이라고도 하며 옛날 신선이 내려와 이곳에서 가무를 즐겼다고 하는데 지금도 가창산 봉우리에는 신선이 바둑을 두던 너럭바위가 있다고 한다.
신라 때 어느 승려가 이 산에 머물면서 불도에는 등한히 하고 사주하러 찾아오는 부녀자들과 노래나 부르며 놀았다고 하여 가창산이라고 일컫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조선지지자료에 남면 토교리에 소재하는 것으로 소개되고 있다.
가창산 소개에 나오는 신선들이 바둑을 두던 너럭바위를 찾아 보지만 찾을 수 없어 확은 하지 못하고 내려 왔다.
가창산 정상에는 이정표 하나가 서 있는데 진행 방향 반대쪽으로 장치미라는 글자가 보여 찾아 보니 장치미는 가창산 올라가는 동남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을 말하고 있는데 연못과 마을회관이 있는 마을이다.
추억 한장 남기고 가창산 정상을 몇 발자국 내려가니 바위 하나가 보여 그 바위 위로 올라 동쪽 방향을 살펴보니 토교리와 석교리 방향의 산줄기가 바로 코 앞에 보이고 그 뒤 저 멀리 하얀 안개속에 얼굴만 내밀고 있는 영월지맥 마지막 봉우리인 태화산이 보인다.
처음에는 앞에 보이는 능선이 영월지맥 마루금이라 생각을 했는데 영월지맥 마루금은 우측으로 흘러 내려가기에 여기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가창산에서 시간을 보내고 잡목이 우거진 등로를 타고 걸어 내려가니 등로가 희미해지고 낙엽이 깊게 깔려 있어 마루금 찾아 진행에도 어려움을 느끼는 시간이다.
어렵게 등로를 찾아 걸어 내려가니 단풍나무도 아닌 활엽수의 잎들이 붉게 물들어 화사한 단풍잎보다도 더 화려하게 등로를 밝히고 있어 잠시 발걸음 멈추고 변해가는 단풍을 감상하고 다시 출발한다.
다시 나타나는 잡목 내리막 등로를 타고 가파르게 내려가니 등로는 갈지자로 왔다리 갔다리 내려가고 있다.
잠시 더 걸어 내려가니 ㄹ하늘을 향해 길게 뻗어 있는 참나무들이 보이고 곧이어 잡목들이 우거진 무명 안부에 도착을 하는데 그곳에도 많은 낙엽들이 쌓여 산객이 지날때마다 바스락 거리며 가을이 왔음을 알리고 있다.
그 무명 안부를 지나 조금 더 걸어 오르니 커다란 참나무 한그루가 보이는 674.2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가야 할 거리가 멀기에 곧바로 출발한다.
다시 이어지는 활엽수와 자작나무를 지나 평이하게 걸어가니 등로 우측으로 갈리는 갑산지맥 분기점인 602봉에 도착을 해 언제 다시 오를 수 있을지 모를 갑산지맥 산줄기를 생각해 보며 함께하는 동해바다 산친구와 사진 한장 남겨 본다.
갑산지맥은 영월지맥의 가창산(819.5봉) 동남쪽 약0.9 Km지점인 602미터봉에서 남쪽으로 분기하여 갑산(747봉, 호명산(479봉),295.1미터(금수지맥분기점), 성산(425.6봉), 한티재, 중앙고속도로 제천휴게소, 국사봉(632.3봉), 대덕산(577봉), 마미산(600.8봉), 부산(780.4봉)을 지나 천천이 남한강 충주호에 합수하는 충주시 동량면 사기리까지 이어가는 도상거리 46.2 Km의 산줄기로 제천천의 우측 분수령이 된다.
다음달에 영월지맥 산행이 마무리되면 이 영월지맥에서 분기한 지맥 산행도 조만간 다시 시작이 될 것이고 그때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산줄기가 바로 이 칠갑산의 아름을 가지고 있는 갑산지맥 산줄기이기에 마음 한구석에 고이 접어 둔다.
갑산지맥 산줄기를 우측으로 보내고 영월지맥은 좌측 산줄기를 따라 완만하게 내려가는데 그 등로에는 멋진 소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다.
그렇게 잠시 더 내려가니 등로는 더욱 가파른 내리막 등로로 변하고 한동안 조심하며 걸어 내려가니 갑자기 비포장 임도가 나타난다.
연곡리와 석교리를 이어주는 고개처럼 보이는데 지도를 살펴봐도 아무 이름이 없는 무명안부이다.
그 비포장 임도를 따라 우측으로 걸어가도 곧바로 정상 마루금과 만나지만 그 비포장 임도를 건너 능선으로 걸어 오르면 526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그 봉우리에서 우측으로 휘어 내려가면 방금 전 헤어진 비포장 임도와 다시 만나 진행하게 된다.
좌측으로 잠시 걸어 내려가니 눈 앞에 드넓은 벌목지대가 펼쳐지고 곧이어 방금 전 헤어진 비포장 임도로 내려서게 된다.
그 비포장 임도 우측에는 안내판이 서 잇는데 가서 살펴보니 이곳은 청산영림에서 국비와 도비 및 군비를 지원 받아 호두나무를 식재한 식재지로서 조성하는데 약 2억원의 돈이 들었다는 내용이다.
그 호두나무 식재지 가운데로 나 있는 비포장 임도를 따라 정상부로 올라 뒤돌아 보니 방금 전 아쉬운 마음을 남겨두고 내려 온 갑산지맥 분기점에서 이곳으로 내려 온 마루금이 시원하게 올려다 보이는데 그 등로에는 울긋불긋 단풍이 곱게 물들어 가는 모습도 보인다.
그 호두나무 식재지 정상에서 잠시 주위 풍경과 조망을 즐긴 후 간벌된 능선으로 오르니 키 작은 소나무들이 조림되었는지 많은 키 작은 소나무들이 간벌된 지역에서 자라고 있다.
이제 등로 우측으로 벌목된 경계선을 타고 완만하게 오르다 등로 우측을 살펴보니 갑산지맥의 주봉인 갑산이 보이기 시작한다.
언제나 다시 저곳으로 올라 갑산지맥이란 이름으로 걸어 볼 수 있을지 기대도 해 보는 시간이었다.
우측으로 계속 이어지는 갑산지맥 산줄기를 살펴보며 걸어 오르니 589.4봉에 도착을 하는데 그곳에서 다시 우측 벌목지대 넘어 보이는 갑산지맥 마루금을 살펴본다.
저 갑산지맥 마루금의 주봉인 갑산 역시 육백지맥의 안황산처럼 채석되어 조만간 사라질지도 모르기에 가장 먼저 올라 사라지기 전에 남아 있는 모습이라도 담을 수 있기를 희망해 보지만 그것이 언제일지 기약조차 할 수 없으니 안타까운 시간이다.
갑산(747미터)은 충청북도 단양군의 북쪽에 위치하며 매포읍과 어상천면 그리고 제천시 자작동에 걸쳐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747미터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단양)에 갑산이 군의 북쪽 40리에 있다는 기록에서 갑산이라는 지명이 처음 나타나고 이후의 고지도에서는 모두 갑산으로 표기하고 있다.
해동지도에는 단양군과 영춘현이 접하는 경계지역에 표기되어 있고 조선지도에는 영춘현과 제천이 접하는 경계지역에 표기되어 있으며 대동여지도에는 단양군의 북면과 제천의 근좌면의 경계지역에 표기되어 있다.
갑산은 매포읍 삼곡, 가평, 영천, 상시, 하시의 주산이며 갑산이란 의미는 산 가운데 으뜸으로 잘생긴 산을 의미하기도 하는데 현재는 시멘트 회사의 석회석 채석장이다.
제천시 자작동으로 넘어가는 갑산재가 관련 지명으로 남아 있다.
사람들이 많이 살아가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변해가는 지형이지만 그래도 그 높은 산 하나를 통째로 깍아 사라지게 만든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아해가 되지 않는 시간이다.
채석 후 복구나 잘 시키면 몰라도 경제적 이익만 챙기고 나면 그 나머지 비용은 국민 세금으로 복구를 시켜야 하니 한심한 나라가 아닌지 반문하기도 하는 시간이다.
다시 계속 이어지는 벌목 경계 능선을 따라 조금 더 오르니 활엽수 단풍이 화사하게 반겨주는데 이곳에서부터 갑자기 뜨거운 태양이 구름 사이로 빠져 나와 굵은 땀방울을 더욱 많이 흘리게 만들고 있다.
무명봉 정상에서 등로는 이제 벌목지대와 헤어져 좌측 능선으로 꺽어 진행이 되고 커다란 참나무 한그루를 지나 걸어가니 이장된 듯한 묘지 한기를 통과한다.
다시 키 작은 잡목들과 키 큰 소나무가 혼재되어 있는 희미한 등로를 찾아 어렵게 걸어 전진하니 다시 커다란 소나무들을 지나 등로 옆으로 오래된 하얀색 아크릴 판에 영월지맥 598.5봉이라 적은 이정판 하나가 눈길을 잡는 598.5봉에 도착을 하는데 자세히 보지 않으면 봉우리라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일반 능선상 봉우리이다.
그 봉우리를 지나 조금 더 걸어 전진하니 키 작은 소나무들이 자라고 있는 간벌지대인데 아마도 몇 년 전 벌목 후 소나무들을 식재한 장소는 아닐까 생각되는 벌목지대가 나타난다.
간벌 후 널부러진 나무들이 산 전체에 그대로 방치되어 있어 길찾아 진행하는 것이 쉽지 않다.
특히나 간벌된 나무들을 발목 높이에서 잘라 놔 걸어 진행하면서 등산화에 자주 걸려 위험하기도 한 상황이 자주 벌어져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그래도 어렵게 정상 등로를 찾아 완만하게 간벌된 마루금을 타고 걸어 내려가다 앞을 살펴보니 이제부터 갈지자로 이어지며 걸어야 할 삼태산까지의 빨래판 능선이 드디어 눈 앞에 ㅍ ㅕㄹ쳐지기 시작한다.
바로 앞 벌목된 봉우리도 이곳에서 살펴보니 송곳처럼 뾰족하게 보이는데 실제로 걸어 진행을 해 보니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는 정상이라 고민을 덜었던 시간이었다.
영월지맥 마루금 우측으로는 어상천면 연곡리 마을이 내려다 보이고 그 뒷쪽으로 뾰족한 봉우리와 산줄기들이 보이는데 처음에는 갑산과 갑산지맥 산줄기가 아닐까 생각을 해봤지만 지도를 확인해 보니 이름없는 무명봉이다.
그 우측으로 갑산과 갑산지맥 마루금을 찾아 보지만 능선에 막혀 보이지 않아 아쉽기만 하다.
계속 눈 앞에 펼쳐진 지금부터 걸어 진행해야 할 삼태산까지의 영월지맥 마루금을 살펴보며 천천히 걸어 내려가니 등러ㅗ에는 다시 간벌 후 정리되지 않은 잡목들이 널부러져 있어 진행에 상당한 어려움을 느끼며 내려가는 시간이다.
그렇게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좌측으로 벌목되어 있는 549.5봉이 뾰족하게 올려다 보이며 이 산객의 마음을 고통속으로 몰아가고 있다.
등로 우측의 연곡리 마을 뒷쪽으로 뾰족하게 솟아 있는 봉우리 하나가 자꾸 눈길을 붙잡고 그 아래 박무속에 빛나는 연곡리의 민가들이 아름답게 내려다 보인다.
연곡리는 충청북도 단양군 어상천면에 있는 리로서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며 큰 못이 있었으므로 모실 또는 연곡이라 한데서 연곡이라는 명칭이 생겼다.
자연마을로는 모란, 소나무리, 술미 등이 있는데 모란은 못안이라고도 부르며 모실 북쪽에 있는 마을로서 전에 못이 있었는데 그 안쪽이 된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소나무리는 송화동이라고도 부르며 사마티 동남쪽에 있는 마을로서 소나무와 잣나무가 많다 하여 붙은 이름이고 술미는 순산이라고도 부르며 중골 북쪽에 있는 마을로서 전에 수리매가 이곳에 있는 느티나무에 집을짓고 살았다하여 붙은 이름이다.
이곳 어상천면을 보고 처음에는 양양에 있는 어성천리를 생각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두 장소는 완전히 다른 장소인데 이름이 유사해 헷깔린 듯 하였다.
잠시 더 내려가 시원한 바람이 불어 오는 무명 안부에서 잠시 쉬며 물 한모금 마시고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올라 뒤돌아 보니 방금 전 내려 온 598.5봉이 아름답게 올려다 보인다.
다시 계속 이어지는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이제 등로 좌측으로 석교리 마을이 아름답게 펼쳐진 풍경이 눈에 들어 오기 시작한다.
석교리는 충청북도 단양군 어상천면에 있는 리로서 농촌마을이며 돌로 다리가 있으므로 돌다리 또는 석교리라 한데서 석교라는 명칭이 생겼다.
자연마을로는 개막, 멍앗, 아랫돌다리 등이 있는데 개막은 개야막이라고도 하며 돌다리 남쪽에 있는 마을이며 전에 어느 선비가 초막을 짓고 반평생을 한가로이 지냈다는 설이 있다.
멍앗은 가전동이라고도 부르며 아랫돌다리 동북쪽에 있는 마을이고 아랫돌다리는 돌다리 아랫쪽에 있는 마을로서 효자 파평 윤씨의 비각인 윤효자비각이 있다.
그렇게 등로 좌우측으로 내려다 보이는 어상천면의 마을들을 살펴보며 꾸준하게 오르니 드디어 생각보다 쉽게 549.5 삼각점에 도착을 해 심호흡 한번 하면서 잠시 쉬어 간다.
그 549.5 삼각점봉을 지나 참나무 등로를 따르니 잠시 후 등로는 뚜렷한 직진 등로를 버리고 좌측으로 꺽어 가파른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고 있어 길주위 지점이다.
참나무들이 줄지어 늘어 서 있는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낙엽에 몇번 미끄러지며 너무나 어렵게 내려가니 등로 좌측으로 잠시 짧은 잣나무 군락지를 지나 무명 안부에 도착을 해 저 위에 내려오는 산친구들을 기다리며 잠시 쉬면서 남아 있는 과일로 허기를 달래 본다.
찬바람이 불면서 바람에 떨어지는 낙엽들이 마치 낙엽비가 내리듯 흩날리는 풍경을 살펴보며 조금씩 한기를 느껴 다시 배낭 둘러메고 그 무명안부를 출발한다.
잠시 오르다 뒤돌아 보니 방금 전 올랐다 내려 온 549.5봉이 올려다 보이는데 그 봉우리 우측 능선으로 벌목된 모습도 보인다.
그 벌목된 능선 방향으로 내려 왔으면 조금 더 좋았겠다 생각하며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잡목들과 잡풀들 그리고 활엽수가 보이는 522.1봉에 도착을 한다.
올랐으니 등로는 다시 완만한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고 곧게 뻗어 자라고 있는 활엽수들이 보이는 무명안부로 내려갔다 다시 바위들이 보이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오래된 고사목들이 널부러져 썩어가고 있는 519.8봉 정상에 도착을 한다.
잡목들에 막혀 주위 풍경도 전혀 보이지 않기에 다시 사진 한장 남기고 곧바로 출발해 완만하게 내려가 본다.
썩어가는 고사목이 널부러져 있는 519.8봉을 지나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숙부인영월신씨 묘지가 보이고 잠시 후 나뭇가지 하나가 잘려있는 소나무가 서 있는 520 무명봉도 통과를 한다.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솔갈비가 덮혀있는 무명묘지 한기를 지나고 이어지는 묘지 몇기를 더 통과하니 밭 경작지 가장자리를 지나 민가 한채가 내려다 보이고 포장도로가 보이는 중산재로 내려선다.
중산재(참나무재이고개)는 어상천면 대전리의 참나무재이에서 연곡리 중거리로 가는 고개로 참나무재이는 이터골 남쪽에 있는 마을의 옛터골 남쪽에 있는 산으로 산형이 주마탈환형이라 한다.
중산재(해발 343미터)는 단양군 어상천면 연곡리에서 대전리를 넘어가는 고개로 제천에서 영월과 쌍용으로 이어지는 아스팔트 포장도로가 있고 우측 아래 대전리에 참나무쟁이 마을이 보인다.
예전에 참나무가 많아서 붙여진 지명이라고 하며 중산재라는 지명은 산과 산사이의 중간에 위치한 고개라 하여 붙여진 지명이라고 하는데 이 지역사람들은 장재라고 부른다.
교통이 불편했던 옛날에 이곳 어상천 사람들이 제천에 있는 장에 다닐 때 이 고개를 넘었다고 하여 장재 또는 장고개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 바람에 이곳에는 장을 보러 다니는 사람들의 호주머니를 노리는 도둑들이 득실거리기도 한 곳이라고 전해진다.
이곳 중산재에서 동해바다 산친구의 발목에 다시 약간의 문제가 있어 보이고 그곳에서 두팀으로 나눠 이 산객과 나사님은 선두로 빨리 하산하여 애마를 회수한 후 날머리에서 기다리고 나머지 두명은 발목에 무리가 가지 않토록 조심하며 최대한 빨리 뒤따라 진행하기로 하고 헤어진다.
검정 천막과 그물망이 둘러쳐진 밭 경작지를 지나 오르니 벌목 후 소나무가 식재된 등로가 나타나는데 지금부터는 그 벌목지대 경계선을 따라 올라 본다.
조금은 가파르게 그 벌목지대 경계선을 타고 오르니 등로는 다시 좌측 능선 방향으로 이어지고 곧이어 커다란 바위 옆에 소나무가 힘겹게 살아가는 모습이 보이는 471.3봉에 도착을 한다.
그 471.3봉을 지나 조금 더 오르니 463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그 무명봉을 지나니 등로는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로 진행이 되고 있다.
송제양천허공과 ㄷ그 부인 창녕조씨 묘지를 지나 뚜 렷한 등로를 타고 빠르게 걸어 내려가니 갑자기 잡풀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비포장 임도를 만나 지도를 살펴보니 아무 표식도 없는 무명 비포장 임도이다.
지도에는 그저 사거리라는 표기만 되어 있는 고갯마루로서 무두리와 연곡리를 이어주는 고개중 한곳처럼 보이는데 확실하지는 않다.
그 비포장 임도를 가로질러 건넌 후 능선으로 들어가니 생각보다 잡목들의 저항이 심하게 이어지고 잠시 더 걸어 전진하니 잡목 사이로 낙엽이 깔려 있는 능선에 도착을 해 조금은 편안하게 걸어 본다.
그렇게 한동안 평이한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커다란 소나무 몇 그루가 자라고 있는 475봉에 도착을 하는데 등로는 이곳에서 좌측으로 크게 꺽여 완만한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무명봉 하나를 좌측에 두고 우측 사면 등로를 빠르게 걸어 진행을 하니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지나 무명 안부를 통과한다.
다시 소나무 등로를 타고 빠르게 걸어 전진하니 갑자기 눈 앞에 검정 천막이 나타나고 그 천막을 따라 내려가 안부를 지나는데 천막은 흙속에 묻혀 흔적만 남아 있다.
다시 특이할 것 없는 평범한 능선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삼각점이 박혀 있는 468.5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출발한다.
그 삼각점봉을 지나 평이하게 조금 더 걸어가니 등로는 급경사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는데 등로 우측으로는 그물망과 굵은 로프가 설치되어 있고 좌측으로는 드넓은 벌목지대가 펼쳐져 있다.
경사가 너무 심해 주의하며 어렵게 그 로프를 잡고 내려가니 경사도가 조금은 완만해지며 등로 좌측 벌목지대 넘어 대전리 마을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대전리는 충청북도 단양군 어상천면에 있는 리로서 농촌마을이며 큰밭이 많아 한밭 또는 대전이라 한데서 대전이라는 명칭이 생겼다.
자연마을로는 느르메기, 방산미, 삼화동 등이 있는데 느르메기는 사그막 남서쪽에 있는 마을로 붉은 황토흙과 학이 동리에 많았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고 방산미는 삼화동 남동쪽에 있는 마을로 매우 아름다우며 웃말과 아랫말로 나뉘어진다.
삼화동은 대전리의 중심이 되는 마을로 예전에는 사기를 굽던 막이 있었다고 하며 동리 중심부의 공터에 이름을 알 수 없는 아름다운 세송이의 꽃이 피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정문으로 허효자문이 있는데 이는 옛터골 남쪽에 있는 효자 양천 허 회의 정문이다.
그렇게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고 등로는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마루금으로 연결된다.
안부를 지나 잠시 오르막 등로를 따라 오르니 등로 옆 나뭇가지에 사유지 출입금지 경고판이 달려있는데 임산물 채취를 금지한다는 내용이다.
그곳 벌목지대 상부에서 잡목 능선으로 들어가기 직전 잠시 방금 전 어렵게 내려 온 그경사 내리막 등로를 살펴보니 생각보다 더 급한 경사도에 혀가 절로 내둘러질 정도이다.
벌목이 되어 있어 좋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걷게 되는 이곳 영월지맥 마루금은 전혀 좋아 할 이유가 없는 듯 거칠게 다가오는 벌목 등로이다.
다시 약간의 잡목을 헤치고 능선으로 들어가니 생각보다 등로는 뚜렷하게 나 있고 그 등로를 타고 좌측으로 빠르게 걸어 진행을 한다.
선답자들의 띠지가 걸려 있는 365 무명봉에 오르고 다시 잡목들을 헤치며 완만하게 내려가니 약간의 사초들이 자라고 있는 비포장 임도길 깉은 뚜렷한 등로를 만나 좌측으로 걸어가 본다.
조금 더 걸어가니 등로 우측으로 조망이 터지는데 오전과는 달리 이제는 박무가 심해 희미하게 올라야 할 삼태산ㅇ 조금 더 가깝게 다가온 조망이 올려다 보인다.
조망을 즐기고 계속 임도같은 등로를 따르니 등로 우측으로 넓은 밭 경작지가 내려다 보이는데 작물들을 모두 수확하여 비어 있기에 그 밭 가장자리를 타고 내려가 다시 만나는 비포장 임도를 따라 우측으로 걸어 내려가다 좌측 콩밭과 고추밭 사이로 나 있는 밭둑을 타고 내려가니 519번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어상천고개에 도착을 한다.
이 어상천고개는 임현리와 대전리를 이어주는 고개로서 어상천면은 충청북도 단양군의 북쪽에 위치한 면으로 면 소재지는 임현리인데 소백산맥의 영향으로 면 전체가 험준한 산지를 이루며 삼태산과 갑산 및 가창산 등이 있다.
북부 산지에서 발원한 임현천과 연곡천이 남동류하여 남한강으로 흘러 들고 남한강과 직접 접하지 않는 산간지역으로 면 지역 전체가 석회암 지대의 전형적인 카르스트 지형이다.
현재 면은 임현과 연곡 및 석교리 등의 8개 법정동을 관할하고 있다.
본래 조선 시대 영춘현의 속현이었던 지역으로 세종실록지리지(영춘)에 의하면 딸린 소가 1곳이니 어상천이다 라는 기록에서 어상천이라는 지명이 처음 나타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영춘)에서는 속현 어상천현이 현 서쪽 37리에 있으며 관사와 군창이 있다고 기록하고 있고 여지도서(영춘)에 의하면 어상천면은 연곡과 자작 및 김산, 석교, 대전, 임현 등의 6개 동리를 관할하였고 또 속현 어상천은 임현리에 있다는 기록에서 임현리가 오래전부터 면의 소재지였음을 알 수 있다.
대동지지(영춘)에서는 어산천이 서북쪽으로 처음이 35리이고 끝이 50리이다라는 기록에서 어산천이라는 지명이 나타나기도 한다.
해동지도의 어상천면에는 삼태산과 오사역, 중치가 표기되어 있고 조선지도의 어상천면에는 삼태산과 오사역, 객산, 가라산, 갑산, 어라산, 열암 등이 표기되어 있다.
1872년지방지도에는 사창과 임창 및 임역이 표기되어 있고 대동여지도에는 오사와 어상천, 어라산, 중치 등이 표기되어 있으며 1895년(고종32) 영춘군 어상천면이 되었다.
한국충청북도일반에는 영춘군의 어상천면으로 표기되어 있으며 1909년(융희 3)경에 어상천의 한자 지명이 於上川에서 魚上川으로 변화한 것으로 보인다.
1914년 영춘군이 단양군으로 합병되면서 가야면의 일부가 편입되어 10개 마을을 관할하였다.
어상천 고개에서 도로를 따라 좌측으로 조금 걸어 내려가 우측 능선으로 오르니 그곳에는 잡목들이 우거져 한동안 진행에 어려움을 느낀다.
어상천고개에서 능선으로 오르니 잡목들이 앞을 가로막아 진행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지만 희미하게나마 선답자들이 지나간 등로가 보여 잡목을 헤치며 완만하게 오르니 커다란 소나무 두 그루가 서 있고 옆에는 선답자들의 띠지가 달려있는 399.5봉에 도착을 해 가쁜 숨을 내쉬어 본다.
약간의 잡목이 있지만 진행에는 전혀 지장이 없는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등로 좌측으로 지나 온 영월지맥 마루금이 조망되어 잠시 내려 가 살펴보니 우측 소나무에 살짝 가려있는 가창산에서부터 이곳으로 이어져 내려 온 영월지맥 제6구간 마루금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어 사진 몇장 남기고 출발한다.
다시 정상 등로로 복귀해 좌측으로 크게 휘어지는 등로를 따르니 390 무명봉을 넘어 나즈막한 안부를 통과하고 짧은 잣나무 군락지를 만나 전진한다.
낙엽이 깔려 있는 무명묘지를 지나 약간의 바위와 소나무가 보이는 무명봉을 넘어 우측으로 희미한 등로를 찾아 내려가니 등로는 갑자기 잡목지대로 들어서고 곧이어 잘 관리되고 있는 묘지 위로 내려서는데 그곳에서 등로 우측 앞으로 살펴보니 이제부터 방향을 바꿔 올라야 할 477.3봉과 그 봉우리 넘어 삼태산 누에머리봉과 삼태산 정상 능선이 가깝게 다가와 있다.
이곳에서 올려다 보기에는 큰 무리없이 진행될 것 같았는데 막상 올라가 본; 경사도가 너무 심한 상황에서 낙엽이 많이 깔려 있어 죽음의 산행이 시작되는 기분이었다.
잠시 진행 방향의 마루금을 확인하고 좌측 등로를 타고 빠르게 걸어 진행을 하니 다시 묘지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잠시 후 최근에 설치된 듯한 깨끗한 산불감시초소가 눈 앞에 보인다.
그 산불감시초소 앞에는 몇개의 나즈막한 돌탑들이 보이고 나뭇가지에는 많은 선답자들의 띠지들도 걸려 있어 잠시 주위 조망과 풍경을 둘러 보는 시간도 가져 본다.
등로 좌측 무두리마을에서는 벌목이 진행되고 있는지 아니면 다른 공사를 하고 있는지 커다란 소음이 끊임없이 들려오고 있다.
제일 먼저 등로 뒤쪽으로 지나온 방향을 살펴보니 박무속에 서산으로 기울어져 가는 햇살 아래 지나온 영월지맥 마루금이 빨래판 모양으로 펼쳐져 있고 지금부터 걸어 올라야 할 진행 방향의 등로도 확인한 후 등로 우측을 살펴보니 어상천면 임현리 방향으로 이어지는 2차선 포장도로와 좁은 들판 그리고 민가들이 드문 드문 보이기 시작한다.
임현리는 충청북도 단양군 어상천면에 있는 리로서 산골마을이며 이조말에 임현창을 두어 임현이라는 명칭이 생겼다. 자연마을로는 고시골, 딱박골, 무두리, 서당골 등이 있는데 고시골은 고시동이라고도 부르며 절골 동북쪽에 있는 마을로서 전에 서당이 있어 많은 선비들이 글을 짓고 읊었다고 하고 딱박골은 저전동이라고도 부르며 사창동 서남쪽에 있는 마을로 닥나무 밭이 있었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무두리는 수입촌이라고도 하며 고시골 북쪽에 있는 마을인데 지형이 접시처럼 생겨서 물이 들기만 하지 빠져 나갈 곳이 없으므로 밑으로 스며 빠지는 마을로서 전에 소치부곡이 있었다고 한다.
서당골은 향교터라고도 하며 사창동 서남쪽에 있는 마을로서 전에 향교가 있어 붙은 이름이다.
그렇게 한동안 주위 조망과 풍경을 살펴본 후 그 산불감시초소 우측 능선을 따라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다시 나타나는 묘지를 지나고 약간의 잡목과 잡풀을 헤치며 내려가니 비포장 임도를 만나 곧 새로 포장된 1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우측으로 내려 가 본다.
잠시 내려가니 갈림삼거리가 있는 무두리고개가 보이고 그 넘어 진행해야 할 마루금이 저 멀리 삼태산 누에머리봉으로 이어지고 있는 풍경도 박무속에 보이고 있다.
무두리고개는 어상천면 임현리 무두리마을과 고수골을 이어주는 고개로서 수입촌이라고도 하며 고시골 북쪽에 있는 마을로서 지형이 접시처럼 생겨서 물이 들기만 하지 빠져 나갈곳이 없으므로 밑으로 스며 빠지며 전에 소치부곡이 있었다고 한다.
무두리고개가 있는 임현리는 충청북도 단양군 어상천면에 있는 리로서 산골마을이며 이조말에 임현창을 두어 임현이라는 명칭이 생겼다.
갈림삼거리인 무두리고개에서는 좌측 옛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 진행을 이어가 본다.
잠시 좌측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 오르니 이곳 역시 새로 포장된 듯한 도로가 우측에서 올라오는 삼거리 갈림길로서 그곳 삼거리를 지나자 마자 우측으로 차량 추돌 방지선이 끊긴 곳을 통해 다시 능선으로 진입하며 산행을 이어가 본다.
지도와 위치를 확인해 보면 좌측 도로를 계속 따라가도 나중에 삼태산 누에머리봉 오르는 비포장 임도에서 만날 것 같은데 그렇게 되면 477.3봉을 오를 수 없기에 정상 마루금을 타고 진행하기로 한다.
갈림 삼거리 도로를 지나자마자 우측 능선으로 들어가며 본격적인 삼태산 산행을 시작해 보는 시간이다.
비포장 임도를 타고 잠시 걸어 들어가니 임도 좌측으로 등로의 흔적이 전혀 없이 잡목들만 자라고 있어 조금 더 걸어 들어가 잡목이 덜한 곳을 택해 좌측 능선으로 오르니 금새 무명 묘지 한기를 통과한다.
다시 평범한 소나무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오르니 자갈들이 혼재되어 있는 바위 등로가 나타나고 곧이어 멋진 참나무 군락지가 반겨준다.
계속 걸어 오르니 다시 무명 묘지 한기를 지나 잣나무들이 자라고 있는 작은 웅덩이를 통과하니 바위들과 참나무 그리고 약간의 간벌된 나묵들이 널부러져 있는 477.3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걸어 진행을 이어가 본다.
그 477.3봉을 지나 조금 더 진행을 하니 갈림삼거리가 나타나는데 좌측으로는 최근에 다녀간 듯한 띠지들이 붙어 있고 직진의 우측 방향으로는 오래되어 변색된 선답자들의 띠지들이 걸려 있다.
지도를 보니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정상 마루금은 직진의 우측 등로가 맞는데 최근에 다녀 간 선답자들은 대부분 좌측 능선을 내려 가 나오는 비포장 임도를 따라 진행을 한 듯 보였다.
고민하다 직진의 등로를 따라 원 마루금을 걸어 진행하니 등로는 우측으로 약간 돌아 인삼포 우측 가장자리를 돌아 진행하도록 되어 있고 그곳을 지나니 거대한 묵은 밭에는 잡초들이 무성하게 자라 진행에 상당한 어려움을 주고 있다.
이제서야 왜 선답자들이 좌측으로 내려가 비포장 임도를 타고 삼태산 누에머리봉 오르막 임도까지 진행을 하였는지 이해가 되는 시간이다.
그래도 굿굿하게 그 묵은 밭에 우거진 잡초를 헤치며 올라야 할 마루금을 바라보는 마음은 참으로 평온한 시간이 되었다.
하지만 나사님과 둘이 이곳 원 마루금을 따라 진행을 하였으니 뒤돌아 갈 수도 없어 잡초가 무성하게 자랐다 죽어가는 묵은 밭을 통해 오르니 수확하지 못한 수박밭에는 수많은 썩어가는 수박들이 나뒹굴고 그곳 수박밭을 지나 오르니 잡초들이 무성하게 자라 난 묵은 밭이 길게 앞을 가로막는다.
우측으로 돌아 어렵게 그 잡초 밭을 통과한 후 칡넝쿨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능선 초입까지 무탈하게 이동한 후 능선으로 들기 직전 지나온 방향을 살펴보니 저 멀리 가창산에서부터 이곳 삼태산 누에머리봉 직전 묵밭까지 이어져 내려온 빨래판 능선이 박무속에 한 눈에 들어 온다.
힘은 들지만 이런 멋진 풍경과 조망을 선물해 주니 그 힘든 과정은 금새 잊어 버리고 또 다시 새로운 마루금을 찾아 헤매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잠시 능선으로 들기 전에 많은 사진을 남기고 돌아서는데 등로 우측 저 멀리 아래쪽에 팔각정이 보여 사진 한장 더 남기고 곧바로 능선으로 들어가며 올라가 본다.
오르니 낙엽과 바위 그리고 앙상한 가지만 남은 나무들이 멋진 조화를 이루며 만추를 지나 겨울을 준비하고 있어 계절의 빠름을 실감도 해 보는 시간이다.
다시 우거진 잡목을 피해 가파르게 오르니 이제서야 좌측 도로를 타고 진행하면 만나는 비포장 임도 위에 도착을 하고 긴 한숨을 내쉬며 호흡을 가다듬은 후 그 비포장 임도를 따라 좌측으로 완만하게 올라 본다.
잠시 후 등로는 비포장 임도를 버리고 우측 가파른 능선으로 이어지는데 그곳으로 오르며 오늘 산행 중 가장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된다.
너무나 가파른 오르막 경사도에 낙엽까지 떨어져 쌓여 있어 발을 조금만 잘못 디디면 그대로 미끄러지기 십상이다.
온 몸에 힘을 주며 조심해 오르니 속도는 전혀 나지 않고 온몸이 아파오기까지 하는데 그래도 오르다 만나는 멋진 낙엽송과 아름다운 단풍들로 인해 진행에는 큰 어려움이 없다.
한동안 많은 땀방울을 흘리며 올라 바위 너덜길이 시작되는 670미터 높이쯤에서 잠시 배낭 내려 물 한모금 마시며 쉬었다 오르기로 하니 온 몸은 이미 땀방울로 흥건하게 젖어 한여름 산행을 방불케 하고 있지만 강하게 불어 오는 바람으로 인해 금새 다시 한기를 느끼는 순간이었다.
잠시 쉰 후 다시 배낭 둘러메고 여전히 가파른 오르막 경사로의 등로를 타고 천천히 오르니 잠시 완만한 오르막 등로로 바뀌고 등로 옆에 물들고 있는 고운 단풍도 사진에 담아 보는 여유를 느껴 본다.
다시 평이한 오르막 등로를 따라 한동안 걸어 오르니 드디어 하늘이 올려다 보이면서 가파른 오르막 등로로 막바지에 다다른 듯 더욱 경사도를 곧추세우고 이 산객의 마지막 마음과 체력을 시험하고 있다.
두발 오르면 한발 미끄러질 정도의 급경사에 깊은 낙엽까지 깔려 너무나 힘들게 오르니 드디어 우측으로 삼태산 누에머리봉으로 갈 수 있는 갈림삼거리에 무사히 도착을 해 흐르는 땀방울을 닦으며 심호흡 한번 크게 내쉬어 본다.
너무나 힘들게 걸어 드디어 커다란 참나무 한그루가 반겨주는 삼태산 누에머리봉 가는 갈림삼거리 능선에 도착을 하니 흐르는 땀방울을 식혀주는 시원한 바람이 불어 와 잠시 땀을 말린 후 우측 낙엽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저 멀리 삼태산 누에머리봉이 올려다 보이는 곳 능선상에 이정표 하나가 눈에 들어 온다.
살펴보니 등로 좌측으로 용바위골 하산 갈림 삼거리 이정표이다.
그 이정표 우측 등로에는 구상나무인지 아니면 구상나무를 닮아 있는 침엽수가 식재된 듯한 모습으로 잘 자라고 있어 시간이 지나면 또 어떻게 변할지 궁금해지는 시간이다.
용바위골은 충청북도 단양군 어상천면 임현리 마을에 있는 골짜기로서 용바우골리하고도 불려지며 단산중고등학교의 뒤편에 있는 삼태산의 골짜기이고 바위에 천연적으로 용의 무늬가 새겨져 있어 이렇게 부르는 곳이다.
그 용바위골 갈림삼거리 이정표를 지나 조금 더 걸어 오르니 드디어 삼태산 누에머리봉 정상에 도착을 하는데 정상에는 정상석과 이정표 그리고 많은 이정판들이 붙어 있고 특히 이곳을 삼태산 정상이라 부르고 싶은지 삼태산 정상이라는 글자들이 많이 보인다.
실질적인 삼태산 정상부는 이곳 누에머리봉에서 북쪽으로 300미터 이상 떨어진 삼각점이 박혀 있는 봉우리인데 왜 이곳을 삼태산 정상이라 부르는지 의아하기만 하다.
누에머리봉(867.3봉)은 큰 삼태기 3개를 엎어 놓은 모습이라 하여 삼태기산 또는 산세가 누에가 기어가는 형상이라 하여 누에머리산이라고도 부르는데 일반에게 잘 알려지지 않아 자연이 잘 보존되어 있다.
어상천면과 영춘면 사이에 있는 농우재고개가 삼태산과 오기산을 이어주는데 예로부터 주민들은 하늘 높이 솟아오른 삼태산을 남자산으로 산세가 부드러운 오기산은 여자산으로 불러왔으며 두 산이 서로 바라보면서 항상 그리워한다고 여겼다.
산허리에 단양 제2팔경인 일광굴이 뚫려 있으며 산자락 곳곳마다 많은 전설이 얽혀 있다.
산행 기점인 임현리는 옛날 을아현의 관아가 있던 곳인데 새로 부임해온 현감의 아내가 이 절골의 중과 바람을 피우자 현감이 절을 헐어버리고 현청을 지금의 영춘면으로 옮겨갔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산행은 임현리에서 시작하여 용바위골을 지나 누에머리 정상과 삼태기산 정상에 오른 다음 무두리와 일광굴을 지나 임현리로 다시 내려오는 11 Km 코스가 있으며 산행시간은 5시간 30분 걸린다.
1997년부터 매년 4월에 고향명산등반대회를 개최하고 있고 주변 가까운 곳에 향산석탑, 온달국민관광지, 구인사 등 문화유적과 단양팔경, 단양온천, 충주호 선착장 등 관광지가 많다.
누에머리봉에서 잠시 쉬며 흐르는 땀방울을 닦아내고 추억 몇장 남긴 후 바람이 세게 불어 곧바로 삼태산 정상 방향인 북쪽 방향으로 발길을 돌린다.
빠르게 걸어 내려오니 다시 등로 우측으로 용바위골 하산 갈림삼거리 이정표를 지나 너무나 힘들게 올라 온 누에머리봉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겨 본다.
낙엽이 수북히 쌓여 있는 좌측 능선에서 올라 왔는데 최근에 진행한 산행 중에서 가장 경사도가 심했던 오르막 등로로 기억될 듯 싶은 등로였다.
잠시 올라 온 방향의 등로를 다시 한번 확인하고 강하게 불어 오는 바람을 맞으며 조심해서 칼등 능선을 걸어 진행을 해 본다.
참나무 가지 사이로 올려다 보이는 삼태산 정상을 바라보며 걸어 진행을 하니 등로 양쪽으로는 급경사 절벽이 솟아 오른 듯 가파르게 내려다 보인다.
조심하며 걸어 진행하니 등로에 박혀 있는 작은 자갈들이 떨어진 낙엽속에 숨어 여간 위험하지 않다.
그렇게 한동안 낙엽을 밟으며 빠르게 진행을 하니 무명봉을 넘어 로프로 출입을 막고 있는 지점에 도착을 하는데 살펴보니 등로 한가운데에 바위 굴이 보이고 그곳을 통제하는 굵은 로프가 사방 팔방으로 쳐져 있어 들어가면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다.
잠시 겉에서만 그 굴 내부를 살펴보니 낙엽이 덮고 있어 자세한 내용은 볼 수가 없어 다시 삼태산 정상부를 향해 출발해 본다.
자료를 찾다보니 일광굴에 대한 자료들이 나타나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곳이 그 일광굴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도 해 보는 시간이다.
일광굴은 어상천면 임현리 고수동에 있는 거대한 석회석 자연동굴로 굴 입구는 좁으나 굴 속은 매우 넓어 면적이 수백평이나 되고 높이는 60여 미터에 이른다고 하며 굴 천정의 높은 곳에 구멍이 뚫려 있어서 햇빛이 굴 안을 비추고 있다.
이 굴은 다음과 같은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임진왜란 당시 왜군들이 이 마을에 쳐들어 왔을 때 마을 사람들은 모두 굴 속으로 피신을 하였고 며칠 후 한 노인이 바깥 사정을 알아보려고 마을에 나갔다가 왜군에게 잡혔고 왜군은 노인을 고문한 결과 마을 사람들이 굴 속으로 피신하여 있는 것을 알고는 굴 입구에 불을 지펴 굴 안에 있던 수백명의 사람들이 연기에 질식하여 모두 죽고 말았다.
이 참혹한 일이 있은 후 7일이 지나서 연기가 삼태산 정상 부근으로 솟아 올랐다고 하며 지금도 굴 속에는 당시 사람들의 것으로 추정되는 뼈들이 발견된다고 한다.
다시 이어지는 활엽수 등로를 따르니 칼등 능선이 조금은 부드럽게 변하고 곧이어 삼각점 하나와 정사이란 글씨조차 옆으로 누워있어 초라하게 보이는 삼태산 정상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겨 본다.
삼태산(878.2봉)은 충청북도 단양군의 어상천면과 영춘면에 걸쳐 있는 산으로 높이는 878.2미터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영춘)에 삼타산이 현의 서쪽 38리 제천현 경계에 있다는 기록에서 관련 지명이 처음 나타난다.
여지도서(영춘)에는 삼타산이 현의 서쪽 30리에 있다라고 수록되어 있고 해동지도에는 영춘현의 차의곡면에 삼태산으로 표기되어 있어 이때부터 지명이 사용된 것 같다.
조선지도와 대동여지도에는 동의면에 삼태산으로 표기되어 있다.
단양군지에서는 큰 삼태기 세 개를 엎어 놓은 듯이 보이기 때문에 삼태기산으로 불리기도 했고 산세가 마치 누에가 기어가는 형상이라 해서 누에머리산이라고 불렸다고 수록되어 있다.
이 산의 중턱에 일광굴이라는 석회암 자연동굴이 있으며 입구에서 조금만 들어가면 거대한 돔형 광장이 나타나는데 이 광장의 상층부에 구멍이 뚫려 있어 빛이 들어오기 때문에 일광굴이라고 한다.
자료를 찾다 보니 혹시 방금 전 지나온 굴이 이 일광굴은 아닐까 생각도 해 보는 시간이다.
이곳에서 이제 일몰시간까지는 한시간 남아 있다는 알람소리에 헤드렌턴 불빛의 도움 없이 해고개까지 내려갈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서는 시간이기도 하다.
초라한 삼태산 정상에서 잠시 시간을 보낸 후 빠르게 걸어 진행을 하니 바위 위에 낙엽이 떨어져 쌓여있는 등로를 지나 우측 사면 등로로 길게 이어지고 있는데 그곳 역시 많은 낙엽들이 떨어져 쌓여있어 여간 미끄럽지 않다.
조심하며 어렵게 내려가니 등로 좌측으로 방실미 하산 갈림삼거리 이정표가 보이고 그 이정표를 지나니 등로는 다시 가파른 낙엽 하산 등로로 이어지고 있어 참으로 힘들게 내려가 본다.
잠시 후 삼태산에서 920미터 내려왔다는 이정표를 지나 낙엽이 발목까지 빠지는 무명안부에 도착을 하는데 그곳 이정표에는 이제 삼태산에서 0.6 Km 진행해 왔다는 방금 전 이정표와는 완전히 다른 거리 표시가 되어 있어 조금은 아쉬움이 남는 이정표이다.
내려왔으니 다시 올라야 되는 마루금 잇기의 등로를 따라 가파르게 오르니 이곳 등로에는 더욱 깊은 낙엽들이 등로를 가득 메우고 이 산객을 기다리고 있어 여간 조심스러운 산행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지금과는 달리 약간의 잡목들 저항도 만만치 않아 어렵게 오르니 나뭇가지에 817봉 영춘지맥이라는 작은 아크릴 이정판이 붙어 있는 821.6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곧바로 다시 해고개 방향으로 출발을 한다.
뒤따라 오는 두명의 산친구가 걱정이 되어 자주 연락을 하다보니 생각보다 잘 따라오고 있어 큰 걱정을 안해도 될 듯하여 빠르게 계속 전진하는 시간이다.
마지막 높은 821.6봉을 지나 잠시 바스락 거리는 낙엽을 밟으며 운치있는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내려가니 등로 주위에는 키 작은 단풍나무들이 마지막 고운 단풍을 내보이며 가을과의 이별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뿐 등로는 다시 가파른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는데 깊게 깔려있는 낙엽이 자꾸만 진행하는 산객의 발목을 잡고 미끄럼틀을 타자고 조르는 듯 미끄러지기 일쑤이다.
경사도가 너무 심해 조심하며 미끄러지듯 걸어 한동안 내려가니 드디어 경사도가 낮아지며 잡풀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바람이 강하게 불어 오는 등로를 타고 빠르게 걸어 진행을 하니 간간히 보이는 선답자들의 띠지간 반겨주고 잠시 후 무명 묘지 한기를 지나 소나무 등로가 시작되는 417 무명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겨 본다.
이제 해고개도 그리 멀지 않았음을 알게 되지만 그 해고개까지 또 어떤 변수가 있을지 몰라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빠르게 걸어 진행하는 시간이 되었다.
잠시 멋진 소나무 등로를 타고 빠르게 걸어 전진하니 실질적인 마지막 봉우리인 386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도 소나무를 배경으로 사진 한장 남겨 놓고 곧바로 출발한다.
등로에는 이제 서서히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고 사진 한장 담는데도 시간이 걸리지만 마음이 급하다 보니 모든 사진들이 흔들려 있다.
잠시 더 걸어 내려가니 등로는 우측으로 빙 돌아 내려가는데 그 희미한 등로를 따르니 곧이어 능선이 끝이나면서 시멘트 포장도로 위에 도착을 하고 그 도로 우측으로 보이는 수조 탱크를 사진에 담고 앞에 보이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 내려가 본다.
잠시 내려가니 도로 우측으로 고랭지 채소밭이 드넓게 펼쳐져 있고 그 한쪽에는 김장요 배추가 자라고 있는데 강아지 세마리가 각기 다른 장소에서 그 배추밭을 지키듯 자리를 잡고 이 산객들을 보고 울부짖는다.
강아지들을 달래고 그 바추밭 사이로 나 있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진행하니 등로 우측 뒤로 방금 전 올랐다 급경사 낙엽 등로를 타고 어렵게 내려 온 삼태산 정상과 821.6봉이 어두워지는 시간에도 제법 높은 높이로 우뚝 솟아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 온다.
그렇게 주위 풍경과 조망을 즐기며 계속 걸어 진행을 하니 등로는 다시 들깨를 심었다 수확을 마친 비닐이 씌여진 밭 경작지 가장자리를 따라 이어지고 있다.
한동안 그 비닐밭을 타고 걸어가니 등로 좌측으로 돌리네 지형 같은 밭 경작지도 내려다 보인다.
그 밭 경작지 우측 가장자리를 따라 걸어 정상을 넘고 조금 내려가니 등로는 다시 우측 잡목이 우거진 방향으로 이어지고 어렵게 그 잡목 구간을 통과하니 바로 발 아래로 새벽에 잠시 들렸다 헤어진 해고개를 지나는 59번 2차선 포장도로가 내려다 보인다.
해고개(330미터)는 해발330미터의 고개로서 충북 단양군 영춘면 유암리와 사이곡리 경계에 있는 고개로 59번 국도가 지나는데 이 지역 사람들은 해현 또는 갈고개라 부르며 지명의 유래는 지대가 높아서 해 뜨는 것을 제일 먼저 본다하여 붙은 이름이다.
이곳에서 배낭을 정리하고 뒤따르는 산친구 2명에게 연락을 하니 삼태산 넘어 급경사 내리막 등로를 내려온다기에 안심하고 다른 산친구 한명과 함께 이 산객의 애마를 타고 삽고개로 이동을 해 그곳 굴다리 앞에서 이별 인사를 건네고 곧바로 애마를 몰아 약간 막히는 도로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니 저녁 9시를 넘기고 있다.
선답자들의 트랙을 보니 477.3봉 지나 무슨 일인지 정상적인 마루금을 따르지 않고 좌측 우회 비포장 임도를 따라 삼태산 오르막 등로까지 진행을 하였는데 실제로 걸어 보니 정상 마루금 방향으로 새로운 인삼포가 들어 서 있지만 진행이 가능할 것 같고 특히 묵은 밭들이 보이는데 계절이 바뀌면서 잡초들도 그 기세가 한풀 꺽여 가능하면 정상 마루금으로 진행을 해 보기로 한다.
조심하며 진행을 하니 진행에는 큰 어려움이 없는데 갑자기 모바일폰의 밧떼리가 없다는 소리가 들려 잠시 걸음을 멈추고 충전기에 연결한 후 진행을 하였는데 그때 무엇인가 잘못되었는지 시간은 정상적으로 표기가 되지만 산행거리와 트랙은 상당부분 사라져 버렸다.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트랙만이라도 정상적으로 복구가 가능한지 한번 확인을 해 봐야 될 것 같다.
이렇게 또 한구간 무탈하게 마무리하고 이제 다음달에 한번만 더 진행을 하면 길고도 멀었던 영월지맥 산행도 그 대단원의 막을 내리고 이어지는 춘천지맥으로 자리를 옮겨 올 겨울 내내 그 춘천지맥을 걷게 될 것이다.
물론 이 강원도 산친구들과 산행을 진행하지 않는 주말에는 남쪽 지방으로 내려가 잡목과 잡풀들이 한순 죽이고 있는 고흥과 여수 그리고 화원을 돌다보면 올 겨울도 무탈하게 지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도 해 보는 시간이다.
발목이 편안하지 못한 상황에서도 끝까지 함께 걸어 준 강원도 산친구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며 다음 마지막 구간에서 반갑게 만날 것을 약속해 본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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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전 이구간 삼태산 오름길에 계곡사면 거슬러 오르느라 생고생하던 기억이 납니다.
산하는 완연히 붉게 물든 광경입니다.
연무로 시계가 다소 가렸지만 운치있는 모습이구요.
함께 하신 분들과 우정도 나누시면서 멋진 추억길은 이어지셨네요.
남은 마지막 구간 잘 마무리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방장님
477.3봉 지나 좌측 임도가 아닌 정상 마루금을 타고 인삼포와 묵밭을 지나 삼태산으로 오르는 등로는 산행 중 가장 난이도가 높은 경사도를 보여 무척 어렵게 올랐답니다
두어번 쉬면서 마지막 누에머리봉 갈림 삼거리에 도착을 하니 등로는 다시 칼등 등로로 이어지며 강한 바람에 주의가 필요도 했구요
말씀처럼 강원도 산친구들과 우정을 나누며 들머리와 날머리 걱정 없이 진행하니 늘 즐거운 마음으로 걷고 있는 영월지맥이 되고 있답니다.
멀지 않은 시기에 뵐 수 있기를 기대도 해 보면서 다가오는 주말과 휴일도 즐거운 시간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