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글은 서구 농성동 631-40 반올림부동산에서 관리합니다
좋은 의견이 있으시면 방문하시거나
369yd@hanmail.net 으로 고언 부탁합니다.
농성동이나 광주광역시 70년 이전 사진을 구합니다
소장중인 사진을
010-3126-1379로 사진 전송 부탁드립니다

(1960년대 초 광송간 신작로 막 개통후 농성동모습
누가 찍었는지 농성1동은 다 나오고 아래쪽이 2동 일부만..
그래도 농성동이 잘 나온 사진입니다
지금의 서구청 인근이 사진의 중심입니다)
광주광역시 70년 이전 배경사진은 5장당 문화상품권 5천원권 한장
농성동,화정동, 70년 이전 배경사진은 1장당 문화상품권 한장을 즉시
보내드립니다
보넬땐 배경설명 부탁드리고
거기에 스토리까지 곁들인다면 더욱 감사하겠습니다
필자의 고향은 서구 농성동 212번지(현 건강관리협회)입니다
지금 이 번지는 환지처분되어 사라졌습니다
농성동은 연화부락,새터,보성부락 이리 세게로 나누어집니다
기타 부락은 간간히 한 두채씩 있기는 하였으나
큰 부락은 이렇게 구성됩니다
연화부락은 지금의 서문교회에서 광천초교 가는길 좌우측 약50여호
세터(당시는 쇠테바을이라고 불렀습니다)는 지금의 상공회의소 건너편 서구청 앞부락입니다
농성동 동사무소는 지금 서구청 옆 약국인접주택인데
최근 2018년도에 헐렸습니다
마지막 보성부락은 구 화정동 광주은행 인근으로서 가장 부락규모가 컸습니다
약 70여호로 추정됩니다만 세대수는 100세대가 넘을 것입니다
이곳에는 보성보가 있어 일제시대부터 유명한 마을이었습니다
아마 농성동이라는 성도 보성부락에서 연유하지 않았나 생각되어 집니다
보성보는 저수지인데... 백운동,진월동,월산동 화정동의 물이
고인 저수지입니다
규모는 컷고 수문 높이가 약 8m 정도,,,,
어릴적 이 수문을 통과할 때는 다리거 후들후들 했습니다
이 저수지 위치는 지금의 화정동 723-23 반경 500m 입니다
이 농성동에 1950년대 7명의 난다는 청년들이 경찰시험을 보았는데요. 6명이 합격하였던 이야기..
그리고 그들중 지금 생존자는 1명이다는 이야기를 지금 할려고 합니다
새터,보성보 에서 똑똑하다는 사람들 (1930년생들이 주류)이
6.25직후 경찰시험을 보았는데요 6명이 필기에 합격하였는데
무려 4명이 공산당에 부역한 전력으로 낙방하였다는 이야기 입니다
억지로 끌려가서 협조한 것으로 판단되어 사형은 않시키고
합격만 취소한 이야기입니다
얼마나 6.25가 대한민국 청년들의 장래를 망치고 한반도 역사를 뒤츨리게 하였는가!
이게 광주시 농성동만의 일이었겠습니까?
할아버지 이야기 넋두리라고 치부하기엔 전율이 감돌았습니다
이중 합격자 2명중 1명은 무등산 잡고개(혹은 진고개) 작전에서 사망하고, 1명은 지금 생존하여 저에게 농성동 이야기를 하고 계십니다
신기한 것은 부역 경력으로 탈락자중 두명이 공군사관학교에 들어간 것입니다
더욱 신기한 것은 그중 한명이 공군참모총장 조종사였다는 것입니다
당시 L-19 비행기를 몰고 , 어머님에게 자랑하기 위해서
보성부락을 빙빙돌고 갔다는 이야기는 지금도 유명한 일화입니다
아들이 모는 비행기를 보는 어머님의 마음이 얼마나 자랑스러웠겠습니까?
이 비행사님 2017년에 경기도 성남에서 사시다가 타계하였다는 이야기 입니다
김윤*.
멀리 고향 농성동 보성부락에서 늦게나마 명복을 빕니다.
당시 농성동 보성부락 여자들은 종방(전남방직)에 다닌게 보통이고
남자들은.. 삼양타이어(현 금호타이어)에 다닌게 많은 사례입니다
이마져도 없으면 여자들은 동네에서 농사일 돕고 남자들은
중앙여고 앞 천변 , 그리고 구 광주고속 터미널 인근 쪼구만 공장에 다니거나
충장로 양복일 도운 것이 대다수였습니다
필자가 추정하는 일제시대부터 생존한 농성동 주민은 지금 몇 안됩니다
시간 나는데로 이분들을 만나서 당시 이야기를 여기에 올리겠습니다
우려되는 것은 노인들의 주관이 개입될 소지가 있어
판단을 요하는 내용에 대해서 알아서 이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현존하는 농성동 최고령 토박이는 최영감(1917년생)으로 추정됩니다
그 옛날에 / 하모니카 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