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한방 산업의 중심 도시 영천
집필자 조인호
[개설]경상북도 영천시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로서, 한약재 유통과 생산의 집산지로 전국적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으며, 약초의 보고(寶庫)로 알려져 있다. 특히 북쪽의 보현산(普賢山)과 남쪽의 채약산(採藥山)이 대표적 산지인데, 보현산 서북쪽의 낮은 봉우리는 지아비의 병을 낫게 하기 위해 온 산천을 헤매어 영약(靈藥)을 구해 병을 완치시켰다고 하여 부약산(夫藥山)으로 불리고 있다.
채약산은 명칭 그대로 ‘약초를 캐는 산’으로 불릴 만큼 다양한 종류의 약초가 자생을 하고 있는데, 그 약초를 캐어 효행을 실천한 파평 윤씨 집안의 효행을 기린 삼효각(三孝閣)이 금호읍 약남리(藥南里)에 지금도 남아 있다.
[아무리 구하기 힘든 약재라도 영천장에 가면 구할 수 있다]영천의 약재에 대한 기록은 1899년(고종 36)에 편찬된 『영천군읍지(永川郡邑誌)』와 『신녕군읍지(新寧郡邑誌)』의 토산품(土産品)과 진공품(進貢品) 중 약재 항목에서 찾아볼 수 있다.
여기에는 봉밀(蜂蜜)·송용(松茸)·완초(莞草)·산수유(山茱萸)·인삼(人蔘)·복령(茯笭)·자초(紫草)·옻[漆]·지황(地黃)·맥문동(麥門冬)·백자(栢子)·건지황(乾地黃)·천문동(天門冬)·황기(黃芪)·산약(山藥)·백출(白朮)·적복령(赤茯苓)·백봉령(白茯笭)·적작약(赤芍藥)·백작약(白芍藥)·자초즙(紫草葺)·감국(甘菊)·시호(柴胡)·괴실(槐實)·백복신(白茯神)·고루인(苽蔞仁)·연시(連翅)·반묘(班猫)·포황(蒲黃)·금은화(金銀花)·입초(笠草)·창출(蒼朮)·적전(赤箭)·낭독(狼毒)·욱리인(郁李仁) 등이 확인된다. 이를 통하여 오래 전부터 영천은 약재가 지역 특산품의 주류를 이루었음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영천은 과거부터 한약재 생산으로 널리 알려진 경상북도 북부 지역과 충청북도, 강원도와의 접근성이 상대적으로 양호하여 한약재 수급에서 전국 어느 지역보다 상대적 우위를 점하였을 것이라 여겨진다.
특히 부피가 크고 상대적으로 장거리 운송이 필요한 한약재 수송에 철도 교통의 비중이 클 수밖에 없었기에, 대구선과 중앙선 철도의 개통은 영천으로의 한약재 집산에 큰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또한 한약재는 원자재를 구입하여 세척과 건조 및 절단, 그리고 포장에 이르기까지 1차 가공 과정을 거쳐 완제품으로 판매되기 때문에 작업과 보관을 위한 넓은 공간 확보가 용이해야 한다. 아울러 저렴하고 풍부한 노동력 확보가 절실하게 요구되기 때문에 대구나 서울 등 대도시에 비해 유리한 조건을 가진 곳이 영천이기에 자연스레 전국 최대의 한약재 유통 시장이 형성되었다.
그리고 영천은 예로부터 중풍과 부인과 관련 한의원과 한약방이 전국적인 명성을 얻고 있었다. 이들 한약방과 한의원의 견습생으로 일하면서 한약재의 수집과 판매의 노하우를 갖춘 사람들이 양성되어 자연스레 영천이 한약 유통의 중심지가 되었다.
1980~1990년대에는 “한약재상을 하면 밥 먹고 사는 데 문제가 없을 뿐만 아니라,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소문에 한약재 도매상에 일을 배우러 오는 사람들이 몰려들어 영천역 앞에서 영천 큰 장에 이르는 골목길이 한약재도매상의 거리로 정착하게 되었다.
영남 최대의 전통시장인 영천 큰 장을 이용하는 많은 사람들에 의해 “아무리 구하기 힘든 약재라도 영천 장에 가면 구할 수 있다.”는 소문이 나게 되면서 전국 최대의 한약재 유통 시장으로 명성을 떨치게 되었다.
[중풍 치료 도시로서의 명성]중풍은 암, 심장질환과 함께 3대 사망 원인으로 꼽히는 질병이다. 영천의 중풍 치료에 대한 명성은 일제 강점기부터 얻게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현재까지도 지역 내 유명 한의원과 한약방을 통해 그 명맥이 이어지고 있다.
일제 강점기에 한의생 시험에 합격하여 면허를 소지하고 영천 지역에서 한의업에 종사한 사람은 춘포한약국의 정임수(鄭任洙), 돈산한약국의 최희석(崔熺錫), 영화한약국[후에 영양한약국으로 상호 변경]의 서동필(徐東弼), 예곡한약국[후에 예곡한의원으로 상호 변경]의 김성해(金城海), 동춘한약국의 정연철(鄭淵澈) 등을 꼽을 수 있다.
이 중 정임수는 1970년대 후반부터 영천을 전국적인 중풍 치료로 명성을 얻는 데 큰 역할을 한 창생당한약방의 성영태를 비롯한 중풍 치료로 유명한 제자를 양성하였다는 점에서 영천 지역 중풍 치료사에 기여한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영천 지역의 중풍 명의를 꼽으라면, 누구나 주저 없이 손병훈(孫炳燻)을 꼽는다. 손병훈의 본관은 밀양이고 택호는 효산으로, 효산 선생으로 불리었으며, 1894년에 태어나 1970년에 사망하였다. 손병훈은 당시 경상북도 영천시 고경면 상리동[속칭 배골]과 영천시 교촌동 영천향교 앞의 두 곳에서 상호나 간판도 없이 한약방을 운영하였다.
손병훈이 중풍 치료에 처방한 것은 ‘통기고(通氣膏)’로 알려지고 있는데, ‘통기고’는 개지·남성·천호·부자·오얏·마황·세신 등의 약재로 조제되었다고 한다. 특기할 점은 환자 한 사람에게 ‘통기고’를 세 첩 이상 판매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이는 세 첩의 통기고로 충분히 중풍을 치료할 수 있었기 때문이며, 이후 중풍 치료에서는 명의로 전국적으로 명성을 얻게 되었다.
손병훈 사후에 아들 손봉목이 가업을 유지하려 하였으나 한의사 자격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한의원을 직접 개원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손봉목은 정상구와 함께 소위 ‘관리한의사’를 고용하여 가업을 유지하게 되고, 당시 ‘관리한의사’로 근무하였던 상당수의 한의사가 영천 지역에서 한의원을 개업하여 활동한 것이 ‘중풍 치료 도시 영천’의 명성을 드높이는 데 크게 공헌하였다.
[한방특구와 한약장수축제]영천시는 지난 1960년대부터 한약재 유통의 중심 도시로 성장하여 전국 유통의 30% 가량을 차지한 적도 있다. 이를 기반으로 유통 시장의 현대화와 체계적인 품질 관리 기능을 강화하여 지역 경제 활성화와 고용 창출을 도모하기 위해 ‘영천한방진흥특구’ 지정이 추진되었다.
‘영천한방진흥특구’는 2003년 3월 예비 특구 신청을 하여 2003년 11월 20일 예비 특구 지정이 이루어졌고, 이어 영천시가 건의한 ‘공동관리약사제도’를 반영한 ‘특구법’이 2004년 3월 23일 통과되었으며, 지역 특화 발전 특구에 대한 ‘규제 특례법’이 2004년 9월 23일자로 시행되었다.
2005년 3월 23일 ‘영천한방진흥특구’ 추진 관련 부서 협의회가 설치되고, 4월 13일 공청회가 개최되었으며, 5월 10일 영천시의회 의견 수렴이 이루어지고, 5월 12일 재정경제부 실사를 거쳐 7월 6일 ‘영천한방진흥특구’ 신청을 하여 9월 6일자로 ‘영천한방진흥특구’로 지정되었다.
‘영천한방진흥특구’는 경상북도 영천시 완산동과 남부동 일원의 총 1,048.130㎡[317,059평]가 해당되는데, ‘영천 약령시’로 알려진 완산 지구 특구와 ‘도동 생약 유통단지’를 중심으로 한 도동 지구 특구, 양 지구 중간에 위치하여 두 공간을 연결하는 약초생산 경관지구 등 세 지구로 구분되어 있으며, 현재도 진행 중이다.
완산 지구는 쇼핑센터, 호텔 및 컨벤션센터, 사상의학의 창시자인 이제마(李濟馬)를 기리는 제마공원과 축제광장, 모노레일 역사 등이 어우러진 전통한방거리를 조성하여 ‘도심형 한방문화 센터’를 만들어 갈 예정이다.
도동 지구는 전통한방거리 복원·한약재전시관·한약재 도매시장·한의과학원·한약재 종합처리장·연구소 단지를 조성할 예정이며, 약초 생산 경관지구에는 꽃이 있는 한약재[작약·도라지 등]를 밀식하여 계절별 색감이나 질감이 드러나도록 하여 경관을 연출하고, 영천의 10대 한약재인 작약·오가피·소엽·시호·사삼[더덕]·백지·인진호·천궁·질경[도라지]·방풍 등을 식재하여 스토리가 있는 학습장으로 조성할 예정이다.
2003년부터 매년 진행하고 있는 ‘영천한약장수축제’는 경상북도와 영천시, 영천약령시추진위원회에서 주최를 하고, 대구한의대학교 및 한방관련 대학과 산업체의 후원을 통해 민·관·산·학·연이 함께하는 종합문화축제이다.
‘영천한약장수축제’는 전시 행사·체험 행사·한방나눔 행사·연계 행사·판매 행사·부대 행사 등을 통하여 완산동의 ‘약령시’와 도동의 ‘유통산업단지’ 등을 포함하여 한약재판매상협의회·한약협의회·한의사협의회 등 영천 지역 내 한방 관련 산업 협의회 간의 상호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 축척을 통한 한방 클러스트 산업 활성화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한편, 영천시에서는 한방을 활용한 염색 클러스트 사업 등 연계 사업에도 힘쓰고 있으며, 아울러 ‘한의마을’ 조성과 ‘본초학교’ 설립 및 ‘한방자원식물소재원’ 조성 등을 통한 지속적인 한방 산업의 발전과 지역 관광 활성화에도 기여하고 있다.
[참고문헌]
• 『영천 한방의 유래와 한의학 발전사』(영천시,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