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 기를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 부모님의 은혜를 기리는 여러 노래 중에서 한국인들이 가장 즐겨 부르는 곡이 이 노래일 것이다. ‘
어머니 마음’이라는 제목의 이 노래는 무애 양주동 박사가 가사를 썼는데, 〈부모은중경〉에서 인용한 것이다. ‘회심곡’에 나오는 부모님 은혜를 기리는 대목 역시 같은 경전에서 따온 것이니 ‘부모은중경’은 한국인의 효심을 대표하는 셈이다. 이 ‘부모은중경’을 널리 배포하며 사찰에는 경전을 새긴 비를 세우고 효를 강조하는 스님이 있다.
사찰 안에 ‘부모은중경 탑’ 세워 효도 강조
“가정붕괴는 세계적 과제…돈으로 해결 안돼”
지난 17일 안성 석남사 회주 정무스님을 찾았다. ‘안성맞춤’이라는 말은 그릇을 잘 만든다는 뜻도 들어있지만 사통팔달 교통 덕에 전국의 온갖 물건이 모두 모여 안성에 가면 원하는 물건을 구할 수 있다는 의미도 포함된다. 안성 시내를 빠져 충청북도 진천 방향으로 가다보면 고개가 가로막고 나선다. 서운산이다. 줄곧 평지를 다니다 만난 산은 태산 못지 않게 높고 깊다.
높은 계단 위에서 대웅전이 내려다 보이고 그 아래 영산전이 계곡을 바라보고 섰다. 전각은 모두 크지 않지만 계단 위를 따라 내려선 배치가 전체적으로 웅장한 느낌을 주는, 고찰이다. 부모은중경 탑이 눈길을 끈다. 정무스님이 1980년 용주사 주지 당시 세운 탑을 본따 2003년 세운 탑이다.
화성 용주사는 ‘효행본찰’로 널리 알려져 있다. 조선 정조임금이 ‘불설대보부모은중경’ 에 감동하여 용주사에 ‘부모은중경’ 비문을 새긴 비석을 세운데서 효행본찰의 명성을 얻게 됐다. 정조는 당쟁에 희생된 아버지 사도세자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원찰로 용주사를 중창했다. 사찰 옆에 사도세자와 정조대왕의 능인 융릉과 건릉이 모셔져 있으니 왕조는 사라졌지만 사찰은 남아 애틋한 효심을 전해주고 있다. ‘효행 본찰 용주사에 골프장이 웬말이냐’는 플래카드가 을씨년스럽게 나부끼고 있다. 경기도가 용주사 인근에 골프장 건설을 허가한 사건을 두고 현재 사찰과 교구가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먹고 사는 문제가 우선’이라는 자본과 권력의 논리 앞에 역사 문화 인문 등의 정신적 가치가 설 곳은 점차 좁아지고 있음을 이곳 산골 사찰에서도 예외 없이 배운다.
서울과 안성에서 신도들이 스님께 인사차 들렀다. 인사를 받느라 잠시 그친 스님의 법문이 이어졌다. “음주 음란 음사(도박) 이 세 가지에 빠지면 그곳이 바로 지옥이 된다. 차라리 독사에게 물려죽지 이 세 가지에 빠지면 도저히 구제할 길이 없다.” 70대 후반 나이를 의심할 정도로 스님의 등은 꼿꼿하고 허리는 유연했다. 얼굴은 맑았으며 표정은 즐거움이 가득했다. 몸을 좌우로 흔들며 노래하듯 말하는 스님의 법문은 보기에 즐겁고 듣기에 기뻤다. 공양은 승 속 구분 없이 한자리에서 이루어졌다. 흔치 않는 자리라 처음에는 불편했지만 모두 익숙한 듯 자연스러웠다. 10명이 넘는 인원이 모두 밥상에 앉을 때까지 스님은 수저를 들지 않았다. ‘배식’완료 시간까지 20분도 더 걸렸으니 스님의 국과 밥은 이미 식었을 것이다. 스님의 허물없고 신도를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어른 스님들을 만나면 가장 먼저 묻게 되는 것이 건강이다. 돈과 더불어 가장 많은 관심을 끄는 주제인 까닭도 있지만 10~20년은 더 젊고 건강해보이는 노스님들을 대하면 궁금점이 절로 나올 수 밖에 없다. 바닥에 누워 팔과 다리를 하늘로 나란히 세워보이는 유연성은 한창 나이의 20대 청년 못지 않다. 스님은 “나도 젊을 적에는 건강에 관심 없었는데 50넘어 우연히 자연건강법을 접하고는 이렇게 건강해졌다”고 말했다. 스님은 하지만 “자연건강법이라고 해서 특별한 비법을 지닌 것은 아니고 옳은 것을 찾아 실천하고 건전한 생활을 하는 아주 자연스러우면서도 평법한 내용”이라고 덧붙혔다.
자비와 포용심 갖추면 건강-행복은 저절로
스님은 보시 인욕 지계 등 6바라밀에 빗대 행동하고 사고하는 법을 소개했다. 오랜시간 설명한 스님의 건강법은 몸을 쉬지말고 이리저리 움직이며 먹거리는 한 곳에 치우치지 말라는 것이었다. 스님은 “육류와 채소 과일을 고루 먹고 자주 걸으며 자연과 가까운 생활을 하는 것이 곧 건강의 비결이며 인간의 최적 삶”이라고 말했다. 스님은 그 중에서도 “바르고 착한 생각을 갖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스님의 설명에 따르면 각 종교마다 의식 지수를 매겼는데 불교의 깨달음이 건강과 행복을 가장 높게 나타낸다고 한다. 무관심과 복수 경멸 비난 부정 등은 질병과 불행을 불러일으키는 나쁜 의식인데 그 중에서도 원한과 멸시는 최악이라는 것이 스님의 설명이었다. 따라서 “아무리 좋은 음식을 먹고 운동을 통해 몸을 단련해도 남을 싫어하고 미워하는 감정을 갖고 있으면 모두 허사이며 반대로 자비로운 마음과 남을 포용하며 자신의 본성을 깨치기 위해 노력하면 건강과 행복도 저절로 찾아든다”는 것이다.
스님은 “결국 인간의 관심은 인생관으로 모아진다. 인생관을 구체적으로 말하면 누구랑 무엇을 할 것인가에 있다. 최상의 선택은 부부가 도반이 되어 함께 구도의 길을 가는 것이다. 함께 좋은 일을 하고 봉사하는 그 길이 바로 사람으로 태어나 선택하고 나아가야 할 바다”라고 말했다.
스님은 효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가정 붕괴가 세계적 문제로 떠올랐다. 정부에서는 2010년까지 39조의 복지 예산을 쏟아부어 가정을 되살리겠다고 하는데 효 정신을 고취시키지 않는 한 돈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옛날 중국의 양보라는 청년이 집을 떠나 사천으로 가던 중에 어떤 늙은 스님을 만났다. 스님은 그에게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다. 그가 ‘무제보살(無際菩薩)의 제자가 되러 가는 길’이라고 하자 스님은 ‘보살을 찾아가느니, 차라리 부처를 찾아가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라고 했다.
양보가 ‘부처는 어디에 계십니까?’라고 물으니 스님은 이렇게 일러 주었다.“집에 가면 이불을 뒤집어쓰고, 신발을 거꾸로 신은 채 뛰어나오는 사람이 있을 거요. 그 분이 바로 부처님이요.” 양보가 스님의 말을 듣고 집으로 돌아오니 때는 이미 한밤중이었다. 양보가 문을 두드리자 잠자리에 들었던 어머니가 옷 입을 새도 없이 담요를 둘둘 말아 몸을 가리고 신을 거꾸로 신은 채로 뛰어 나왔다. 크게 깨달은 양보는 이후 정성껏 부모를 봉양했다고 한다. 부처님도 제자들에게 “이 세상에서 두 사람에게는 아무리 착한 일을 많이 해도 그 은혜를 갚을 수 없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그 두 사람이다”며 “부모에게 공양하고 항상 효순하되 그 시기를 놓치지 말라”고 하셨다.
부모은중경 비를 세우고 효 사상을 널리 보급하는 정무스님의 노력은 서운산을 넘어 사통팔달 안성을 거쳐 널리 퍼져나갈 것이다. 더불어 “상대방을 비난하지 말고 남의 말을 경청하라”는 ‘좋은 의식’도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새겨질 것이라는 기대를 지녀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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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정무스님은…
수의학과 졸업…58년 사미계
68년 대학생 수련회 첫 개최
용주사-신륵사 등 주지 역임
1931년 전북에서 태어난 정무스님은 전북대 농과대 수의학과를 졸업하고 1958년 은적사에서 전강선사를 계사로 사미계를 수지했다. 1962년 삼척 영은사에서 탄허스님을 법사로 대교과를 수료하고 1965년 범어사에서 동산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했다. 김제 부흥사에서 전강선사를 조실로 5하안거를 성만하는 등 참선공부에도 매진했다. 1971~83년 수원 용주사 주지, 1984년 신륵사 주지, 영월암 주지 등을 역임했다.
스님은 포교와 신도들의 공부에 대해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1968년 신도수련회와 대학생불교회 수련회를 처음 개최한 것을 비롯 ‘마음공부’ ‘소원성취’ 등 포교 책자를 발간해 배포하고 있다. 대중들과 함께 공양하고 밭을 일구는 등 솔선수범하는 스승으로 널리 알려져있다. 새벽 4시 예불을 봉행한 뒤 1시간동안 참선삼매, 대중공양, 청소, 울력, 공부 등 총림 대중생활과 똑같은 일상을 늘 되풀이하면서도 신도들이 법문을 청하면 마다않고 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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