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 천하 - 채만식
● 감상 포인트
- 1938년 1월부터 9월까지 <조광(朝光)>에 연재된 중편소설. 처음 발표할 당시의 제목은 ‘천하 태평 춘’이었으나, 단행본으로 출간되면서 ‘태평 천하’로 바뀌었다. 일제 시대의 지주이자 고리 대금 업자인 윤 직원 영감의 몰역사(沒歷史) 의식과 그 집안이 몰락해 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데, 특히 판소리 사설을 연상시키는 독특한 문체가 독서의 재미를 더해 준다.
● 줄거리
- 일꾼이나 하인은 상전을 섬기기만 하고 대가(對價)는 바라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윤 직원 영감은 인력거를 타고 와서는 그 삯을 깎겠다고 한다. 또한, 그는 나이 어린 기생을 데리고 다니면서도 아무것도 주려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윤 직원 영감은 자기가 그들에게 은혜를 베푼다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소작인에게 땅을 붙여 먹고 살게 하는 것도 무슨 큰 자선 사업이나 되는 것처럼 여긴다.
그런 식으로 부(富)를 축적한 윤 직원 영감에게는 쓰라린 기억이 있다. 출처가 불확실한 돈을 모았던 그의 아버지가 구한말(舊韓末) 시절에 화적들의 습격을 받아서 죽었던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일본인이 들어와 불한당을 막아 주고 ‘천하 태평’을 보장해 주었기 때문에 윤 직원은 진심으로 일본인들을 고맙게 생각한다. 돈을 버는 데는 무엇보다도 권력과의 결탁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윤 직원 영감은 경찰서 무도장을 짓는 데 아낌없이 기부한 것이다.
- 또, 윤 직원은 양반을 사고, 족보에 도금(鍍金)한 것으로도 모자라 손자 ‘종수’와 ‘종학’이 군수와 경찰서장이 되어 가문을 빛낼 것을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아들과 손자는 윤 직원의 말을 잘 듣지 않는다. 그래서 집안의 분란은 끊이지 않는다. 아들 ‘창식’은 집을 돌보지 않고 노름으로 밤을 새며 가산만 탕진하고 있고, 군수를 시키려던 손자 ‘종수’는 아버지의 첩 ‘옥화’와 정을 통하는 불륜을 저지른다. 며느리나 손자며느리도 고분고분하지가 않고 딸마저 시댁에서 소박맞고 와서 함께 살고 있다.
그래도 윤 직원 영감은 고압적으로 집안 분위기를 억누르고 있던 차에, 마지막으로 기대를 걸고 있던 손자 ‘종학’이가 ‘사상 관계로 경시청에 피검’ 되었다는 전보를 받고 충격을 받는다.
● 작품의 구성
* 발단 : 인력거를 타고 와서 그 삯을 깎으려고 하는 윤 직원 영감의 행태.
* 전개 : 윤 직원 영감 집안의 내력과 치부(致富) 과정
* 위기 : 둘째 손자 ‘종학’에 대한 윤 직원 영감의 기대. 윤 직원의 아들 ‘창식’과 큰손자 ‘종수’의 타락하고 방탕한 생활.
* 절정․결말 : 둘째 손자 ‘종학’이가 사상 관계로 일본 경시청에 피검(被檢)되었다는 전보에 충격을 받는 윤 직원 영감.
● 요점 정리
* 갈래 : 중편소설, 사회 소설, 풍자 소설
* 배경 : 시간 - 1930년대
공간 - 서울. 한 평민 출신의 대지주 집안
* 경향 : 사실주의
* 시점 :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
* 성격 : 가족사 소설, 사회 소설, 풍자 소설
* 의의 : 1930년대 사회 현실의 격심한 퇴폐성을 비판적으로 풍자.
* 문체 : 판소리 사설의 원용(援用)한 해학적이고 풍자적인 판소리 사설 문체.
* 어조 : 부정적 인물을 비판하는 풍자적 어조가 두드러짐.
* 수법
① 풍자적 수법 : 부정적 인물(윤직원 영감)을 내세운 반어적 풍자.
② 판소리 사설의 문체
③ 반어와 희화(戱畵)를 통한 풍자적, 해학적 어조.
④ 독자에게 직접적으로 던지는 말투 및 경어체의 문체
* 경어체의 문체 : 독자와 서술자의 거리를 가깝게 하고, 한편으로 등장 인물에 대한 비판적 거리를 취하게 된다. ( ~입니다. ~옵니다요. 등)
⑤ 현재형 서술
● 특징
- 이 작품의 문체는 판소리, 또는 탈춤 사설의 어투를 계승하고 있으며,
- '∼입니다.'와 같은 경어체 문장이나, '∼겠다요.'와 같은 경박한 어투를 빌어서 작중 인물의 행위를 조롱하고 경멸하고 있다. 이는 바로, '춘향가'의 방자(房子)나 '봉산 탈춤'의 말뚝이 같은 인물이 양반 사대부의 면전(面前)에서는 공경스러운 태도를 짓다가도 뒤에 가서 느닷없이 조롱하고 경멸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을 본뜬 것이라 할 수 있다.
- 그리고 독자와 작중 인물 중간에 서서 작중 인물을 평하면서 독자의 이해를 돕고, 판소리 사설에서 창자의 역할과 같은 작자의 직접적 개입이 있다.
- 반어를 통한 희화화와 풍자에 의해 이루어지는데 겉으로 추켜 올리면서 동시에 그들의 추악함을 폭로한다. 이 작품에서 반어적 희화와 풍자가 되지 않는 인물은 종학뿐인데, 작가의 긍정적 입장을 반영한 것이라 볼 수 있다
* 제재 : 윤 직원의 가족사
* 주제 : 개화기에서 일제 시대에 이르는 윤 직원 일가의 타락한 삶과 몰락 과정.
경제적인 부를 가진 한 인간을 통해 도덕적인 왜곡상을 폭로
* 출전 : 1938년 <천하태평춘>이란 이름으로 [조광]지(1938)에 1월~9월까지 연재, 전15장, 1940년 단행본으로 출간.
● 등장 인물
* 윤용규(제1대) : 윤두섭의 부친. 화적떼에 피살됨.
* 윤 직원(제2대, 본명, 윤두섭) : 낮은 신분 출신으로서 치부(致富)에 성공하여 지주가 된, 이 작품의 중심 인물. 사회에 대한 불신과 피해 의식이 강하다. 만석꾼으로 수전노. 그의 아버지 (윤용규)는 날건달 생활을 하다가 변칙적으로 재산을 모았음. 아버지는 갑자기 들이닥친 화적떼에게 살해 당함. '직원'은 향교의 수장자리를 돈 주고 산 직함임. 자신의 만수무강과 후손의 영화를 위해 매일 자신의 소변으로 눈을 씻고 어린 아이의 소변을 사서 장복하는 등 갖은 양생법을 실천함. 고리대금업을 통해 재산을 늘리는 데에만 급급한데 그러기 위해 아들과 손자를 군수와 경찰서장으로 만들고자 하나 아들은 노름에 빠져 금치산자(禁治産者)가 되며 손자들도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다.
* 윤창식(제3대) : 윤 직원 영감의 장남. 개화기 교육을 받은 세대로서 가치관을 상실하고 향락만을 추구하는 타락한 인물. 주사이며 첩을 여럿 두고 있음. 재산에는 관심이 없음. 금치산자가 됨.
* 윤종수(제4대) : 윤 직원의 장손이자 윤창식의 장남. 향락만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인물. 그의 부친 윤창식과 유사한 행태를 보이는 인물. 한량이며 오입쟁이. 윤경손은 그의 아들.
* 윤종학(제4대) : 윤창식의 차남. 일본 유학중임. 윤 직원이 가장 믿고 기대하는 인물. 하지만, 윤 직원의 기대와는 달리 사회주의자가 된, 의식 있는 청년으로 소설의 전면(前面)에 직접 등장하지는 않는다.
* 서울 아씨 : 윤 직원 딸. 30대 과부.
* 춘심 : 어린 기생. 윤 직원 집에 오가며 금전을 우려내려 함.
● '태평 천하'의 성격
① 가족사 소설 - 염상섭의 '삼대'와 더불어 1930년대 대표적인 가족사 소설이다. 가족사 소설이란 여러 세대에 걸친 가문의 내력을 중심으로 사회 역사적인 의미를 추구하는 소설로서 고전 소설의 '가문 소설' 계보에서 이어진다.
② 사회 소설 - 성격 묘사에다가 사회 전체의 실상을 암시하려는 성격 소설의 특징을 반영하고 있다.
③ 풍자 소설 - 일제 강점하의 현실을 태평 천하라고 믿는 주인공의 시국관에 대한 풍자를 말한다. 즉, 부정적인 인물들로 구성된 한 가족의 삶을 통해 한말, 개화기 세대의 가치관을 분석하고 일제 강점하의 사회 현실 극복 방식을 풍자적으로 암시해 주고 있다.
● 이해와 감상
-‘태평 천하’에서 작가는 부정적 인물들로 구성된 가족을 통하여 한말(韓末)과 개화기, 그리고 일제 강점기 세대 사이의 가치관의 변화와 현실 대응에 따른 행동 유형을 보여 주고 있으며 바탕이 옳지 못한 가정이 어떻게 허물어져 가는가를 보여 주고 있다. 작가는 이를 통해서 식민지 사회에서 무엇이 문제이며 무엇이 생성되어야 할 것인가를 암시하려 하는 것 같다.
- ‘태평 천하’는 윤 직원 영감과 같은 부정적이고 타락한 인물에 대한 풍자가 핵심을 이룬다. 그리고 이러한 풍자는 반어(反語, 아이러니) 수법을 통한 부정적 인물의 희화화(戱畵化)에 의해 실현되고 있다. 즉, 작가는 작중 인물을 겉으로는 추켜세우는 것처럼 서술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 부정적 측면을 더욱 드러내어 그 인물을 웃음거리가 되게 만들면서 추악한 일면을 폭로하고 있다.
- 부정적인 인물의 성격이 강할수록 풍자의 농도는 심해지기 마련인데, 이 작품의 경우는 윤 직원 영감이 그 중요한 풍자 대상이 되고 있다. 이 작품에서 풍자의 대상이 되지 않고 있는 인물은 윤 직원 영감의 둘째 손자인 ‘종학’이 한 사람뿐이다. 이는 ‘종학’이라는 인물에 대해 작가가 긍정적 시각을 갖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종학’)는 소설 전면(前面)에 등장하지 않고 윤 직원 영감의 욕망 표현 속에, 그리고 작품 후반부의 ‘동경에서 온 전보’ 속에 잠깐 나타날 뿐이다. 물론 등장 인물의 출현 빈도수가 그 인간적 가치의 경중(輕重)에 비례하지는 않겠지만, 작가가 지니고 있는 긍정적 미래관을 구현시키기에는 미흡한 점이 있다. 이런 점에서 보더라도 이 소설의 초점은 역시 윤 직원 영감에게 있다.
이 작품의 문체는 판소리, 또는 탈춤 사설의 어투를 계승하고 있다. ‘~입니다.’와 같은 경어체 문장이나, ‘~겠다요.’와 같은 경박한 어투를 빌어서 작중 인물의 행위를 조롱하고 경멸하고 있다. 이는 바로, 춘향가의 방자(房子)나 봉산 탈춤의 말뚝이 같은 인물이 양반 사대부의 면전에서는 공경스러운 태도를 짓다가도 뒤에 가서 느닷없이 조롱하고 경멸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을 본뜬 것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