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으로 지킨 사랑
금슬 좋은 부부를 나타낼 때 흔히 원앙에 견주곤 한다. 진(晉)나라 때 최표는 『고금주』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원앙은 물새다. 오리의 종류다. 암컷과 수컷이 절대로 서로 떨어지지 않는다. 사람이 한 마리를 잡아가면 남은 한 마리는 제 짝을 그리다가 죽고 만다. 그래서 원앙을 필조(匹鳥), 즉 배필새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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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회안부지(淮安府志)』에는 이런 내용이 실려 있다.
1470년(성화(成化) 6) 11월 중, 염성(鹽城) 대종호(大踪湖)에 사는 어부가 주살로 원앙새 수컷 한 마리를 잡았다. 배를 갈라 가마솥 가운데 넣고 삶았다. 암컷이 따라와 날며 울며 떠나가지 않았다. 어부가 가마솥을 열자마자 펄펄 끓는 국물 속으로 뛰어들어 죽었다.
이시진은 『본초강목』에서 “수컷은 ‘원(鴛)’ 하고 울고, 암컷은 ‘앙(鴦)’ 하며 운다”고 했다. 하지만 실제로 원앙의 부부관계는 번식기에만 유지되고 번식기가 끝나면 각자 행동한다. 또 이듬해에는 다시 새로운 짝을 찾아 구애 행동에 들어간다. 그렇더라도 번식기 동안의 원앙 부부는 잠시도 떨어지지 않고 함께 행동하므로 다정한 부부의 사랑을 상징하는 새로 자리잡았다.
이규보의 「원앙희작(鴛鴦戲作)」이란 작품이 있다.
푸른 연못 따스한 봄 주름 비단 무늬 펴고
碧池春暖縠舒紋
종일 짝져 잠시도 떨어지질 않는구나.
盡日雙浮不暫分
미인에게 손쉽게 보여주지 말려무나
莫使美人容易見
잠시라도 낭군을 놓아주려 않을 테니.
片時勿欲放郞君
봄날 물 불어 넘실대는 연못 위에 비단옷 곱게 차려입은 원앙 한 쌍이 하루 종일 물 위를 떠다니며 잠시도 떨어지지 않는다. 시인은 저 원앙의 다정한 모습을 여자에게 쉽게 보여주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원앙의 다정한 모습을 보고 그녀도 사랑하는 임 곁을 결코 떠나려들지 않겠기에 한 말이다. 그렇게 되면 남정네들이 꼼짝없이 한눈을 팔 수 없게 되지 않겠는가? 제목에 ‘희작’이란 말이 붙었듯이 농담 삼아 한 쌍 원앙의 다정한 모습을 그렸다.
「물가의 원앙(溪流鴛鴦)」, 전 이명윤, 비단에 채색, 152.7×55.0cm, 16세기,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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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의 원앙(溪流鴛鴦)」, 이징, 종이에 채색, 158.0×77.5cm, 19세기, 국립광주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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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현의 「원앙편(鴛鴦篇)」은 호흡이 제법 긴 시다.
그대 못 봤나 초나라 대부 집에 예쁜 아씨 있음을.
君不見楚大夫家有傾城姝
경성(傾城)의 미인이란 명성 온 나라에 가득터니
傾城之名滿國都
하루아침 금문포로 옮기어 들어왔네.
一朝移入金門鋪
옥대는 높고 높아 백 척도 더 되건만
玉臺崔嵬高百尺
한 목숨 가볍기 홍모(鴻毛)인 양 던져졌네.
性命輕似鴻毛擲
한마음 깊은 맹세 한빙 묘에 의지코자
一心永誓依韓墓
오색빛 찬란한 고운 옷도 원치 않네.
不願五色輝褕翟
무덤 앞 짝지은 새 그 이름 원앙이라
塋前匹鳥名鴛鴦
짝져 날고 노래하고 짝지어 빙빙 도네.
雙飛雙語雙回翔
목 기대고 함께 날며 봄볕을 희롱터니
交頸比翼弄春芳
하루라도 헤어짐은 차마 못 견디겠네.
不忍一日相分張
사람이나 새나 모두 절개를 지녔구나
人兮鳥兮俱有節
매서운 붉은 마음 길이 스러지지 않네.
耿耿丹心長不滅
그대 못 봤나, 북방 아가씨들 어여쁨 뽐냄을
君不見燕趙佳兒誇窈窕
사람과는 견주어도 새만은 못하리라.
可以人而不如鳥
언뜻 보아 알 수 있듯 이 시에는 고사가 있다. 앞서 비둘기를 설명하면서도 잠깐 소개한 적이 있다. 진(晉)나라 간보(干寶)가 지은 『수신기(搜神記)』에 나온다.
송나라 강왕(康王)의 마름인 한빙이 아내 하씨를 얻었는데 아름다웠다. 강왕이 그 아내를 빼앗자 한빙이 원망하였다. 왕은 그를 가두고 형벌을 주려 했다. 얼마 뒤 한빙은 자살했다. 그 아내 하씨는 남몰래 그 옷을 썩게 만들었다. 왕이 그녀를 데리고 누대 위로 올라갔다. 그녀는 마침내 대 위에서 자살했다. 좌우에서 붙들었지만 옷이 썩어 붙잡히지 않고 죽었다. 허리띠에 유서가 있었다. “왕께는 제가 사는 것이 좋겠지만, 저는 죽는 것이 낫습니다. 원컨대 시신을 한빙과 합장해주소서.” 왕은 성나 들어주지 않고 마을 사람을 시켜 매장하여 무덤이 서로 바라다뵈게 했다. 왕이 말했다. “너희 부부가 서로 사랑해 마지않으니 만약 능히 무덤이 합쳐지면 내가 방해하지 않으리라.”
며칠 사이에 문득 두 무덤 끝에서 가래나무가 돋아나더니, 열흘 만에 굵기가 한 아름이나 되었다. 몸을 굽혀 서로를 향해 갔다. 뿌리는 아래에서 얽히고, 가지는 위에서 만났다. 또 원앙새 암컷과 수컷이 있어 항상 나무 위에 살았다. 아침이나 저녁이나 떠나지 않고 목을 서로 기대면서 구슬피 울었다. 그 소리가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송나라 사람이 슬퍼하여 마침내 그 나무를 상사수(相思樹)라고 불렀다. 상사(相思)란 말의 기원은 여기서 나왔다. 남쪽 지방 사람들은 원앙새가 한빙 부부의 화신이라고 말한다.
말하자면 원앙새는 한빙 부부의 죽음으로 지킨 애절한 사랑을 증거하는 화신인 셈이다. 원앙은 오릿과의 새인데도 특별하게 나무 위에 둥지를 틀고 살기 때문에 이런 전설이 생긴 듯하다.
구한말 안국선(安國善)의 소설 「금수회의록(禽獸會議錄)」에는 원앙새의 연설 장면이 나온다. 호랑이에 이어 연단에 오른 원앙은 한 남자에 한 여자가 짝을 지어 사는 인륜을 저버리고 처첩을 여럿 두는 남자들의 악행과 음란함을 신랄하게 성토한다. 그러고는 원앙새에 얽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사람들도 우리 원앙새의 역사를 짐작하기에 이야기하는 말이 있다. 옛날에 한 사냥꾼이 원앙새 한 마리를 잡았다. 암컷이 수컷을 잃고 수절하며 지낸 지 1년 만에 또 그 사냥꾼의 화살에 맞았다. 사냥꾼이 원앙새를 잡아서 집으로 돌아와 털을 뜯는데, 날개 밑에 무언가가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지난해에 자기가 잡았던 원앙새 수컷의 머리였다. 암컷이 수컷과 함께 있다가 수컷이 사냥꾼의 화살을 맞아 떨어지자, 경황없는 중에 수컷의 대가리를 집어가지고 숨어서 일시의 난을 피했던 것이다. 짝 잃은 한을 잊지 않고 수컷의 대가리를 날개 밑에 끼고 구슬피 세월을 보내다가 또한 사냥꾼에게 잡혔다. 사냥꾼이 이를 보고 정절이 지극한 새라 하여 먹지 아니하고 깨끗한 땅에 장사를 지내주었다. 이후로 다시는 원앙새를 잡지 아니하였다. 우리 원앙새는 짐승이지만 절개를 지킴이 이러하다.
「문행쌍금도(文杏雙禽圖)」, 오빈, 120.4×56.0cm, 명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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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 죽은 제 짝의 머리를 날개 밑에 품고 지낸 원앙새 암컷의 변치 않는 사랑을 칭찬하며, 아내가 죽자 수절은커녕 며칠도 못 가 새장가를 들려고 분주하며 남편이 죽자마자 개가할 길을 찾느라 바쁜 인간의 더럽고 추악한 행실을 성토했다. 원앙새가 어떻게 인식되고 있었는지를 잘 보여주는 예화다.
연밥 따는 아가씨의 심술
한시에 채련곡(採蓮曲)이란 것이 있다. 중국 남방의 민가로 연밥 따는 강남 아가씨들의 춘정에 겨운 모습을 담고 있다. 드넓은 호수 위로 연밥이 주렁주렁 매달렸고 연밥 따는 아가씨들은 봄날을 맞아 공연히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먼저 성간의 「채련곡」을 읽어보자.
5월이라 야계엔 날씨가 화창하고
耶溪五月天氣新
야계의 아가씨는 다리도 희고 곱네
耶溪女子足如霜
어울려 야계 위에서 연밥을 따니
相將採蓮耶溪上
파아란 머리 장식 햇볕 받아 반짝인다.
翠微匎葉輝艶陽
연밥은 따고 따도 한 줌 안 되고
採採蓮花不盈掬
백사장 쌍쌍 원앙 샘이 나누나.
却妬沙上雙鴛鴦
원앙은 짝져 날고 내 님은 못 만나
鴛鴦雙飛不得語
노 저어 돌아오며 속상해하네.
蕩槳歸來空斷腸
야계(耶溪)는 월나라에 있던 시내 이름이다. 전설적인 미인 서시(西施)가 이곳에서 빨래하다가 월왕(越王)의 눈에 띄었다. 그러니까 야계의 아가씨란 어여쁜 아가씨란 말과 같은 뜻이다. 미끈하게 빠진 고운 다리를 걷고 화창한 봄날 어여쁜 아가씨가 연밥을 딴다. 곱게 꾸민 머리꾸미개가 햇볕에 반짝인다. 5구에 묘미가 있다. 마음이 싱숭생숭해서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단 말을 이렇게 했다. 그녀를 심란하게 한 것은 다름 아닌 물 위에서 짝져 노니는 한 쌍의 원앙이었다. 임 앞에 사랑을 고백하려 했지만 말을 건네보지도 못했는데 하루 종일 약 올리듯 찰싹 달라붙어 잠시도 떨어지지 않는 한 쌍의 원앙이 원망스러웠던 것이다.
원양모양 향로 뚜껑(靑磁鴛鴦形香爐蓋), 높이 12.0cm, 12세기,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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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흠의 「채련곡」도 묘미가 있다.
이웃 마을 아가씨 버선 벗고서
東隣女兒脚不襪
눈같이 흰 다리로 시냇가를 오가네.
兩足如霜踏溪渚
시내 저편 배에 탄 이 뉘 집 도령일까
溪頭蕩槳誰家郞
연꽃을 꺾어 쥐고 웃으며 소근대네.
手折荷花笑相語
배를 옮겨 함께 가서 뵈지 않더니
移舡同去不知處
별포에서 쌍쌍 원앙 놀라 날아가더라.
別浦驚起鴛鴦侶
이웃집 아가씨가 버선도 신지 않은 뽀얀 맨발로 시냇가를 이리저리 오간다. 그때 시내 저편에서 멋진 도련님이 슬그머니 배를 타고 오더니만 아가씨의 어여쁜 자태에 정신을 잃고 이런저런 수작을 건넨다. 연꽃을 꺾어 아가씨에게 건네주며 깔깔 웃기도 하고 무어라 소곤거리기도 한다. 마침내 두 사람은 마음이 맞았는지 아가씨가 도련님의 배에 올라 함께 노를 저어 연잎 무성한 그늘 사이로 숨어버렸다. 어디로 갔나 하고 고개를 갸웃대는데 저 아래편 물가에서 원앙새 한 쌍이 난데없는 침입자에 깜짝 놀라 푸드득 날아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아련한 맛이 있다. 이렇게 채련곡에는 으레 원앙새가 등장한다. 남녀의 사랑을 환기시키는 촉매 역할이다.
「원앙도」, 종이에 채색, 120.0×34.0cm, 가회민화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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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원앙은 새로 결혼하는 신부의 혼수품에도 빠지지 않는다. 신혼부부가 베는 베개와 이불에는 꼭 한 쌍의 원앙새를 수놓았다. 원앙금침이 그것이다. 원앙새처럼 금슬 좋고 다복하게 살라는 바람을 담았다. 그래서 원앙새는 옛 그림에도 비교적 자주 등장한다. 원앙새를 그릴 때는 흔히 연잎과 연밥을 함께 그린다.
「원앙도」, 비단에 채색, 94.0×29.0cm, 가회민화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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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의 의미는 이렇다. 보통의 식물은 꽃이 핀 뒤 열매를 맺는다. 하지만 연꽃은 꽃과 열매가 동시에 자란다. 연(蓮)은 또 연(連)과 음이 같다. 그래서 연꽃과 연밥은 빠른 시일 안에 연달아 귀한 아들을 낳으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니까 한 쌍의 원앙새가 연자(蓮子) 즉 연밥 아래 서 있다면 부부의 화목과 자손의 번영을 기원하는 축복의 뜻을 담은 그림이 된다. 「하화원앙도(荷花鴛鴦圖)」가 그 전형적인 예다. 고려청자 연적에도 원앙새가 연꽃을 입에 물고 있는 것이 있다. 역시 같은 의미로 읽을 수 있다.
「하화원앙도(荷花鴛鴦圖)」, 류지유(喩継高), 중국 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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