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전협정 70주년 한국기독교장로회 종전평화선언
“너희는 진리를 알게 될 것이며,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요 8:32)
한국기독교장로회가 걸어온 지난 70년은 우리 사회의 아픔과 함께해 온 역사였음을 고백한다.
하지만, 정전협정 70주년을 맞은 오늘, 우리가 이 땅의 민주주의와 인권 신장을 위해 헌신해 온 노력도
실로 작은 일에 불과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정전상태로 70년을 보내오는 동안 한반도의 평화를 활짝 열지 못하고
반목과 대립 의 체제에 사로잡힌 삶을 참회한다.
우리는 왜 생명과 평화의 진리를 굳게 세우지 못했는가? 이데올로기 대결에 가담하고,
군사동맹을 강화하고 군비를 증강하며 전쟁 연습을 확대하는 일을 왜 당연시해 왔던가?
그것은 분단체제에 눈이 가려져 진리의 본원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전쟁과 증오의 기억에 사로잡혀,
생명과 평화를 살리는 일이야말로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합당한 일임을 망각하였다.
온 세상을 얻고도 제 생명을 잃으면, 무슨 이득이 있겠는가! (마 8:36)
목숨이 음식 보다 더 소중하고, 몸이 의복보다 더 소중하지 않은가! (눅 12:23)
헌법이 규정한 ‘행복 추구권’보다 더 근원적인 인간의 권리는 ‘생명권’이다.
그러나 우리는 지난 70년을 정전상태로 살아오며 너무도 당연한 생명권의 지고함을 망각했다.
이제 우 리는 ‘생명권’이 분단과 대결 체제에서는 결코 지켜질 수 없음을 인식하고,
생명을 지키는 평화 체제 구축을 우리의 일차적인 과제로 깨닫는다.
한반도에서 가장 우선 한 권리는 ‘생명권’임을 분명히 하며,
전쟁 상태를 지속하는 그 어떠한 흐름에도 반 대한다.
생명과 평화는 군사동맹과 전쟁 연습으로 지킬 수 없다.
성서는 군사동맹에 기초한 역사의 결말이 어떠했는지 분명히 가르치고 있다.
분단된 북이스라엘과 남 유다가 외세와 동맹을 맺고 서로 대결한 결과,
북은 패망하고 남은 봉신국으로 전락하였다. 그것이 우리 운명일 수는 없다.
강대강(强對强) 정면승부는 정전상태라는 황량한 광야에 핀 사악한 풀이요,
분단상태에서 맛보는 번영과 자유도 언제 꺾일지 모르는 허망한 꽃이다.
그 풀은 마르고 그 꽃은 시든다.
이제 우리 마음에 예언의 북소리가 울리기를 기도한다.
대결 체제의 노예로 살아온 복역 기간이 이미 끝났으며,
동족을 향해 총을 든 죄악에 대한 형벌도 갑절이나 받 았다는 사실을! (사 40:2)
그렇다면, 우리의 길은 분명하다. 지난 70년간 거칠고 험 해진 정전(停戰)의 광야에
평화의 주님이 오실 큰길을 닦는 것이다.
그 길을 곧게 내기를 다짐하며,
먼저 우리는 남북의 대결과 전쟁은 이제 끝났음을 믿음으로 선언 한다!
우리의 이 종전(終戰) 선언은 엄혹한 국제질서를 모르는 무지와 낭만이 아니다.
오 히려 분단 한반도의 참 생명과 평화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다는 총체적 진리 인식 의 표현이요,
평화의 핵심에 가닿음으로써 모든 삶을 다시 펼쳐갈 시대적 사명에 관한 뜨거운 호소이다.
평화로 가는 길이 얼마나 험난한지는 민족 멸절의 위험과 위기를 지나온 지난 역사가 충분히 말해 준다.
따라서, ‘이미 전쟁은 끝났다!’라는 우리의 선언이 다가오는 시대의 기도가 되고,
분단체제의 노예살이에서 해방된 평화 의 출발점이 되기를 기원한다.
정전협정 70주년을 맞은 오늘, 한국기독교장로회는 민족과 개인의 생명권을 지키는
평화 체제 수립을 온 마음으로 염원하며, 이를 위해 헌신할 것을 다짐한다.
“칼을 쳐서 보습으로, 창을 쳐서 낫으로” 바꾸는 우리의 노력이 한반도에 평화를 이루고,
동북아시아와 세계 평화에 이바지하며,
기후 위기 시대를 맞은 지구 생명의 평화를 위한 길이 되기를 빌며,
평화의 주님께서 인도해주시기를 간구한다.
2023년 7월 27일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장 강연홍
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 김희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