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물었다. 왜 산에 가냐고, 대답은 간단했다. 산은 사람을 유(裕)하게 만들기 때문에 산을 찾느다고 했다. 유(裕)는 넉넉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냥 넉넉하게 만든다고 말하면 되겠지만 또 다른 많은 뜻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관대할수도 그리고 너그러울수도, 그렇게 산은 사람을 키운다. 하물며 이땅의 백두대간임에야.
이제 양재동의 식당에서 모이는 것이 무척 자연스럽다. 식당 사장님이 오늘은 몇분이냐고 물어보신다, 어디를 가는지 뭘할것인지를 이제 모두 아시는 눈치다. 최영섭 선배의 뒤늦은 환갑잔치(?)로 간단히 케익에 촛불켜고 노래부르고 식당안의 여러사람들에게 박수도 받았다. 그리고 임춘한 선배님은 고가의 스틱을 선물로 준비해서 전달했다.
이번 제3 구간에는 2회 최영섭, 임춘한, 4회 김태연, 8회 천종락, 임상규, 홍기훈, 10회 남훈, 11회 정우찬, 일행 한성, 정지원, 임의섭, 15회 조태현, 여중대우 김금순 등 총 13명이 참석했다. 25인승 버스로 11시 50분경 출발하며 천종락회장으로부터 산행의 설명을 듣고 산행지도를 건네받았다. 내일의 산행을 위해서 어느정도 잠을 자야하는데 잠들기가 수월치 않다.
2월 23일 새벽 3시 넘어서 남원에 도착 고속버스터미널 건너편의 식당에서 감자탕으로 이른 아침을 먹고 산행을 위한 준비를 마치고 지난 산행의 끝머리인 여원재로 향했다. 여원재 장동버스정류장에서 복장을 챙기고 기념촬영후 산행을 시작한다 오전 4시 50분. 마을길에서는 대간길을 종종 놓친다 어둡속의 길이기도 하거니와 종종 뜻밖의 길이기 때문이기도 했는데 오로지 다른 대간팀들이 메어좋은 리본을 의지해야 한다. 고남산을 오르는 길에서도 마을길에서 한 번, 산 길에서도 한번 길을 놓쳤다. 대간 길, 길을 걸으면서 길을 생각한다. 누군가 산길은 바람이 내는 것이라고 들은 기억이 떠오른다. 대간길은 사람이 걸어서 길을 내지만 걷다보면 변형된 길을 무수히 만난다. 사람이 만든 길위에 자연이 엄청난 바람으로 육중한 나무를 쓰러뜨려 길을 막아 할 수 없이 길을 우회하게 만드는 흔적들이다. 그러고 보면 산에 길은 사람과 자연이 함께 만드는 길인 듯 하다.
2시간 정도의 산행을 이어가니 헤드랜턴의 불빛이 차츰 소용없어지기 시작한다. 앞의 봉우리가 고남산인듯 여겨져 오르는 발검음에 속도를 붙여본다. 오른쪽으로 붉은 기운이 솟아 오르는 것이 정상에서 일출을 보고싶은 욕망 때문이다. 하지만 산은 그렇게 녹록치가 않다. 올라가보면 또다른 봉우리가 기다리고 있고 또 오르면 다른 봉우리가 나를 맞는다. 겸손해져야 한다. 산이 나를 유하게 만드는 첫번째 방법이다. 고남산 정상에 있는 레이더기지인지 중계국기지인지를 지나 고남산 정상표지석을 만났을 때는 해가 막 솟아오른 직후, 태양의 붉은빛이 산의 상고대에 반사되며 부서진다. 멀리 인월의 평지들과 둘러싼 산들이 장관을 이룬다. 대간길에 이런 풍광은 항상 끼어있는 보너스다. 오전 7시 25분경 선두와 후미의 중간이다. 초반에 생각이 많은 생각할 사(思)의 4조가 전혀 뒤쳐지지 않더니 고남산 정상을 앞두고 생각이 많아지는 듯하다. 천종락회장의 한마디 "4조가 슬슬 본색을 드러내는거 아냐?" 길을 걷다가 하시는 말이 몇년 전 혼자서 백두대간을 탈때는 반드시 마루금을 밟고 걸으려고 했었는데 이번 산행에서는 가끔 나타나는 우회길을 타는 이유가 함께 산행하는 동료를 배려하기 위함이란다. 산에서 화합을 배우는 순간이다.
매요삼거리의 매요휴게실에서 막걸리 한잔을 먹고자 했으나 가게가 잠겨져있어 포기하고 이른점심을 먹기로 한다. 매요리 마을회관앞 정자에서 허락을 받고 짐을 풀어 점심을 준비했다. 후미그룹에 오랫만에 산을 타는 금순님의 무릎통증으로 약간 뒤쳐지며 도착 파스와 소염진통제로 일단 응급처치 식사후 산행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대간 산행길이지만 점심식사의 달콤함을 놓칠수는 없다. 가져온 식재료가 비록 라면과 밥이지만 때론 설렁탕에 감자탕에 사골국물만두국의 호사도 누린다. 결국 점심시간이 길어지는 이유이기도하다. 매요마을에서 점심을 마치고 모두의 컨디션을 확인하고 다시 길에 오른 시간은 오전 11시50분, 야트막한 틍선을 넘어 사치재에 도착했다. 이구간은 88고속도로를 무단횡단해야하는 길인데 도로밑으로 토끼굴 만드는 공사가 막바지에 이른듯하다. 다음에 오는 팀들은 안전하게 도로밑의 굴을 통과할 듯. 고속도로를 만들면서 사치재의 해발고도를 낮추었을 것을 짐작하지만 더구나 인위적으로 산을 깍아놓았으니 사치재에서 다시 올라가는 길은 흙길의 급경사이다. 낮의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지도상에 공터라는 헬기장에 올랐다. 햇살이 따뜻하고 바람이 없어 산행하기에는 그지없다. 사방을 둘러보니 우리가 걸어왔던 산들이 모두 보인다. 멀리 천왕봉에서부터 그리고 새벽에 올랐던 고남산까지 아득하다. 걸어왔던 길이 꿈같이 여겨지는 순간이다.
산불이 났던 곳이라는 능선길은 섬뜩하다. 마치 사체를 밟는 기분이랄까 산이 주는 푸근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인간의 실수와 욕망으로 인한 이런 폐해는 치유에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많은 생명을 앗아간다. 걷는 발걸음이 아프다. 하지만 불어오는 바람에서 희망을 느낀다. 햇볕이 많이드는 남동쪽 사면은 대부분 눈이 녹아있지만 북서쪽 사면은 아직 눈이 남아있다. 더욱이 기온이 올랐을때는 녹아내리다가 밥에 기온이 떨어지면서 결빙되어 눈만 있을 때보다 더욱 위헙스럽다. 산행속도가 예상시간보다 많이 떨어졌다. 길을 걷다가 봅의 정령을 만난다. 무심코 길을 걷다가 하얀 눈발위에 나비의 날개짓 같은 떨림의 그림자를 보았다. 엇 뭐지 하면서 고개를 들어보니 마른나뭇가지에 붙어있는 낙엽이 바람에 떨리는 것의 그림자가 영락없는 나비의 날개짓이다. 봄은 영락없이 오고 있었다.
시리봉 쯤은 지날 때는 선두의 흔적도 안보이고 후미도 전혀 느낄 수가 없다. 아주 지루하게 이어지는 봉우리들이 슬슬 지치게 만든다. 목적지 도착 예상시간이 훌쩍 넘었음에도 목적지의 흔적을 전혀 느낄 수가 없다. 지도를 꺼내어 현재 위치를 가늠하지만 아직 갈길이 멀다. 예상시간과 거리가 괴리감이 느껴진다. 함께 동행한 금순씨가 계속 무릎통증을 이야기한다. 속도를 낼 수도 응급처치도 곤란하다. 바람이 매서워지면서 슬슬 불안감이 엄습한다. 어쩔수 없는 거짓말, 저 봉우리만 넘으면 될꺼야라는 말만 계속하지만 그 말에 나도 지쳐간다. 이정표가 없어 더욱 답답하다. 서두르다 그만 미끄러져 넘어지면서 얼굴에 부상을 입었다. 일단 등산용 스카프를 꺼내 급하게 지혈하였다. 다행히 날씨가 차서 지혈이 수월했다. 산이 가르친다.
오후 3시30분 드디어 아막성터, 즉 산위에 인공의 성구조물을 발견했다. 지도상의 표기라면 여기서부터 복성이재까지는 30분 정도 소요된다고 했다. 마지막 힘을 쏟기 위해 배낭의 마지막 행동식을 꺼낸다. 쉬는 중에 후미의 4조 홍기훈 선배를 만났다. 후미와의 간격이 크지 않았다는 뜻일게다. 빙판길이 산행속도를 떨어뜨려 선두와의 격차가 생각했던 것만큼 차이가 없었다.
4시 40분경 복성이재로 무사히 하산.
뒤에서 밀어주신 임춘한 형, 이제 산을 오르는 숨결이 틀립니다 곧 종석 형을 따라잡으실 것 같습니다. 최영섭 형, 이제 스틱으로 고생하실 일 없으니 뒤쳐질 일도 없을 듯. 김태연 형, 눈이 많이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완주하시니 놀랍습니다. 천종락 형, 형의 희생으로 산행이 무사히 이뤄집니다. 임상규 형, 형은 야구팀의 마무리투수입니다. 항상 든든하지요. 홍기훈 형, 형의 치통이 산행으로 싹 없어졌다니 진정한 산꾼입니다. 얼굴에 기스난 저를 보살펴주심에 감사. 정우찬 군, 항상 밝게 산행하는 충암의 대들보. 한성, 정지원, 임의섭 씨, 함께 산행을 이어나가니 정이 새로새록 생깁니다. 끝까지 가보자구요. 조태현 군, 일많이하는 살림꾼이 없으면 산행이 안되지요. 오랫만의 산행을 백두대간을 택하신 김금순 씨, 사골만둣국은 맛있었습니다.
그대들과 함게 한 백두대간이라 더욱 뜻깊었습니다. 도상거리 20.6km
첫댓글 수고 많았다~~~ 이번 산행에는 어쩔 수 없이 빠졌지만 다음에는 즐거운 산행을... 얼굴은 개안나??
루치아남 훈바로티,멋져!!!
후송해야 할 부상병만 없으면 4조는 4월부터는 중간이하로 처지지 않을 것임을 확신 함,4조 화이탱!
충암 백두대간팀 화이팅 !!!!!!!!!!!!!!
남훈 화이팅!!! 멋진 명장의 기록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