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을 극복하기 위한 용기 >
1. 삶을 변화시키는 인생가이드
영화 “그린북(2018)”은 유명한 피아니스트인 ‘돈 셜리’라는 인물을 소재로 한 실화를 바탕으로, 1962년 미국 남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인종차별 속 우정이라는 휴머니즘과 미국 역사 속 인종차별을 그린 작품이다.
미국의 1926년 당시는 흑백 인종문제가 심각했기 때문에 백인들이 사용하는 식당이나 숙박업소등은 흑인들이 맘대로 드나들 수 없는 시기였다. 이에 흑인들의 편의를 위해 ‘그린북(1930)’이라는 초록색 표지의 책이 발간되었고, 이것은 흑인들의 장거리여행 시, 필수 불가결한 여행가이드 책자가 되었다.
영화는 뉴욕의 흑인 천재 피아니스트 ‘돈 셜리(마허샬라 알리)’가 백인인 개인 비서 겸 운전수 ‘토니 발레롱가(비고 모텐슨)’와 함께 미국 남부로 콘서트투어를 하며 겪는 인종차별 문제와, 그들의 우정을 소재로 담고 있다. 당시 영화에서 다루고 있는 인종차별 문제는 흑인과 백인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토니’ 역시 미국으로 건너온 이탈리아계 이민자로 대부분 이들의 교육수준은 낮았고 이 때문에 미국에 사는 동안 고급인력에 속하지 못해 낮은 업무에 종사해야만 했던 차별에 노출된 백인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흑인을 대하는 시선은 더욱 냉혹해 이 두 사람에게 2개월에 걸친 콘서트 투어의 여정은 험난하기 그지없는 길이었고 백인을 대해야 하는 이들에게 곤혹스런 상황들은 빈번히 발생한다.
이렇게 이 영화는 피아니스트와 운전수겸 보디가드로, 직업이나 성품면에서 정반대 성향의 두 인물이 서로의 간극을 좁혀 나가는 과정 속의 우정을 통해 시시각각 겪어야 하는 흑백 인종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들이 어떠한 사건들을 마주하며 이를 어떤 방법으로 극복해 나가는지 줄거리를 통해 알아본다.
2. '그린북'을 따라서
뉴욕에 사는 흑인 피아니스트 ‘돈 셜리’는 백악관에도 초청되는 등 미국 전역에서콘서트 요청을 받을 정도로 클래식 피아노의 대가이며 학식과 매너가 뛰어난 인물이다. 반면 이탈리아계 백인인 ‘토니’는 흑인노동자가 마신 물컵을 쓰레기통에 버릴 정도의 흑인 혐오사상이 뿌리깊은 데다가 나이트클럽에서 손님들의 싸움을 말리는 등의 일을 했던 인물로, 성격 또한 괴팍하고 매너라곤 찾아볼 수 없는 인물이다. 그러나 나이트클럽의 수리 문제로 하루아침에 실직된 ‘토니’는 아내와 자식이 있는 집안의 가장으로써 구직을 해야만 했고, 그때 그를 고용한 사람이 피아니스트 ‘돈 셜리박사’이다.
이렇게 얼마전까지만 해도 나이트클럽에서 해결사 노릇을 하던 그가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게되고 생활마저 곤궁에 빠져 있을 때, 같이 일하던 지배인의 주선으로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카네기홀로 면접을 보러 가는 것이 영화의 시작된다.
면접에서 만난 사람은 첫 대면부터가 범상치 않은 자태에다가 집안은 고급가구들로 꾸며져 있다. 맘에 걸리는 것은 다만 흑인이라는 것인데, 면접의 요구조건 또한 단순한 운전기사가 아닌, 그의 일정관리 및 신발과 옷 세탁까지해야하는 일들이었다. 이에 ‘토니’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성급히 그곳을 뜨고, 돌아가는 길에는 전당포에 시계를 맡긴다. 이 정도의 궁핍한 생활이지만 흑인의 하수인으로 그에게 고용된다는 것에 대한 자존심만은 버릴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셜리박사는 ‘토니’에게 전화를 걸어 문제해결 능력이 뛰어나 여러 곳에서 추천을 받았었고 그의 요구조건을 모두 들어주겠다고 말한 뒤, 부인 ‘돌로레스’에게 매너있게 허락까지 맡고 그를 채용한다.
이렇게 해서, 토니는 공연기획 담당자로부터 ‘그린북’을 건네 받고 두 사람의 투어는 시작된다.
뉴욕을 떠나 남부로 출발하는 그들. '셜리박사'는 차 안에서 담배를 피우는 등 불량한 태도인 토니에게 몸가짐이나 언행까지 고쳐주지만 고분고분할리 없는 토니이다. 다음 행선지 길에서도 토니는 판매용 돌을 슬쩍 하다 들켜 또한번 주의를 받게된다.
이렇게 하나에서 열까지 사사건건 부딪치는 이들이지만, 이들은 각자의 주관을 뚜렷하게 털어놓음으로써 서로를 이해해가고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렇게 둘은 서로를 이해하게 되면서 토니는 첫 연주회에서 피아노를 치는 셜리박사에게 감동을 받는다. 캔터키주를 지날 때는 진짜 ‘켄터키 치킨’을 발견하고 셜리박사에게 치킨을 권하기도 한다. 그러나 한번도 먹어본 적이 없는 셜리박사. 이를 거절해보기도 하지만 한번 먹어본 후 셜리는 토니의 권유를 웃으며 받아든다. 숙소에 와서는 토니가 아내 ‘돌로레스’에게 엉터리 문장으로 편지를 쓰는 것을 보고 셜리는 유려한 미사여구를 이용해 로맨틱한 문장으로 고쳐 불러주기도 한다. 이를 받아적는 ‘토니’ 역시 기분이 우쭐해지고 이 편지를 받아든 부인은 감탄한다. 이 편지가 셜리박사의 아이디어에서 나왔다는 것을 모를리 없었다.
이렇게 일정을 소화해 나가던 중, 그들은 그린북에 적혀있는 숙소를 찾아갔지만 말과는 다른 빈민촌 수준이었다. 순회공연 내내 흑인 연주자를 대하는 백인들의 행패 역시 다양했다. 그때마다 셜리박사의 원칙주의 사고는 어떤 부당한 대우에도 차분히 응대해 나간다. 셜리박사를 향한 폭행은 물론이고, 양복을 구입하려해도 시착조차 거절당하기 일쑤이다. 또한 셜리가 초대받아 피아노 연주를 하는 저택 안에는 버젓이 화장실에 있건만, 30분 거리에 있는 야외 푸세식 화장실 이용을 강요당하기도 한다. 이럴 때마다 토니는 그의 절제심에 감탄과 경의가 일지만, 한편 이를 참지못하는 토니의 성급한 대응은 폭력과 같은 사건으로 일이 커지기도 하고 셜리는 이를 무마시키기를 반복한다.
셜리박사는 흑인이라는 것 때문에 수영장에서도 곤혹을 치르는 일이 발생하는데 ‘토니’의 뇌물로 풀려나게 된다. 하지만 원칙을 지키는 셜리박사는 토니가 뇌물을 써서 일을 처리한 것에 대해 못마땅해 한다. 한편 토니는 친구들로부터 정식 매니저 일자리를 제안받기도 하지만 오히려 셜리박사를 비하하는 그들의 말을 거절하며 셜리의 로드매니저 일이 충실하며 우정을 쌓아간다.
사건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어느 칠흑 같은 밤. 경찰이 차를 세우기도 하는데, 흑인이 타고 있는 것을 본 경찰은 흑인 통금시간이 지났다며 면허증을 요구한다. 그리고 뒷좌석에 탄 흑인 셜리박사의 신분을 묻고, 토니 역시 이탈리아계로 반은 흑인이라 말하며 셜리박사를 강압적으로 끌어내자 화가난 토니는 경찰에게 주먹을 날리고 철창신세까지 지게 된다. 투어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 셜리박사는 이러한 더이상 빠져나올 수 없는 상황에서야 비로소 주지사에게 전화 한 통을 하고 그곳을 빠져 나온다.그러나 적절치 못한 행동으로 그곳을 빠져 나왔다는 자괴감과 그리고 순간을 참지 못해 이런 상황까지 오게 한 ‘토니’에게 자신은 “흑인답지도 백인답지도 남자답지도 못한 나는 대체 누구인가”라며 울부짖는다. 힘든 일들을 겪고난 그날 밤 그들은 서로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이들은 각자 한발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두 사람은 서로의 방식을 이해해 갔고 서로는 기존에 갖고 있던 서로의 편견을 깨고 마음을 나누는 진정한 친구가 되어가고 있었다.
드디어투어 마지막 목적지에 도착한 그들은 공연 전 식사를 하는 레스토랑에서도 출입을 저지당한다. 단지 흑인이기 때문에 공연의 주인공일지라도 예외는 없었다. 토니는 더 이상 백인들의 행패를 볼 수 없다고 판단, 셜리를 데리고 백인 클럽을 나가버린다.
그리고 둘은 허름한 흑인클럽에 들어가 즐겁게 음식을 먹으며 즉흥 피아노 연주를 해 주변의 분위기를 띄워준다. 클럽의 대부분 흑인 손님들은 서로를 붙잡고 춤을 추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그곳을 나가려는 찰나 셜리의 차를 털려는 무장괴한들에게 토니는 한발의 공포탄을 날려버린다. 이에 놀란 셜리의 눈에 자신의 보디가드로 충실한 그가 총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신기하지도 않은 일이었다.
이렇게 기나긴 공연 일정이 끝나고, 크리스마스에 맞춰 집으로 도착하고자 액셀을 밟지만 너무나 피곤한 ‘토니’. 대신 ‘셜리’가 운전을 해 ‘토니’는 무사히 집에 도착하고, 남편과의 동행을 무사히 마치고 와준 셜리에게 아내 ‘돌로레스’는 감사의 포옹을 하고, 여러 친척들이 모인 가운데 그를 소개하는 훈훈한 분위기로 영화는 끝이 난다.
3. 우리가 생각해 봐야할 것들
‘돈 셜리’를 연기한 ‘마허샬라 알리’는 한 인터뷰에서 본인도 이 각본을 받기 전까지는 ‘그린북’에 대한 존재를 알지 못했으며, 1962년 당시 이 책이 없었다면 미국 남부의 여행은 불가능했고 이 책이 있었기에 두 사람의 투어가 가능했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 당시, 미국 내륙의 남부쪽에서의 인종차별은 심각한 상황으로, 흑인들은 백인들과 같은 공간에서 식사나 숙박은 더 더욱 허락되지 않았던 시기였다. 더구나 그들이 다닐 곳이 같은 미국 땅에서도 인종차별의 강도가 심했던 미국의 남부지역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그린북’의 필요성은 현대 네비게이션 이상이 아니었을까란 생각이다.
그리고 영화는 후반부로 갈수록 천재 피이아니스인 셜리박사의 학식과 품격속에 녹아드는 토니의 모습을 통해, 인종 차별은 공감이나 이해의 부재에서 비롯되는, 인간의 이기심이 만든 사소한 배타적 폭력의 문제라는 것을 느끼게 한다.
끝으로, 영화의 실제 모델인 두 사람은 명성 높은 피아니스트로서, 또 한 사람은 자기가근무했던 곳의 지배인으로서 생활한 후, 2013년 같은 해 사망할 때까지 우정을 나누었다고 알려져 있다. 물론 이에 대한 논란의 여지도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이 실제 우정을 나눈 사이이든 아니든 간에 영화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가히 감동적이다. 셜리 박사를 통해 보여준 미국 역사의 인종차별의 문제는 각기 다른 두 사람의 우정 속에 이미 흑백을 초월한 인간애가 짙게 깔려있기 때문이다.
작품에서 그들이 켄터키 주를 지나가며 우리에게 친근한 켄터키치킨을 언급하는 부분이 있다. 실제 켄터키 치킨의 역경을 이겨낸 창업 스토리가 '아무리 절망적이어도 희망을 놓지 말라'는 교훈이 있다고 하니, 작품의 내용과 유사함에 가볍게 언급해 보면서, “폭력으로는 절대 이기지 못합니다. 품위를 유지할 때만 이길 수 있습니다”란 명대사를 떠올리며 감상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