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라의 시詩꽃 . 마음꽃 하나 18회] 나의 환절기에
겨울로 가는 벤치에서 낙엽에게 말을 걸었다
나의 환절기에
아끼며 모아 둔 말도
돌아서면 금세 잊혀지는
겨울로 가는 벤치에서
어깨를 툭 치는 낙엽처럼
나에게 온 시(詩)
떨어진 잎에 구멍 난 슬픔이
바람에 몸을 맡길 때
사무쳤던 울음들이 담긴 노트를 뒤적여요
흙 묻은 신발에 같이 걸어온 생각을 추스르고
비에 씻겼을지도 모를 그때의 추억을 아는 바위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보기도 해요
몸서리치는 한기에
서둘러 감싼 무릎 담요 위에 낡은 앨범 펼치고
헐거운 돋보기가 콧대로 미끄러지기 전에
책갈피의 잎들을 퍼즐처럼 이리저리 맞춰봐요
사랑하는 이의 눈이 등 뒤로 가고
쏟아져 내리던 내 안의 맑았던 수액들도 말라가기 시작하는
환절기에
수없이 왔다 가곤 하는 말을 붙잡고 다듬질해요
발등까지 늘어진 그림자가
흐릿하게 춤을 추는 오후
무릎 시린 벤치에서
눈이 오기 전에
낙엽에 쓴 낙서를 내밀어요
詩作 노트
문득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게 되는 때가 있었다.
‘오춘기’라고 누군가는 불렀다. 몸과 마음이 새로운
봄을 찾아가고 싶어 하지만, 또다시 겪기에는 버거운
청춘이 없는 중년의 한가운데를 살아가고 있었다.
가을의 문턱에서 한층 더 깊어진 환절기를 맞고 있었다.
차가운 바람이 내게 스며들 때, 그 바람에 묻어온
벌레 먹은 낙엽 한 장을 주워들고 한 글자씩 내 마음을
적어보기 시작했다.
시를 쓰기 시작한 건 어느 가을 날이었다. 바람이
더 차가워지기 전에 오래된 감정의 먼지를 털어내듯
내 안의 말을 끄집어내고 싶었다. 나를 스쳐간 모든
시간들이 때로는 아픔으로, 때로는 다정한 기억으로
퇴색되어 갔지만, 이제는 그 조각들을 하나씩 맞추어
시로 남기고 싶었다.
가끔은 벤치에 앉아 떨어진 잎들을 바라보며 지난
시간을 곱씹었다. 허물어져가는 잎의 무늬 속에서
한때 나를 뜨겁게 했던 감정들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그 기억을 붙잡아두려 애쓰는 건 아니었지만,
다가오는 겨울 앞에서 무엇 하나 남겨 두고 싶은 마음은
분명했다.
잊히고 묻혀버릴지라도, 한 편의 시에 작은 낙서를
남겨 두고 싶어 낙엽에게 말을 걸었다.
환절기를 지내는 이 순간, 시간이 내게 준 모든
흔적들을 더 이상 숨기지 않고 진심 어린 시를 쓰겠다고
마음먹었다.
낡은 책갈피 속에 여전히 잎사귀처럼 푸르게 남은
세월에 묻힌 기억들에 색을 입히고 싶었다.
다가오는 겨울에 내 시는 그 눈밭 위에 작은 발자국
희미하게 새기곤 금세 사라질 걸 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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