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아이가 故 이태석 신부에게 왜 의사를 그만두고 신부님이 되려고 하는지 질문을 했습니다. 이태석 신부는 ‘길가에 돌멩이와 다이아몬드가 있으면 당연히 다이아몬드를 주울 것이다. 나에게 의사는 돌멩이고 하느님과 너희들은 다이아몬드다. 그래서 신부가 되려고 한다.’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얼마 전 제 3회 이태석신부문학제 공모전이 있었습니다. 시 부문 출품하기 위해 안산도서관과 송촌도서관을 뒤져 이태석 신부님에 관련된 책을 두 권 [톤즈에서 빛으로 - 신부 이태석(이충렬, 김영사)]과 [우리는 이태석입니다.(구수환, 북루덴스)]를 빌렸습니다.
이태석 신부님은 예전에 TV에서 ‘울지마 톤즈’를 접했고, EBS 라디오 ‘굿모닝 팝스’에서도 그의 일화를 들으면서 익히 알고 있었던 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책으로 접하니 방송이 전해주지 못한 세세한 부분까지 알게 되었습니다. 새삼 정말 위대한 위인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이태석 신부님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군의관으로 복무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의사가 상징하는 바는 대단합니다. 명예와 경제적인 여유가 보장되는 몇 안 되는 직업이지요. 그래서 공부 좀 한다는 모든 수재들은 모두 의대를 목표로 무한경쟁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태석 신부님은 그 모든 것, 즉 보장된 돈과 명예를 모두 버리고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톤즈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을 헌신하며 보살폈습니다.
이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요? 궁금했습니다. 저는 험난한 자본주의 세상에서 어떻게든 한 푼이라도 더 벌어보려 매일 아등바등하고, 손에 쥐게 된 것은 어떻게든 꽉 붙잡고 절대 놓지 않으려고 발버둥인데 말이죠.
신부님과 나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책을 덮고 이 질문을 붙들고 있었습니다. 그는 결국 돈과 명예를 놓고 행복을 찾아 떠났는데, 저는 행복을 놓고 돈과 명예를 좇는 것 같았습니다. 점점 부끄러워졌습니다.
그 차이는 바로 처음에 말한 다이아몬드가 아닐까 합니다. 이태석 신부님은 인생의 다이아몬드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었고, 저는 아직도 돌멩이를 열심히 주우면서 이게 내 다이아몬드인가 아닌가 계속 고민하는 중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죽을 때까지 자신의 다이아몬드가 뭔지 모른 채로 살다가 떠날 겁니다. 살기 바쁘니까 여유가 없는 거죠. 하지만 그렇게 사는 건 뭔가 휑합니다. 알맹이는 없고 돌멩이만 있는 느낌입니다.
내 가슴이 뛰는 일. 내가 진정하고 싶은 것. 그게 뭔지 고민을 사춘기 때부터 치열하게 해봐야 하는데, 우리는 아이들에게 그런 여유를 주지 않습니다. 우리 어른들도 그런 고민을 해본 적이 없으니까요. 그저 사회가, 부모님이 지정해주는 목표를 바라보며 그쪽으로만 달려왔습니다. 다들 그렇게 살고 있으니 그게 맞는다고 생각하면서요.
나이 별로 설정된 발달과업은 왜 또 그렇게 많은지, 잠시도 쉴 틈이 없습니다. 무언가 하나를 열심히 노력해서 이루고 나면 곧바로 다음 목표가 날아옵니다.
입학 전에는 한글을 떼어야 하고, 영어를 시작해야 합니다. 초등학교에서는 중학교 과정을 선행해야 하고, 중학교에서는 고등학교 과정을, 고등학교 때는 내내 수능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렇게 대학에 가고 나면 바로 취업 준비를 해야 합니다. 간신히 취업에 성공하면 결혼 자금을 준비해야 하죠. 돈 없으면 결혼을 못 하니까요. 결혼하고 나면 아이를 낳아야 하고 아이가 생기면 육아와 사교육에 전념해야 합니다. 그렇게 모든 것을 다 해내 가면서 동시에 노후를 준비해야 합니다. 끝이 없습니다.
이걸 다 해낸다면 어떨까요? 엄청난 성취감에 행복에 젖어들까요, 아니면 공허할까요? 저는 후자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선택한 길이 아니니까요. 쉬지를 못하니 자기 자신을 바라볼 물리적인 시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다이아몬드는 배부른 소리입니다. 그저 남이 예쁘다, 좋은 거다 하는 돌멩이들만 열심히 주우면서 살다 갑니다.
저는 교사이기 때문에 모두가 승진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연구학교에 가서 점수를 모으고, 보직을 맡아 부장 교사로 햇수를 채우고, 각종 가산점을 받기 위해 달려야 했습니다. 점수를 더 주는 학교를 찾아 아쉬운 소리도 해야 했고요.
하지만 이태석 신부님을 만나고 나서, 이런 질문이 생겼습니다. 승진이 나에게 있어 다이아몬드일까? 내가 진짜 원해서 이 길을 가고 있는 걸까? 나는 승진을 하고 싶은 걸까, 아니면 남들이 다 하니까 그냥 휩쓸려 가고 있는 걸까?
대답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럼, 내가 진짜 좋아하는 일은 무엇일까? 가슴이 시키는 일은?
사춘기 때 했어야 하는 질문을 이제야 던져봅니다.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은, 바로 글쓰기였습니다. 멋진 SF소설도 쓰고 싶고, 역사 소설의 대명사가 되고 싶습니다. 그렇게 글을 쓰다가 욘 포세처럼 나만의 문체를 창안해 노벨문학상도 받고 싶다는 큰 꿈도 있습니다.
특히 소설이나 시를 쓰기 전에 구상하는 단계가 아주 즐겁습니다. 머릿속에서 휘몰아치는 아이디어의 끄트머리를 잡고, 그걸 글로 번역해낼 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몰입합니다. 저는 이런 게 즐겁습니다.
나에게 승진은 돌멩이와 같습니다. 그래서 그 길에서 나왔습니다. 그동안 모은 점수가 아쉽긴 해도 괜찮습니다. 이태석 신부님이 버리고 떠난 것에 비하면 보잘것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요.
그가 톤즈에서 행복했다는 것도 압니다. 자신이 발견한 다이아몬드를 따라갔으니까요. 나도 돌멩이들은 멀리멀리 걷어내고 나만의 다이아몬드를 따라 걸어가려 합니다. 그럼 이태석 신부님처럼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그래서 저는 요즘 어떻게든 매일매일 소설을 쓰고, 수필도 쓰고, 시도 쓰면서 공모전에 출품하고 있습니다. 아직 서툴지만 조금씩 나아지는 글 실력을 보면서 행복감에 젖어들고 있습니다.
이제야 맞는 옷을 입은 느낌입니다. 저 앞에 다이아몬드가 보이는 것 같기도 합니다. 전보다 사는게 즐겁습니다. 모두 이태석 신부님 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