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회마을 기행
정목
작대기 하나가 인사를 했다.
“충성.”
나도 거수경례로 답했다.
아들은 군 입대 전에 산업체로 갈까 고민했었다. 그런 아들에게 내가 읽었던‘케네디 가의 여인들’ 을 들려주었다.
케네디의 어머니는 아들을 두 명이나 전쟁터에 보냈다. 케네디는 대통령 재직당시, 마릴린 먼로를 비롯하여 많은 여자들과 스캔들에 빠졌다. 하지만 아직도 그가 미국에서 존경받는 이유는, 세계대전에 자진 참가하여 목숨을 걸고 싸웠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아들은 거기까진 모르겠다고 했었다. 군부대와 조금 떨어진 복지회관에서 면회를 마치고 공휴일인 익일에도 오겠노라 약속하고 안동으로 향했다.
예촌과 문경세제를 거쳐 화회마을에 도착한 것을 늦은 밤이었다.
어렵사리 구한 민박집은 초가집 행랑채였다. 군불로 땐 온돌방에서 잠을 자니 다음 날 새벽 수탉이 잠을 깨웠다. 오랜만의 수탉 울음소리로 시골정취에 흠뻑 젖었지만, 장거리 운전으로 피곤해 다시 눈을 감았다. 그러자 수탉이 연이어 ‘꼬끼오’울어대는 통에 할 수없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화창한 봄 날 아침, 안동자반과 싱싱한 무말랭이 반찬으로 조반을 먹고 충효당의 영모각으로 향했다.
충효당은 류성룡 선생의 유적을 기려 지어졌으며, 선생의 호는 서애(西厓)이다.
선생은 17세에 세종대왕의 5대손인 전주 이씨와 결혼했으나, 42세 경상감사 시절에 부인을 잃었다. 임진왜란 때는 좌의정에 올라 권율과 이순신 장군을 추천하여 등용했다. 선조 25년 4월 일본군이 대거 침입하자 왕은 개성으로 피난했다. 이 때 신하들은 위험하면 명나라로 피신해야 한다고 했지만 서애 선생은 "임금께서 우리 땅을 단지 한 걸음이라도 떠나신다면 조선 땅은 우리 것이 안될것입니다." 개성에서 영의정에 임명되었으나
이내 파면 당했다. 그 후, 다시 선조 임금으로부터 복직 권유를 받았지만, 고향으로 내려와 임진왜란 중의 회고록인 징비록을 집필하면서 66세에 세상을 떠나셨다.
충효당 정문에는 나무 한그루가 심어져있었다.
엘리자베스 영국여왕이 그곳에서 약 40분 동안 머물면서 기념식수를 했다고 한다. 그 나무는 누가보아도 평범하게 보였는데, 팻말에는 우아한 기품이 서려있다는 등의 미사여구가 눈에 띄었다. 서애 선생의 곧은 지조가 살아있는 충효당 앞마당에는 갈대가 속 빈 가슴을 안고 봄바람에 휘어져있었고, 거리마다 재래식 화장실이 고집스럽게 전통을 이어가고 있었다.
미국 여행 때의 일이다. 자연과 일치해야한다며 마돈나가 실오라기 하나도 걸치지 않은 채 수영을 했다는 해안을 지나, 버스는 고속도로가의 모텔 마돈나에 정차했다. 고운 진흙이 깔려있는 주차장엔 이름모를 나무들이 붉은 꽃을 피우고 있었다. 가이드는 화장실에 다녀오라고 했다. 일행은 모텔 안 화장실로 향하면서 직원의 눈치를 살폈지만, 호텔 직원들은 얼굴에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일행을 바라보았다. 쟈스민 향수냄새가 퍼진 사이로 벽에는 고풍스러운 그림이 걸려있고, 대리석 바닥 위에는 티끌도 없으리만치 깨끗이 청소가 되어있었다.
가이드 말에 의하면 모텔 마돈나는 자연과 조화를 이룬 소박한 외형에 객실마다 다른 인테리어로 장식되어있어, 미국의 허니문들이 제일 오고 싶어 하는 곳이라 했다. 이유는 손님에게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모텔 측의 배려가 곳곳마다 스며있기 때문이었다.
비포장도로를 달려 병산서원으로 향했다.
난생처음 보는 낙동강가의 아름다움에 잠시 길을 멈추고 넋을 잃고 강가를 바라다 보았다. 티없는 모래에 초록 물결이 고요히 강을 따라 흐르고 서애 선생의 곧은 영혼이 강가를 거닐고 있는것 같았다.
사방으로 틔여져 있는 목조 서당에 앉아 서애 선생님의 어머니를 생각했다.
여섯살의 나이에 대학을 가르치고, 도산 퇴계의 문하생이 되었다가 성균관에서 공부하기까지 관찰사인 아버지의 영향을 받았겠지만 어머니 안동 김씨의 가르침도 훌륭했으리라.
아들을 면회하러 증평으로 향했다.
다시 만난 아들은 이라크 파병에 동참하고 싶다고 했다. 이라크에 가면 새로운 세계를 경험을 할 수 있고, 월 2백만 원이 넘는 보수를 받아 일거양득이라는 것이다.나는"이라크 파병에 동의 할 수없는 이유를 말하지 않아도 너는 알게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케네디의 사례를 들은 내가 몹시 부끄러웠다.
2004. 3.17 원고지 17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