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원화평
출연: 성룡 황정리, 원소전,석천, 원신의

청나라 말기 중국 광동성에 왕이라는 사람이 운영하는 쿵후 도장이 있었다. 수련보다는 뭇 수련생들을 괴롭히고
못살게 구는 것을 훨씬 좋아하는 수련생이 있었으니 그는 왕의 아들 황이었다. 어느날 황이 악인 집단의
강력한 고수 리의 아들과 싸워 그를 다치게 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이윽고 왕과 리는 대결하게 된다.








아마 중국권을 배경으로 해서 만든 무술영화들에서 가장 많이 등장한 인물은
'황비홍'일 것입니다. 이 '황비홍'이라는 실존 인물이 국내에서 유명해진 것은 이연걸이 주연한
황비홍이 우리나라에서 히트한 이후이죠. 이 이연걸의 황비홍 이전에 '성룡'이 주연한
'취권'이라는 불멸의 히트작에서 성룡이 연기한 역할이 바로 '청년 황비홍'이죠.
하지만 '취권'에서 남은 이름은 '성룡'과 '소화자'이지 황비홍이라는 캐릭터가 아니었고,
취권의 대 히트에도 불구하고 황비홍이 '전설의 무술인'이라는 인식은 심어지지 않았죠.
아마도 취권 하면 '성룡'이라는 히트상품이 워낙 압도적이고, 코믹한 영화라서 '실존했던
무술달인' 황비홍의 존재감은 그렇게 부각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취권'이 우리나라에 개봉된 것은 1979년 국도극장이었죠. 이 취권은 아마도 영원히
한국 영화산업의 '전설'로 남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단일극장 최다관객기록'을
세운 영화이고, 이 기록은 영원히 깨지지 않을 기록이니까요. 취권이 '국도극장' 1개관에서
기록한 관객수는 무려 89만명, 당연히 그 해 흥행 1위였고, '사랑과 영혼'의 168만
관객의 기록이 세워지기 전까지는 역대 국내 '서울관객 1위'를 굳건히 지켰습니다.
그렇지만 '사랑과 영혼'도 '다이하드'도 '늑대와 춤을'도 취권의 '단일극장 최다관객'기록은
감히 넘보지 못했습니다. 사랑과 영혼은 서울극장에서 60만명, 다이하드는 단성사극장에서
70만명, 늑대와 춤을은 대한극장에서 67만명 등으로 취권의 '국도극장 89만명'에 훨씬
미치지 못했죠.
국도극장의 좌석수는 1천석이 조금 넘었습니다. 하루 5회상영을 모두 꽉꽉 매진되었을 경우
5천명, 한달에 15만명, 즉 취권은 무려 6개월 이상을 한 극장에서 장기상영한 기록을 가진
영화입니다. '벤허'같은 영화가 대한극장에서 장기상영된 적은 있어도 당시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배우인 성룡 주연의, 그것도 헐리웃 대작이 아닌 홍콩무술영화가 이런 기록을 세운 것은
정말 대단한 역사이죠. 요즘 전국 1천만관객을 동원하는 영화도 길어야 두달입니다.
성수기 비수기 따질 것 없이 1년의 절반이상을 극장 하나를 완전히 먹여살려준 영화이니
당시 취권에 대한 열광도가 어느 정도인지는 상상을 초월하죠.
'취권'에 나온 황비홍의 캐릭터는 이연걸이 보여준 '고귀하고 심신의 수양'을 겸비한 덕망있는
무술인이 아닌 장난스럽고 사고뭉치인 망나니 무술인 입니다. 성룡의 대부분의 영화가
'개구장이'같은 캐릭터이듯. 무술실력은 뛰어나지만 항상 말썽을 피우고 싸움을 하고 다니는
아들 '황비홍(성룡)'을 보다 못해 아버지 황씨는 악독하기로 소문한 늙은 무술고수인 '소화자(원소전)'
에게 보내서 특별 지옥훈련을 받게 합니다. 황비홍의 아버지도 대단한 무술의 고수이지만 70평생
단 한번도 패배한 경험이 없는 무술고수 '소화자'는 '취권'이라는 자신만의 '필살무술'을 갖고
있고, 그것을 황비홍이 전수받게 되는 것이죠.
실제로 황비홍이 '취권'이라는 무술을 사용했는지 여부는 모릅니다. 이런 무술이 실제 존재하는지도
모르고. 그냥 웃기려고 영화에서 창작해낸 것인지, 그 여부는 '무술'에 대해서는 문외한인 제가
알 수가 없죠. 그렇지만 '술'을 먹고 술의 힘을 이용해서 힘을 낸다는 그 설정 자체는 굉장히 기발하고
흥미로운 것입니다. 특히 취권은 '취팔선'이라고 불리우는 여덞명의 '술꾼 고수들'의 각 자세와
특기를 혼합하여 실전에 이용하는 아주 흥미로운 무술이고, 취팔선의 마지막 인물이 '여자'라는
것도 특이합니다. (우리나라 영화 취화선과 발음이 비슷하죠)
취권을 전수하는 무술의 대가인 '소화자'의 캐릭터는 굉장히 성공적이고 특이한 캐릭터로
유사한 캐릭터가 취권의 아류영화들에 많이 쓰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소화자를 연기한 원소전은 취권이 국내에 개봉했던 79년에 세상을 떠나게 되죠.
취권에는 한국배우인 '황정리'가 출연하기도 합니다. 소위 '살인청부업자'역할이고 역시
대단한 무술고수이자 '발차기의 달인'으로 출연합니다. 그렇다면 이 영화의 크라이막스는
당연히 성룡과 황정리의 대결이 되는 것이죠. '취권'과 '발차기의 달인' 흥미로운 승부죠.
더구나 영화 중반쯤에 성룡이 황정리와 우연히 마주쳐서 일방적으로 얻어터지고 굴욕을
당하는 내용도 있습니다. '복수극'을 겸한 두 고수의 일전으로 마무리되는 것입니다.
성룡은 취권 이전에도 여러 편의 무술영화에서 주,조연으로 등장하였지만 본격적으로
국내에 이름을 알린 '성룡표 영화 1호'는 취권이라고 할 수 있죠. 그리고 이 영화가 초대박을
터뜨리는 바람에 유사 영화인 '사형도수' '소권괴초' '용소야' '비도권운산' 등의 무술영화들이
줄줄이 국내에 개봉되고 대부분 흥행에 성공합니다. '아랑 들롱'과 '찰스 브론슨'으로
대표되던 '국내의 흥행배우'역할을 자연스럽게 성룡이 물려 받은 것이죠. '베트 클리크'라는
서양감독의 영화와 헐리웃 유명배우들이 많이 등장하는 '캐논볼'에서도 성룡은 활약하죠.
성룡의 영화가 변신을 한 것은 1983년 '프로젝트 A'에서 이고, 성룡은 이 때 부터 '취권'류의
'남루한 무술영화'가 아닌 현대를 배경으로 한 '코믹 경찰액션'물을 전문으로 출연하게 되죠.
그래서 '무술영화를 싫어하는 영화팬'들까지도 포용하면서 더욱 높은 흥행력을 과시하게 되고,
자주 콤비로 공연한 '홍금보, 원표'등과 함께 매년 국내 흥행 베스트 5에 자신의 영화를 끼워
넣는 '한국에서 제일 잘 팔리는 흥행스타'역할을 하게 됩니다.
지금까지 성룡의 영화중 국내에 개봉되어 극장에서 상영한 작품수는 50편이 조금 넘습니다.
새로 개봉되는 '러시아워3'을 비롯하여 이 수치는 계속 진행중이고, 역대로 국내에 가장
많은 개봉편수를 가진 '외국배우' 입니다. (아랑 들롱의 경우 약 40편이죠)
아마 향후 성룡의 개봉편수를 깨는 배우는 나오기 힘들 것입니다. 성룡은 80년대 후반부터
다작이 아닌 1년에 1-2편만 출연하는 배우가 되었는데 만약 좀 더 다작을 했더라면 더욱 많은
영화가 국내에 개봉되었을 것입니다. '취권'의 큰 성공이 국내에서 성룡 이라는 배우의 입지를
단단히 다지는 결과가 되었죠.
성룡은 이미 50세가 넘은 배우이지만 '취권'에서 보여준 그 유쾌하고 코믹한 개구장이 같은
모습을 아직도 써먹고 있죠. 그는 오랜 세월 변치않은 캐릭터를 계속 이용하며 몸을 사리지
않는 재미난 액션으로 팬들에게 보답하는 진정한 프로 배우라고 생각합니다.
그가 언제까지 배우생활을 할지 모르지만, 단순한 캐릭터로도 싫증나지 않고 오랜 기간
사랑받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배우로서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입니다.
성룡은 '이연걸'도 '이소룡'도 아닌 유일한 그 자신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