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이제 막 초등학교를 졸업한 아이를 대안학교에 보내고 아내는 자주 눈물을 보였다. 대안학교에
아이를 보내는 것조차 큰 결심이 필요한 일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다양한 억압과 폭력이 난무하는 학교
로 아이를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당시 대안학교는 교실조차 변변치 못했고
기숙사 건물이 없어서 도배 장판도 제대로 안된 조립식 건물의 흙먼지 풀풀나는 방에서 잠을 자야하는
형편이었다. 사랑과 자발성의 교육철학이 도대체 어떻게 진행되는지도 궁금했지만 무엇보다도 내성적
인 내 아이가, 그것도 초등학교를 막 졸업한 꼬마가 그 숲 속에서 자주 울지나 않을까 늘 마음을 조렸다.
가족을 떠난 아이의 외로움은 나도 이미 경험했었다. 내가 어른이 되면 결코 아이를 외롭게 두지는 않겠
다고 결심하지 않았던가?
시간이 지나면서 안심이 되었다. 이런 상황이었다.
1년쯤 지났을 때 쯤 아이가 국어시간에 쓴 시를 읽게 되었다. 제목은 “문자메세지”인데 글의 소재는 풀
과 꽃과 별이었고 주제는 캄캄한 밤 하늘에 홀로 떠있는 별의 외로움이었다. 풀, 꽃, 구름, 별이 아이의
눈에 들어오고 대화의 상대가 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정말 좋은 점은 동기와 선배 그리고 선생님조
차 모두 친구가 되어가는 것과 공부와 생활의 구별이 없는 아주 자연스러운 생활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는 것이었다. 외로움은 큰 문제가 아니었다. 몇시간씩 차를 달려 자주 학교를 찾아갔는데 시간이 지날수
록 엄마 아빠를 보는둥 마는둥 하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을 놓게 되었다.
그 때 깨달았다. 교육은 선생님이 하는 것이 아니구나. 자연이 제일 큰 스승이고, 친구같은 어른, 친구
인 선후배들이 모두 스승이구나.
당시 그 학교에는 지금은 전설이 되어버린 몇가지 에피스드가 있었다.
전설 1.
어느 화창한 가을날 한 아이가 선생님에게 말했다.
“선생님! 오늘 같은 날 교실에 앉아 있으면 이 청춘이 너무 불쌍해요. 산에 올라 단풍을 구경하고 와야
되겠습니다,”
그 말을 들은 선생님께서는 주방선생님께 부탁해서 도시락을 준비하고 혼자가면 외로울 것이라면서 다
른 친구 하나를 붙여서 보냈다. 그 청춘이 하루 종일 어떻게 행복했을까는 안봐도 뻔하다.
전설 2.
어느 봄날 전교생이 선생님들과 뒷산으로 등산을 가기로 했다.
나이가 가장 많은 한 녀석이 방에서 뒹굴면서 나올 생각을 안 하는 것이었다. 전교생이 운동장에서 기다
라고 있는데. 참다 못한 교장선생님이 그 아이를 찾아가서 뺨을 한 대 갈겼다.
그 순간! 아이들이 모두 사라졌다. 아이들끼리 긴급 식구총회를 열었던 것이다. 주제는 “우리학교에서
학교폭력이 발생하다니, 사랑과 자발성의 학교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동시에 선생님들도 긴급 교사회의를 열었다. “이 상황에서 만일 아이들이 자기입장에서만 생각하면 어
떻게 이해를 시킬 것인가?”
긴장감이 팽팽히 도는 그 순간, 한 아이가 중재에 나서서 교사와 학생이 모두 모여 함께 식구총회를 열
었다. 폭력은 무조건 나쁘다느니 폭력의 원인을 제공한 사람이 더 나쁘다느니 하면서 오랜 논쟁을 거쳐
만장일치로 한가지 결론을 내렸다.
“당사자인 교장샘과 그 학생은 다정히 손을 잡고 뒷산으로 등산을 하면서 화해할 것!”
교장샘은 그 때 포도주를 한병 들고 갔다는 소문이 전해지고 있다.
전설 3.
턱수염이 거뭇거뭇 나기 시작한 고3 아이가 있었다.
공연히 잠을 이룰 수없는 어느 밤을 꼬박 지새우다가 친구를 깨워서 산길을 내려갔다.
무작정 걸어 인근의 작은 도시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길, 여명이 밝아오는 강가를 걷다가 강이 너무 아름
다워 옷을 벗어던지고 강물로 뛰어 들어 물장난을 치고 있었다.
그 때!
출근하시던 선생님이 보시고 놀라서 차를 세웠다. 하마터면 뒤따르던 차가 박치기를 할 뻔할 정도로 그
선생님이 놀라셨던 모양이다.
아무 말없이 아이들을 태우고 학교로 차를 모시던 선생님 왈, “얼마나 재미있었니?”
많은 시간이 흘러 그 아이가 그 때를 회상하며 “얼마나 재미있었니?”라고 물으시던 선생님이 계셨다고
감동어린 얼굴로 나에게 직접 애기했었던 전설이다.
전설 4.
아이들이 주말이면 가까운 시내로 외출을 간다. 영화도 보고 필요한 물건도 사고 물론 컴퓨터게임도 한
다. 어느 외출길에 한 아이가 구걸하는 아이를 만났다.
남루한 옷을 입고 자기 앞에 시꺼먼 손을 내미는 그 아이를 보고서 이 녀석은 울음을 터뜨렸다. “도대체
어른들은 지금까지 무엇을 했길래 이 아이는 구걸을 한단 말인가? 이 아이는 배가 고파 구걸을 하는데
나는 잘먹고 잘 입고 놀러다녀도 된단 말인가?"
그 아이는 구걸하던 그 아이가 예수님이고, 네가 흘린 그 눈물은 하느님이 흘린 눈물이었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전설5.
어느해 지리산 근처에 엄청난 비가 내렸다. 교실과 숙소에 도배를 해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다.
아이들과 선생님들이 진주에 도배지를 사러 갔다. 일단 돈이 없으니까 초배지만 바르기로 미리 약속이
되어 있었다.
여학생 몇명이 교장샘을 졸랐다. 쌔~애~앰, 우리방에 누르티티한 초배지만 발라놓고 살면 정신병 걸릴
위험이 많아요. 그리고 미술한다는 사람이 그렇게 살면 되겠어요? 그러니까 저어기 저 도배지 하나만
사줘요잉~~.
그 때 교장샘은 잠시 뒤로 돌아 지갑을 꺼내서 몰래 살펴보고 말했다
"그래. 저 도배지 하나는 사도 되겠다"
선생님 앞에서는 태연한 척 했지만 숙소에 돌아와서는
뒤로 돌아 지갑을 살펴보시는 선생님 모습이 자꾸 떠올라 눈물을 흘렸었노라고 전해들은 전설이다.
그렇다. 이제는 전설이 되었다.
어느 날 5년째 대안학교를 다니던 아이가 집으로 돌아와 버렸다.
학교를 더 이상 다니지 않겠다는 것이다. 놀랍고 당황스러웠지만 대화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크게 걱정이 되지는 않았다. “이제는 사랑과 자발성이 없는 학교가 되어버렸어요”라고 간단 명
료하게 이유를 설명하는 아이의 생각도 충분히 존중해줄 수가 있었다.
거의 한 달이 되어가면서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녀석은 아주 천하태평, 확신에 가득찬 얼굴로 학교 안
다녀도 아무 일 없다는 것이다. 부모는 다만 학교에 소속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두려울 뿐인데 동료학부
모들이 만나기도 하고 전화로 대화하면서 이구동성으로 끝까지 기다려주는 것이 좋다는 의견들을 주셨
다.
“선생님이 전화하셨는데....말씀은 못하시고 울기만 하시더라....”
그렇게 요지부동이던 녀석이 그 말 듣고는 다음날 아침 일찌감치 짐을 싸들고 학교로 가버렸다.
큰 아이가 졸업하고 둘째는 이제 고3이다. 그러고 보니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둘째가 그 학교를 다니는 동안에는 이미 이런 전설도 기억에서 사라지고 있었다.
이제는 사랑도 자발성도 내세우기 힘들다. 자기발견의 고민과 깊은 몰입으로 이끌어가던 자발성의 교
육은 교과과정과 수업과 대학이라는 틀 속에 묻혀버리고 말았다. 둘째녀석도 "학교를 괜히 다닌 것같아
요..."
수많은 전설을 만들어내던 그 “대안학교”는 결국 “그냥학교”가 되어버렸다.
아이들 덕분에 대안학교의 깊은 속을 들여다 볼 수 있었고, 또 함께 대안교육을 고민하고 심지어 함께
만들어 가기까지 했다. 대안학교이기 때문에 마주칠 수밖에 없는 수많은 문제들이 있었지만 그래도 제
도권학교보다는 낫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알 것 같다. 교육은 학교라는 틀 속에서는 불가능한 것이다.
심지어는 “대학을 향하여 전진!” 이라는 그 큰 물줄기에서 이탈할 수조차도 없다.
시대상황을 뛰어넘어 교육의 진정한 가치를 실현할 방법이 도무지 없는 것이다.
학교라는 틀 속에서는 교사는 교사일 수밖에 없고 학부모는 학부모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스스로 공부하고, 흥미 있어서 몰입하고, 필요한 모든 교육적 자료에 접근할 뿐만 아니라 세상
의 모든 사람들 중에서 스승을 찾아 배울 수 있는 것이 진정한 교육방법이고
자기발견을 이루고 그 꿈을 이루어나갈 용기와 상상력을 배우는 것이 진정한 교육목적이라면
학교라는 틀 안에서는 불가능한 것이다.
부모에게는 학교를 벗어나는 것이 지독한 공포일 수밖에 없겠지만
진정한 교육은
가장 먼저 학교의 틀을 벗어나는 것이고
아이들이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고
아이를 사랑하는 어른들이 아이들의 길잡이가 되어주는 것이다.
학교가 아니라고 판단해서 대안학교를 찾았지만
대안학교도 결국 그냥학교로 흘러갈 수밖에 없음을 깨닫고
우리는 홈에듀케이션을 만들었다.
교육생태마을과 해외의 피스캠프와 함께
세상이 교실이 되고 모든 사람이 스승이 되어주는
아이들이 정말 행복해 하는 그런 교육을 꿈꾼다.
이 아이들이 살아가면서 바꾸어 낼 새로운 세상을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