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경공격기 KA-1 첫 동승취재
“속초 북쪽 15㎞ 해안도로에 적 차량 출현”
“공격하라!”
지난달 19일 오전 10시40분쯤 속초 북쪽 강원도 고성군 해안 900m 상공.
공군 제15혼성비행단 237전술통제비행대대 소속 국산 경(輕)공격기 KA-1을 조종하던 편대장 김운복(31•공사48기) 대위는 지상 유도요원의 공격 지시에 따라 급상승하며 고도를 1500m까지 높였다. 이내 기수를 급속히 왼쪽으로 꺾은 뒤 도로 위의 가상 적군 차량 등 표적을 향해 똑바로 기체를 내리꽂았다.
◆ 6•25전쟁 격전지 인근서 지상공격 훈련
KA-1은 시속 500㎞ 이상의 속도로 600m 가량을 급강하하며 목표물에서 3.6㎞ 떨어진 곳에서 가상으로 구경 70㎜ 로켓들을 발사했다. 첫 국산 기본훈련기인 KT-1을 경공격기로 개조한 KA-1은 무장을 달지 않은 KT-1과 달리 로켓탄, 고폭탄 등으로 무장하고 있다. 로켓탄은 양쪽 날개에 최대 14발까지 달 수 있다.
KA-1의 조종석에는 컴퓨터를 통해 목표물이 자동으로 조준되는 시스템(CCIP)이 설치돼 있어 로켓에 미사일처럼 유도장치가 붙어있지 않지만 명중률이 높다.
1100시간의 비행경력을 갖고 있는 김 대위는 900m 상공까지 내려가며 공격을 마친 뒤 적 대공화기의 공격을 피해 다시 왼쪽으로 급격히 방향을 틀며 급상승했다. 멀리 설악산 울산바위가 오른쪽 발 아래 나타났다가 이내 사라졌다. 순간 언론인으로는 처음으로 KA-1에 탑승한 기자의 몸에 중력가속도의 3.5배(3.5G)에 달하는 압력이 느껴졌다. 3.5G는 몸이 땅 위에서보다 3.5배 높은 압력을 받는 것이다. 보통 롤러코스터를 탈 때 느끼는 고통보다 조금 더 강한 수준이었다. 산소마스크를 쓰고 있어 가뜩이나 답답했던 속이 더 울렁거리며 구토 증세도 나타났다.
김 대위가 조종하는 KA-1 1호기가 공격을 마치자 1.6㎞쯤 떨어진 뒤에서 비행하던 KA-1 2호기도 똑같은 방식으로 가상 적군을 공격했다. KA-1 2호기에는 여군 조종사인 박민경(28) 대위와, 성 호(30) 대위가 탑승하고 있었다. 박 대위는 670시간, 성 대위는 730시간의 비행경력을 각각 갖고 있다.
이날 KA-1들이 비무장지대(DMZ) 군사분계선(MDL)에서 불과 12㎞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고성 상공에서 훈련을 한 것은 6•25전쟁 당시 격전지였던 351고지가 인근에 있었기 때문이다. 351고지는 한국군 15사단이 북한군의 집요한 공격을 물리치고 지켜냈던 곳이다.
1953년3월 북한군 53연대 3대대는 351고지를 공격하기 위해 동굴을 파며 접근하자 15사단은 적 동굴에 포격을 가했으나 실패, 공군 지원을 요청했다. 이에따라 그해 3월26일 T-6 모스키토기와 F-51 무스탕 전폭기 4대 편대(16대)가 출격, T-6가 연막탄으로 공격 목표물을 표시한 뒤 F-51 전폭기들이 집중 폭격해 산골짜기를 순식간에 불바다로 만들었다. 이날 공격으로 북한군 동굴 2개소, 벙커 20개소, 군용건물 15동을 파괴하는 전과를 거뒀다. 6•25전쟁중 가장 성공적인 근접 항공지원(CAS) 작전으로 꼽히는 이 작전에서 현재의 KA-1과 비슷한 역할을 한 것이 T-6기다.
KA-1은 T-6처럼 공격 목표물을 백린탄(白麟彈) 등으로 표시해 공군 전폭기들의 정확한 폭격을 유도하는 한편, 폭격 뒤 정확한 공격이 이뤄졌는지 확인하는 역할도 한다. 이런 역할을 하는 비행기를 흔히 전술(전선)통제기라 부른다. KA-1은 이런 역할외에 로켓탄 등으로 가벼운 공격도 할 수 있어 경공격기라 불리는 것이다.
이날 훈련을 한 곳은 351고지에서 남쪽으로 17㎞ 가량 떨어져 있다. 이 대위는 “모교인 공군사관학교에는 351고지 전투에서 많은 공을 세우고 적 대공포화에 장렬히 산화한 고 임택순 대위의 동상이 서 있다”며 “이 지역에서 근접항공지원 훈련을 할 때면 고 임 대위의 투혼을 떠올리곤 한다”고 말했다.
고성 상공에서 두차례에 걸쳐 훈련을 마친 2대의 KA-1은 기수를 서쪽으로 돌렸다. 태백산맥을 경계선으로 서쪽으로는 끊임없이 구름의 바다가 펼쳐져 땅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KA-1은 비무장지대 군사분계선에서 남쪽으로 9~16㎞ 거리를 유지하며 비행금지 공역(空域)인 ‘P-518 공역’을 따라 서쪽으로 비행했다. ‘P-518 공역’은 항공기가 비무장지대 가까이 비행할 경우 실수로 월북(越北)할 가능성 때문에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비행을 허용하지 않는 곳이다. 공군 관계자는 “민간인이 공군 항공기를 타고 ‘P-518 공역’을 비행한 것은 거의 전례가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KA-1은 11시5분쯤 6•25전쟁 최대 격전지중의 하나인 ‘철의 삼각지’ 상공을 지났다. 철의 삼각지는 강원도 철원•평강•김화를 잇는 삼각지대로, 백마고지, 오성산, 저격능선 등 격전지를 안고 있다. 구름이 짙게 끼어있어 약 60년 전 격전의 현장은 내려다 보이지 않았다. 당초 KA-1은 경기도 포천 일동에서 땅 위에 배치돼 있는 요원의 유도를 받아 지상공격 훈련을 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구름이 짙게 끼어 있어 훈련은 취소됐다. KA-1은 이륙 1시간20분만인 오전 11시30분쯤 성남 서울공항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앞서 KA-1은 오전 10시10분쯤 배치돼 있던 서울공항을 이륙했다. 장마철이어서 1200m 상공에 두터운 구름이 끼어있었다. 구름을 뚫고 올라온 KA-1은 1800~3000m 상공을 시속 280~300㎞의 속도로 비행했다. 스키를 타고 눈 위를 달리듯 KA-1은 흰 구름을 바로 발 밑에 두고 날아갔다. 10시30분쯤 강원도 인제•홍천 육군 과학화훈련장(KCTC) 상공을 지난 KA-1은 10시38분쯤 설악산 울산바위 상공에 다다랐다. 구름 바다는 태백산맥을 경계선으로 끊겨 속초 인근 해안과 바다 상공은 맑게 개어 있었다.
◆기관포 등도 장착 예정
서울공항에 배치돼 있는 공군 237전술통제비행대대는 이런 KA-1 20여대를 보유하고 있다.
KA-1은 이날 훈련처럼 전쟁이 났을 때 북한 지상군 기계화부대 등 병력과 장비가 이동할 것으로 예상되는 도로 상공 등지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근접항공지원 훈련을 한다. 위험한 야간훈련도 NVG라 불리는 야시경을 쓰고 일주일에 두차례 정도 한다.
최근 KA-1에는 중요한 임무 하나가 추가됐다. 주한미군의 AH-64 아파치 공격용헬기 부대가 철수하면서 유사시 해상으로 침투하는 북한 특수부대를 저지하는 임무를 한국군에 넘겨줬기 때문이다. KA-1은 종종 바다로 나가 해군 함정이 끌고 가는 가상 목표물을 향해 로켓탄을 쏘거나 고폭탄을 떨어뜨리는 훈련을 하고 있다. 가상 목표물은 북한 고속 공기부양정이나 고속정 등을 상정한 것이다.
2005년부터 실전배치된 최신예기인KA-1의 강점은 과거 같은 용도로 사용됐던 항공기에 비해 성능이 크게 강화됐다는 것이다. 공군은 30여년간 전술통제기로 미국제 O-2A를 사용해왔는데, 이 항공기는 최고속도, 순항속도, 상승고도, 최대 이륙중량, 무장탑재량 등에서 KA-1에 크게 떨어진다. KA-1은 최대속도 시속 630㎞, 실용 상승고도 6600m이고 로켓 14발을 탑재할 수 있다. 반면 O-2A는 최대속도 시속 350㎞, 실용 상승고도 3000m이고 로켓 8발을 무장할 수 있다. 무엇보다 KA-1은 HUD(Head Up Display), 다기능 시현기(MFD) 등 첨단 항공전자장비를 갖춰 밤에도 비교적 정확한 공격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컴퓨터로 비행기 자세가 조정돼 비행기가 뱅뱅 돌며 떨어지더라도 자동으로 자세를 회복할 수 있다.
외국에서도 이 항공기의 우수한 성능에 주목하며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콜롬비아 등 몇몇 중남미 국가들이 마약 소탕작전용으로 KA-1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군 관계자들은 KA-1이 뛰어난 성능을 갖고 있지만 임무 특성상 조종사들은 상당한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고 말한다. 프로펠러 항공기인 KA-1은 제트 전투기보다 느린 속력으로 적진 상공을 선회하기 때문에 보병이 휴대하는 대공(對空)미사일이나 대공포의 공격에 취약하다.
이에 따라 군 당국은 KA-1에 열추적 미사일을 교란하는 방어장비와 기관포 등을 장착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여군 조종사 박대위는 “유사시엔 누구보다 앞장서서 싸워야 하기 때문에 위험성을 잘 알고 있다”며 “제가 적 지상공격 부대를 막는 데 매우 중요한 임무를 수행한다는 자부심을 갖고 훈련에 임하기 때문에 평소 두려운 생각은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