옳은 일에는 모가 나도 순리다 / 최연숙
청렴의 시작은 유혹이다. 부조리의 시작도 마찬가지다. 어떤 유혹을 받았을 때 그에 대처하는 방법 중 가장 어려운 일이 거절이다. 유혹을 받아들일 이유는 너무나 많다. 거절하기 힘들다는 이유를 앞세워 마음이 뜨거워지다가, 청맹과니가 되다가, 커튼을 두르고 빛을 차단하다가 요동을 치지만 결국은 자신의 양심의 색깔을 따라간다.
청렴은 식힐 만큼 식혀서 차분하게 가라앉힌 마음이다. 붉은색처럼 들뜨지 않고 흰색처럼 부담스럽지도 않으며 검은색처럼 오리무중도 아니다. 자연이나 순리에 가장 근접한 색깔이요 이미지다. 봄꽃이나 나무, 혹은 인간의 도리가 유혹받는다면 오히려 제 빛깔을 더욱 드러내지 않을까. 자신의 향이나 품성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이 결국은 유혹에 노출될 것이다.
청빈이라는 유의어처럼 대다수 사람들의 인식은 청렴을 부의 반대편에 서는 일이라 여긴다. 돈의 힘으로 밀어붙이면 안 되는 일이 거의 없는 사회에서의 청렴은 더욱 설 자리가 없어 보인다. 사람들의 돈 씀씀이가 세상의 가치척도를 나타내는 기준으로 비추어져 세상은 온통 소비로 화려하다. 남들보다 더 화려한 소비를 해야 사람 사는 것 같고 그렇지 못하면 열등해진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자신의 능력보다 더 큰 부를 얻기 위해 유혹을 시작한다. 역시 그런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유혹을 받아들인다. 너무 흔한 일이고 예로부터, 윗물부터 그러한 예가 많기에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는 것 같다.
나는 이 시대를 함께 사는 모두에게 새삼스러울지라도 ‘검소한 국민’이 될 것을 제안한다. 패망한 독일이나 일본을 예로 들지 않더라도 우리는 조상대대로 근본적으로 검소했다. 다산 정약용님은 유배지에서 편지를 통해 자식들에게 근,검을 누누이 당부했다. 늦은 깨달음이지만 지금부터라도 소비지향적 재물의 가치를 연료지향적으로 바꾸어야 할 것이다. 재물을, 순간의 필요에 따라 구하면 짧은 순간 행복하겠지만 재물의 순수값에 따라 구하면 그 값만큼 행복하리라 단언한다. 쓸 만큼 구하고 구한 만큼 쓰는 건 밥 먹고 똥 누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이다. 세상의 가치척도가 달라지면 유혹도 덜해지고 따라서 청렴도 빛을 발할 것 아니겠는가.
눈에 띄는 사람들은 너무 쉽게 사들이고 너무 쉽게 버린다. 유행이 지나면 옷을 버리고 시간이 지나면 음식을 버린다. 유행을 바꾸는 것도, 시간을 유기한 것도 사람인데 애꿎은 옷과 음식이 희생된다. 아니, 귀중한 재화가 쓰레기로 변한다. 그 쓰레기가 또 이 금수강산을 덮는다. 새집 새 옷 새로운 음식에 집착할 뿐 그 재화에 값하는 유통기한과 사용법은 무시하거나 무지하다. 쉽게 버리고 쉽게 사는 사람들은 삶도 쉽게쉽게 살고자한다. 좋은 게 좋은 거라며, 따지는 걸 싫어하고 어디서나 줄이 긴 쪽에 붙어 선다. 그러나 삶이 어디 그렇게 만만한가. 자식들의 미래도 한번쯤은 생각해봐야하지 않겠는가. 아무래도 세상은 지금보다 더 깐깐한 쪽으로 나갈 것 같은데 말이다. 트위터니 페이스북이니 하여 유명인사들의 행동이 실시간으로 알려지고 따라서 보는 눈들이 등을 밝힌다. 모 일간지에서는 위키리크스를 본 딴 제보를 받아 사회적 책임이 큰 기관이나 고위층의 비리를 폭로하고 있다. 된장녀 등 개인의 부끄러운 면모도 실시간으로 만천하에 알려지고 있다. 한 세대야 얼렁뚱땅 살았다 쳐도, 쉽게 살아온 부모의 영향을 받은 자식들이 깐깐해지는 세상에서 어찌 버텨낼 수 있겠는가.
우리 사회에서 순리대로 산다는 말은 지나치게 왜곡돼 있다. 사람들은 매사에 순응하고 사는 걸 순리대로 산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순리의 사전적 의미는 ‘순한 이치나 도리, 또는 도리나 이치에 순종함’이다. 국가의 법에 따르고 부모나 스승의 말씀에 순종하는 일은 분명 순리에 따르는 일이다. 그러나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인식하에 자신의 유익에 따라 해석하여 공과 사, 淨과 不淨을 따지려 하지 않는 건 순리에 어긋나는 일이다. 도리를 따지는 일을 공자왈 맹자왈이라 폄하하여 할 일 없는 노인들의 푸념쯤으로 여긴다면 우리의 미래는 희망이 없을지도 모른다. 순리대로 사는 일은 올바른 판단으로 상생하는 일이며 도리 안에서 함께 이기는(win-win)일이다.
오래 전에, 살고 있던 빌라가 준공 이래 보수를 하지 않아 이 가구 저 가구 물이 샌 적 있다. 반상회를 거치고 공사비를 거두어 시공을 의뢰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옥상방수와 건축물전체 페인트칠을 하는데 견적을 서너 군데서 받아 보니 대략 400~ 500만원이 나왔다. 공사비치고는 소액인데 한 업자가 무슨 봉투를 건네 왔다. 뭔지도 모른 채 받았을 때 그 부피의 느낌은 (되돌려 생각하니) 50만 원가량 되는 것 같았다. 기겁을 하며 돌려주었는데 돈 봉투의 실체를 확인한 쓰디쓴 경험이었다. 물론 그 업자는 배제됐다.
그 업자를 소개한 이웃은 자신이 추천하는 시공업자를 선택하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어 각호마다 내는 공사비를 내지 않았는데 위협적인 외모 때문에 우리 중 누구도 강단 있게 따지지 못했다. 계약이 성사되었다면 돈봉투 업자는 그 이웃에게도 응분(50만원가량)의 사례를 했을 것이다. 만약 그리되었다면 그때 그 공사를 한 날로부터 십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견고한 빌라의 상태를 유지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백만 원 단위의 공사에도 검은 돈이 상습적으로 오간다면 그 윗 단위는 상상하기도 무섭다. 미루어 짐작해보면 보통의 경우 특정관계에 쏠린 재화의 반대편에는 부정행위에 대해 말도 하지 않고 힘도 쓰지 않는 다수들이 있다는 반증이다.
2006년 11월 어느 금요일, 문화센타의 시·수필 창작방에서 강의를 듣던 중이었다. 강의 도중 강사가 나를 강단으로 부르더니 ‘작품 두 편을 봉투에 넣어, 지하철을 이용해 서울 ㅇㅇ동 소재 ㅇㅇ문예지에 갖다 주라’는 쪽지를 주었다. 영문도 모르고 시키는대로 했지만 그 작품 두 편을 작품이라 할 수 있을지 아리송했던 건 수업용으로 쓴 습작이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잘 알지는 못한지만, 일주일에 한 번 꼴로 공부한 지 1년 남짓했고 수업이 끝나면 곧바로 일터로 갔기에 문학계의 사정을 전혀 모르던 때였다. 그로부터 약 보름 후 그 강사는 아주 거들먹거리는 목소리로 자신이 서울 ㅇㅇ동에 있는 그 잡지사의 신인상 심사를 봤는데 당신의 작품을 뽑아 등단이 되었으니 잘 해 보라고 전화를 해왔다. 나는 관심이 없었기에 등단이 무얼 의미하는지도 몰랐고 아직 배울 게 많아서 알았다 해도 등단할 처지는 아니었다.
주변에서는 선생님이 힘을 써서 등단이 빨리 되었으니 등단식을 성대히 하고 그때 심사비조로 아니면 고마움의 표시로 50만 원가량 봉투에 넣어 드리는 게 도리라고 했다. 다른 등단자들은 현금 말고도 책을 100권씩 사야 된다고 해서 모두들 그렇게 했단다. 나는 그 도리를 벗어나 상당한 욕을 먹었고 돌이켜보니 은연중에 불이익도 많았던 것 같다. 이런 경우는 무엇이 순리가 되는가. 아직 배움이 많이 필요한 사람을 자신이 심사위원이 된 기회에 맞춰 등단시키는 게 순리인가. 준비도 없이 등단을 당하고 돈까지 지불하는 게 순리인가.
등단을 하면 기성작가 신분이 되어 글을 낼 경우 원고료를 받는다고 하였다. 5년이 지난 지금까지 등단으로 인해 원고료를 받고 글을 내 본 적이 없으니 과연 등단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나를 등단시킨 강사는 그 후 자신이 직접 잡지사를 차리고 등단비와 함께 책값을 챙기고 있다. 지난해부터는 자신의 아들로 하여금 출판사를 열게 하여 제자들의 책 내기를 독려하며 출판이익까지 챙기고 있다. 그를 통해 등단한 사람들은 그가 만든 문학회에 가입하여 매 계절 회비를 내 가며 그 잡지에 글을 싣고 있다. 참고로 그 강사나 그가 만드는 잡지는 인지도가 낮아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그럼에도 그렇게나마 글을 실어 주는 걸 고마워할 만큼 글은 안 되면서 글쟁이의 명함을 갖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포진해 있다. 가질 만큼 가진, 살만큼 사는 사람들이 자신의 프로필에 책 출간이라는 이력 한 줄을 써 넣기 위해 사회의 부조리와 결탁하고 있는 셈이다.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등단장사에 대해 경고문을 올리는 일부 문학사이트는 오히려 순리를 거스르는 불량한 단체가 된다.
책장에 자리를 잡기도 전에 고물상으로 향하거나 식당 카운터 구석 등에서 걸리적거리는 책들은 대부분 자비를 들여 만든 수준이하의 시집이거나 수필집이다. 수준미달의 작가를 양산하는 일은 미래에 보석이 될지도 모르는 원석들에게 문학은 저런 사람들이 하는 것이란 선입견을 심어주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심도 있는 문학을 하는 사람들보다 그들의 목소리가 더 크고 전시용 행사 또한 더 많이 하기 때문이다. 문학이 정 하고 싶다면 자신의 수준에 맞게 얼마든지 동호인 활동을 할 수 있다. 굳이 검은 뱃속을 채워 줘 가며 등단하여 작가라는 이름을 달고 안 그래도 암울한 문학계의 그림자를 더 키울 필요까지 있겠는가. 종이와 욕심을 아껴, 그 옛날 도국선사가 국토의 허한 곳에 절을 지었듯 물질의 홍수 속에서 배고픈 그림자들이라도 껴안아주라는 주문을 한다면 지나친 욕심이 될 것인가.
우리 동네에 사는 아동문학가는 키가 작고 곱슬한 흰머리의 노신사다. 자주 그분을 시내버스에서 뵙는다. 양복을 입었지만 사계절을 두 계절로 나누어 늘 같은 옷이다. 교과서에 작품이 실릴 만큼 유명하지만 권위 같은 건 느끼지 못한다. 제자들에게 밥을 사면 샀지 제자들이 사는 밥은 사양한다고 들었다. 아마도 까마귀 노는 곳에서 백로의 자태를 어지럽힐까 염려하는 마음 아닐까 싶다. 주는 습관이 미덕이 된 사회에서 살다보니 느낌이 푸르다. 청렴이란 이런 것 아닐까 싶어서. 그분을 보면 왠지 ‘돈까밀로와 뻬뽀네’라는 소설이 떠오른다. 신부님과 읍장이라는 사회적 지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권위보다는 인간적인 충돌로 웃음을 주는 소설의 주인공들처럼 우리동네 아동문학가도 실생활에서는 그렇게 살 것 같다. 그런 이유에서 그분이 나를 기억하지 않을지 몰라도 만날 때마다 군인처럼 90도 각도로 인사를 한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모두들 정을 피해 둥글어지지만 기실 모난 돌은 둥글어진 돌 틈 사이로 빠져나가는 양심과 도리와 이치를 온몸으로 받치고 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을 깊이 존경한다. 그분의 산문집 ‘다산의 마음’을 읽으며 많이 울먹였고 더 많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사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다산처럼 영광보다는 고통이 더 많았다. 정을 피해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살았다면 한 사람의 삶이야 편했겠지만 역사 속에 길이길이 귀감으로 남지는 못했을 것이다. 스스로 옳다고 판단되는 모는 그 뾰족함이, 예술가에게는 예술이 되고 공직자에게는 자신을 질타하는 죽비역할도 능히 하지 않겠는가. 정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는 푸른 정신을 이어가는 발판이 되리라 믿는다.
-지적공사 청렴부문 입상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