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어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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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색여 두면 좋은글◑
남을 가르치려 들고
남을 바로 잡아 주고자 하는 사람은
사실은 그 자신의
모자람은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을 사랑하라.
행운의 여신은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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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어지교 : 물과 물고기의 사귐이란 뜻으로,
①임금과 신하(臣下) 또는 부부(夫婦) 사이처럼
매우 친밀(親密)한 관계(關係)를 이르는 말
②서로 떨어질 수 없는 친(親)한 사이를 일컫는 말 - 국어사전 -
유래
삼국 시대 때, 위(魏)나라 조조(曹操)는 강북의 땅을 평정(平定)하고
오(吳)나라 손권(孫權)은 강동의 땅에 의거하여 각각 세력을
강화하고 있었다.
하지만 촉(蜀)의 유비는 확실한 근거지를 확보(確保)하지 못한 상태였다.
유비에게는 관우와 장비 등의 용장은 있었지만 모사(謀士)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때에 제갈공명(諸葛孔明)을 군사(軍師)로 맞이할 수 있게 되자
유비의 기쁨은 대단했다.
제갈공명(諸葛孔明)은 형주(荊州)와 익주(益州)를 제압해 근거지로 삼을 것,
서쪽은 융(戎)과 화목하고, 남쪽은 월(越)을 회유해 후환을 없앨 것,
정치(政治)를 고르게 하여 부국강병의 실을 거둘 것,
손권(孫權)과 손잡아 조조를 고립시키고,
기회를 보아 조조를 무찌를 것 등을 헌책했다.
유비는 전폭적인 신뢰를 공명에게 쏟고,
군신의 정은 날로 더해 가자 관우와 장비는 이를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신예인데다가 나이 또한 젊은 공명이 더 중요시(重要視)되고
자신들은 업신여김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공명은 27세로 유비보다 20세나 연하여서 더욱 그랬다.
이것을 알아챈 유비는 관우와 장비를 달래면서
선왕(유비)이 말했다.
『나에게 공명은 물고기에게 물이있는 것과 같다.
원컨데 두말 없기를 바란다.』
先王曰(선왕왈)
『 孤之有孔明(고지유공명)은 猶魚之有水(유어지유수)라 源勿復言(원물부언)하라.』
유비가 말한 『孤之有孔明 猶魚之有水.』를
水魚之交(수어지교)나 魚水之親(어수지친)이니 하고 말한다.
魚水之樂(어수지락)이라고 했을 때는 부부와 남녀 사이의 사랑을 뜻하게 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수어지교 [水魚之交] (한자성어?고사명언구사전)
물과 물고기는 잘 어울린다
水魚之交
부부나 남녀간의 사랑을 ;어수지락이라함
수어지교 [水魚之交]와 유사한 중국 고사 성어
管鮑之交(관포지교) : 관중과 포숙의 사귐이란 뜻으로,
우정이 아주 돈독한 친구 관계를 이르는 말
膠漆之交(교칠지교) : 아교와 오칠 같이 뗄 수 없는 우의
아주 친밀하여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교분을 이르는 말
金石之交(금석지교) : 쇠나 돌처럼 굳고 변함없는 사귐
斷金之交(단금지교) : 쇠라도 자를 만큼 강한 교분이라는 뜻으로,
매우 두터운 우정을 이르는 말.
刎頸之交(문경지교) : 서로를 위해서라면 목이 잘린다 해도
후회하지 않을 정도의 사이라는 뜻으로,
생사를 같이할 수 있는 아주 가까운 사이
유비가 말한 孤之有孔明에서 孤자의 의미를
황제와 왕 제후가 1인칭으로 썼던
朕과 孤=寡人의 쓰임 유래 알아보기
朕(나 짐)은고대 중국에서는 일반 사람들도 ‘나’라는 뜻으로
사용하였던 말인데 시황제(始皇帝)가 중국을 통일한 후부터
황제에 한해서 쓰도록 정하여 이로부터 제후왕(諸侯王)들은
황제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자신들을 낮추는 겸칭(謙稱)으로
‘과인(寡人) 혹은 고(孤)’라고 하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고려 태조 때부터 임금이 스스로를‘짐’이라 하였으나
중국 원(元)나라의 간섭을 받기 시작한 충렬왕 때부터
‘고(孤)’로 고쳐서 사용하였다.
조선시대의 역대 왕들은 주로 ‘과인’이라 하다가
1897년(광무 1) 고종이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고쳐 중국과 종속관계를
끊고 황제에 오르면서 ‘ 짐’이라는 칭호를 사용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짐 [朕] (두산백과) 참고
약자에게 멍애로 다가왔던 寡人
우리나라 역대 왕들이 자신을 과인이라 칭한 것은
유교적인 慕華思想의 일환이기도 하지만 핵심요인은 武力의
열세에 의한 적자생존 결과를 부인 할 수는 없습니다.
오늘날 역시 중국은 도외시할 수 없는 막중함이 옛날과 다를 바 없습니다.
옛날처럼 종속관계는 아니다 하드래도 중국이 경제대국으로서
미국을 제치고 우리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치고 있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나라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우리가 수출을 가장 많이 하는 나라 관광객이 제일 많이
오는 나라 우리 주식이나 채권을 많이 사는 나라
그외도 다방면으로 갑을 관계의 영향을 끼치는 나라입니다.
만약에 중국이 우리쪽으로 재체기를 하게된다면
우리는 골머리를 알을 수 밖에 없습니다.
가정해서, 중국이 우리의 수입을 제한쪽으로 방향을 틀어
주식과 채권을 매도하고 외화를 빼나간다면
우리의 상황은 어떻게 될까?
생각하기조차 끔직한 변환이 초래될 수도 없지 않습니다.
시진핑의 친화적인 미소 뒤엔 언제든지 우리 목을 옥죄일 수 있는
동아줄이 숨겨 있다는 것이 대한민국의 고민거리가 있습니다.
중국은 우리에게 계륵(鷄肋)같은 존재입니다.
먹을 수도 버릴 수도 없는 닭갈비같은 모양세.
가까이하면 미국이 눈알을 부라리고
멀리하면 왕서방이 봇짐을 싸 달아나니
진퇴양난의 우려가 제기됩니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등거리 외교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수 있다는 것처럼
그런 위험성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 고민있습니다.
인구 5천만이 먹고 입고 보다 잘 살 수 있는
미래의 과제가 중국의 영향하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세상은 혼자 살 수 없는 것, 국가도 마찬가지.
일수탁박 수지무성
(한 손으로 홀로 쳐서는 아무리 빨리 해도 소리가 나지 않는다)
한비자가 했던 말이라 합니다.
한 쪽 손만 흔들면 소리가 나지 않은 것처럼
나라도 다 같이 어울려 살아가는 세상입니다.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는 상부상존의 인식을 중국에게
각인시킬 수 있는 우리의 노력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중국에 대하여 다시는 과인이란 부끄러웠던 1인칭
대명사를 쓰지 않은 방안이 될 수 있지 않을가 생각해봅니다.
외교가 탄탄하면 선린우호 그렇지 못하면
어제의 동지가 오늘은 적으로 돌변하는 세상.
국제사회에서 영원한 동지도 적도 없다는
세상에 우리가 서 있습니다.
세계는 바야흐로 토사구팽(兎死狗烹)의 시대.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 강한 나라만이 살아남는 시대.
우리도계속 힘을 길러 중국과
水魚之交의 궁합이 이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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