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1호 논쟁, 숭례문과 훈민정음
최근 국보 1호 숭례문[남대문]을 훈민정음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논쟁이 다시 불거질 조짐이다. 현재 이 문제가 다시 국회로 넘어갈 것 같다.
숭례문이 국보 1호로 지정되기 까지는 여러 가지 우여곡절을 겪었다. 일제강점기 일본은 1934년부터 조선의 유물과 유적에 일련번호를 매기기 시작했는데 보물 1호가 숭례문이었고 보물 2호가 흥인문[동대문]이었다. 이때 숭례문이 국보가 아니고 보물이 된 것은 당시 본토 일본에 있는 것만 국보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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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후 제헌헌법이 제정되었지만 유물유적에 관한 법률은 일제강점기 것을 그대로 계승했다. 그래서 해방 이후에도 보물 1호는 숭례문이었고 보물 2호는 흥인문이었다. 해방이 되었어도 왜 숭례문이 보물이 될 수밖에 없었는지 관심이 없었다.
왜 일본은 국보인데 우리나라는 보물인가라는 자격지심이 들었는지 1955년 일괄적으로 보물을 모두 국보로 바꾸었다. 남대문이 국보 1호가 되었고 동대문은 국보 2호가 되었다. 그런데 무작정 모든 보물을 국보로 명칭만 바꾸었으니 이젠 우리나라에 국보만 있고 보물은 없는 국보 국가가 되었다. 우리 문화재 행정이 그렇다. 정신은 없고 껍데기만 바꿀 뿐이다. 1962년 다시 국보 가운데 일부는 보물로 다시 재배치했다. 이때 국보 2호였던 흥인문은 보물 1호가 되었다. 그러니까 흥인문은 보물 2호였다가, 국보 2호였다가, 보물 1호로 해방국가의 문화재 정책의 기준없이 편의에 따라 국보와 번호를 왔다 갔다 한 셈이다.
1934년 일제가 처음 보물 1호 남대문 등의 일련번호를 매길 때 어떤 기준 또는 어떤 목적에 의해 매겼는지는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 번호는 서울, 경기 등 지방 순서여서 특별히 번호 순서에 의미를 두지 않았을 수도 있다.
다만 1938년 추가로 지정할 때 모 신문기사에는 “금번 지정되려는 것은 내선일체의 관념을 적확히 표현하는 것이라 하여 주목을 끌고 있다”라고 평가를 내리고 있는 것에서 보물 지정이 단순히 문화재의 행정적 관리를 위한 보물 지정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한편 포석정은 고적 1호로 지정되었는데 이곳은 신라의 경애왕이 술판을 벌이다 후백제의 견훤에게 죽임을 당한 곳이다. 과거 신라가 어떻게 망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조선도 그렇게 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은연중에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포석정은 현재 고적에서 사적으로 이름만 바뀌어 사적 1호가 되었다.
일제강점기의 문화재정책이 식민지정책의 효율이란 측면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따라서 일제강점기 일련번호를 매겨 문화재를 관리했던 관행은 어떻게 해서든지 고쳤어야 마땅했다. 더구나 국보 1호인 숭례문이 불타고 복원된 지금상황에서도 여전히 국호 1호를 고집한다면 어불성설이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처럼 국보 1호를 훈민정음으로 바꾸는 것에 대해선 생각을 달리한다. 한글이 국보 1호의 자격이 없어서가 아니다. 나는 통일한국의 나라이름을 ‘한글’로 주장할 만큼 한글에 대해서 누구보다 가치를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 가치는 다른 유물과의 우열비교에서 나오는 가치여서는 안 된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1등’을 강조하는 사회에서 국보나 보물 등의 문화재에 번호를 매기는 것은 불필요한 오해를 낳기 마련이다. 따라서 이번 기회에 국보 1호를 남대문에서 훈민정음으로 바꿀 것이 아니라 국보나 보물 등의 일련번호를 없애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국보 숭례문, 국보 훈민정음[해례본] 하면 충분하다. 굳이 행정관리하기에 불편하다면 일련번호는 내부적으로 사용하면 그만이다.[예전 글 일부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