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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어를 꿈꾸다 - 김 영 희
시작이 끝이었나, 물길이 희미하다
매일 밤 고향으로 회귀하는 꿈꾸지만
길이란 보이지 않는 미망迷妄 속의 긴 강줄기
바다와 강 만나는 소용돌이 길목에서
은빛 비늘 털실 풀듯 올올이 뜯겨져도
뱃속에 감춘 꿈 하나 잰걸음 꼬리 친다
내 다시 태어나면 참꽃으로 피고 싶다
붉은 구름 얼룩달록 켜켜로 쌓인 아픔
흐르는 물속에 풀고 가풀막을 오른다
끝없이 이어지는 도저한 역류의 몸짓
마지막 불꽃이 타는 저녁 강은 황홀하다
비로소 바람에 맡겨 눈감고 몸을 연다
* 심사평 :
새로 태어나는 모국어를 위해 시조는 오래 숨겨온 가락의 새 목청을 뽑는다. 응모작들에서 껍질을 깨려는 사나운 부리를 본다. 다만 발상의 자유로움과 형식미를 찾아내는 데에 끝까지 돌파하지 못함이 눈에 띄었다. 예년에 비해 당선권에 들어선 작품들이 높은 기량을 갖춰 당선작을 뽑는데 거듭 읽어야 했다.
당선작 '연어를 꿈꾸며'는 가뿐 숨을 몰아쉬며 시의 모천(母川)에 이르는 역류가 눈부시다. 회귀를 꿈꾸는 건 연어만이 아니다. 살아있는 것은 모두 그를 낳아준 어머니의 땅으로 돌아가려 온 몸을 던진다. 오래 두고 써왔던 낡은 글감을 전혀 새것으로 빚는 일이 쉽지 않음에도, 서두르지 않고 시적 대상을 안으로 끌어들여 차분하게 시의 실마리를 풀어가고 있다. 시조의 틀을 거스르지 않으면서 익숙하게 운용해 나가는 힘이나 낱말의 쓰임새도 고르게 놓여있다. "비로소 바람에 맡겨 눈감고 몸을 연다"의 매듭이 더욱 빛난다. 그러나 시의 감도를 높이려면 외연보다는 내면의 공간을 좀더 깊이 천착했어야 했다. 지금부터가 출발점이고 시조의 넓은 수면에 역류의 속도를 더욱 내주기를 바란다.
마지막까지 겨뤘던 작품으론 박해성의 '빗살무늬토기', 배종도의 '청자압형수적', 황윤태의 '돌아오지 않는 소리', 설우근의 '흡수불량증후군', 배용주의 '자전거는 둥근 것을 좋아한다' 등이 실험정신을 곁들인 탄탄한 역량을 보여줬음을 부기한다.
심사위원 이근배(시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