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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3장
<요3:1-8>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관원이라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가로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수 없느니라
니고데모가 가로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유대인의 관원 중에 니고데모 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밤에 예수께
와서 선생님이 행하시는 표적은 아무라도 할 수 없는데 그 행하심을 보니
당신은 하나님이 보내신 분임이 틀림없다고 찬양을 늘어놓았다.
그 때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네 말이 참으로 옳다고 칭찬하신 게 아니라
더욱 높이 깨달아야 할 것을 요구하셨는데, 그것은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강공을 날렸다. 니고데모가 표적을 보고 좋아라 하니 그런 믿음으로는
어림도 없다는 뜻이다.
그러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라는 것은 무슨 뜻인가?
물은 눈에 보이는 물질이다. 그리고 성령은 눈에 보이지 않는 신령한 영이다.
예수님이 행하신 표적도 눈에 보이는 물질이다. 따라서 니고데모가 좋아한
표적은 물로 한번 낳은 것밖에 안된다.
이렇게 눈에 보이는 물질인 물로 한번 낳은 것은 비유의 말씀에서 한번
낳았다는 뜻이다. 즉 예수님이 행하신 표적은 신령한 영(성령)에 대한
비유에서 한번 낳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비유는 비유일 뿐,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있는 참 진리가
아니기 때문에 그 비유신앙에서 벗어나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는
성령으로 거듭나라고 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본질은 물질이 아니고
성령이기 때문에 성령으로 거듭 낳음을 받아야만
하나님의 나라를 차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성령은 무엇인가? 성령은 내 속에 들어오는 하나님의 영감이 된다.
성령은 누구도 그 움직임을 볼 수 없이 내 속에 들어오는 하나님이 주시는
영감이 되기 때문에, 예수께서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시기를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고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베푸신 표적을 보고 그 표적(비유) 속에 감추인 참 뜻이
무엇인지 영감으로 깨닫는 그것이 곧 성령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그 누구도 깨달아 내지는 못한다. 오직 예수님만이
초림 때는 말씀을 인류에게 비유(표적)로 주시고, 예수님만이 재림 때는
그 비유로 된 성경을 해독해서 인류에게 성령으로 주신다.
초림 예수님이 말씀을 비유(표적)로 주실 때는 실상의 율법이 되고
재림 예수님이 그 비유의 성경을 해독해서 성령으로 주실 때는
실상의 구원이 된다. 따라서 인류는 초림 예수님을 통해 물로
한번 낳고, 오늘날 재림 예수님을 통해 성령으로 거듭나게 됨으로
인해 영생에 이르게 된다.
<요3:9-15>
니고데모가 대답하여 가로되 어찌 이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일을 알지 못하느냐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거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 증거를 받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초림 예수님은 하늘의 일(성령)을 땅의 일(물,물질세계일)로, 즉 비유와
표적을 베풀어 말씀하셨을 때 유대관원들은 그것을 믿기는커녕
시기질투하며 잡아죽일 일만 꾀하고 있었기 때문에, 유대관원 중에
하나인 니고데모를 향하여 “너희” 라는 표현을 쓰시며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라고 하신 것이다.
사실 니고데모는 땅의 일(표적)을 믿고 좋아라 했는데, 그 땅의 일
그 이상의 것인 성령으로 거듭나라는 말씀을 하시는 중에 유대관원
전부를 질타하시면서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다”고 하셨다.
예수님이 언제 하늘에서 내려온 일도 없고 하늘에 올라간 일이 없었는데
이게 무슨 말씀인가?
그 말씀은 땅의 일, 곧 물리적 세계의 거리를 이동하는 오름과 내림이
아니라 하늘의 일, 곧 영적 세계의 거리를 오름과 내림을 말씀하심이
된다. 따라서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다”
는 것은 예수님만이 성령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가져오신 자라는 뜻이다.
그리하여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라고 하셨는데
이는 또 무슨 뜻인가?
모세가 이스라엘백성을 출애굽시켜 광야를 행군하는 중에 백성들이
불뱀에게 물려 죽는 일이 허다했는데, 이는 실상에서 주의 백성들이
모세로 예표되는 예수님을 믿지 않고 자칭 사도바울이 던져준
뱀의 선악과에 의해 죽는 일을 뜻한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을 물어죽인 불뱀은 에덴동산 옛뱀의 선악과로
기독백성들을 죽이고 있는 자칭 사도바울이라는 뜻이다.
이렇게 실상에서 불뱀에게 물려 기독인 주의백성들이 죽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모세(예수님)에게 명하기를 구리뱀을 장대에 높이
매달아서 백성들로 쳐다보게 하면 살게 되리라고 하셨을 때,
모세가 그대로 행하여 백성들이 구리뱀을 쳐다보고 살게 된 일이 있었다.
모세가 매달은 구리뱀은 무엇이기에 그것을 쳐다보면 불뱀에게 물려죽게
된 자들이 살아나게 되는가? 이미 밝혔듯이 불뱀은 옛뱀이 되고
구리뱀은 옛뱀의 후손 용(적그리스도,자칭재림주,666)이 된다.
불뱀은 이천년 동안 주의백성을 사로잡아 사이비 하나님 노릇을
해왔는데 백성들이 전혀 사이비 하나님임을 모르고 철석같이 믿고
있기 때문에 사망의 신앙을 하고 있었던 것이니, 이것이 불뱀에게
물려 죽는 일이었다.
그런데 장대에 높이 매달아 놓은 구리뱀(뱀의후손,적그리스도)을
쳐다보면 왜 살게 되는가? 적그리스도는 자의적으로 성경문자를
이리 저리 연구해서 내가 성경을 풀었노라고 주장하는 자칭 재림주들이
되기 때문에,
마지막 때 재림주가 오셔서 그들의 거짓 성경해석을 폭로하게 되면
마침내 주의백성들이 지금까지 자기들이 믿어왔던 하나님이 옛뱀이든
옛뱀의 후손이든 한 통속으로 사이비 하나님이 되고 있음을 깨닫게
됨으로 인하여 그로부터 뒤돌아 설수 있기 때문에 살게 된다고 한 것이다.
이에 대해 좀더 부연설명을 하면 이렇다.
옛뱀은 선악과로 사이비 하나님의 노릇을 했지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기
때문에 주의백성들이 감쪽같이 속아왔던 것이다.
그러나 옛뱀의 후손 용은 노골적으로 내가 성경을 풀었노라고 사자후를
토하는 자칭 재림주가 되는 보이는 하나님이 되기 때문에 그 거짓이
폭로될 때 그가 하나님이 아님이 결정적으로 드러나서 그로부터
뒤돌아설 수 있음으로 인하여 구리뱀을 쳐다보면, 즉 구리뱀 속에
한번 빠져보면 그로부터 도망나와 구원받게 된다고 한 것이다.
이렇게 백성들을 살리기 위해 모세가 구리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한다고 하셨는데, 이는 예수님도 높이 십자가에 달려서
그 십자가의 죽음을 바라보게 되면 인류가 영생에 이르게 된다는
뜻에서 하신 말씀이 된다. 그러면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이란
무엇이기에 그것을 바라보면 왜 살게 되는가?
구리뱀을 바라본다거나 십자가의 죽음을 바라본다는 것은 그 속에 풍덩
빠져서 목욕재계 함을 뜻한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달린 십자가의 죽음
속에 모두 풍덩 빠져서 목욕재계할 정도로 십자가의 죽음이 무엇인지
그 속 뜻을 깊이 깨닫게 되면 그로부터 영생에 이르게 된다는 뜻이다.
그러면 인자가 높이 들리는 십자가의 죽음이란 무엇인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은 예수님의 모든 비유의 말씀과 모든 표적들을
총 결산하는 비유의 최절정이 된다. 십자가의 죽음은 비유이기 때문에
고군분투해서 깊이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근본은 빛과 흑암(사탄)의 쌍태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하나님은 빛만이 있는 영생복락의 세계를 짓고자 하셨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자신 속에 있는 흑암지분을 모두 완전히
세상에 먼저 쏟아내야 했던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이 지으신 처음 하늘 처음 땅인 이 세상은
정치 경제 사회 종교 등 그 어디든지 사탄의 권세인 흑암이 아닌 것은
아무것도 없다. 심지어 하나님이 이끄시는 하나님의백성 기독교단이야말로
말씀이 신령한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고 “비유” 라고 하는 흑암권세로
주셨던 것이니 흑암권세에 대해서 더 이상 말해서 무엇하랴.
이런 흑암권세가 영원할 것인가? 아니다. 영원한 빛의 세계요
영생복락의 세계를 짓기 위해 하나님이 손자병법으로 먼저 세상에
내어주신 것이 흑암권세이기 때문에 그것은 곧 종말을 고하도록
하시고, 하나님의 영원한 지상천국을 도래케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 복안이시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죽음이란 그것이 비유인데 어떤 비유인가 하면
이 세상의 모든 흑암권세와 모든 종교의 흑암권세와 기독교단의
흑암권세인 모든 문자적 비유신앙에서 반드시 죽으라는 뜻이다.
그 비유신앙에서 죽어야만 신령한 진리의 말씀인 성령으로 거듭나서
하늘나라 지상천국에 들어간다는 뜻이다.
흑암권세에서 죽어야만 영생의 부활이 있다. 죽지 않으면 부활이 없다.
<요3:16-21>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진리를 좇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의 말씀은
보이지 않는 영이고, 예수님은 육체로 오신 분인데 예수님의 육체속에
하나님의 말씀을 가져오셨기 때문에 예수님은 곧 보이는 사람하나님이
되신다. 즉 독생자임에 틀림없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과연 예수를 아주 열심히 믿어 오직 내주! 오직 예수!
라고 하는 자들이 영생을 얻었던가? 절대로 아니다. 믿음이 독실한
기독인들도 일반 세상사람들과 하등 다를 것이 없이 생노병사에
갇혀 고생고생 하다가 모두 죽었을 뿐이다. 그러면 무엇이 문제인가?
예수님은 세상에 하나님의 흑암지분을 내어주시기 위해 말씀을
비유(흑암)로 가져오셨는데, 그 비유 속에는 생명이 되는 참 빛의
말씀이 숨겨져 있다.
그런데 사람들이 예수님을 어떻게 믿었는가? 비유말씀 그대로 믿었다.
즉 흑암(비유)으로 믿었으므로 구원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저를 믿는자 마다 영생을 얻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비유 속에 깊이 감추어져 있는 하나님의 참 빛의 말씀을
깨달아야 한다는 전제 하에서 하신 말씀이 되기 때문에, 이는 예수님의
재림 때를 두고 하신 말씀이 된다. 초림 예수님은 재림 예수님 때에
대한 비유로 오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하려 하심이라>
사실 심판이 있을 때
구원도 있는 것이며, 구원이 있을 때 심판도 있는 것이다. 심판과
구원은 나란히 같이 가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으니 이게 무슨 뜻인가?
예수님은 말씀을 믿어도 구원이 없는 비유로 가져오셨고, 그 비유
속에는 믿어서 구원이 있는 참 빛의 말씀이 숨겨져 있기 때문에
그 비유 속에 숨겨져 있는 참 빛의 말씀을 깨달아 믿는다는
“전제 하”에서만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고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한 것이다.
성경은 신구약이 온통 비유이다. 그 신구약 성경의 비유를 해독하여
참 빛의 말씀을 깨닫게 해주실 분은 오직 예수님의 재림 때가 된다.
예수님만이 초림 때 독생자로서 율법의 실상이 되고(알파)
예수님만이 재림 때 독생자로서 구원의 실상이 되기 때문이다(오메가).
그러므로 성경은 예전의 기록이지만 그에 대한 구원은 오늘날 재림 때가
되기 때문에 성경은 비유라고 한 것이며 오늘에 대한 예언이라고 한 것이다.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예수님을
믿는 자는 어떻게 믿어야 하는가? 그분의 비유속에 감추어진 참 뜻을
깨달아서 그 참 뜻을 믿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참 뜻을 깨달아서
믿을 때 심판을 받지 않고 구원을 받게 된다.
그러나 감추어진 참 뜻을 깨닫기가 번폐스럽다 하여 비유 그대로
믿는 완고하고 게으른 자들은 그분을 믿지 않는 것이 되며
심판을 받게 된다.
그러므로 오늘날 성경의 속 뜻을 풀어주시는
예수님의 재림 때 구원과 심판은 명명백백히 드러나게 된다.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수백 수천번 반복하지만
예수님의 초림 때의 기록은 예수님의 재림 때의 예언이 된다.
왜 이런 말을 자꾸 입 아프게 하는가 하면 사람들은 구약은
구약 때의 일이며, 신약은 신약 때의 일로 치부하며 자기들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했다고 한 것은, 오늘날 재림 때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예전의 어두운 비유신앙을 더 사랑하고 재림주의 빛의
진리를 싫어했다는 기록이 된다.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오늘날 기성교단의 자칭 선자자들(목회자들)이나 자칭 재림주들은
자기들이 악하므로, 그 행위가 드러날까 염려하여 재림주의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나오지 아니하며, 자기네의 신도들도 빛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가로 막는다.
<진리를 좇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그러나!
진리의 빛을 쫓는 자들은 재림주의 빛으로 나온다고 했다.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과 함께 동반해서 걸어온
신앙행로를 나타내려 함이라고 했다. 즉 마음이 선하여 참 빛의
진리를 찾았던 자들은
세상에 재림주의 빛이 오게 되자 그 빛으로 나오게 된다는 뜻이다.
<요3:22-30>
이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유대 땅으로 가서 거기 함께 유하시며
세례를 주시더라 요한도 살렘 가까운 애논에서 세례를 주니 거기
물들이 많음이라 사람들이 와서 세례를 받더라 요한이 아직 옥에
갇히지 아니하였더라 이에 요한의 제자 중에서 한 유대인으로 더불어
결례에 대하여 변론이 되었더니 저희가 요한에게 와서 가로되
랍비여 선생님과 함께 요단강 저편에 있던 자 곧
선생님이 증거하시던 자가 세례를 주매 사람이 다 그에게로 가더이다
요한이 대답하여 가로되 만일 하늘에서 주신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 나의 말한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한 것을 증거할 자는 너희니라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이 충만하였노라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이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유대 땅으로 가서 거기 함께 유하시며
세례를 주시더라 요한도 살렘 가까운 애논에서 세례를 주니 거기
물들이 많음이라 사람들이 와서 세례를 받더라 요한이 아직 옥에
갇히지 아니하였더라>
예수님도 제자들과 함께
유대 땅으로 가서 거기 함께 유하시며 세례를 주시고, 세례요한도
살렘 가까운 곳에서 세례를 주었다고 했는데 어떤 세례를 주고 있는
것일까? 당연히 예수님도(제자들을 통해), 요한도 물 세례를 준 것이다.
물 세례는 무슨 세례에 대한 비유인가? 오늘날 예수님이 재림 때에
주실 빛 밝은 성령 세례에 대한 비유인 것이다. 세례요한의 물 세례는
예수님의 길을 평탄케 하라는 길 예비자로서 물 세례인 것이며,
예수님이 제자들을 통해 주시는 물 세례는 예수님 재림 때에 주실
성령 세례에 대한 비유였다.
육으로 된 물세례는 아무리 천번 만번 받는다 할지라도 육신의 때를
조금 벗겨낼지는 몰라도 하나님을 아는 성령세례 하고는
아무 관계가 없기 때문에 비유(흑암)라고 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재림 때 하나님의 참 뜻을 아는 성령세례를 받아야만
하나님을 모르는 나의 죄가 씻음받고 사함받고 내 영혼이 자유함을
얻게 되는 것이며 구원받는 일이 된다.
<이에 요한의 제자 중에서 한 유대인으로 더불어 결례에 대하여 변론이
되었더니 저희가 요한에게 와서 가로되 랍비여 선생님과 함께 요단강
저편에 있던 자 곧 선생님이 증거하시던 자가 세례를 주매 사람이
다 그에게로 가더이다>
세례요한의 제자 중에 하나가
요한에게 와서 고하기를 선생님이 전에 증거하시던 예수가 사람들에게
물 세례를 주고 있으매 사람들이 다 그에게로 가더라고 알려주었다.
그러면 전에 세례요한이 예수에 대해 증거하기를 자기는 물세례를 주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서 성령세례를 주시는 분이라고 했었는데
이번에 뭐라고 답변할지 참으로 궁금하다고 하겠다.
(성령세례를 주시는 분이라고 말한 것은 하나님의 감동을 받아 한 말임)
<요한이 대답하여 가로되 만일 하늘에서 주신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 나의 말한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한 것을 증거할 자는 너희니라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이 충만하였노라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요한이 예전에
예수님의 공생애 출발점에서 나는 물 세례를 주지만 예수님은 성령세례를
주시는 분이라고 증거했었다. 그런데 이번에 자기도 물 세례를 주고
예수님도 물 세례를 주고 있는 이 현싯점에서 물 세례니 성령세례니에
대해 일절 말하지 아니하고 다른 표현으로 예수님을 높였다.
세례요한 자신은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극구 부인한 후에 예수님만이
그리스도가 되시는 분임을 증거하기를,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이
충만하다고 한 것이다.
따라서 그(예수님)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했다.
<요3:31-36>
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고 땅에서 난 이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느니라 하늘로서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나니
그가 그 보고 들은 것을 증거하되 그의 증거를 받는 이가 없도다
그의 증거를 받는 이는 하나님을 참되시다 하여 인쳤느니라
하나님의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 없이 주심이니라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만물을 다
그 손에 주셨으니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고 땅에서 난 이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느니라>
세례요한은 다시 증거하기를
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고…라고 했는데
이는 예수님이 위로부터 오시는 이요, 만물 위에 계신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땅에서 난 이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한다고 했는데,
이는 자기 자신이 그러하다는 것이 된다.
<하늘로서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나니
그가 그 보고 들은 것을 증거하되 그의 증거를 받는 이가 없도다>
하늘로서 오시는 이는
하나님으로 오신 분이므로 그분이 만물 위에 계시다는 것은 아주 합당하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 보고 들은 것을 증거하지만 그의 증거를 받는
사람(인간피조물)은 없다고 통탄해 했다.
<그의 증거를 받는 이는 하나님을 참되시다 하여 인쳤느니라>
그러나
예수님의 증거를 받는 이는 있다고 했다.
예수님이 어떤 증거를 받는다는 것인가? 그것은 예수님의 비유속에 감춰진
진리의 참 뜻을 깨닫게 되는 자가 있다는 것이다. 진리의 참 뜻을 깨닫게
되면 하나님을 참되시다 한다고 했다. 즉 성경 속의 하나님을 완전히
신뢰한다는 뜻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참되시다 하는 그 사람은 인침을 받는다고 했는데
인침을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택한자가 되었다는 뜻이다.
초림주의 증거를 받고 인침 받은 유일한 그 사람은 누구인가?
그는 오늘의 재림주가 되실 분이다.
즉 이는 결론적으로 초림주는 오늘의 재림주로 다시 오셔서 당신이
감추어 놓은 성경의 일급비밀을 낱낱이 다 풀어주신다는 뜻이 되고 있다.
그러므로 초림주의 증거를 받는 자는 피조물 인간중에는 없지만,
하나님으로 두번째 오시는 재림주는 초림주의 증거를 받는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 없이 주심이니라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만물을 다 그 손에
주셨으니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성령을
한량없이 받고 성령세례를 주실 분은 다시 오시는 오늘의 재림예수가 되신다.
초림 예수님은 비록 그 당시는 성경기록시대로서 말씀을 비유로 주셨지만
그 비유 속에는 재림 때 주실 진리의 참 뜻이 숨겨져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에게 성령을 한량없이 주신 바 되고, 아들(초림주)을
사랑하사 만물을 다 그 손에 주신 것이 된다.
그러므로 아들(초림주)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다고
한 것인데, 이러한 결정적 구원과 심판 때는 예수님의 재림 때가 된다.
따라서 예수님의 초림 때의 사역이 다르고, 재림 때의 사역은 다르지만
예수님의 초림 때와 재림 때의 그 인격체는 동일 인물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