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평]
이 일이 나에게 맡겨진 하늘의 뜻이라면
-조의령 시집 『살며시 다가온 기적』
김 익 하
2024년 8월 23일 삼척문인협회와 두타문학회가 공동 주최한 제419회 여름 바다 시낭송회에서 조의령 시인이 ‘꼭 드리고 싶었다.’는 말과 함께 처녀 시집 『살며시 다가온 기적』을 건넸다. 2024년 8월 20일 자로 발간했으니 말 그대로 따끈한 시집이다. 또한 조 시인의 건넨 말에 진정성이 느껴졌다. 제20회 풀잎문학상 수상 시집이라 부제를 단 이 시집은 <도서출판 그림과 책>에서 펴냈는데, 4부로 나눠 79편의 시를 담아냈다.
상경해서 책장을 넘기면서 나는 엉뚱하게도 열자列子 탕문편湯問篇에 나오는 우공이산愚公移山 고사를 떠올렸다. 태행산太行山과 왕옥산王屋山 흙을 한 삼태기씩 담아 발해에다 버리는 우공처럼, 조 시인이 15년 동안 옮긴 자취가 어렴풋이 보였던 탓이다. 조 시인의 시를 처음 마주 하긴 2009년 연간지 『두타문학』 32집에 실린 「페이스 페인팅」이다. 그로부터 15년이 흐르는 동안 그는 꾸준히 시를 썼다.
시인의 작품을 카테고리별로 선별해 엮어 놓으면 낱 편에서 드러나지 않던 모습이 선명하게 드러나는데 그동안 느리지만 시세계가 꾸준히 옮겨지고 있음을 느꼈다.
조 시인의 시어들은 오래도록 어둠에서 날카롭게 다듬어낸 쇳조각 같은 시어들이 아니고, 또한 격정을 깊게 삭여낸 게 아니라 주변 사물을 가볍게 담아낸 노랫말과 같다. 그래서 문학 작품의 근원적인 목표인 ‘새로움과 경이’와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시어의 선정, 담아내는 내용, 구성 모두 그렇게 보인다. 뭐니 해도 조 시인 시의 미학은 다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즉 가장 중요한 요소는 시작을 통해 삶의 긍정적인 요소들이 발효되고 있는 점이다. 그것은 시를 씀으로써 얻어지는 기쁨과 행복이다.
내가 시인이라서 다행이다
내가 시인이라서 행복하다
나의 다양한 모습 속에
삶의 향기가 묻어 나와
맑고 고운 거울에
내 모습을 보일 수 있는 시심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내게 속삭이며 열정을 다하여
카타르시스를 진하게 느끼네
무언지 모를 내일을 향해 달려가다가
잠시 걸음을 멈추어
사색에 잠기며 영감을 얻으니
아무도 모방할 수 없는 예지심
자기만의 특별한 세계
왠지 고독해 보여도 멋있어 보이고
내가 시인이라서 다행이다
-p23 「내가 시인이라서 다행이다」 전문
마음 쓰임과 걸음새가 콧노래가 들릴 만큼 긍정적이다. 걸어온 길과 나아갈 길이 보인 듯하고 시인으로 행세하는 일이 오히려 막중한 책무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빛난다. 시를 쓰는 자신을 자랑해야 한다. 박정한 세태에 그 외침이 신선하다. 조 시인의 시산詩山은 15년 동안 긍정적으로 여기까지 옮겨졌다. 누구에게 자기 일을 자랑스레 드러내는 일, 즉 이 일이 나의 천운이라 믿고 해내는 일은 타인의 눈에도 아름답게 보인다. 그렇다. 이 일이 나에게 맡겨진 하늘의 뜻이라 믿는 그 마음이 시인으로 이미 비견할 데 없이 값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