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우크라이나의 주요시인으로 꼽히며 우크라이나 민족 부흥 운동을 주도했던 인물 농노 신분으로 태어났으나 상트페테르부르크 미술 아카데미에서 공부하던 중 1838년에 농노 신분에서 해방되었다. 〈음유시인 Kobzar〉(1840)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된 첫번째 시집은 역사주의와 우크라이나 낭만주의자들의 민속학적 관심을 표현했다. 그러나 곧 카자흐스탄 생활에 대한 향수에서 벗어나 장시 〈가이다마크들 Gaidamaki〉(1841)에서 특히 두드러지게 우크라이나 역사를 더욱 암울하게 묘사하기 시작했다. 1847년 비밀결사인 '성 키릴루스와 성 메토디우스회'가 탄압을 받을 때 그 또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압제를 풍자하고 혁명을 예언한 〈꿈 son〉·〈카프카스 kavkaz〉·〈서한〉 등을 쓴 죄로 유배와 강제 병역에 처해졌다.
유배지에서는 집필을 하거나 그림을 그리는 것이 금지되었지만 처음 몇 년 동안은 몰래 몇 편의 서정시를 썼다. 1857년에 방면된 뒤 그는 자신의 창조성을 되찾았으며 후기 시에서는 우크라이나뿐만 아니라 보편적인 역사와 도덕의 문제를 다루었다. 셰프첸코는 19세기 우크라이나가 민족주체성을 확립해가던 바로 그 시기에 우크라이나 문학과 문화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