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류가 익었다
강표성
건들마가 지나고 찬바람머리에 이르면 나무는 노을빛을 닮아갔다. 앳된 노란 주먹을 붉디붉은 훈장으로 바꿔달고 골목을 기웃거렸다. 누구를 기다리는지, 까치발로 담장 너머를 내다보다가 긴 그림자까지 마중 내보내건만 골목은 고요했다. 껍질을 꿰뚫고 나온 석류알이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 듯한데 친정집의 가을은 홀로 깊어 갔다.
나는 맏이다. 거기다 겁도 없이 맏며느리 자리에 앉았으니, 형제가 많은데다 전통적인 사고방식을 고수하는 시댁에서 명절을 쇠다 보면 친정집엔 막차다. 시골에서 북새통을 떨다가 파김치가 다 된 얼굴로 친정에 들이닥치면, 동생들이 우르르 떠나간 집은 썰물이 빠진 포구 같다. 그런 적막이 싫어 놀이터에서 돌아온 애처럼 엄마만 찾는 나를 아버지는 깊은 눈길로 바라보셨다.
아버지는 원래 말이 없는 분이다. 한 말 또 하는 것을 잔소리로 생각하시는지라, 굵고 짧은 한 마디로 위력을 발휘하신다. 그런 아버지가 결혼식을 앞둔 전날 밤에 나를 부르셨다. 마음이 뒤숭숭해 있는 딸에게 딱 한마디 하셨다. ‘너는 이제부터 강 씨가 아니라 최 씨다’. 당시에는 그 말씀이 얼마나 서운하든지.
긴 시간이 지나서야 그 뜻이 이해되었다. 최씨 집안의 맏며느리로 들어가는 내게 집안의 화목을 위해서는 너 자신을 버릴 줄 알아야 된다는 말씀이었을 것이다. 그릇다운 그릇으로 살아내기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곡진한 의미가 숨어 있음도 이제는 가늠한다.
아버지는 내겐 거대한 산이었다. 학교 다닐 때, 그 어른께 물으면 모든 것이 다 통했다. 당시로선 흔치 않은 최고학부 출신답게 어떤 질문에도 답을 갖고 계셨다. 그런 아버지가 자랑스러웠다. 누구 딸이라는 것에 어깨를 으쓱하던 시절이었다.
그것도 잠깐, 고향에서는 군자로 통했던 아버지가 도시에서는 파선하는 배의 선장이나 다름없었다. 갑자기 몰아친 오일 쇼크로 공장문을 닫아야 했다. 공장 언니들을 불러 호빵을 쪄주던 어머니를 바라보시다 말없이 사라지던 어른, 그리고 새벽녘 수돗가 부근에 쏟아지던 토사물들.
누구처럼 술주정 한번 한 적 없고, 골목이 떠나가라 신세 한탄 한번 한 적 없는 어른이다. 차라리 미친 척, 왜장을 지르고 비틀거리며 게거품을 물었으면 좋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담배 연기만 허공에 내뿜거나, 술 취한 그림자를 끌고 와 소리 없이 쓰러지곤 하셨다.
한때 아버지의 손을 싫어했다. 예술가의 손같이 희고 긴 손가락이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노동을 모르는 샌님의 손 같았다. 가장의 손은 고래심줄처럼 튼튼하고 빨래판처럼 투박해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던 때였다.
책을 사들고 오는 손보다 떨이용 과일이라도 끼고 오는 윗집 아저씨의 뭉툭한 손이 부러웠다. 노가다 판에서 잔뼈가 굵었다는 윗집 아저씨는 가끔 걸쭉한 욕지거리를 내뱉기도 하고, 늦은 밤에 가족들을 골목 밖으로 몰아세우기도 했는데, 그런 행패가 한편으론 당당해 보이기도 했던 건 어인 이유일까.
세상과의 불화 속에서 아버지의 몸과 마음은 편치 않았다. 현실은 장애물 경기처럼 위태위태했고 나날이 내려앉는 자존심은 바닥을 쳤다. 술로 도피했고, 독한 술은 당신의 생을 갉아먹기 시작했다. 거기다 일곱씩이나 되던 자녀들이 족쇄나 다름없었으리라.
그럼에도 ‘나는 괜찮다’고 하셨다. 몸이 마음을 거역하는 시절에는 자식들이 가장 큰 위안일 터인데, 걱정하지 말라고 그러셨다. 몇 해 전, 병원에 입원했을 때에도 이른 귀가를 고집 부리신 이유가 꼭 집이 그리워서만은 아닐 것이다. 자식들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으셨던 것이다. 평생을 채무자처럼 살아야 했던 어른, 하여 자식 앞에서 점점 말수가 줄어들었는지도 모른다.
어느 가을날이었다. 그날도 역마살이 도져서 산과 들이 눈앞에서 어른거리는데, 이른 아침에 전화가 왔다. 몇 번의 밭은 기침소리 후에 겨우 들리는 목소리, 아버지였다. 거두절미하고 한마디 하셨다. 석·류·가·익·었·다.
그제야 퍼뜩 생각났다. 석류가 익을 때쯤 친정집에 다시 들리겠노라 말했던 게 떠올랐다. 인사치레인 줄 알면서도 석류가 익어가자 아버지는 딸을 기다리셨나 보다. 붉은 열매에 빨간 속살이 다 보이도록 계절은 깊어지는데 온다 간다 소식이 없는 딸. 보고 싶다는 말씀 대신, 한번 다녀가라는 전언 대신, 그 한 마디를 건네신 거다.
석류가 익었다, 그 뒤에 숨겨진 뜻을 헤아려본다. 맏이에게 특별히 하시고 싶은 말씀이 왜 없었을까. 아버지로서, 인생의 선배로서, 한 인간으로서 하시고픈 당신만의 언어가 있었을 터이다. 두꺼운 껍질을 꿰뚫고 나온 붉은 알갱이처럼.
차마 꺼내지 못한 그 말씀 언저리에 마음이 머물 때면 우리 집 화단가를 서성인다. 작은 석류나무가 내 무릎을 스칠 정도로 컸다. 옹색하게 자리한 그 나무는, 이미 세상 뜨신 아버지의 집에서 가져와 심은 것이다. 햇살 좋은 날에는 쭈그리고 앉아 그 나무를 바라보곤 한다. 아버지가 그러셨던 것처럼, 물끄러미 지켜본다. 그리고 마음이 젖는다. 어디선가 낯익은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석·류·가·익·었·다.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아버님이 어려운 시기에 사업을 하시며 힘들게 사셨네요.
가족에게 할 말이 많았음에도 혼자 감수하며 얼마나 힘드셨을까.
생각해보니 무심한 세월에 가슴 한 켠 뭉클해짐니다.
어쩌다, 모래밭에 코를 묻는 심정일 때는 아버님을 생각합니다. 말없이 버텨야 했던 그 마음을, 조금은 알 수 있게 되네요... 댓글에 감사드립니다^^*
먹먹한 심정으로 수필의 힘을 느낍니다.
세상의 아버지들, 자신은 없고 가장으로서 살아야 했던 어른들.. 그 그늘 아래 자식들은 청죽처럼 커나가고 세상은 돌아가고 그런 거 같습니다. 댓글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