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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묘년 새해
거북이의 꼬임에 빠져 깊은 바닷속 용왕을 만나보고 왔지만 어딜 가던 정신만 바짝 차리면 토끼처럼 죽음의 문턱에서도 살아 돌아
올 수 있다는 걸 알고 한 해를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지난해 5대 8대 부처님 진신사리길에 비하면 짧은 길이지만 어째던 두 번째 부처님 만나러 가는 길
삼보종찰 佛, 法, 僧은 누가 뭐래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사찰이며 최고의 절집으로 알려져 있다
승보종찰 송광사 :보조국사 등 16명의 국사(國師)를 배출했다고 해서 승보 사찰이라 부르며
법보종찰 해인사: 고려 백성들의 간절한 마음을 담은 8만천 352장의 대장경이 소장된 수다라장과 법보전이 있는 곳
불보종찰 통도사:자장 율사께서 당나라에서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가져와 지은 절이기에 부처의 법신을 상징하는 곳이다
남한에서는 이렇듯 각각이 모여 삼보종찰이라 부르지만 휴전선 넘어 북한땅 평안도 묘향의 보현사는 삼보(진신사리, 팔만대장경,
서산대사)를 모두 한절에 모시고 있다
보현사의 부처님 진신사리는 임진왜란 때 통도사의 진신사리를 묘향산 보현사에 잠시 보관해 두었던 연유로 그중 몇과를 지금
도 보관하고 있으며, 조선시대 최고의 스님이셨던 서산대사께서 그곳에 수도하고 계셨고, 고종 때 명성황후가 해인사의 대장경
6천8백2권을 각각 인출해 강원도 월정사와 보현사로 보내어 보관하고 있으므로 보현사는 삼보의 조건을 고루 갖추고 있다.
삼보를 모두 모시고 있는 묘향산은 어떤 산일까? 조선을 대표하는 서산대사께서 조선시대 4대 명산을 두고 하신 말씀 중
"지리산은 웅장하나 수려하지 않고, 금강은 수려하나 웅장하지 않고, 구월산은 웅장하지도 수려하지도 않지만, 묘향은 웅장하고
수려하다고 하셨다.
구글 지도로 살펴보면 마치 말발굽 형태의 산으로 보이는데 백두산을 제하고 나면 서산대사께서 하셨던 말씀처럼 가장 좋은 산일듯하다
삼보종찰은 우리나라의 송광사, 해인사, 통도사 사찰이 의미하며 , 한국을 대표하는 사찰로써 언제부터 하나의 보배로 묶었는지
어떠한 근거도 없으나 수행하며 찾아보면 마음씨 좋은 부처님의 가피(加被)를 느끼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다.
송광사 조계문(曺溪門)
송광사의 첫 관문으로 일주문이라 부르며 신라말에 처음 세워졌고 몇 번 고쳐 지은건물이다
열고 닫는 문이 없어 누구나 들어오고 나갈 수 있는 문으로 맞배지붕이며 파란 바탕에 흰 글씨가 인상적이고
일주문을 들어서면서 멀리 조계산 자락이 보이는데 조계라는 말은 어디서 왔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신라말 또는 고려초 이 시기에 황해도 해주로부터 전남 장흥에 이르기까지 구산선문(九山禪門)이 있었으나
지금의 모든 사찰은 한국 불교계의 얼굴이라 칭하는 대한불교 조계종이란 간판을 수식어처럼 이름을 달고 있다.
조계(曺溪)라는 표현은 당대 최고의 문장가 최치원 선생이 쓴 사산비명(四山碑名)중 하나인 통일신라 때인 887년 지리산 아래
쌍계사의 진감국사비문에 "진감국사를 조계의 헌신이다"라고 표현한 글이 시초라고 전한다.
*참고로 사산비명은 경북 문경 봉암사, 보령시 성주사터, 지리산 쌍계사 경내, 이 세 곳은 국보급이고
나머지 한 곳은 경주시 외동읍 초월산 대숭복사를 사산비명이라 부른다.
송광사 대웅전으로 가는 길에 우화각
대웅보전으로 가는 길에 붉은색 기둥에 천왕문과 더불어 화려한 단청이 흐린 정신까지 맑게 한다
흐르는듯한 글자체중 松 송자를 유심히 살펴보면 十八 公이 각각 보이는데 지금까지 보조국사 지눌스님, 진각국사
그리고 마지막 고봉화상까지 국사가 16명 나온 절로 유명하지만 세상이 어지러우면 두 분의 국사가 짠하고 나타나실듯한 모습이고
승보전
승보사찰인 송광사를 상징하는 건물로 부처님 당시의 영축산에서 설법하시던 장엄한 모습을 재현하여 부처님과 10대 제자,
16 나한을 비롯한 1,250명의 스님을 모신 전각이다.
송광사 8차 중창 때 현재의 대웅전을 지으면서 서쪽으로 옮겼다고 한다
부처님과 제자분들이 추울까봐? 문은 닫아 두었지만 내일 새벽에 대웅전에서 108배를 하면 이곳 승보전에는 못 올 것 같아
미리 들어가서 절하고 나온다
약사전과 영산전
이곳에서 약사여래불께 인사드리고
관음전
본래 이름은 성수전이었으나 고종황제의 51세를 맞아 임금이 이름을 지어서 편액을 내린 황실의 기도처로 건축되었으나
1957년 옛 관음전을 해체하면서 관세음보살을 옮겨 모신 곳
대웅전 뒤에 자리하는 송광사 보조국사 감로탑
송광사를 대표하는 16 국사(國師)분들 중 제1세인 불일 보조국사 지눌스님의 부도탑이다.
보조국사는 고려 희종 6년에 열반하셨으며 왕께서 친히 불일 보조국사(佛日 普照國師)란 시호와 감로탑이란 탑호를 내렸다고 한다.
전국의 수많은 사찰에 서있는 감로탑이나 부도탑 중 가장 아름다운 탑은 어디 있을까? 궁금해지는데...
지난날 어느 강길을 걸었을 때 만났던 전남 화순의 쌍봉사를 지날 때 본 사자산문의 최고봉이셨던 칠감선사의 칠감선사 사리탑의
아름다움은 지금까지 본 탑 중 최고의 탑으로 그 아름다움은 말할 수 없을 정도였는데 보조국사 지눌스님의 사리탑은 단아하면서
정갈한 모습이다.
두 손 모아 탑돌이 몇 바퀴하고 내려와...
비사리구시
송광사 3 대명물 중 하나인 쌀 7 가마 분량의 비사리구시
느티나무로 만든 대형 용기로 행사가 있을 때 밥을 짓는 곳에서 사용했다고 한다
부처님을 모신 대웅전
미리 들어가서 3배 하고 나와
이곳 송광사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삼보종찰의 하나인 승보종찰의 근본 도량으로 한국불교와 역사를 함께해 온 유서 깊은 곳이다.
신라말 혜린선사께서 창건하시고 고려 중기 보조국사 지눌스님께서 9년 동안 중창불사를 통해 절의 규모를 확장하셨다.
한국 불교의 새로운 전통을 확립한 근본 도량으로 참선을 중요시하는 선종(禪宗) 사찰로 탈바꿈하며,
이후에 보조국사 지눌 스님을 포함해 열여섯 분의 국사들께서 주석했던 선종사찰로 오늘에 이르렀다
일제강점기 무렵 하나의 산에 두 개의 본사(本寺)가 자리한 두 곳 중의 하나인 조계산 서쪽의 송광사와 동쪽에는 선암사
그리고 또 하나는 강원도땅의 금강산 유점사와 건봉사(지금은 신흥사 말사)가 있다
현재에 들어와서는 팔공산 동화사와 은혜사, 지리산 화엄사와 쌍계사가 하나의 산에 두 개의 본사가 존재하는데
하나같이 대단한 사찰이다
하마비
유명 사찰 입구에 "여기서부터 사찰이니 누구든 말에서 내리시오"란 하마비(下馬碑)가 서있다
송광사의 하마비 위로 차량진입을 금한다는 글이 있고
하마비의 기원으로는 고려 인종 때라는 설이 있지만 근거가 없고, 조선 태종 13년 때 "궐문 밖에 이르러 정 1품 이하는
10보 거리에서, 정 3품 이하는 20보 거리에서 말에서 내리라 글이 있다. 그렇다면 사찰 입구에 세워진 하마비는 언제부터일까?
하마비는 왕실의 종묘와 사당 궁궐 밖에 설치된 것인데 처음부터 불교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조선시대 불교의 탄압이 이어졌고 유생들이 사찰에서 벌인 횡포는 이루 말할 수 없었던 시절
그러던 중 능침사인(능을 관리하는 절) 정인사(덕종:성종의 부친)와 화암사(태종)에서 일부 유생들이 기물을 부수고 사찰의 보물을
훔치는 일이 일어나명종을 대신해 수렴청정(垂簾聽政)하던 불교의 든든한 후원자인 문정왕후의 귀에 들어가 봉은사와 봉신사에
유생들의 출입을 금지하고기 물을 부순 유생들을 하옥시킨다.
그리고 문정왕후는 전국의 큰 사찰 입구에 다수의 하마비를 세우도록 했으며 이러한 과정으로 양산의 통도사, 경기도 양주의 봉선
사, 부산 범어사, 충북 보은 법주사, 합천 해인사. 남해 용문사. 전남 순천 선암사와 화순 송광사, 영천 은혜사 등에 하마비를 세워
양반들의 횡포를 막고자 했다.
해가 있을 때 송광사를 미리 둘러보고 다시 민박집으로 들어와
대구에서 전라남도 순천땅까지 버스로 이동후 순천에서 마을버스 타고 송광사로 향한다.
송광사 입구에 보이는 민박집들중 금광장 한 곳만 문이 열려있기에 좋다 나쁘다 생각할 필요도 없고
선택의 폭이 없어 일단 방부터 잡아놓고 어둡기 전에 송광사 경내 구경하러 다녀온다.
송광사는 새벽 3시 30분에 새벽 예불을 드리는데 일반인은 아침 6시 무렵부터 입장이 가능하여
24시간 지키는 매표소 직원분께 자초지종을 말씀드리니 새벽 예불시간에 맞춰 오면 문을 열어 주시겠단다.
새벽 3시 무렵에 일어나 찬물에 세수하고 양치하고 묵직한 보따리 둘러매고 밖으로 나오니 별은 총총하고 바람이 무지 차갑게 분다.
매표소에 들러 인사를 하니 언른 들어가 보라고 하시면서 입장료는 어제 오후에 낸것으로 퉁쳐주신다.
꽁꽁 언 얼음을 밟으며 송광사로 향하니 얼음 깨지는 소리가 뽀드득뽀드득 들리고 일주문에 올라서니 벌써부터 스님들의
예불 소리가 잔잔하게 들린다
새벽 예불을 알리는 법고와 범종 소리를 듣지 못했지만 법고는 보통 15분 정도 치는데 마음심(心)을 그리며 치는 편이고,
범종은 수미산 꼭대기의 제석천이 머물고 있다는 이상 세계인 도리천을 상징하는 28번을 아침 예불로 치는데
마지막날 통도사에서 저녁 예불 때 대천세계를 상징하는 33번 치니 그때 듣기로 하고, 두 손 모아 합장하며 산문으로 들어간다
이제 7일 이후에 통도사에서 산문 밖으로 나와야 하는데 몸이 허락을 할지 모를 일이다
코스:송광사-조계산 -선암사-사성암-구례-화엄사-지리산 주능선-대원사-밤머리재-산청-거창-고견사-우두산-해인사-가야산-고령-
낙동강 -현풍-유가사-비슬산-대견사-청도-한재-오치령-정각산-표충사-영축산-통도사
큰 산으로는 지리산과 우두산-가야산- 비슬산- 정각산-영축산이 버티고 있지만 산은 걸을 만 한데 도로길에서 무릎이 견뎌줄지...
거리:343km
날짜:1월 3일~9일
날씨:추움
다시 찾은 송광사 대웅전
스님들의 예불소리가 절마당으로 잔잔하게 울린다.
삼보에 의지해서 깨달음을 얻고 삼보에 의지해서 나와 남을 구원하려는 송광사 스님들
이곳 송광사에는 해인사(팔만대장경)나 통도사(진신사리)처럼 상징물이 없지만 맑고 고요한 스님들의 기상만 있는 곳이다.
백척간두에 홀로 서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려는 서슬 퍼런 스님으로, 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사라진다 해도 웃으며
수행하는 곳이며 고승대덕을 많이 배출한 근본이 살아있는 도량이다.
조용히 대웅전 좌측의 옆문을 삐걱 열고 들어가니 30여명의 스님과 일반 신도 몇 분이 예불을 보고 계신다
한편에 자리 잡고 108배를 드리며 올 한 해 클럽분들의 안전한 산행과 집안에 웃음이 가득하시길 기원드리는데
108배는 15분 정도 이어졌고 등짝에 땀이 날 무렵 절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새벽바람은 아주 거칠다.
이제 시작인가! 문 없는 문을 열고 7일간 수행길에 들어서며 신발과 함께 서있던 보따리를 둘러매고
겨울 속의 조계산을 조용히 오른다.
송광사에서 연신봉 사거리, 장박골 삼거리-장군봉-선암사로 이어지는데
내린 눈이 쌓여있지만 아이젠을 할 정도는 아니기에 조심스럽게 천천히 오른다.
이번 수행길에 삼보종찰 송광사나 해인사, 통도사는 108배를 올리면서 클럽의 안전산행을 기원드리고
그 외 지나는 길에 만나는 절집에 서는 부처님께 三拜만 올린다
달빛과 별빛 아름다운 새벽 큰 산 오름길에서 거친 숨소리 내는 나는 누구일까?를 생각하고
나는 어디서 왔는가?
나는 또 어디로 가는가? 화두를 가지고 걸음 해본다.
장군봉으로 쌓인 눈은 많지만 선답자분들이 잘 밟아 놓아 진행하는 데는 무리가 없고
바람이 사정없이 부는 능선을 지나 정상에 도착하니 시간은 06시 무렵
선지식인들이 그랬던것처럼 고요한 밤하늘을 올려다보는건 행운이다.
인간을 허락하지 않은곳 빛도 느려질수밖에 없는 공간이지만
보름달에 가까운 달을 쳐다보니 달과의 거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 약 38만 킬로이며 빛의 속도로 간다면 1,3초 거리에 있다.
저 먼 은하 속을 들려다 보면 무수히 많은 별들이 자리하는데 빛의 속도로 간다면 얼마나 걸릴까
우리 은하의 중심까지 거리가 2만 4천 광년이지만 우주 속의 미세 먼지에 지나지 않기에 빛의 속도 천배로 간다고 해도
우주 저 멀리 간다는 건 태평양에 달팽이 한 마리가 기어가는 형상이니 나란 존재는 숨만 쉬는 것 이외 그냥 먼지에 지나지 않는다
먼지도 삶이 있으니 이런 날 이곳에 서있는 게 아닐까?
밤하늘의 별은 왜 이리 많은지 태양이 저 멀리 오를 때까지 기다려 보려다가 몸에 한기가 쉽게 찾아드니 일출은 내려가다가
선암사 인근에서 보기로 한다.
선암사로
제법 경사가 있으며 등로는 거의 빙판 수준이고
지구와 1억 5천만 km 떨어져 있는 태양은 빛의 속도로 8분 정도의 거리이며,지구상의 모든 물은 저 뜨거운 태양에 부으면
용광로 같은 열기는 식혀질까? 지구의 모든 물은 태양에 있어 한 방울의 물에 지나지 않기에 뜨겁게 타오를 뿐인데
절대적인 공간인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이 생각 저 생각하다 보니 멀리 일출이 오르는 모습이다
한국불교 태고종의 유일의 수행 총림인 선암사 대웅전과 삼층 석탑(보물)
선암사는 백제 성왕 때 아도화상께서 비로암을 짓고 신라 경문왕때 도선국사께서 창건하셨는데 유서 깊은 절이며
주위 전각들이 많고 일반 절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라 八자 걸음으로 걸어야 될 것 같은 안동의 어느 지체 높은 가문의 양반집처럼 느껴진다.
대웅전을 지키는 탑이 두기가 보란 듯 서 있는데 탑은 부처의 진신사리를 봉안하는 처소로써 신도들에게는 예배의 대상으로
건립 연대는 신라 후기의 것으로 추정하며 1996년에 탑을 해체하면서 동쪽의 탑에서 사리 1 과가 들어있는 금동사리함과
백자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대웅전에는 석가모니를 주존불로 모셨으며 좌측문으로 들어가 안전산행 기원하는 3배 하고 나와 선암사 경내를 살펴보니
가을에 단풍이 곱게 내려앉을 때 찾으면 아주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선암사는 세계 유네스코에 한국이 신청한 산지승원, 산사(산寺)로써 경남 양산의 통도사, 영주 봉황산 부석사,안동 천등산 봉정사,
속리산 법주사.공주 태화산 마곡사, 해남 두륜산 대흥사와 함께 등재되어 있다
신라시대 때 자장율사께서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통도사는 한국을 대표하는 사찰로써 어딜 가도 빠지지 않고 포함되는걸
볼 때 통도사는 한국을 대표하는 절임에는 틀림없다.
이곳 한국의 산지승원 수행처인 선암사에는 다른 절과는 다르게 세 가지가 없는데
사천왕문(조계산 주봉이 장군봉이기에 장군이 부처님을 지켜 준다고 여겨 호법신인 사천왕을 따로 만들지 않았고)
대웅전 부처님을 지키는 협시 보살상(문수, 보현)이 없는데 이유는 (마군을 항복받던 그 순간을 나타내기 때문이고)
대웅전 어간문(깨달은 분만 통과할 수 있는 문)이 없다, 누구나 들고나갈 수 있다.
800고지의 조계산을 사이에 두고 승보사찰인 송광사와 쌍벽을 이룰정로 대단한 절이니 가을날 한번 찾는다면 아주 좋을것 같다는
생각을 덧붙이며 조계산은 호남정맥의 많은 산들 중 내장산,무등산,월출산의 국립공원을 곁에 두고 있지만 조계산이 품은 최고의
사찰이 두 곳이 있어 산의 기운으로 따진다 해도 국립공원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전날과 새벽에 송광사에서 느껴 지 못한 기(氣)을 이곳에서 느껴볼 정도로 뜨거운 기를 느껴 본다.
보물로 지정된 선암사 일주문
정면 현판에는 "조계산 선암사"지만 뒤쪽은 "고청량산 해천사"로 쓰여있다.(산이름은 청량산 절이름은 해천사)
*참고로 우리나라 보물로 지정된 일주문 다섯 곳 부산의 범어사, 선암사 일주문, 문경 희양산 봉암사 봉황문,
팔공산 동화사 봉황문, 지리산 천은사 일주문이 있다
이 다섯 곳 중 희양산 봉암사 봉황문이 가장 멋스럽다는게 저의 생각이니 확인하시겠다는 분들께서는 음력 4월 초팔일날
희양산 아래 봉암사로 한번 가보시기 바랍니다.
선암사를 둘러보고 밖으로 나오면 한겨울에도 푸른 잎을 자랑하는 야생 차나무 군락지가 반기는데
잎사귀 몇개따서 입에 넣고 오물거리면 남도의 깊은 차맛이 우러난다.
선암사 삼인당
신라 경문왕때 도선국사께서 축조한 것이며 연못 안의 작은 섬은 불교의 대의(大義)를 표현한 것이라 전한다.
삼인(三印)이란 불교의 제행무상인, 제법무아인, 열반정적인을 뜻하는데
우리나라 절에는 연못이 흔하지 않은데 이곳에서 멀리 떨어진 경남 양산시 영축산 아래 자장율사께서 통도사를 지을 때 구룡을
쫓아내고 만든 구룡지와 어떤 연관은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덧 붙인다
선암사 입구를 지키는 강선루
아치형의 조선시대 돌다리인 승선교
강선루나 승선교 이름에서 드러나듯 신선들이 자주 찾던곳이며 신선들의 놀이터임을 알 수 있고
보물 제400호 승선교와 강선루가 보이고 멀리 내려온 조계산 일부가 고개를 내민다.
누구나 고승대덕이 될 것 같은 아름다운 절집 선암사의 유명한 인물로는 통일 신라말기의 승려이며 풍수설의 대가인
도선국사가 계셨는데 왕건의 탄생 설화와 깊은 연관이 있다.고려 왕건 이후 많은 고려의 왕들이 그를 극진히 존경한 인물이셨고
또한분 대각국사 의천, 고려의 천태종을 개창한 인물로 고려 11대 문종의 넷째 아들이며 법명은 의천으로 선암사를 대대적으로 충창 하셨다.
하나의 산에 두 개의 큰 사찰이 있다는 건 분명 작지만 큰 산이다
이른 아침이라 선암사 입구의 많은 밥 집은 겨울철답게 문이 굳게 닫혀있고
길가에는 감 따가면 절도죄 포도청에 잡혀 간다는 글귀의 현숙막이 보인다.
잡혀 가더라도 하나 따먹어 봤으면 좋으련만
도로가를 지키며 길게 이어지는 감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이런 게 필요하죠
승주읍에 자리하는 쌍암 기사식당
아주 깨끗한 집이고 맛이 아주 좋다. 이 한 끼가 오늘 먹는 밥 중 유일한 밥으로 기억
밥 먹고 나와 인근 매점에 들러 빵하나 사서 배낭에 넣어둔다
승주읍을 지나 월내 마을을 안으로 들어가면 월내저수지 방향으로 오르는 편백나무 울창한 임도길 따라
바람은 시원하고 호남정맥길에 만나는 문유재로 향한다.
문유 삼거리에서 본 지나온 조계산
호남정맥길에 만나는 문유 삼거리
올해 이 길을 지나야 하는데 작은 건물 앞에 수도가 있지만 얼어서 물은 나오지 않는다.
바랑산 아래 도정마을에 사시는 분인데
인사를 하고 보니 "멋진 분을 만났다며 꼭 다시 오면 좋겠다"고 하신다.
훗날 호남길 문유 고개를 지날때가 있으니 그때 꼭 찾아뵙겠다고 하니 "잊지 말고 빨간 벽돌집으로 찾아오면 라면이라도 끓여주시겠다"고 꼭 찾아오라고 하신다.
일단 약속하고...
군장마을을 내려오니 고무신이 말씀을 한다.
"밑바닥 인생을 살면서 남을 원망하지 않는다"는...
물을 담고자 했던 수많은 철학자들 중 노자의 도덕경을 보면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르기에 강이 되고 바다가 된다"고
낮음의 미학이며 하심(下心)이 아닐까
걸으며 수행하는 처지라 밑바닥 인생은 늘 아픔의 연속이다
순천시 황전면에 들어와
장군의 길이며 이후에는 장군의 바다가 소리 없이 기다리는 곳이다.
왕명에 따르지 않았다고 의금부에서 죽을 고생 후 풀려나 경남 합천군 초계면에 있던 권율장군 휘하로 들어가 백의 종군 하라는
명을 받아 서울 -경기- 충청-전북 여산, 삼례, 전주, 임실을 거쳐 순천으로 향하는 길에 장군께서 이 길을 지나 구례로 향하셨다.
잠시 장군의 길 따라 구례로 이어간다.
섬진강 건너 깃대봉과 병방산 모습
섬진강은 청류(靑流)의 강이나 세월이 흐른 만큼 크게 변해있다.
오수의 개 전설을 품은 오수천, 남원골 춘향의 전설을 간직한 요천을 품은 강으로써 4대 강에서 자유로웠던 섬진강이다
섬진강 길 따라 오산 아래 사성암으로 이어가며
지리산 노고단이 보이는군요
내일 새벽에 노고단에 올라야 하는데 눈이 얼마나 쌓여있을지
서마지기골 옆으로 난 임도길 따라 사성암으로 오르는 중에
꼬불이 길이 아주 멋지지만 한 시간가량 올라야 하는데 아주 죽을 맛이다.
사성암
너무나 아름다운 절집이며 어떻게 이런 곳에 절을 지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 곳
백제 성왕때 연기조사가 창건했다고 전하지만 확실한 기록은 없고, 원효, 의상, 도선국사, 진각선사께서 수도 했다고 해서 사성암이라 부른다.
원효, 의상 두 분이 간 곳보다 안 간 곳을 찾는 게 더 빠를 것 같은데 두 분이 안 간 곳이 없을 정도로 신라땅이 좁았을 거란 생각이다.
원효와 의상 그리고 도선대사는 잘 아시겠고 진각선사 혜심은 송광사의 두번째 국사(國師)시죠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곳은 제가 내려온 호남정맥 송광사가 자리하는 조계산입니다.
하루동안 꽤 멀리 와 있죠 40km 지점
진각선사께서 이곳에서 수도후 멀리 송광산(조계산)으로 방향을 잡아 발길을 돌리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약사여래 입상
사성암에 자리하는 유리광전의 약사여래입상
원효(설사) 대사께서 손톱으로 그렸다고 하는데 어딜 가나 원효 전설은 억지가 많은데
사성암의 여래 입상은 어느 멋진 석공의 솜씨가 아닐까.
사성암은 오산 정상 부근의 깎아지른 암벽을 자연 그대로 활용하여 지은 사찰이며
이곳에서 정성을 다해 기도하거나 열심히 수행하면 누구나 득도할 것으로 보이고
일망무제의 조망은 섬진강과 어울려 일품이다.
아름다운 섬진강과 구례읍 그리고 만복대에서 발원하는 서시천이 S자로 보이며
구례읍의 천왕봉에서 이어지는 서시천 우측의 산줄기와 노고단 방향이다
이곳 사성암은 두타행을 실천하셨던 도선국사께서 첫 풍수를 배우셨던 곳이다.
걸으며 배우는 두타행(頭陀行)을 수행법으로 하셨는데 속세와 떨어진 곳에 머물고, 항상 걸식만 하고,
바루에 담긴 음식으로 허기만 면할 것, 음식을 얻지 못하면 굶어야 하고, 하루 한자리에서 한 번만 식사를 하고,
정오가 지나면 음료는 마시지 말고, 좋은 옷은 입지 말고, 삼의만 입을 것(옷 세벌),
무덤에서 머무는 것 (백골관 수행법으로 자장율사 수행법), 노천에서만 앉고, 나무밑에서만 쉴 것,
앉기만 하고 눕지 않을 것을 실천하셨는데 이중에 삼의일발(三衣一鉢) 옷 3벌 하루 한 끼만 드셨다고 한다
그나저나 올라왔던 꼬불길을 내려가서 저곳 노고단 골 깊은 곳에 자리하는 화엄사까지 가야 하는데
아름다운 곳에서 보는 조망 구경에 해는 빠질듯하여 걸음을 바삐 옮겨본다.
산신각에 들러 합장하고 나와
지겨운 임도길 따라 섬진강까지 내려가 지난날 걷던 강 길을 잠시 걸으며 어둠이 찾은 시간에 구례읍에 도착하니
밥이라도 먹고 가야 하나 생각하다가 빵하나 사서 나와 화엄사로 향한다
지리산 국립공원 안내판이 보이고
저녁 8시 무렵 화엄사 식당가 인근의 월등 파크 호텔(여관)에 가니 광주 대학교 축구부의 숙소로 정해놓아 방이 하나도 없다
지난해 한번 찾아간 집이라 주인장께서 알아보시고 미안하다 하시면서 저녁밥 드릴 테니 드시고 가라고 하신다 고맙다고
말씀드리고 나와 바로 옆 모텔에 가니 7만 원이란다.
하는 수 없이 화엄사 매표소 앞 공중 화장실을 이용하기로 하고 인적이 완전히 끊긴 도로 따라 좀 더 올라가 남자 화장실은
냄새가 나고 여자 화장실은 냄새가 나지 않아 문 걸어 잠그고 은박지 깔고 침낭 꺼내 깔고 잠시 잠을 청한다
두타행을 하셨던 도선대사께서 이 꼴을 보셨으면 분명 "아이고 내 새끼 잘했다"라고 하셨을 것 같은데
눈을 뜨니 새벽 2시 무렵이다.
2시 무렵 산사의 문은 굳게 닫혀있고 부처님과 그의 제자분들도 모두 주무시는 시간이라
합장만 하고 지리로 오른다.
지리산은 산신(山神)이 여신(女神)인데 세계 5대 종교의 수많은 경(經)을 모두 읽어도 결국은 그 끝은 사람이겠지만
여성으로 태어나 매달 치르는 월경(月經)에 견줄 바가 못된다.
월경은 세상의 모든 경을 초월하며 월경을 통해서만 자식을 낳으니 세상 어디에도 어머니의 사랑많큼 강력한 힘은 없고
여자분들이 가장 위대한 힘과 성스러운 경을 알고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보름 전날이라 달빛은 청아하고 계곡으로 들리는 차가운 물소리를 벗 삼아 오르니 이내 물소리는 고요해지고 눈(雪)이 반긴다.
고요한 산길에 허기진 배를 달래고자 빵하나 꺼내 오물거리니 이내 코재에 이르고.
새벽녘 지리산 칼바람은" 이런거다"는 걸 느끼며 노고단 대피소에 들어가 잠시 몸을 녹일까 하니 먼저 찾은 젊은 군인 두 분이
라면을 끓이고 계신다.
라면 한 그릇의 행복
젊은 군인 두 분은 오늘 장터목에서 주무시고 내일 대원사로 하산한다고 하셨는데
대원사로 같이 내려가면 밥 한 끼 사겠노라 했으나 이후에는 만나지 못합니다.
새벽 5시 무렵에 두 분과 저녁무렵에 장터목에서 만나기로 하고 먼저 출발한다.
나보다 먼저 지나간 이들이 있는지 발자국이 몇 개씩 보이고
흐린 날씨지만 일출은 오르고
눈 많죠
연하천 대피소
햇반은 팔지만 전기가 약해서 전자레인지를 돌리지 못해 햇반만 그냥 주셨습니다.
이걸 어떻게 먹나 대략 난감하고 있을 때
직원분께서 "버너와 코펠 없냐?"라고 하신다.
"제가 산에 들면 일체의 불 관련해서 가지고 다니지 않아서요!" 하니
버너와 코펠을 기분 좋게 빌려 주시더군요
물론 반찬은 먼저 오신 분이 있어 얻어먹었고
대원사까지 내려갈 생각에 먹을 것도 준비 못했는데 눈이 많아 진행이 많이 느려지네요
연하천에서
좋은날 같으면 노고단에서 1시간 30분이면 도착했겠지만 배낭이 무겁고
눈이 많아 진행이 느려 거의 4시간 걸립니다.
다시 능선을 이어 볼까요
햇반 하나에 김치 몇 조각으로 거친 주능선을 지나 장터목까지 갈지
눈길이라 진도가 안나가더군요
멀리 천왕이 보이고
지리 주능선은 이렇고
망바위에서 본 지리천왕의 모습
지나온 반야봉 모습
촛대봉에서 본 천왕
평일이라 등산객이 거의 없어 조용하기만한 지리산
연하선경에서 본 지리 천왕
지난날 백두대간을 하면서 이곳에 섰을 때 보던 천왕이 그려진다.
서 있을 수 없을 정도로 지친 몸으로 이곳에 섰을 때 지리천왕을 보니 눈물이 흘러내리더군요
다시 한번 그날의 그 기분을 느낄 수 있을지
장터목 도착 3시 50분경
어쩌나 천왕에서 치밭목까지 눈 상태가 어떨지
야간에 진행이 어려울 것 같아 장터목 대피소에서 보내고 일찍 천왕 일출이나 볼까나
노고단에서 만난 젊은 군인 두 분은 늦은 밤까지 장터목에 도착하지 못하고 세석에서 잠을 잔듯하다
2번 대피소에는 남, 여 10명 정도 입실했는데
저는 번호표 10번, 바로 옆자리 9번 자리를 잡으신 남자 한분이 코를 너무 심하게 골아 미칠 지경이다.
초저녁인 8시 무렵 귀속으로 기차가 요란스레 지나가는 동안
지금이라도 천왕봉을 올라 법계사를 거쳐 중산리로 내려가 길을 이어갈까 생각을 해봤지만
천왕에서 지리산 동부 쪽을 크게 돌아 밤머리재까지 30km가 넘고, 천왕에서 일출 보고 대원사로 내려가 밤머리재까지 18km
거의 비슷한 시간이 걸릴 것 같아 어쩌나 생각만 해본다
옆자리의 코골이 기차가 고장 나거나 빵구가 나거나 그만 다니기를 참고 기다린다.
귀는 아프고 잠은 오지 않고 천군만마가 지나가는듯한 코골이를 들으며 있으려니
몇몇 분도 잠을 못 이루고 배낭의 지퍼를 열었다 닫았다 하는 게임을 연신한다
주위분들의 휴대폰 카톡은 밤새 이어지고 제발 잠 좀 자자고 한마디 하려다가 부처님의 큰 뜻인 듯하여
한잠도 못 자고 지옥 같은 밤을 보내고 새벽 5시 무렵에 멍한 상태로 배낭준비를 하는데
밤새 코 골던 기차통 아저씨가 일어나 한마디 하신다.
"으!~~~ 잘 잤다."
속으로 " ㅁㅊ좋겠다" 한마디 해주고 보따리 들고 나오니 많이 춥다
통천문을 오르며
바람이 불고 추워 같이 출발한 분들과 바람이 찾지 않은 통천에서 잠시 쉬기로 한다.
아무도 없는 지리 천왕
잠시 기다리니 일출 구경하러 올라오신 중산리팀과 장터목팀이 올라오고
바람 덜버리는 곳에 쭈그리고 앉아 1시간 동안 개 떨듯하며
비몽사몽 이게 뭐 하는 짓인지 감이 오지 않는다.
언제부터 일출 본다고 산에 올랐다고 이러고 있는지, 있으면 보고 없으면 다음에 오면 되지
"그래도"라며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 좀 더 쭈그리고 기다린다
누가 보면 분명 이런 말 할 것 같다 "가관이 로고,,,"
7시 무렵 조금 지나
올라왔던 산객들이 오늘은 일출 없는 날이라며 추워서 한분 두 분 내려가고
전남 화순 송광사에서 경남 양산 통도사까지 허리가 꼬꾸라 지도록 걸어야 하는데
아직 초반지점인 지리에서 얼반 고생 좀 한다.
"으이그 추버라!~
그만 내려가자! 신년 일출 영 매가리가 없다" 며 스스로 위안 삼고"
덜!~덜!~덜!~ 촌동네 경운기 소리를 내며 눈 쌓인 중봉으로 개떨듯 향한다
2부는 다음에...
첫댓글 강선루 승선교 가을날 참멋진곳 입니다 선암사는 뒷깐도 유명하지요 오타 났습니다 해인사 해인사.....
새해 복 많이 받으셨죠
지부장님께서 조계를 올라 선암사로 내려 오셨나 봅니다.
ㅎㅎㅎ 오타난건 제가 일부러 그렇게 했구요 장문의 글이라 첫 댓글 다시는 분께 꼭 읽어 보고 쓰라고 그렇게 해두었습니다.
시산때 뵙기로 하겠구요
올한해도 간강한 발걸음 이어 가시기 바랍니다.
우리나라에 절이 진짜 많네요.
정성들여서 쓴 후기글
정독해야 하는데
한번에 정독하기가 힘들어요 ㅎㅎ
연초부터 큰걸음 수고 많으셨습니다.
오늘 무지 춥고 바람도 많이부네요.
제몸이 가벼워 날라가는줄 ㅎㅎ
설연휴 막날 마무리 잘하시고
새해에도 무탈한 발걸음 기원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셨죠
글은 그냥 자료로 남길까해서 좀 많이 넣은 편이구요
삼보 종찰길은 지난해인가 송광사 스님과 신도분들이 20일간 걸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다만 저와 같은 길을 걸은건 아니구요
올한해도 잘 부탁드리겠구요 아프지 마세요
천왕뽕에서 찍은 사진 한장만 눈에 들어옵니다
갑자기 불교에 관심이 오네요
먼길 수고했습니다
2부도 기대만땅
천왕봉 춥더군요 덜덜덜!~~~
멋진분 통도사에서 만나서 무지 반가웠구요
언양에서 사주셨던 국밥은 최고였답니다.
시산때 인사드릴게요
벽두부터 춥고 긴걸음 나섰네요~~
오랫만에 새해 맞는 기분으로 정독하였습니다.
불교에 무지하지만 자세히 풀어 주셔서 어느정도 이해가 되었네요.
이미 마치셨겠죠? 고생 많으셨구요,, 2부 기다릴께요
전 매화꽃 필 때 구한말 매천 황현과 고광순 의병장의 아픈 사연이 있는 구례 연곡사에 가보고 싶네요
지리산 연곡사로 가시는군요
108배 꼭 하시구요 올해 5월에 얼굴 한번 볼수 있게 해보겠습니다.
새해 복많이 받으시구요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박학다식하신 방장님의 멋진 삼보종찰 순례기 천천히 읽었지만 워낙에 많은 사실이 있는지라 다시 한번 더 읽어야 할 듯 합니다. 추운날씨에 수고 많으셨습니다. 2부도 기대합니다.
제가 하나를 기획하면 몇달간 자료 찾느라 공부를 하는편인데
그동안 걸었던 하천길이나 둘레길 그리고 진신사리길을 걸으며 눈여겨 보았던것들이 많은 도움이 되었답니다.
올해도 이어갈 정맥길 안전하게 다니시구요 오며가며 산에서 뵙기를 희망해봅니다.
징하신 울 방장님...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이제는 맘의 짐을 내려 놓으시고 편한 걸음 하세요^^
계묘년 한 해에도 건승하시길 기원합니다...^^
메리 설날~ ^^
ㅎㅎㅎ 오늘 잠시 밖에 다녀왔더니 제법 춥습니다.
이런날 어디 돌아 다녀야 하는데
좋은날은 이렇게 가나 봅니다.
시산때 봐요
방장님 덕분에 많은것을 알게 되였네요
새로운길을 시작하시는 선구자 입니다
앞으로도 건강하시고 멋진걸음이 되시길 바랍니다
추운 날씨에 먼길 수고하셨습니다
새해 복많이 받으셨죠
올한해도 잘 부탁드리겠구요
시산때 뵙겠습니다.
읽는데만해도 한참 시간을 보내는데
그 걸음걸음 글로 표현하고 쓴다는게 얼마나
힘들지 가히 짐작이 됩니다
수행하는 마음으로 걸었기에 그 모든
힘든 고통도 참아낼수 있는것이겠지요
고생하셨습니다
길떠나기는 싫고
떠나고 나면 고생이고 그러다 집으로 오면 언제 그랫냐는듯
또 다른 길위에 제가 서있습니다.
아무래도 미쳤나 봅니다.
지리산 천왕봉이 냉동고 속 같습니다.
보기만으로도 덜덜덜인데
어찌 그길을 깜깜한 밤중에 오르셨을까
부처님의 가피가 있으니
무서울게 없으셔서 그랬을까 싶습니다.
무탈하게 걸음 마치심 고생 많으셨습니다.
하나둘 이렇게 불교 그리고 그 곁을 지키고 있는 산에 대해 들여다 봅니다.
거침없는 방장님의 발길 응원드리며
건강 잘 챙기세용^^
2부 보러 갑니당~
큰스님 꽁무니 따라가며 수행하는 기분입니다.
송광사.선암사.사성암.화엄사 전부 절구경 한답시고 지붕만 쳐다보고 온터라 이제야 깊은의미를 조금 알듯합니다.
방장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신년 벌써 고행길이 시작되었네요~~걸음걸음 안전산행 하시고요 ㅎ
혼산 하시면 멧돼지도 만날터인데 ㅎ 잡히면 죽습니다 조심하세요 ㅎ
기차통 코골이 아저씨 얄밉네요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