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통상 압력의 '방파제' 무너지다
스크린쿼터제는 자국의 영화산업 보호를 위해 극장이 연중 일정 일수 이상은 자국 영화를 의무적으로 상영하도록 규정한 제도다.
한덕수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2006년 1월 26일 스크린쿼터를 현행 146일에서 73일로 축소해 7월부터 시행한다고 기습적으로 발표했다. 이에 따라 국내 영화관들이 한국영화를 연간 146일(40%) 이상 상영토록 의무화하고 있던 스크린쿼터가 2006년 7월 1일부터 절반인 73일(20%)로 축소됐다.
이는 미국 측이 그동안 집요하게 요구해왔던 한미FTA 협상의 최대 걸림돌을 우리 정부가 제거해준 것으로, 한국 정부는 미국과 주고받기 협상에서 가장 큰 무기 하나를 스스로 내다버린 셈이 됐다. 더군다나 우리의 스크린쿼터는 많은 나라들이 문화 정책의 모범으로 삼는 제도인데도 정부 스스로 이를 깎아내린 것이다.
이로써 미국 측이 한국 정부에 수차례에 걸쳐 집요하게 요구한 4대 선결조건이 스크린쿼터를 반토막 내는 걸 끝으로 1차적으로 완결됐다. 그러나 미국의 요구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사실 스크린쿼터제는 오래 전부터 ‘한미 통상’ 문제와 같은 길을 걸어온 ‘동반자’였다. 미국과 한미FTA 추진 세력들에겐 스크린쿼터가 한미 BIT, FTA 체결에 번번이 걸림돌이였겠지만, 한편으론 미국의 지나친 통상 압력을 방어해온 훌륭한 방파제이기도 했다.
그런데 김대중 정권까지 방파제 역할을 잘 수행하던 스크린쿼터도 노무현 정권의 한미FTA 집착 앞엔 어이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스크린쿼터란 방파제가 미국의 끈질긴 공세로 무너졌다기보단 노 정권 스스로 삽질(?)하고 포크레인질까지 해서 기습적으로 두동강 내버린 것이다.
당연히 미국 입장에선 수십 년 묵은 체증이 한꺼번에 가라앉은 시원함을 느꼈겠지만, 국내 영화계는 불안과 더불어 한국 정부로부터 배신당했다는 분노에 휩싸였다. 스크린쿼터 축소의 영향으로 향후 한국영화가 사그라질 때 그 책임의 상당 부분은 미국보단 노 대통령과 한미FTA 추진 세력에게 물어야 할 또다른 딜레마에 빠진 셈이다.
최근 한국 영화산업 현황
스크린쿼터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한국 영화산업의 현황을 미국 영화산업과 비교하면서 총체적으로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영화진흥위원회가 발표한 ‘2006년도판 한국영화연감’ 통계 자료와 자체 발간하는 월간지 ‘한국영화 동향과 전망’ 등을 살펴 보면, 2005년도 기준 한국 영화산업 현황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다.
◆ 한국/외국 영화 개봉 편수
2005년 대한민국 극장가에는 총 298편의 영화가 개봉됐다. 한국영화가 83편이었고, 외국영화가 215편이었다.
미국은 해마다 평균 600여 편의 영화를 제작하고 있다. 이에 반해 한국은 평균 80여 편 정도를 제작한다. 2005년도 기준으로 따져볼 때 미국은 한 해 600여 편의 영화를 만들어 이 중 엄선된 135편을 한국 시장에 내놓고 한국영화 80여 편과 경쟁한 셈이다.
◆ 한국영화 평균 제작비
한국영화 한 편을 만드는데 드는 제작비는 평균 40억 수준으로 1996년도 10억에 비하면 4배가 늘었다. 다만 2004년에는 제작비 10억 원 이하 작품이 3편에 불과했으나 2005년에는 17편으로 ‘저예산 영화’가 크게 증가했다.
◆ 한국/외국 영화 전국 관객수, 관객(시장)점유율
2005년도에 한국 및 외국 영화를 본 전국 관객수는 총 1억 4552만 명이었다. 1인당 관람 횟수는 2.98회. 이는 1996년 총 관객수 4220만 명에 비하면 3.4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
이중 한국영화는 전국에서 총 8544만 명의 관객을 동원, 관객 점유율이 58.71%였다. 이에 반해 외국영화는 6008만 명을 동원, 관객 점유율이 41.29%였다.
특히 한국영화와 외국영화의 ‘관객(시장) 점유율’은 지난 10년 동안 큰 변화를 보였다.
1996년도에는 한국영화 점유율이 23.1%에 그친데 반해 외국영화는 무려 76.9%로 외국영화의 관객 점유율이 압도적이었다. 그러나 이후 한국영화의 점유율은 꾸준히 상승했다. 특히 2001년도에는 한국영화가 전년에 비해 가파른 상승세(15% 상승)를 타며 점유율 50.1%(외국영화 49.9%)를 기록, 처음으로 절반을 넘어서며 외국영화를 누르기 시작했다. 2004년도에는 59.33%(외국영화 40.67%)까지 치솟아 외국영화를 압도하면서 이후 현재까지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같은 한국영화의 성과는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등 선진국에서조차 여전히 미국 헐리우드 메이저 영화사들의 영화가 상위권을 휩쓸며 높은 시장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점에 비추어 볼 때 눈부신 것이었다.
그러나 한국영화의 성공은 세계 영화시장의 70~80%를 장악하고 있는, 절대 강자인 미국 할리우드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미국의 한국 스크린쿼터 철폐 압력도 이런 배경과 깊은 관련이 있다. 한마디로 1996년의 상황으로 되돌려 놓고 싶은 게 미국의 의도라는 건 초등학생도 간파할 수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 기막힌 사실은 한국 영화시장 개방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는 미국은 미국 시장에서 자국 영화의 점유율이 해마다 평균 94.78%나 된다는 점이다. 이 정도라면 다른 나라에 영화시장 개방이란 말을 꺼내기조차 낯부끄러울 정도다. 세계 주요 국가에서 자국 영화 점유율이 90%를 넘는 나라는 미국과 인도(평균 94.58%) 두 나라 뿐이다.
◆ 극장수, 스크린수, 좌석수
2005년도 기준 국내 극장수는 총 301개이며, 스크린수는 1648개, 좌석수는 322,110개이다. 영화 상영관인 스크린 수는 1996년 511개에 비해 3배 넘게 증가했다.
극장의 형태도 멀티플렉스 극장이 총 158개이며, 멀티플렉스의 스크린수도 1269개(전체 스크린수의 77%)에 달해 한국 극장의 전형적인 형태로 자리매김했다.
'멀티플렉스(multiplex)'란 복합상영관이라고도 하며, 한 건물 안에 보통 5개 이상의 영화 상영관과 부대시설로 쇼핑센터, 식당, 카페, 각종 전시장, 대형주차장 등을 두루 갖추고 있는 건물을 말한다.
1998년 4월 CJ CGV가 개관한 CGV 강변11이 국내 최초로서, 이곳에서 성공으로 전국 여러 곳에 멀티플렉스 극장을 개관하게 됐다. 메가박스 시네플렉스(서울 강남구 삼성동)는 상영관 17개, 좌석수 4336개로 동양 최대 규모이다.
◆ 전국 극장 매출(한국 영화시장 규모)
2005년도 전국 극장의 총 매출액은 8981억 원으로 2004년에 비해 5.69% 증가했다. 이는 세계 7~9위 수준이다. 이중 한국영화의 극장 매출액은 5277억 원으로 2004년에 비해 4.53% 증가했고, 외국영화도 3704억 원을 기록 2004년에 비해 7.39% 늘었다.
특히 1996년도 한국영화의 극장 매출액 455억, 외국영화의 극장 매출액 1573억에 비하면 한국영화는 11배 이상, 외국영화는 2.3배 이상씩 모두 증가했다.
한편 2005년도 미국 영화산업의 미국내 극장 매출은 2004년에 비해 4억 3천만 달러가 줄어들긴 했지만 여전히 91억 달러(약 9조)로 세계 최대 규모다. 이는 우리나라 영화산업의 10배가 넘는 액수다. 2005년 총 관객수도 약 14억 2400만 명으로 우리나라의 10배다. 미국내 영화 상영 스크린 수만 해도 3만 7500개가 넘는다.
2005년 한 해 동안 1억 달러 이상을 벌어들인 미국영화는 17편이나 된다. 특히 워너브라더스, 20세기 폭스 등 미국 상위권의 영화 배급사는 한 해 수입만 13억 달러(1조 2천억)가 넘는다. 이는 미국 영화사 한 곳의 매출이 한국 영화시장 전체 매출보다 많다는 이야기다.
◆ 미국 직배사 수익 및 로열티 송금액
미국 영화 직배사는 2005년도에 한국에서 1190억원을 벌어들였고, 로열티 송금액은 447억에 달했다. 미국 직배사의 수입은 해마다 증가해 1996년도의 수입 523억, 로열티 송금액 262억 원보다 각각 2배 정도씩 증가했다.
한국영화의 성장으로 미국영화의 시장점유율이 줄어든긴 했지만 이는 결코 미국영화의 수익이 줄었다는 건 아니다. 한국영화와 동반하여 미국영화의 수익도 비슷하게 증가했다. 이는 미국의 스크린쿼터 철폐라는 통상 요구가 그만큼 근거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한국 영화시장을 아예 독식하겠다는 심보가 아니라면.
◆ 외국영화 국가별 수입 현황
2005년도에 국내에 수입된 외국영화는 총 253편이며 이중 미국 영화가 135편으로 전체 53%를 차지했다. 다음으로 일본 영화가 32편, 영국 영화 17편, 프랑스 영화가 11편 수입됐다.
수입 금액상으로는 미국이 3518만 달러(약 330억)로 전체 수입액 4683달러의 75%나 차지했다.
◆ 한국영화 해외수출 현황
2005년도에 한국영화는 총 202편을 해외에 수출해 7599만 달러(약 715억)에 달했다. 영화 1편당 수출 가격은 376,211달러(약 3.5억 원)였다. 이는 1996년도 영화 수출 실적이 80편에 고작 40만 달러, 1편당 수출 가격 13,467달러(약 1346만 원)에 비하면 엄청난 상승을 가져와 한류 열풍의 효과를 실감케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영화의 수출 지역은 주로 아시아권(특히 일본)에 집중되면서 6614만 달러로 전체 수출액 중 87%를 차지했다. 더군다나 한류 현상으로 아시아권 수출 집중도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반면 미국 등 북미지역으로 수출은 고작 2백만 달러(약 19억)에 불과해 전체 수출액 중 2.65%에 그치고 있다. 이는 유렵 지역 수출액 7백3십만 달러(9.68%)보다 훨씬 적은 액수다. 미국과 유렵 지역으로 수출은 2004년에 비해 각각 30.5%, 11.3씩 감소한 것이다. 여기에다 최근엔 일본 등에서 한류 열기가 주춤하면서 거품이 빠지자 아시아권 수출도 감소 조짐을 보이고 있다.
2005년 한 해 동안 미국영화의 수입액이 3518만 달러인데 비해 한국영화의 미국 포함 북미 지역으로 수출은 고작 200만 달러로 그 격차는 무려 18배나 된다. 할리우드 영화가 장악하고 있는 미국으로 한국영화를 수출한다는 게 그만큼 어렵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 한국영화의 내부 구조적 문제-'재벌의 난입과 독과점'
우리나라 영화시장의 독과점 체제가 위험 수위를 넘어선 것은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 현재 우리나라 영화계는 영화 ‘배급’ 시장의 빅3 재벌인 CJ, 오리온, 롯데 그룹의 CJ엔터테인먼트, 시네마서비스, 쇼박스㈜미디어플렉스, 롯데쇼핑㈜롯데엔터테인먼트 등 4개사가 전체 영화시장의 60%, 한국영화만 기준으로 하면 90%에 가까운 시장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거기에다 영화 ‘제작’ 시장에는 KT·KTF, SKT, 하나로텔레콤 등 거대 이동통신사까지 난입해 영화 제작 시장마저 싹쓸이하고 있다.
2005년 12월 6일 영화제작가들을 중심으로 ‘한국영화산업 구조 합리화 추진위원회’가 발족되었다. 위원회는 한국 영화산업의 문제점으로 영화관(극장)에만 편중된 영화 수익 구조와 투자·제작 부문의 마이너스 수익율, 부가판권시장을 초토화시키는 불법 복제 문제, 총제작비 94% 증가, 와이드 릴리즈에 따른 소수 영화의 스크린 독점 심화, 투자ㆍ배급ㆍ상영을 포괄하는 수직계열화된 기업들의 독점적 지위, 제작 스태프의 처우 개선과 인력 전문화를 아우르는 제작 시스템 개선 등을 꼽았다.
빅3 재벌기업이 90% 장악, 영화산업 독과점 위험수위
◆ 2005년도 <전국 기준> '배급사별 관객수' 순위
1위 CJ엔터테인먼트 : 전국관객수 34,113,901명 전국점유율 22.083% 2위 쇼박스(주)미디어플렉스 : 전국관객수 34,031,979명 전국점유율 22.030% 3위 시네마서비스 : 전국관객수 16,609,154명, 전국점유율 10.75% 4위 워너브라더스코리아 : 전국관객수 13,148,400명, 전국점유율 8.5% 5위 이십세기폭스코리아 : 전국관객수 10,060,620명, 전국점유율 6.5% 6위 쇼이스트 : 전국관객수 8,403,092명, 전국점유율 5.44% 7위 롯데쇼핑(주)롯데엔터테인먼트 : 전국관객수 7,335,941명, 전국점유율 4.749%
※ 빅3 재벌기업 전국점유율 합계 59.61%
◆ 2005년도 <전국 기준 한국영화> '배급사별 관객수' 순위
1위 쇼박스(주)미디어플렉스 : 전국관객수 31,098,559명, 전국점유율 36.2% 2위 CJ엔터테인먼트 : 전국관객수 25,476,154명, 전국점유율 29.6% 3위 시네마서비스 : 전국관객수 11,922,209명, 전국점유율 13.9% 5위 롯데쇼핑(주)롯데엔터테인먼트 : 전국관객수 6,783,124명, 전국점유율 7.9%
※ 빅3 재벌기업 한국영화 전국점유율 합계 87.6%
◆ 2006년도 상반기 동향
영화진흥위원회가 발표한 2006년 1~9월까지 '서울 기준' 한국 영화산업 통계 자료에 따르면, 빅3 재벌기업의 시장점유율 합계가 60%를 기록하고 있다. '한국영화만 기준'으로 보면 88.6%를 차지했다.
◆ 재벌 계열 영화사 보유 현황
* CJ그룹 계열 : 1. 국내 최고의 영화 배급사 'CJ엔터테인먼트'(시네마서비스에도 투자.인수, 영화 제작은 싸이더스, 명필름 등과 제휴), 국내 최대의 멀티플렉스 극장 체인 'CJ CGV'(전국 43개관 332개 스크린 보유(2006.10월 기준), 프리머스 시네마도 인수)
2. 영화 제작 및 배급사 '시네마서비스'(구 강우석 프로덕션, 현 CJ엔터테인먼트 관계사, 주요 흥행작-투캅스, 공공의적, 실미도, 왕의 남자), 멀티플렉스 극장 체인 '프리머스 시네마'(전국 34개관 240개 스크린 보유, 현재 CJ CGV 자회사-시네마서비스의 자회사로 출발해 2005년 10월 CJ CGV로 사실상 인수됨)
* 오리온(구 동양제과)그룹 계열 : 영화 배급사 '쇼박스(주)미디어플렉스', 멀티플렉스 극장 체인 '메가박스'(전국 17개관 141개 스크린 보유)
* 롯데그룹 계열 : 영화 배급사 '롯데쇼핑(주)롯데엔터테인먼트', 멀티플렉스 극장 체인 '롯데시네마'(전국 34개관 259개 스크린 보유)
* 예당온라인(비재벌) : 영화 제작 및 배급사 '쇼이스트'(주요 흥행작-올드보이). 2006년 5월 15일 예당온라인으로 인수됨 | CJ엔터테인먼트, 시네마서비스, 쇼박스(주)미디어플렉스, 롯데쇼핑(주)롯데엔터테인먼트는 모두 영화 제작, 투자, 배급, 상영에 이르기까지 전 부문을 수직계열화해 총괄적으로 사업을 펼치는 종합 엔터테인먼트 회사들이다.
이들은 모두 CJ, 오리온, 롯데 등 영화시장의 빅3로 불리는 재벌기업 계열로서 국내 영화시장에서 독과점 체제를 확고히 구축했다. 특히 시네마서비스와 프리머스 시네마는 흥행감독으로 유명한 강우석씨가 창립해 충무로 토착 영화사로 출발했으나 경영난 등 우여곡절을 겪다가 2005년도에 CJ그룹으로 사실상 인수된 상태다.
이에 따라 현재 CJ는 CJ엔터테인먼트, 시네마서비스와 CJ CGV, 프리머스 시네마를, 오리온은 쇼박스와 메가박스를, 롯데는 롯데쇼핑(주)롯데엔터테인먼트와 롯데시네마를 각각 제작자본투자 및 배급사 그리고 영화상영관인 멀티플렉스 극장 체인으로 거느리고 있다.
특히 이들 빅3 재벌 소속 영화관은 2005년도 전체 스크린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48%를 장악하고 있다. 빅3는 배급시장에서도 전체 개봉영화 편수의 29%를 차지한다. 아울러 전국 기준 전체 관객의 60%를 점유하고 있고, 한국영화만을 대상으로 할 경우 이 수치는 87.6%로 더욱 늘어난다.
따라서 한국영화만 기준으로 한다면 이들 빅3 재벌기업의 시장점유율 합계 87.6%는 시장지배적 사업자 3개 사업자 추정 기준인 75%를 훌쩍 뛰어넘어 독과점 상태가 된다. 또 CJ의 경우는 CJ엔터테인먼트와 시네마서비스를 합쳐 계산하면 전국 기준 시장점유율이 43.5%로 거의 50%에 육박하고 있어 1개 기업 기준 수치에도 근접하고 있다. 따라서 빅3 재벌기업은 적어도 한국영화 부문에서는 완전한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지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영화 제작 시장에 난입한 '거대 이동통신사'
영화 배급 시장을 독점한 CJ, 오리온, 롯데 그룹에 이어 ‘영화 제작’ 시장에선 ‘이동통신사’ 자본이 한국 영화산업의 새로운 강자로 떠올랐다.
여성 내의업체에서 변신해 연예인 매니지먼트와 영화 제작 및 배급업을 병행하고 있는 종합엔터테인먼트 기업 ‘아이에이치큐(IHQ, 대표 정훈탁)’는 2006년 8월 1일 46억을 출자해 영화 <괴물>의 제작사인 ‘청어람’의 지분 30%를 인수했다고 공시했다. IHQ는 잔여 지분을 살 수 있는 옵션계약을 갖고 있어 향후 청어람을 완전 인수할 계획이다.
그런데 IHQ의 최대 주주가 바로 에스케이텔레콤(SKT)이다. 즉 IHQ의 청어람 지분 인수의 배후에는 SKT가 있는 것이다. 기존에도 SKT는 IHQ를 통해 영화사 아이필름, 방송채널사용 사업자인 YTN미디어, 게임제작사 엔트리브소프트 등을 지배하고 있다. 이에 따라 SKT는 청어람의 인수로 기존 아이필름과 함께 2개의 영화제작사를 거느려 국내 정상권의 영화 제작 능력을 확보하게 됐다.
현재 국내 최대 영화제작사는 싸이더스FnH(대표 차승재, 이하 싸이더스)다. 그런데 싸이더스의 대주주도 다름아닌 KT(36%)와 KTF(15%)다. 2005년 9월 KT는 KTF와 함께 각각 196억과 84억을 공동으로 출자해 싸이더스FnH의 지분 51%를 인수했다.
이로써 ‘싸이더스’와 ‘청어람이 가세한 IHQ’는 영화 제작 물량에서 서로 1, 2위를 다투게 됐다. 그러니까 국내 최대 영화제작사 두 곳의 최대 주주로 이동통신사가 들어앉은 것이다.
여기에 최근 TV포털을 선보인 하나로텔레콤도 2006년 8월 시네마서비스와 지분투자 및 콘텐츠 수급계약을 체결했고, CJ엔터테인먼트·소니픽쳐스 등 17개 영화 관련 회사와도 제휴를 맺었다.
이처럼 거대 통신기업들이 영화산업에 대거 진출하는 것은 영화 콘텐츠 판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DMB, 와이브로, IP-TV, TV포털 등 나날이 다양해지는 신규 서비스를 위해서는 콘텐츠를 최대한 많이 확보하는 것이 관건이기 때문. 특히 SKT와 KT·KTF의 양대 진영은 서로 상대방이 영화사를 인수하고 영화펀드를 운영하면서 콘텐츠 판권 독점 등 영향력을 높이는 것을 견제하기 위해서 영화산업 진출을 확대하는 출혈 경쟁 양상까지 보이고 있다.
1990년대 중반 삼성, 대우가 영화계에 들어왔다가 철수했고, 90년대 후반 극장업을 겸한 CJ엔터테인먼트, 오리온그룹의 쇼박스, 롯데시네마가 다시 영화계에 들어와 투자·배급사의 3대 메이저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런 대기업 자본의 흐름 속에 이제 이동통신사 자본이 영화계에 본격 진출했다. 당연히 영화계에선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이제 싸움은 ‘이동통신사 자본’ 대 ‘극장업 겸한 재벌 자본’이다. 다시 말해 ‘SKT, KT·KTF’와 ‘CJ, 오리온, 롯데’의 싸움이다. 지금은 후자가 막강하다. 극장업에 더해 배급망을 이 셋이 거의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극장업을 겸하고 있다는 건 배급전쟁에서 엄청난 무기가 된다.
하지만 KT가 대주주로 있는 싸이더스는 이미 배급업에 뛰어들 계획을 밝힌 상태다. 이동통신사가 대주주인 영화사들이 배급에 나설 경우, 이들은 자체 제작 물량이 많기 때문에 자체 제작을 하지 않고 있는 씨제이, 쇼박스, 롯데보다 우월한 지위를 얻을 수 있다. 또한 같은 대기업이라 하더라도 SKT, KT·KTF의 자본력은 특히 씨제이와 쇼박스보다 훨씬 앞선다.
따라서 앞으로는 영화판의 전선이 양대 배급사의 대결에다, 양대 라이벌 이동통신사의 대결이 어우러지면서, 한층 복잡한 양상을 띨 전망이다. 그러나 한국 영화산업은 물론 문화콘텐츠 사업이 이들 소수 재벌에 의해 독점되는 현상이 갈수록 심화되면서 그 폐혜 또한 만만치 않을 것인란 점은 큰 숙제가 아닐 수 없다.
영화 다양성 파괴하는 괴물 '독과점'
이처럼 한국 영화산업은 투자와 제작, 배급, 상영에 이르는 전과정에 걸쳐 CJ, 오리온, 롯데 등 빅3 재벌에 의해 사실상 독점화된 상태다.
이에 따라 내부 계약 관계나 수익 분배 등에서 힘의 우위에 따른 불공정한 행태들이 나타나고 있다. 이들은 자사가 제작한 영화를 자사 배급망에 독점적으로 깔아 장기 흥행을 주도했다. 멀티플렉스를 거느리며 수직계열화를 이룬 이들이 전횡을 일삼은 것이다. 여기에다 매점매석에 익숙해진 극장주들이 어느새 자발적으로 스크린 독과점을 거들고 있다. 또한 초대권 남발로 극장 마케팅 비용을 제작사에 전가하거나 일방적, 차별적인 종영 결정과 이를 통한 ‘부율’ 하향 조정을 강요하기도 한다.
‘부율’은 영화 관람료 가운데 세금을 뺀 나머지를 극장과 투자·제작·배급사가 나눠갖는 비율을 말하는데, 최근 한국영화의 극장 수입 기여도가 크게 높아졌음에도 여전히 외국영화는 4(극장) : 6(투자·제작·배급사) 배분인 반면 한국영화는 5 : 5로 차별하고 있다. 이에 영화제작가들은 외국영화 기준으로 조정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결국 한국영화산업합리화추진위원회가 이런 점들을 시정하기 위해 2006년 2월 국내 3개 멀티플렉스업체와 서울시극장협회를 ‘거래조건 차별행위 및 거래상 우월적 지위 남용’을 들어 공정거래법 위반 행위로 공정거래위에 제소했다. 이와 관련 공정위의 조사 및 심사 결과가 조만간 나올 예정이다.
특히, 거액이 투자된 대작 한국영화 성공의 배후에 대형 멀티플렉스 극장을 소유한 배급사가 있다는 지적이 영화 ‘괴물’의 상영관 독점 논란과 맞물려 재점화되기도 했다. 배급독점 경쟁과 흥행기록 마케팅은 ‘실미도’로 시작해 ‘태극기…’, ‘태풍’, ‘한반도’로 이어져 ‘괴물’에서 전국 620개 스크린을 돌파하며 정점에 달했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이 영화들의 성공이 ‘마케팅과 배급에서의 승리’가 아니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물론 관객들 스스로가 영화 자체를 선택했다고 여기지만, 이미 그 영화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최근 국내 배급 시스템에 문제 제기를 하며 향후 자신의 영화를 국내에선 개봉하지 않겠다고 밝혀 논란이 된 김기덕 감독의 발언도 이런 배경이 깔려있다.
이처럼 특정 영화기업들은 독점으로 인해 최대의 이익을 얻고 있지만 그 이면에 한국영화의 다양성이 무너지고 있다. 올해 베니스, 베를린, 칸 등 세계 3대 영화제에서 한국영화는 단 한편도 본선 경쟁부문에 오르지 못했다. 다양한 영화가 스크린에서 상영될 기회를 차단당한 결과다. 영화 독과점이 국민들의 문화 소비 주권을 침해하고 영화시장의 다양성을 파괴할 가능성이 그만큼 높다는 걸 의미한다.
1,00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괴물 등 몇몇 초대박 영화는 한국 영화시장의 외연을 넓히고 규모를 키웠지만, ‘쏠림현상’은 더욱 심화시켰다. 대중적 재미와 작품성, 예술성에 대한 검증과 판단을 거치기 전에 와이드 릴리즈(대규모 동시 개봉) 방식으로 ‘무조건 많은 극장을 잡고 보자.’, ‘큰 숫자가 더 큰 숫자를 부른다.’는 한국 영화산업의 ‘배급ㆍ마케팅 지상주의’를 더욱 고착화시켰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이런 ‘영화흥행 대세론’은 한국영화를 또다른 위기로 몰고갈 수도 있다. ‘영화흥행 대세론’은 한국 대중 특유의 ‘붐’ 편승 현상에서 비롯된다. 월드컵 등에서 알 수 있듯 우리나라 대중은 하나의 거대한 이벤트를 좇는 경향이 유독 강하다. 대중문화 상품도 이 상품을 소비해야만 대중으로부터 소외되지 않는다는 명분을 제시하며 영화흥행을 사회적 이슈로 몰고가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괴물’이 문화의 다양성을 위해 한국영화계에 던진 숙제다.
관객 1000명 이하 영화도 부지기수
한편 2003년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가 관객 1천만 명 시대를 연 이후 이제는 1, 2백만 명을 동원한 영화는 ‘흥행작 명함’을 내밀기도 쑥스러운 상황이 됐다. 많은 제작비와 수입가를 들여 대규모 개봉을 하는 큰 영화의 성공 기준은 점점 올라가서 3, 4백만 명을 동원하고도 흥행에 실패한 영화들이 나타나는 형국이다.
그러나 2005년도만 해도 1만 명 이하의 관객을 동원한 한국영화는 19편, 외국영화는 88편으로 전체 극장 개봉작의 약 36%가 관객 1만 명도 채 동원하지 못했다. 1만 명은 고사하고 관객 1천 명 이하를 동원한 영화도 부지기수다. 이런 통계는 자못 충격적이다. 관객이 고작 몇백 명이라면 영화 제작비 혹은 수입가, P&A 비용은 물론 프린트 1벌 값에도 못 미치는 수익만이 극장에서 회수됐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많은 제작사들이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이처럼 한국 영화산업의 규모는 커지고 있지만, 작품 3편당 1편만이 겨우 손익분기점을 넘기고 있다. 현재 한국 영화산업은 ‘대박’ 아니면 ‘쪽박’인 극히 취약한 구조가 심화되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극장이 온갖 불공정한 횡포를 저지르면서 영화산업의 수익을 독차지하려는 구조가 고착된다면 한국 영화산업의 창의력은 꽃을 피우기 어려울 것이다. 게다가 극소수의 대박 영화만을 사례로 이를 자동차 대수에 비교하는 경박함이 우리 정부의 인식 수준이다.
마이너리티 쿼터·내부거래 감시制 등 시급
한국 영화산업의 미래를 위해 스크린쿼터 유지도 문제지만, 재벌계열 영화자본의 불공정 거래 행태를 감시할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건 더이상 이론의 여지가 없다. 이에 따라 영화산업에 대한 별도의 고시 제정이나 독과점 금지 조항을 영화진흥법에 추가해야 한다는 주장 등이 힘을 얻고 있다.
또 특정 영화의 스크린 싹쓸이로 인한 다양성 파괴를 막기 위해,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영비법)’ 개정을 통해 한 멀티플렉스 내에서 한 영화가 동시에 상영될 수 있는 스크린 수의 비율을 제한하고(프린트 벌수 제한 포함), 일정수 이상의 스크린을 보유한 멀티플렉스에 예술영화ㆍ독립영화ㆍ저예산영화 등 인디영화로 불리는 작은 영화들을 상영할 ‘대안영화 상영관’ 설치를 의무화하는 방안(마이너리티 쿼터제) 등을 강구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나오고 있다.
여기에 극장주와 배급사의 수익 배분 비율(부율) 재조정이 추가된다. 또한 소득 격차에 따른 저소득층의 영화 관람 소외 현상이 심각하기 때문에 영화관람비 지출에 대한 소득공제 제도 도입 등 다양한 지원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들 정책들은 인디영화의 연속된 흥행 부진과 영화계 내의 다양한 이해관계 등으로 당장 실현될 가능성이 적은 실정이다. 따라서 일부 전문가들은 거대 배급업체가 내부자 거래를 행하거나 특정 영화의 상영을 봉쇄하는 등의 불공정 행위를 감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마련에 우선 힘을 쏟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장 '스태프'의 열악한 처우 개선도
스타시스템이 확대되면서 스타 배우들의 초고액 개런티 이면에 신음하고 있는 영화노동자들이 있다. 바로 ‘현장 스태프’들이다. 밤잠을 설치며 같은 고생을 하지만 4대 보험에도 가입하지 못하고, 연봉이 몇 백만 원밖에 되지 않는 이들의 처지는 호화 연예인들에게 종종 비난의 화살이 되기도 한다.
이들의 처우 개선에 모든 영화인들과 정부 당국이 보다 관심을 갖고 개선 방안을 찾아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현장 스태프의 열악한 처우와 관련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게 이른바 팀별계약(통계약)과 무기계약(작품당계약) 같은 ‘스태프계약서’인데 모든 형태의 스태프 계약에 적용될 ‘표준근로계약서’의 도입이 절실하다고 한다.
임금의 경우도 도급식 지급 관행을 탈피하고 주급제로 전환하거나, 특히 최저수준의 생계 보장이 이루어져야 한다. 실업과 고용이 반복되는 스태프 직업의 특성상 실업급여제도가 필수적인데 4대 보험의 가입을 늘리고, 실업급여의 수급요건을 완화해줄 필요성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편 이런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 2005년 12월 출범한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과 한국영화제작가협회 교섭단은 2006년 9차례에 걸쳐 머리를 맞대고 산별단체교섭을 벌여 최근 잠정적으로 합의된 세부내용을 공개했다.
주요 내용은 영화제작사 간 분할, 합병, 영업양도 등으로 노사 당사자가 변경되는 경우 폭넓은 고용 승계, 표준근로계약서 도입, 근로시간의 근로기준법 준수, 산업재해와 사고예방에 제작사의 주의 의무와 책임 강화 등이다. 모든 합의사항은 6개월간의 준비기간을 거친 후 2007년 7월 1일부터 현장에 적용될 예정이다.
끝나지 않은 미국의 탐욕-스크린쿼터제 어디까지 왔나
2006년 10월 23일 본격적인 빅딜이 오고가는 한미FTA 4차 협상이 제주에서 시작되었다. 그런데 이날 한국협상단이 ‘무역구제’ 분야에서 미국 측의 양보를 얻어내기 위해 다시 영화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는 정보가 한겨레신문에 공개되었다.
그런가 하면 영자신문 ‘코리아타임스’는 10월 27일 자체 입수한 ‘9월 11일자 정부 내부문건’을 인용해 “정부가 한미FTA 협상의 걸림돌을 제거하기 위해 스크린쿼터를 (추가로 더) 축소하라는 미국 측 요구를 비밀리에 수용했다.”고 보도했다.
이 문건에는 “우리가 미국 측으로부터 양보를 받아낼 것이라는-즉, 국내 영화산업이 난관에 부닥칠 경우 한국영화에 대한 스크린쿼터를 원래대로 복귀한다는- 말은 단지 국내 영화산업을 달래려는 설득 카드에 불과하다.”고 쓰여 있다.
이같은 보도들은 4대 선결조건으로 스크린쿼터 축소를 헌납한 후 더이상 영화분야에서의 양보는 없다던 정부 측 입장을 정면으로 뒤엎는 것이어서 파문이 일고 있다.
2006년 10월 24일자 한겨레신문은 정부 고위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미국은 한국 협상단이 '미래유보'로 분류해 놓은 스크린쿼터를 '현재유보'로 바꾸도록 할 것과, 영화를 디지털 제품으로 인정하고 디지털 전송을 통한 영화상영은 아예 유보 대상에서 제외해 전면 개방을 해달라고 요구하였으며, 한국 협상단은 무역구제 부분에서 성과를 얻기 위해 이를 양보하는 전략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현재유보’란 서비스 개방과 관련해 현재 존재하는 규제는 인정하되 앞으로 추가 규제는 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다(후퇴방지). 이에 따라 73일로 축소된 스크린쿼터 일수를 더 축소는 할 수 있으되, 영원히 더 늘릴 수 없게 된다. 이에 반해 ‘미래유보’는 정부가 협정 발효 이후 국내 산업을 보호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면 다시 규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영화산업이 위기에 처하면 스크린쿼터 일수를 다시 원상회복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디지털 전송을 통한 할리우드 영화의 직배를 전면 허용하는 것은 사실상 디지털 시네마의 시대로 들어선 상황에서 스크린쿼터 자체의 의미를 무력화할 수도 있다. 머지 않아 모든 영화관의 영화 상영 시스템은 ‘영사기를 통한 아날로그 방식’에서 ‘위성을 통한 디지털 방식’으로 바뀐다. 따라서 이러한 미국의 요구는 극장에 대한 스크린쿼터의 완전한 폐기처분을 의미할 수도 있다.
애초 외교통상부는 무역구제 분야에서 성과를 얻기 위해 희생양을 찾다가 의약품 분야를 연계하는 전략을 추진했으나 보건복지부 장관이 강하게 반대하자 영화 분야를 새로운 협상카드로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이에 대해 문화관광부는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반박 보도자료까지 냈다. 그러나 실제 협상을 이끌고 있는 외통부와 재경부에 문광부가 전혀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음을 협상 시작 전부터 지금까지 계속 보고 온 터라 문광부의 의지는 ‘글쎄올시다’이다.
한편 한국영화에 대한 보호무역정책이 한국영화의 의무상영제(스크린쿼터제)라는 형태로 처음 등장한 것은 1966년 영화법 제2차 개정을 통해서다. 이에 따라 한국에서 스크린쿼터제를 처음 시행한 것은 1967년부터다. 한국영화 의무상영을 골자로 한 스크린쿼터제는 이후 몇 차례의 개정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외국 영화에 대한 개방은 1985년 한미영화협상의 결정으로 단행된 영화시장 개방으로 시작되었다. 이후 한국 영화산업은 외화 수입에 치중하는 행태를 보이게 되었으며, 한국영화의 제작 경쟁력 확보에 커다란 차질을 가져왔다. 한국 영화시장의 개방은 미국 할리우드의 영화산업 전략의 결과물이었다.
그러다 1990년대 초반 이후 대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진출, 그리고 멀티플렉스의 증가, 새로운 제작자와 감독의 충원 등이 어우러져 한국 영화산업의 근대화를 가져왔다. 특히 1993년부터 출범한 스크린쿼터 감시단(현 스크린쿼터 문화연대)의 적극적인 활동으로 영화관들의 허위상영 일수가 줄어들고, 이는 직접적으로 한국영화의 시장점유율 상승으로 이어졌다. 다음으로 스크린쿼터 문제는 주지하사디피 1998년 한미투자협정(BIT) 협상 과정에서 크게 쟁점화됐다. 따라서 스크린쿼터제는 한미BIT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를 형성했다.
한미BIT와 관련해서는 ‘이행 의무 부과 금지 조항(6조)’이 특히 문제가 됐다. 즉, 극장업에 투자한 투자가에게 한국 정부가 <영화진흥법>에 의거 영화산업 보호를 위해 부과한 국산영화 의무 상영 일수라는 ‘현지 생산품(local content) 사용 의무’를 부과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당시 IMF 외환위기 극복 전략의 일환으로 검토되었던 한미BIT는 그렇지만 영화인들의 강력한 반발에 의해 협상 타결에 이르지 못하고 중단됐다. 이후 간헐적으로 재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 문제가 본격적인 쟁점으로 다시 등장한 것은 노무현 정부가 출범한 2003년이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사실은 한미투자협정 추진과 스크린쿼터 철폐 문제가 노무현 대통령과 재벌 총수들 간 삼계탕 회동에서 제안되었다는 사실이다. 정권과 재벌의 합작품이었다는 것이다.
결국 2006년 1월 26일 노 정권은 한미FTA 협상 개시를 위한 ‘분위기 조성용’ 제물로 스크린쿼터 축소를 기습적으로 단행했다.
그러나 당시 스크린쿼터 축소 결정과 관련해 주무부처인 문화관광부는 26일 “문광부의 스크린쿼터에 대한 방침은 유지 혹은 국내 영화계가 인정할 수준까지의 축소였다. 그러나 스크린쿼터 절반 축소는 인정할만한 수준을 넘어섰다.”며 불만을 감추지 않았다. 문광부 관계자는 또 “이번 결정은 이날 오전 열린 관계장관회의에서 전격 결정된 것으로 보인다.”며 “문광부 내부적으로는 이번 결정에 대해 유감스럽다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한미FTA 관련 미국 측 요구에 대해 주무부처와 사전에 충분한 논의도 없이 한미FTA 추진을 주도하는 노무현 정부 핵심과 일부 관료들에 의해 일방적으로 진행되었음을 부여주는 대목이다.
이를 반영하듯 국회 문화관광위 소속 여야 국회의원들도 이날 ‘스크린쿼터 축소 방침을 즉각 중단하라’는 성명을 냈다. 이들은 성명에서 “70% 가까운 국민들이 스크린쿼터 현행 유지를 지지하고 있으며 따라서 스크린쿼터 유지가 일부 이기적인 영화인들의 입장이 아니다.”고 전제하고 “미국이 한국의 스크린쿼터 정책을 눈엣가시로 여기는 까닭은 아시아, 유럽을 비롯한 세계 각국이 한국의 스크린쿼터 정책을 모범적인 문화정책으로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며 정부 방침에 일침을 가했다.
또한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은 이날 노 정권의 스크린쿼터 절반 축소 결정에 대해 “대미 굴욕외교”, “문화 주권을 팔아먹은 행위”라며 일제히 비난했다.
그러나 로버트 포트먼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이날 한국의 스크린쿼터 절반 축소 조치가 한국의 영화 관객과 미국 영화산업에 “좋은 뉴스”라고 환영했다. 포트먼 대표는 이날 발표한 USTR 성명에서 “한국의 스크린쿼터제로 인해 미국 영화가 심대한 불이익을 받아 왔으나, 이번 조치는 이를 고치는 데 도움이 되고 한국민에겐 영화 선택권을 넓혀 줄 것.”이라고 말했다.
스크린쿼터 축소의 과정은 한미FTA와 관련한 국가 차원의 모든 결정과 일정들이 한미FTA를 주도하는 노무현 정권 내 핵심인사와 몇몇 관료들에 의해 극비리에 수립되고, 군사작전하듯 전개되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이 과정에서 주목할만한 사실은 노 정권의 한미FTA를 위한 스크린쿼터 철폐를 열렬히 후원한 세력이 노 정권의 대선 당시 지지세력이 아나라 번번이 딴지를 걸어왔던 재벌과 조중동을 위시한 보수신문 그리고 바른사회를 위한 시민회의, 자유주의연대 등과 같은 보수단체들이었다는 것이다.
“스크린쿼터제가 한미FTA로 가는 마지막 걸림돌.”이라며 목청을 높였던 이들의 주장은 노 대통령과 한미FTA 추진 관료들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 마치 확성기를 틀어놓은 것처럼 ‘판박이’였다.
이에 반해 영화인들은 노 대통령이 대선 당시의 공약을 깨고 스크린쿼터를 기습적으로 반토막 낸 데 대해 깊은 배신감에 휩싸이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2006년 7월 1일엔 5,000여 명의 영화인들이 서울 광화문에 모여 “노무현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 권위를 상실했다. 집으로 돌아가라. 열린우리당은 해체하라.”며 대통령 및 정부와 여당에 강한 불만을 표출했다. 이들은 ‘참여정부엔 국민이 없다’란 문화제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해 한덕수 경제부총리, 김현종 통상본부장, 정문수 청와대 경제보좌관, 보수 언론을 ‘한미FTA 오적(五賊)’으로 규정해 화형식을 열기도 했다.
이들은 아직도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고 말하며, 1인 시위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스크린쿼터제의 원상 회복을 외치고 있다.
스크린쿼터 쟁점들
스크린쿼터 문제를 바라보는 일반인의 시각은 좀 복잡한 것 같다. ‘스타 배우들의 고액 출연료 문제 있다’ 75.3%, ‘스크린쿼터 축소는 반대하며 유지해야 한다’ 75.6%란 여론조사가 이를 보여준다.
스크린쿼터제 사수를 주장하며 거리로 나온 인기 연예인들의 모습은 아직도 낯선 풍경이다. 만인의 선망의 대상이자 한 해 수억 원을 벌어들이는 호화 연예인들의 ‘밥그릇 지키기’란 질시도 엄연히 존재한다. 그래서 문화정체성을 지켜야 한다는 영화인들의 고상한(?) 주장이 양극화가 심화된 사회 저번의 인식과 맞물리면서 가끔은 ‘배부른 소리’로 들리기도 한다.
그럼에도 국민 상당수의 여론은 스크린쿼터제는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국의 집요하고 일방적인 압력이 못마땅하고, 축소는 국익에 손해다는 인식도 함께 존재하기 때문이다.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스크린쿼터제는 분명 문화적으로나 경제적 효과 면에서 성공을 거둔 몇 안되는 정책이다. 이 점은 스크린쿼터에 대한 찬.반을 떠나 국제적으로도 한국의 스크린쿼터제는 모범 사례로 정평이 나 있다.
그러니 세계 영화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미국 할리우드 입장에선 한국의 스크린쿼터제야말로 ‘눈엣가시’가 아닐 수 없었다. 작년(2005년) 10월 무려 세계 148개국이 스크린쿼터제가 정당한 조치라는 걸 국제적으로 인정해 UN에서 ‘문화 다양성 협약’까지 채택했지만, 미국은 협약문이 잉크도 채 마르기도 전에 한국에 스크린쿼터 축소를 협박해왔다. 이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선 국제질서도 무시하는 오만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스크린쿼터 축소의 영향
스크린쿼터 문화연대의 의뢰로 연구를 진행해온 ‘스크린쿼터 경제효과 프로젝트팀’(연구책임자 이해영 한신대 교수)은 2004년 4월 28일 발표한 『스크린쿼터제의 경제적 효과와 한미투자협정(BIT)』이라는 연구 보고서를 통해 “스크린쿼터가 하루 축소되면 국내 영화시장 규모가 327억9600만 원이 감소하며, 10일이 축소되면 3084억 원, 20일 축소 시 5736억 원, 50일 축소 시 1조 1094억 원이 각각 줄어든다.”고 발표했다.
이는 2006년 한국영화 매출액이 2002년 대비 큰 폭으로 증가했음을 고려하여 시장 규모를 다시 편성해 시뮬레이션을 할 경우 그 피해액은 더욱 커진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또 2003년 영화진흥위원회에서 나온 단행본 『한미투자협정과 스크린쿼터』에 의하면, 2002년 기준으로 극장매출, 영화제작과 영화상영, 비디오와 DVD, 광고, 게임, 음반 등의 부가가치 효과 등을 합하면 한국 영화산업을 둘러싼 시장규모는 약 2조 6248억 원 정도(한국영화만 기준)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따라서 2006년도는 그 규모가 더 커졌다고 볼 수 있다.
아울러, 집계에 포함되지 않은 국가이미지 홍보 효과나 최근 한류 현상과 더불어 급팽창한 수출시장의 규모를 추가적으로 고려하면 한국 영화시장의 경제 규모는 더욱 커질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해진다.
프로젝트팀의 보고서는 또 한국 영화시장의 성장은 소위 몇몇 대박 영화에 의존하는 비율이 너무 커 불안전한 수요곡선을 그리고 있기 때문에 한국영화의 사활은 안정적 자본 공급과 안정된 수요에 달려 있다며 스크린쿼터제는 이를 보장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로 기능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최근 한국영화 시장점유율 50% 시대를 맞아 ‘이제는 스크린쿼터제가 없어도 되지 않는가’라고 말하는 것은 안이한 사고라고 일축했다. 스크린쿼터제는 한국 영화산업 전체의 파이를 키우는데 기여함으로써 한국영화와 외국영화의 이른바 ‘윈-윈 게임’을 선도한 시스템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2006년 5월 영화 투자사, 제작사, 배급사, 극장, 홍보ㆍ마케팅사 등 영화산업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이들은 향후 2~3년(평균 2.65년) 후에 스크린쿼터를 축소한 산업적 결과가 본격적으로 드러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들의 78.9%가 한국 영화산업의 성장이 스크린쿼터 덕분이었다고 진단했고, 스크린쿼터 축소 이후의 영화산업 전망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의견이 65.2%나 됐다.
찬반 떠나 盧 정권의 거짓·기만은 "혀를 내두를 정도"
노무현 대통령과 한미FTA 추진 관료들이 한미FTA 성사에 집착해 스크린쿼터를 두동강 내는 과정에서 보여준 말바꾸기·거짓말과 대국민 기만은 자못 심각했다.
그동안 노무현 대통령과 한미FTA 주도 관료들은 “그렇게 자신감이 없느냐.”, “스크린쿼터 제도는 영화산업의 경쟁력 향상을 위해 한미FTA와 관계없이 없애야 하는 것.”이라며 국민을 선동해 왔다.
그러나 비공개 정부 보고서인 2005년 9월 12일자 ‘제5차 대외경제위원회 안건’ 보고서와 국민경제위원회가 용역 의뢰한 산업연구원의 ‘한미FTA 관련 시청각서비스 분야 개방의 영향 분석(2005.9)’ 보고서에 따르면 이들의 주장이 거짓이었음을 매우 구체적으로 증명해주고 있다.
<제5차 대외경제위원회 안건 자료>에는 “스크린쿼터를 축소할 경우 멕시코, 대만 등의 사례에서 보듯이 국내에서 미국 영화의 시장지배력이 크게 확대되어 국내 영화산업이 축소되고 국제경쟁력을 상실할 우려가 크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구체적으로 스크린쿼터를 미국 요구대로 20%로 축소할 경우, 영화산업의 매출액은 최대 1277억원, 고용은 2439명 감소할 가능성이 있고, 영화부문 특히 투자부문이 위축되는 것으로 이 자료는 보고하고 있다.
또 <한미FTA 관련 시청각서비스 분야 개방의 영향 분석> 보고서에는 “미국은 자국 영화산업의 한국 내 시장 확대의 잠재적인 걸림돌을 완전히 제거하고, 향후 중국 등 잠재력이 큰 시장 진출을 위한 포석으로 우선적으로 한국의 스크린쿼터 폐지를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중국 영화시장은 해마다 20%씩 고성장 추세다. 중국 경제의 성장세와 더불어 13억 인구를 가진 중국의 영화시장은 잠재력이 무궁무진하다. 이 때문에 중국의 외국영화 규제 정책을 철폐시키기 위해 모범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한국의 스크린쿼터제부터 우선 처치하겠다는 것이 미국의 속셈임을 정부 보고서는 정확히 읽고 있었다.
이 보고서는 또 “스크린쿼터 축소 문제가 해결될 경우 미국은 이후에도 스크린쿼터의 완전 철폐와 방송, 광고 등 자국의 경쟁력이 높은 것으로 판단되는 기타 분야로 전환하여 지속적으로 미국식 스탠더드 적용을 요구할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이 보고서는 멕시코 등의 사례 분석을 통해 “스크린쿼터 폐지에 의해 한번 무너진 영화산업은 나중에 스크린쿼터를 재조정하거나 지원정책을 추진하더라도 효과가 거의 없었다.”고 지적했다.
결국 이들 보고서는 정부가 비공개 회의를 통해서 스크린쿼터제가 한국 영화산업의 경쟁력 향상에 크게 기여해왔고, 스크린쿼터를 축소하면 한국의 영화산업에 중장기적으로 큰 피해가 올 거라는 걸 알고 있었으면서도 한미FTA 성사를 위해 스크린쿼터 축소를 강행한 이후에는 정반대의 거짓말로 국민을 선동해왔다는 걸 방증한다.
이 외에도 <한미FTA 역사쓰기>는 앞서 4대 선결조건 등을 다루면서 스크린쿼터 문제와 관련하여 노 정권이 보인 거짓말과 말바꾸기 행태에 대해 충분히 살펴본 바 있다.
특히 한.미 간 영화산업의 극심한 격차 즉, 미국 시장에서 한국 영화의 점유율이 거의 없다시피 하고, 무역수지 적자 폭이 무려 25배나 되는 사실을 우리 협상단이 미국에 왜 안 따지냐는 지적에 “그건 미국 사람이 우리 영화를 잘 안보기 때문이다. (우리 영화인들이) 미국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영화를 만들면 될 것 아니냐.”고 답한 김종훈 협상단 수석대표의 발언은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며 한 편의 웃지 못할 코미디를 연출하기도 했다.
한국 정부, 문화다양성협약 찬성해 놓고 가장 먼저 '배신'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유네스코·UNESCO)는 2005년 10월 20일 프랑스 파리에서 제33차 총회를 열어 ‘문화적 표현의 다양성 보호와 증진을 위한 협약’(이하 '문화다양성협약')을 압도적 표차로 채택했다.
유네스코는 154 회원국 대표가 참석한 이날 총회 표결에서 찬성 148, 반대 2, 기권 4로 협약안을 통과시켰다. 반대표를 던진 나라는 미국과 이스라엘 뿐이었으며, 기권은 오스트레일리아·니카라과·라이베리아·온두라스다.
한편 유네스코 한국 대표부도 투표에서 찬성표를 던졌다. 하지만 투표 직후 미국의 입장을 지지하는 듯한 성명을 발표하는 등 어정쩡한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미국 대 비미국의 대결로 진행된 이 협약의 논의를 주도한 나라로 프랑스, 캐나다와 더불어 한국을 빼놓을 수 없다. 한국의 문화시민단체들은 이 협약 채택에 대한 여론 조성에 발벗고 나서온 국제문화전문가단체회의(CCD)와 세계문화엔지오총회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왔으며, 특히 한국의 스크린쿼터제와 이를 지키기위한 시민운동은 문화다양성을 지키기 위한 모범사례로 언급되면서 전 세계의 주목과 찬사를 받아왔다. 한국의 스크린쿼터제가 문화다양성협약 채택에 큰 견인차 역할을 한 것이다.
협약은 30개국 이상의 비준을 거치면 정식 발효된다. 비준하지 않는 나라에는 협약의 구속력이 없다. 따라서 문화다양성협약이란 국회의 비준이 없으면 효력이 없다.
‘문화 다양성 협약’의 채택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 건 문화상품이 단순한 상업적 가치로 취급될 수 없음을 명시한 것으로 그동안 미국이 문화상품시장 개방을 위해 각종 통상압력을 행사하며 일방적이고 패권적으로 진행시켜온 양국간, 다자간 통상협정의 흐름에 제동을 걸 수 있는 있는 국제법적 근거를 마련했다는 점이다.
이처럼 ‘문화다양성협약’은 신자유주의의 깃발 아래 가속화되어 온 문화의 획일화, 미국화 현상에 제동을 걸기 위해 전세계가 힘을 합쳐 출범시킨 국제규범으로 비미국의 국제정치적 승리이자 인류 문화사에 획기적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특히 협약 6조 ‘국가적 차원의 당사국 권리’ 조항은 “자국의 특수한 상황과 필요성을 고려해 그 영토 안에서 문화적 표현의 다양성 보호 및 증진을 목적으로 하는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규정해 한국의 ‘스크린쿼터제’와 같은 자국 문화상품 보호 제도를 정당화했다.
또 협약 2조 2항의 ‘주권의 원칙’에서는 “국가는 자국 영토 내에서 문화적 표현의 다양성을 보호, 증진하기 위한 조치와 정책을 채택하는 주권적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해 시장의 독재에 국가가 제동을 걸 수 있도록 했다. 이 협약은 영화뿐만 아니라 음악, 미술 등 모든 장르의 예술을 포괄하고 이것의 창작과 배포, 나아가 소비자의 향유까지 모두 문화적 표현으로 간주하고 있다.
이에 따라 문화다양성협약은 시장 논리 아래 비관세장벽으로 간주되던 각국의 문화 지원 정책을 국제법적으로 보장하고 있어 이 규범을 통해서 각국이 자국 내에서 다양한 문화 지원 정책이나 재정적 지원을 세울 법적 근거도 확보됐다.
따라서 문화다양성협약이 국회 비준절차를 거친 뒤 국제법적 효력을 발휘하게 되면 스크린쿼터나 방송쿼터의 축소·폐지 논란이 크게 줄어든다.
문화다양성협약 채택 이후, 세계 각국은 문화다양성협약의 비준 절차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협약 채택 이후 7개월도 되지 않은 시점임에도 이미 캐나다와 모리셔스가 국내 비준 절차를 마치고 비준서를 유네스코에 기탁하였고, 멕시코와 부르키나 파소, 캄보디아는 국내 비준을 마치고 비준서 기탁을 준비하고 있다. 또한, 유럽의 경우 핀란드, 프랑스, 오스트리아, 키프로스, 슬로바키아 등의 유럽 국가들이 향후 몇 달 내에 비준을 완료할 것으로 보이며, EU는 다수 회원국의 비준이 완료되는 대로 공동으로 비준서를 기탁할 예정이다.
그러나 문제는 사실상 유일한 반대국가인 ‘미국’이었다. 미국은 교토기후협약 등 그동안 자국 이익에 상충되는 다자간 협약에 가입하지 않거나 탈퇴해온 전례를 감안할 때 앞으로 미국이 계속 거부할 경우 이 협약이 얼마만큼 실효를 거둘 수 있을지는 아직 장담할 수 없다. 미국이 이 협약을 결사적으로 반대한 것은 할리우드 영화의 세계 지배를 염두에 둔 것임은 불문가지다.
아직 30개국 이상의 나라에서 비준이 완료되지 않아 협약이 발효되지 못하는 사이에 미국은 각국을 상대로 FTA를 추진하고 있다. 미국은 FTA 협상을 통해 상대국에 스크린쿼터 철폐 등을 요구하며 문화다양성협약이라는 새로운 국제 질서를 무력화하고 미국 문화를 이식하기에 여념이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 통상교섭본부는 문화협약 통과가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에 미칠 영향에 대해 “유네스코 협약과 같은 다자간 협약과 FTA 협상과 같은 양자간 협상은 별개의 문제.”라는 반응을 보이며 철저하게 미국 편에 섰다.
결국 문화다양성협약 지지에 한 표를 행사했던 한국 정부는 협약문이 잉크도 채 마르기 전인, 불과 ‘3달 만에’ 미국의 요구에 부응해 세계의 모범사례로 칭송받던 스크린쿼터제를 한미FTA 선결조건으로 일거에 두동강 내버렸다. 이로써 한국은 나머지 147개 협약 지지국에 등을 돌리고 협약정신에 반하는 행태에 누구보다 앞장선 것이다.
많은 문화예술인들은 노 정권이 앞으로도 얼마나 더한 문화시장 개방으로 문화의 가치를 시장에 내동댕이칠지 크게 우려하며 분노하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제11회 부산국제영화제(PIFF)를 찾은 36개국 영화인, 문화예술인들은 2006년 10월 15일 스크린쿼터의 원상회복을 요구하는 공동선언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어떤 나라이든지 무역협상에서 문화 분야 개방 압력을 넣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는 점을 국제사회에 강력히 요구한다.”고 밝히고, 한국 정부에 대해서도 “문화다양성협약의 중요성을 인식해 하루 빨리 협약을 비준할 것.”을 촉구했다.
"스크린쿼터 날짜, 아예 법으로 박아두자" "문화다양성협약 조속한 국회 비준도"
또한 국회 문화관광위원회의 뜻있는 일부 의원들도 2006년 1월 26일과 2월 8일, 5월 19일 연이어 문화다양성협약의 조속한 국회 비준을 촉구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일부 의원들은 영화진흥법 등 법령에 스크린쿼터 날짜를 아예 명시하는 법안을 제출하고, 조속한 국회 통과를 촉구하기도 했다.
현재는 1년에 73일로 돼 있는 스크린쿼터 비율 규정이 영화진흥법 ‘시행령’에 담겨 있어 그 축소 여부를 정부가 마음 먹은 대로 국무회의에서 결정할 수 있으나, 이를 영화진흥법 등 모법에 명문화하면 국회를 거쳐야만 축소가 가능하다.
이에 따라 2004년 7월 15일 한나라당 정병국 의원을 비롯한 국회의원 38명은 정부의 자의적인 스크린쿼터 축소를 막자는 취지로 영화진흥법에 스크린쿼터 ‘146일 유지’를 담은 개정안을 제출했으나 현재까지 열린우리당, 한나라당 등 두 거대 정당의 무관심으로 문광위에서 먼지만 쌓이고 있다.
보다 못한 국회 문화관광위원회 소속 김재윤(열린우리당)·손봉숙(민주당)·정병국(한나라당)·천영세(민주노동당) 의원 등이 스크린쿼터 사수 영화인 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들과 함께 2006년 2월 8일 기자회견을 열고 “17대 국회에서 스크린쿼터 현행 유지를 위한 영화진흥법 개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며 의지를 보이기도 했지만 역부족인 상태다.
다소 논란은 있겠지만 이들의 요구대로 된다면 미국의 압력으로부터 스크린쿼터제를 보존하는 데 유효한 방책임은 분명해 보인다.
(한미FTA 역사 쓰기는 계속 이어집니다)
* 한미FTA 관련자료를 더 보실 분들은 참정연 홈페이지( http://www.cjycjy.org/ )를 방문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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