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 속의 그대
한미정
코로나가 시작된 지 벌써 햇수로 3년째다. 마스크 부족으로 대란을 겪으면서 하루도 마스크 없는 외출을 상상할 수가 없었다. 2023년 3월 20일 정부는 2년 5개월 간 지속 되었던 버스, 지하철, 비행기 등 대중교통 이용 시 마스크 착용 의무를 해제했다. 결코 짧지 않았던 시간이었다. 우리의 건강을 책임지고 지켜주었던 일상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될 작지만 결코 작지 않은 큰 수비수 역할을 해 주었던 마스크다. 이제는 마스크 없이 대로를 활보해도 법적 제재를 가하지 않는다는 프리 선언을 했다. 하지만, 오늘도 나는 어김없이 마스크를 챙겨 쓰고 외출을 준비 한다.
온갖 풍파 속에서도 계절은 소리 소문 없이 바뀌고 벚꽃은 천지에 만개하였다. 새초롬하지만 따사롭게 불어대는 4월의 봄바람에 꽃잎이 눈처럼 휘날린다. 꽃들이 나에게 속삭이듯 말을 건다.
‘그동안 고생 했어’
나의 모습은 3년 전 그대로 인듯한데 자연은 꾸준히 변화를 멈추지 않았던 덕분에 세상을 꽃으로 아름답게 수를 놓았다. 코로나로 많은 이들이 전염병에 감염되어 힘들어 했고 또한 많은 이들이 하늘의 별이 되었던 힘겨운 시간들, 잘 버티어 무탈하게 마스크 없는 일상을 맞이하는 지금, 알 듯 모를 듯 미묘한 감정의 회오리 속에서 주변을 둘러본다. 가까운 이의 안녕을 확인한 후, 잠시 고민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어 본다.
손자의 어린이집 등원도 햇수로 2년, 매일 마주치는 원생들과 인사를 나누고 그들 엄마들과 아이의 행동발달에 대해 서로 정보를 나누곤 한다. 매일 등원을 거부하며 떼를 쓰는 아이는 우리 손자 뿐 이다보니 손자와 나는 어린이집 유명인이 되었다. 그날(실외 마스크 착용의무 해제)도, 어김없이 손자와 할머니는 마스크를 착용하고 등원을 위해 현관을 나섰다. 같은 동 아파트 계단 입구에서 등원 준비를 한 여자 아이와 한 여인이 서서 손자와 나를 보며 인사를 했다.
‘누구지?’
마스크를 벗은 여인을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분명 아는 사람 같긴 한데, 함께 있는 아이의 이모 같아보였다. 그들 옆에 다가가,
“**야 이모니?” 그 순간 옆에 서 있던 여인이 박장대소하며 웃는다.
“**이 엄마예요. 마스크를 벗으니 못 알아보시네요.” 순간 나는 너무 놀랐다. 마스크를 벗은 모습이 이렇게 달라 보이다니, 멋쩍어 서로 마주보며 웃었다.
평소 그 여인은 키가 크고 미스코리아와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늘씬한 몸매, 마스크로 하관은 가렸지만 눈이 엄청 예쁜 여자였다. 검은색 단발머리에 눈은 항상 웃고 있어서 ‘정말 미인이구나!’ 생각했다
‘마귀꾼’, ‘마해자’,
손자를 등원 시키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딸들에게 들었던 이 두 단어, 웃기지만 대놓고 웃을 수 없는 신조어가 자꾸 뇌리에서 맴돈다. 코로나로 인해 마스크는 우리에게 빼 놓을 수 없는 건강 지킴이였는데 어떤 이는 마스크로 덕을 보았고 또 어떤 이는 손해를 본 케이스를 빗대어 만들어진 신조어다.
마귀꾼이란, 마스크+사기꾼의 합성어라고 했다. 마해자란, 마스크 쓴 피해자라는 뜻의 합성어였다. 마스크를 써서 잘 생기고 예쁜 얼굴이 못나 보이는 사람을 뜻한다.
사람이 입을 가리면 타인의 행복, 기쁨과 즐거움 등 감정 상태를 알기 어렵다는 연구 결과를 본 적이 있다. 또한 ‘눈은 마음의 창’이라고 했듯이 눈을 보면 사람의 심리 상태를 알 수 있다고 말들을 한다. 하지만, 진짜 그 사람의 성격을 알려면 얼굴 전체를 마주하고 대화를 해야 알 수 있다고 한다.
우리는 3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반쪽짜리 얼굴로 살면서 조금은 불편도 했지만 이제는 마스크 없는 일상이 오히려 불안하게 느껴짐은 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닌 듯하다.
오늘 외출에서 돌아와 마스크를 벗고 거울을 본다. 점심을 먹은 후라 치아 상태를 확인해 본다. 충격이다.
치아 사이사이는 빨간색, 초록색으로 컬러풀하다. 마스크가 없었다면 이런 불상사도 없었을 텐데.......마스크를 믿고 막 살아 온(?) 이 버릇 쉬이 고쳐질 수 있으려나?
나는 어느 부류에 속할까, 마귀꾼? 마해자?
거울 속 내 얼굴 탄력은 턱밑으로 저만치 늘어져 턱살이 두 겹으로 추가가 되어있다.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된다는 프리선언에도 나는 오늘도 핑크색 그리고 피부 안색을 밝게 보이게 한다는 베이지색 마스크를 또 주문해 버렸다. 마스크를 쓰면 얼굴이 브이 라인으로 보인다는 광고를 무한 신뢰하며 구매를 했다. 황사와 미세먼지를 핑계거리로 대 보지만 마스크를 쉬이 벗을 수 없는 나의 심리 상태, 과연?
사회적 거리두기는 심리적 거리두기로 변질 되 버렸지만,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므로 마스크 착용 해제가 되어도 곧 이전과 같이 홀가분한 모습으로 진실한 대화를 나누는 일상으로 빠르게 돌아갔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스크 쓴 사람을 바라 볼 때, 마스크 안의 모습은 보는 이의 상상에 맡기는 걸로.......생각에 종지부를 찍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