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가 아니라면 나도 없고 내가 아니라면 취할 것도 없다
이것도 근사한 말이지만 그렇게 시키는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힌다
만일 참된 주재자가 있다고 해도 그 징후를 알 수 없다
작용한다는 것은 이미 믿을 수 있지만 그 형체를 볼 수 없고
실정은 있지만 그 형체가 없다
백개의 관절, 아홉개의 구멍, 여섯 개의 장기가 모두 갖추어져 있지만
나는 어느 것과 더 가까운 것일까? 당신이 그것들 모두를 좋아하는가?
특별히 좋아하는 것이 있는가? 만일 그렇다면 모든 것들은
신하나 첩이 되는 것일까?
혹은 신하나 첩들은 서로 다스리기에 충분하지 않은 것일까?
혹은 그것들은 차례로 서로 군주와 신하가 되는 것일까?
혹은 거기에 참된 군주가 있는 것일까?
실정을 파악하든 파악할 수 없든 그 참됨에 대해
보태거나 덜아내는 일은 없을 것이다(제물론)
이 이야기를 인생의 궁극적 정답은 무엇이고,
나는 누구이며, 온전한 참음 무엇인가라는
궁극적인 질문에 답을 찾아 철학은
분별의 쳇바퀴을 끝임없이 돌리므로
문화와 문명을 발전과 발달시키는 철학서 등을 만들고
불교는 싯달타 등이 부처나 불법이 정답이라고
불경 등을 만들고, 유교는 공자 맹자 등이
도덕천의 인이 정답이라고 사서삼경 등을 만들고,
도교는 노자 등이 유무상생의 도가 정답이라고
도덕경 등을 만들고, 기독교는 모세와 바울 등이
야훼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가 정답이라고
성경을 만든 것처럼
장자를 대단한 선생이나 정답으로
이미 결론을 내어놓고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 말들로 분별하여
장자를 도구로 스스로 대단한 선생이 되는
무례한 오지랖을 펼치고 있지만
이 이야기의 본질은 참된 신의 유불리를
세상의 가치 기준을 따라 분별하려는 것이
아니라 만물의 주관자가 드러나지 않음에도
생로병사 성주괴공 생주이멸이나 인체구조 등이
신비스럽게 변화하고 있으나 온전한 참된 신의
유무을 비롯하여 온전한 분별이나 정답이 없다란
넉두리로 바로 알 때
참이 없고 모든 것이 헛된 이 세상에서
세상의 가치 기준을 따라 원인이나 이유나
결과 등의 유불리를 분별하여 연합이나 야합하여
상생이나 공생하려고 정답처럼 철학서나 종교의
경전 등을 만들어 스스로를 속이는 삶이나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수행하는 삶은
바른 정답의 삶이 아닐 뿐 아니라 우리란 이념을
진짜 나로 착각하여 내가 원하는 너로 변화시켜
정복하여 다스리려는 감탄고토의 연기인
무례한 오지랖이 된다
따라서 온전한 지혜는 무분별 지혜이고
인생의 궁극적 목적은 기쁨과 평안과 자유가
온전한 조화를 이룬 행복을 소유하여 누리는
사랑으로 혼자서는 불가능하고 또 너와 내가 아닌
스스로 거듭난 온전한 우리만 가능한 것으로
그 실상은 부모나 보호자가 없이 가능한 어린 아이의 삶이나
야훼 하나님 없이 가능한 에덴동산 아담과 하와의 삶으로
결국 스스로 만든 나만의 에덴동산에서만 온전한 행복을
소유하여 누리는 무주상의 삶인 진짜 사랑을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을 바로 알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