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7:1~5 / 말씀에 순종한 노아
(창 7:1) 여호와께서 노아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이 세대에서 네가 내 앞에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니라
(창 7:2) 너는 모든 정결한 짐승은 암수 일곱씩, 부정한 것은 암수 둘씩을 네게로 데려오며
(창 7:3) 공중의 새도 암수 일곱씩을 데려와 그 씨를 온 지면에 유전하게 하라
(창 7:4) 지금부터 칠 일이면 내가 사십 주야를 땅에 비를 내려 내가 지은 모든 생물을 지면에서 쓸어버리리라
(창 7:5) 노아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창세기 7장을 보면 하나님은 실제로 홍수 심판을 내리셨습니다.
이 심판은 하나님의 죄에 대한 분노가 실감 나게 묻어나는 무섭고 철저한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죄를 정말 미워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의로웠던 노아와 그 가족들은 방주에서 구원받았습니다. 그와 함께 다른 동물도 구원받았습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통해 노아의 경외심을 배우고 홍수 심판 속에 나타난 세례의 복음에 대해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의로운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1절)
(창 7:1) 여호와께서 노아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이 세대에서 네가 내 앞에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니라
노아시대 사람들은 자기들이 좋아하는 사람들과 자유연애를 즐기고 시집가고 장가가는데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들의 관심은 오직 자기 육신의 소원과 욕심을 좇아 사는 것이었습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그들이 죄를 죄로 여기지 않고 자랑하는 것입니다. 인류의 죄악은 정말로 물이 오를 대로 올라 죄가 온 땅에 가득 차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에게 므두셀리와 노아를 통하여 심판을 경고하였습니다.
***하나님은 969년 동안 므두셀라(노아의 증조)를 통하여 심판을 예고하셨습니다.
므두셀라 = “그가 죽을 때 그 일을 보게 될 것이다”라는 뜻.
사람들은 하나님의 경고를 받고 경외심으로 살아가기는커녕 하나님의 말씀에 콧방귀도 뀌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만든 사람들을 사랑하심으로 그토록 오래 참으셨지만, 그들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죄가 주는 즐거움으로 날이 갈수록 더 타락했습니다. 육체적, 찰나적 쾌락과 죄의 세력에 완전히 넋이 나가버렸습니다.
하나님은 이제는 더 이상 참으실 수가 없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육체가 되어버린 사람들과 도저히 함께하실 수가 없으셔서 그들에 대한 소망을 버리셨습니다. 그들을 모두 다 쓸어버리겠노라고 선포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노아의 의로움을 보았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상주심을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을 믿고 말씀에 절대 순종하는 자였습니다. 하나님은 노아의 믿음 보시고 방주로 들어가라고 합니다.
2. 동물을 보존하게 하심(2~3)
(창 7:2) 너는 모든 정결한 짐승은 암수 일곱씩, 부정한 것은 암수 둘씩을 네게로 데려오며
(창 7:3) 공중의 새도 암수 일곱씩을 데려와 그 씨를 온 지면에 유전하게 하라
하나님은 노아뿐 아니라 동물도 구원하십니다. 하나님은 구체적으로 어떤 동물을 준비시켜야 하는가 말씀하십니다. 정결한 짐승은 암수 일곱씩 부정한 것은 둘씩 준비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정결한 짐승을 더 많이 보존하기를 원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생물을 보존하기를 원하십니다. 노아의 사명은 생명을 보존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을 지켜서 생명을 보존하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지막 날에도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식물과 동물들과 같은 모든 피조물을 구원하실 것입니다.
3. 인내하며 순종한 노아(4~5))
(창 7:4) 지금부터 칠 일이면 내가 사십 주야를 땅에 비를 내려 내가 지은 모든 생물을 지면에서 쓸어버리리라
(창 7:5) 노아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하나님은 구체적으로 지금부터 7일 후에 40주야를 비를 내려서 땅에 있는 모든 생물을 쓸어버리겠다고 하셨습니다. 노아는 지금까지 하나님의 말씀대로 다 준행하였습니다. 노아는 그 시대에 믿음으로 사는 의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노아를 아주 귀하게 보시고 120년 동안 방주를 만들게 하셨습니다.
노아는 그 시대에 죄악 된 문화와 정면으로 충돌하였습니다.
노아는 방주를 만들면서 많은 비난과 따돌림을 받고 정신병자 취급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럴 때 노아는 자신도 사람인지라 힘들고 외로웠을 것입니다.
노아 자신도 홍수라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홍수 심판이 실감도 안 났습니다.
120년 동안 자신이 뜬구름 잡는 시간만 보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였을 것입니다. 그만큼 120년 동안 묵묵히 하나님만을 믿으며 순종하는 데에 사단의 도전과 시험과 유혹도 만만치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노아는 그 길고도 험한 시간들을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만을 붙들고 그대로 다 순종했습니다. 그는 믿음으로 생명을 보존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노아의 이런 순종하는 믿음을 보시고 노아의 의로움을 보았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노아의 의로움을 보시고 노아를 구원하십니다.
노아뿐 아니라 그 시대 생물들도 구원하십니다.
결론적으로 노아는 하나님을 경외하였습니다.
노아가 이렇게 말씀에 절대적으로 순종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입니까?
히브리서 11장 7절은 말씀합니다.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느니라.“
우리는 여기서 노아의 휼륭한 점을 발견합니다. 노아는 자신을 구원하실 사랑의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심판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는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두려워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떨림으로 마음에 새겼습니다. 그는 마음과 목숨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경외심은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성을 떼어놓고는 얘기할 수 없는 것입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하는 사랑의 관계성 속에서 하나님을 두려워하였습니다. 노아는 지치고 힘들 때마다 말씀 그대로 행하시는 두렵고 크신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는 믿음으로 마음에 오는 모든 시험과 환난을 이겨내고 방주를 성실하고 끈기 있게 만들어 내었습니다.
경외심은 어떤 하나님의 말씀이라도 그대로 믿고 순종하는 것으로 표현됩니다.
경외심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 두려워하고 떨며 기쁨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는 이런 순종을 통하여 육신으로 사는 사람들을 정죄하였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조상들의 믿음을 계승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과 말씀을 그대로 믿고 순종하는 노아를 의롭게 여기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경외하여 자기의 독자 이삭을 드리라는 말씀에 순종하였습니다. 우리는 그 어느 것보다 크시고 두려우신 하나님을 먼저 앞세울 때 경외심을 가질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12장 4,5절은 말씀합니다.
"내가 내 친구 너희에게 말하노니 몸을 죽이고 그 후에는 능히 더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
우리는 종종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두려워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가 사람을 두려워합니다.
우리는 오직 지극히 크시고 두려우신 하나님만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두려워할 때 사람에 대한 두려움은 사라집니다.
마음에 담대함이 생기고 죄를 짓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영혼까지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우리를 위해서 자신의 목숨까지 버리신 사랑을 영접해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을 갖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자주 듣고 마음속에 새겨야 합니다. 하나님과 기도로서 살아있는 교제를 나누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 하나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순종하고자 하는 자는 하나님 보시기에 정말 귀한 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많이 듣고 있습니까?
우리 중에 귀는 정말 많이 들어서 커져 있는데 순종의 손과 발은 도마뱀 앞다리같이 거의 퇴화되어서 움직임이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의 능력은 순종에 있습니다. 많이 듣지만 말고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순종하지 않으면 그것들이 아무런 능력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날마다 새벽에 하나님이 주시는 음성을 듣고 자신에게 와닿는 말씀을 붙들고 순종하여 나갈 때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의 삶을 의롭다고 하여 주실 줄을 믿습니다.
경외심이 없는 대표적인 사람은 롯의 사위들입니다. 롯의 사위들은 준엄한 심판의 메시지를 농담으로 여길 정도였습니다.(창19:14)
롯의 아내 또한 그러합니다. 소돔과 고모라에 유황과 불이 비같이 내렸을 때입니다. 거의 모든 백성들이 멸망을 당하고 있는데 천사가 돌아보거나 들에 머물지 말라고 하였지만, 롯의 처는 이 또한 가볍게 무시하고 뒤를 돌아봅니다. 이들은 노아와 정반대의 삶을 살았습니다. 마치 한 마리 서글픈 청개구리처럼 그들도 그러하였습니다.
오직 우리가 살길은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을 갖는 것입니다. 신약시대를 사는 우리는 무엇을 두려워해야 합니까? 우리는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우리는 성령 앞에서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두렵고 떨리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성령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는 무엇을 두려워합니까? 바로 눈에 보이는 사람입니다. 이 모든 일이 사람에 의해 만들어지고 움직여지고 사람이 주관하고 있다는 것을 맹신하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두렵고 떨림이 생기는데 보이지 않는 것은 시시하고 별로 대수롭지 않게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해둬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예수님도 성령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육신에 속한 자. 육신의 지배를 받는 자, 육신적인 삶을 사는 자에게는 결코 성령님에 대해서 두렵고 떨림이 생기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지만, 성령님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고백한 사람의 마음속에 살아계십니다. 우리는 이 성령을 인정하고 믿고 그 어느 것보다도 높여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홍수를 내리기 7일 전에 노아를 방주에 들어가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노아와 생물들을 먼저 구원하시고 다음에 홍수를 내리셨습니다. 하나님은 구원 전에 먼저 믿음과 순종을 원하십니다. 믿음이 먼저고 다음에 구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노아를 방주에 들어가게 하시고 홍수를 내리셨습니다.
무엇을 말합니까? 하나님은 대환란이 일어나기 전에 먼저 성도를 구원하십니다.
먼저 공중으로 들림(휴거)받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깨어 있는 자들은 대환란을 경험하지 않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