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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능하사 (1)
창세기17장 1절 출애굽기6장 3절 2023년 6월 11일 주일 오전 말씀지
지금도 사도 신경을 고백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위에서부터 내려온 전통이니까 따라서 하고 있는 교회들이 많습니다. 그러니 모르고 하는 곳들이 많고 아예 잘못알고 하는 곳들도 많고 이제 고쳐서 하는 곳도 있습니다. 실상은 사도 신경은 사도들이 만든 것이 아니라 이단 사상들이 너무 많이 생겨서 신학자들이 모여 만든 것입니다. 사도들은 복음과 진리로 인해 조상들의 전통을 이어가는 유대인들에게 핍박을 받았고, 초대 교회는 로마법을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핍박을 받았지만 첫째 부활을 얻는 순교의 신앙으로 이어갔고 오히려 교회는 경건했고 수는 더 생겨났습니다. 그러나 주후 313년에 로마가 기독교 나라로 공포한 후 1500년까지 성직자들의 타락으로 성경을 마음대로 말하는 이단들이 극심할 때 359년에 니케아 신조가 생겼고 오늘날의 사도 신경은 500년 이후에 생겨나 정립이 된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고백하는 사도신경과 천주교의 사도신경이 있고 새 사도신경이 생기기까지 했는데 사도신경은 각자 자신들에게 믿어지게 하신 대로 하나님 앞에서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으로 살리심 받고 진리로 자라난 우리는 그냥 따라 할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 제대로 알고 각자의 신앙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사도들의 신앙 고백과 신학자들의 신앙 고백은 다릅니다. 그래서 어떤 교회는 신학자들이 만든 사도 신경을 하지 않는 곳도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글자대로 고백하지 않고 앞부분의 묵상과 몇 부분을 수정하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신앙고백은 사도 마태로는 마16:16절에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사도바울로도 행18:5절에 예수는 그리스도라 증거하게 하셨습니다. 요한으로도 요20:31에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이제 이땅에 보내신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신 것을 증거하게 하셨는데 그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 그리고 부활하사 보내신 성령까지 어떠한 분인 것을 더 깊이 알고 자신의 신앙으로 고백하는 것이 옳은 것인데 신학자들이 만든 사도신경만을 고집하고 전통으로 삼아 꼭 글자대로 해야 한다는 외식주의 교단들에 틀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신앙은 자라는 신앙이지 다람쥐 체바퀴 굴리듯 복음도 아닌 것을 복음이라 하며 진리도 알지 못하면서 사도 신경만을 외우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전능하사’ 하나님을 부르나 잘못 알고 부르는 자들이 많고 잘못된 하나님을 열심히 믿는 자들 또한 많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성경 전체에 62번 이상 나오게 하셨습니다. 성경 창세기에서 제일 먼저 나타내신 하나님은 전능하신 능력의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으로 나타내주셨는데 (창1:1) 실상은 요한복음이 창세기보다 영원전 삼위로 영원 태초의 말씀으로 계신 것을 나타내주셨습니다. 요1:1-
그 태초에 심부름꾼인 천사를 지으신 하나님으로 나타내주셨고 히1:14-
천사를 지으신 하나님께서 에베소서를 통하여 창세전 아들들을 택하여 지으신 하나님으로 나타내주셨으니 그 순서를 바로 알게 하셨습니다. 엡1:4-
전능하신 하나님은 택하신 아들들을 아담 때 가죽옷 구원을 이루셨고 (창3:21) 4000년 후 십자가 구원을 다 이루시고 (요19:30) 성령을 보내셨는데 그 성령의 역사로 기어코 우리를 부르사 복음을 믿게 하신 하나님은 전능하시다고 제일 먼저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전능을 바로 알지 못하니 많은 사람들이 주문처럼 외우며 하나님만 믿으면 무엇이나 잘되고 하나님을 믿는 나는 못하는 것 없다고 오해함으로 기복신앙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복음이 잘못되면 내가 하나님을 만들어 믿게 되는데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본주의입니다. 이번에 자신을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전능하사’ 이 한 구절만 생각해도 1.나를 아들로 택하여 주신 하나님이 2.나를 구원하신 성자 예수님이 3.성령을 주셔서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삼위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나로 믿게 하신 것을 감사로 고백하는 신앙이 되는 것입니다. 오직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케 하신 모든 성경을 통해서 전능하신 하나님을 나타내주셨는데 창세기에는 7번 나타내주셔서 우리로 절대 주권자 되신 내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이 믿어지게 하시는 것입니다.
1.아브라함 75세 때에 영광의 하나님을 보이시고 (행7:2) 가나안에 들이신 후 99세 때에 약속하신 대로 후사를 하늘에 별같이 많게 하실 것을 언약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나타내주셨고 창17:1-
2.한 평생 하늘의 유업만 바라고 웃으며 순탄한 삶을 살게 하신 이삭을 통해 약속하신 대로 후손을 야곱으로 열두지파를 이루실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나타내주셨는데 창28:3-
이삭을 통해 아들 야곱에게 육만 바라보는 자들과 결혼하지 말고 그들과 다른 외삼촌의 딸과 결혼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 외삼촌 라반의 이름의 뜻은 ‘깨끗하다’ 인 것과 같이 외삼촌은 자기가 잘한다고 생각하는 바리새인의 신앙인 것입니다.
3.창35:11-12에 외삼촌 집에서 많은 자녀와 재산을 얻게 하시고 다시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주신 땅으로 돌아가게 하심에 벧엘에서 단을 쌓는 이스라엘입니다.
4.창43:14에 이스라엘로 애굽에 양식을 구하러 가는 아들들에게 베냐민까지 내어주며 반드시 은혜를 베푸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나타내주셨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세상 복을 주는 분이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역사를 하게 하시는 분인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된 이스라엘입니다. 자신은 아무 것도 못한다고 고백하는 이스라엘이 된 후에도 요셉과 베냐민을 붙들고 있으니 그것까지 놓게 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입니다. 실상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야곱으로 애굽으로 갈 수밖에 없도록 환경을 만드시고 고향과 아버지를 떠날 수밖에 없게 하십니다. 야곱이 ‘발뒤꿈치를 잡음’이라는 뜻을 가진 것처럼 자기가 무엇인가를 하려고 할때에 환도 뼈가 부러지게 하시고 ‘이제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하는 이스라엘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창33:26-
5.창48:3-4에 병들어 죽을 때가 다 된 이스라엘에게 요셉은 두 아들을 데려와 축복하게 하는데 육적인 자녀들의 번성하는 것만 바라보는 것이 아닙니다. 이 말씀이 사도행전에서, 사도 바울 때에 일어납니다. 성령시대에는 복음이 믿어지면 아브라함의 아들이요 하늘의 유없을 받을자 들입니다. 갈3:7-
6.창49:24에 12아들 중 가장 사랑한 요셉에게 어느 형제들보다 더 좋은 영광의 복을 주시려고 아버지 야곱을 통해서 후일에 당할 일을 예언하게 하셨습니다. 그 복은 아버지 이삭을 통해서 에서를 피하여 집을 떠나게 될 때에 약속하신 것인데 창27:27-29절까지입니다.
7.이어서 25절에 요셉에게 복을 빌게 하셨는데 위로부터 내리는 신령한 은혜를 주셔서 말씀을 깨닫게 하시는 것이고 아래로 원천의 복은 땅에 복인데 창세기 1장에 둘째날에 역사입니다. 창1:6,6-
젖먹이는 복, 태의 복은 모두 생명을 살리고 길러가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열국의 아비)이 되게, 야곱을 이스라엘이 되게, 요셉을 총리되게 하신 복니다. 세상적으로 높아진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대로 그 후손이 큰 민족이 되어 많아지게 하시리라 언약하시고 전능하신 능력으로 지금도 이뤄가신 것입니다. 창12:2-
출애굽기로는 열매맺게 하시는 가나안의 귀중성을 모르는 후손들을 400년간 종살이하게 하셨다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나오게 하실 여호와 하나님은 이미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게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나타내신 것입니다. 출6:3-
우리를 기어코 부르사 나오게 하시고 복음을 믿게 하신 삼위로 계신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주요 관점은 우리들 속에 있는 아들의 영입니다. 나의 영을 어떻게 살리고 자라게 하고 열매를 맺다가 가게 할 것인가에 대한 전능입니다. 요한복음 6장 63절에 영은 살리는 것이고 육은 무익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복음이 믿어져 진리로 자라나게 하사 영광을 받을 자들에게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영적 성장을 이루게 하시려 여러 가지 고통 가운데서 세상의 미련을 다 끊게 하십니다. 아브람이 아브라함이 되기까지는 25년이 걸렸고 야곱이 이스라엘이 되기까지는 130년이 걸렸습니다. 창47:9-
박목사도 복음이 믿어지게 하시고 (십자가는 18세 가죽옷 구원은 30세) 진리로 자라나게 하시기까지 20년 넘게 걸렸습니다. 오늘도 내 영을 어떻게 능력으로 이끌어 가십니까? 우리 속에는 원죄가 가득하고 세상의 유혹에 넘어갈 수밖에 없고 거짓이 설치면 미혹될 수밖에 없는 무능하고 연약하고 부족한 자인 것을 기어코 깨닫게 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오늘도 ‘내가’ 라는게 있으면 그것을 꺾으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요한계시록에는 9번 나타내셔서 영광성에까지 전능한 능력으로 영광 받을 우리들을 이끌어 가시는 것을 나타내어 주셨습니다. 계1:8-
이 전능함을 잘못 본 자들은 지금 설치고 있는 거짓된 신천지를 악한 김정은을 왜? 가만두시냐? 고 불평을 합니다.
1절 아브람의 구십 구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창세기 17장에 전능하신 하나님을 처음 나타내주셨습니다. 이 말씀을 양식을 받으면 전능하신 하나님이 깨달아지게 되고 이제 절대 주권자되사 전능하신 능력으로 말씀대로 이루실 것이 믿어져 걱정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사도 신경의 고백처럼 내가 믿사오며 라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창세 전 나를 아들로 택하여 지으신 아버지입니다. 이것이 깨달아지면 얼마나 감사한지요. 요한복음에서 영원 태초에 아들들의 영을 택하여 지으신 것이 먼저 나오고 그 다음에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가 나옵니다. 요1:3-
이 순서가 되어야 영적 생활을 바로 할 수 있습니다.
아브람의 구십 구세 때의 신앙은 어떤 신앙입니까? 아브람은 75세에 부름을 받습니다. 창12:1-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처음부터 가나안에서 태어나게 하시든지 아니면 능력을 행하셔서 공간 이동을 하여서 가나안에 들어가게 하시면 좋지 않았을까요? 그러면 전능하신 하나님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제 17장은 가나안으로 인도하신지 24년이 지난 것입니다.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그전의 신앙은 완전하지 못하였고 이제 구십 구세 때의 신앙도 믿는다고 하지만 아직도 ‘내가’ 나오는 불완전한 신앙입니다. 이것은 단계입니다. 어디서 태어났든지 먼저는 복음으로 부르시고 믿어지게 하시고 영광의 하나님을 보이시고 지시할 땅으로 가게 하시는 과정이 영이 자라는 것입니다. 그 과정이 75세에서 99세 때까지니 24년이 걸렸습니다. 그러니 예배당에 나왔다고 다 된 것이 아닙니다.
2절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세워 지금도 아브라함의 영적 아들들로 이루시는 역사입니다. 언약은 별같이 많은 후손의 언약입니다. 성령시대에는 생명역사입니다.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라 하시니 아브람으로 이제 99세가 되어서 더 이상 자녀를 낳을 수 없다고 생각할 때에 24년간의 과정을 통해서 자라게 하셨으니 이제 하나님께서 그 언약을 이루실 것을 보여주십니다. 육신적으로 평안하고 건강하고 부자되고 잘먹고 잘사는 것이 전능한 것이 아니라 나로 통해서 생명들이 살아나게 하시는 것이 전능하신 하나님입니다. 가죽옷 구원이 믿어지지 않으면 ‘내가’가 나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처럼 가죽옷 구원이 믿어지면 하나님이 나를 이끄시는 역사 안에 들어가게 됩니다. 아브라함이 메소포타미아부터 이끄시는 그 길을 통해서 말씀을 받지 않으면 고생하는 것을 보여주십니다. 99세의 아브라함 89세 사라가 경수가 끊어진 후 이때에 전능하신 하나님 곧 한번 말씀하신 것을 아브라함에게 기어코 이루시겠다고 하시는 전능입니다. 하나님이 늘 기쁨을 주시고 힘을 주시고 나를 통해서 한 사람 한 사람 믿어지게 하시고 길러가게 하시는 언약을 아브라함 때에, 이삭 때에, 야곱 때에, 요셉 때에 이루신 것입니다.
누가복음에서 전능하셔서 지금도 부자까지도 그 가지고 있는 재물을 거두시고 병까지 주셔서 가난한 심령되게 하사 하나님 나라 안에 능히 살게 하실수 있는 것을 나타내어 주셨습니다. 눅18:27-
그런데 왜 각자에게 아직도 생명 살리는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까? 왜 아브라함의 99세 믿음으로 자라지 못하였고 야곱의 자리에서 그 꾀를 버리지 못하고 아직도 두아들 요셉과 베냐민에게 매여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