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살의 변명
최 범 석
외눈이 이글이글 가리키는 곳이면
긴 꼬리 출렁이며 달려갔습니다
남의 가슴 후벼 파고 우쭐거렸지요
어느 날 화약 냄새에 코가 찡긋했습니다
이어 말발굽 소리, 휘파람 소리
청바지 입은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나타났습니다
낡은 방패를 들고 맞섰지요, 하지만
촉새처럼 재빠르고 시린 눈빛처럼 잔인했습니다
트랜지스터라디오처럼 버림받았지요
푸른곰팡이를 덮어쓰고 박물관 진열장에 숨었다가
꽃바람 불어오던 계절에 자수하여
사회봉사명령 처분을 받았습니다
성형수술을 해 주고
꼬랑지 하나 더 붙인 새 이름을 지어주며
마른오징어처럼 아스팔트 바닥에 납작 엎드려
오싹한 공포를 느껴보라 합니다
공중에 매달려있거나 승강기 안에서 애교 떠는
뒷배가 든든한 놈도 있지요
야성을 잃지 말라는 배려인가요, 가끔은
잔디운동장에서 씽씽 날려주네요
과녁의 심장에 턱 꽂히며 파르르 깃을 떠는 쾌감
아, 얼마만의 행복인가요
이런 나를 비난하지 마십시오
저 많은 사람의 가슴에 박혀있는 비수는
또 누가 꽂은 것입니까?
* 시와세계 2024년 가을호
카페 게시글
***근작 시
화살의 변명
최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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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0.23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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