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 리치몬드시는 뉴욕 Flushing에서 약350마일(560Km)정도 떨어져 있다. 서울 부산간의 거리가 약430Km니까, 서울부터 부산까지의 거리보다 멀어도 한참 더 먼 셈이다.
우리가족을 데리러 온 친구는 중간에 꼭 들를 곳이 있다고 했다. ‘어디로 가는 거냐’고 물어봐도 그냥 가보면 안 댄다. ‘꼭 구경시켜주고 싶은 곳이 있다’ 며 어둠 속을 그냥 달린다. 몇 시간의 운전 끝에 그동안 밀린 이야기를 하며 어둠속을 달리다가 갑자기 불야성의 화려한 도시가 눈에 들어왔다. ‘아니 라스베가스는 서부에 있는데 이게 어찌 된 거지!’ 1992년인가에 미국에 처음 와서, 혼자 여행해 본 환락의 도시라 불리던 라스베가스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 한 느낌의 화려한 밤 분위기의 도시였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바로 뉴저지주의 아틀랜틱시티였던 것 이었다. 한 호텔에 들어서니 마치 라스베가스의 호텔을 그대로 옮겨다 놓은 것 같은 모습들이 눈에 들어왔다. 한마디로 바로 '도.박.장.'이었다.
내 평생의 철칙이 ‘내가 땀 흘리지 않은 돈은 쳐다보지도 않는 것’이었고, 복권 한 장을 사지 않았던 나였기에 그다지 반갑지는 않았지만, 간접경험도 그리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스위트룸이 배정되고 음식을 시키는데 걱정 하지 말고 먹고 싶은 것들을 마음껏 시키라며, 다 공짜니까 돈 걱정은 하지 말란다. ‘다 공짜! 팁만 주면 된다.’는 말들이 믿기지 않았지만 어쨌든 우리가족은 그 친구가 시킨 산해진미의 음식들을 고맙고 또 미안해하며 배부르게 먹었다.
밥을 먹고 나니 아래로 내려가 보자고 한다. 구경삼아 같이 내려갔는데 그 친구가 앉은 곳은 바로 홀짝게임과도 같은 게임을 하는 테이블이었다. 한참 따다가 잃다가를 반복하는 것을 구경하다보니 어느새 나도 모르게 훈수아닌 훈수를 두고 있었다. 나도 해보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 아이고 무서워라. 그 술보다 담배보다 아니 마약보다도 훨씬 더 무섭다는 도박, 그 도박을 내가 …
내 기억으로는 그날 그친구는 약 $3000가까운 돈을 잃었던 것 같다. 다음날 호텔을 나설 때 계산하는 것을 보았는데, 정말 숙박비와 음식 값은 내지 않는 것을 보았다. 하긴 도박에서 그렇게 잃었으니 돈은 몇 배로 낸 셈이지… . 그 친구는 그 호텔의 VIP이었었다. 아틀랜틱에서의 경험이 나에게 암시해 준 것을 나는 한참 시간이 지나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그 이유는 나중에 자세하게 설명하게 될 것이다.
‘청소일’ 미국 이민 온 한국 사람들은 거의 다 해보았다는 청소, 목사님도 대학교수도 한번쯤은 해 보았다는 바로 그 청소 일을 리치몬드 도착 다음날부터 시작했다. 결혼 후 단 한번도 집사람에게 바깥일을 시켜 본 적이 없던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해왔었던 나 자신이 무너져 내린 첫 날이었다.
사무실을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쓰레기통을 비우고 비닐을 갈아주고 , 카펫바닥을 청소기로 청소하고, 간이부억을 청소하고 바닥을 마포질하고, 화장실 거울을 닦고 변기를 청소하고 마포질하고 먼지 앉을만한 곳은 걸레질하고, 마지막으로 모든 쓰레기를 쓰레기장으로 나르고, 수거된 빈 박스들을 포개어 차곡차곡 쌓아서 버리는 일들을 하는게 주 업무였다.
주로 쓰레기통 비우는 일은 아내와 같이하고, 힘든 마포질과 청소기 돌리는 일은 내가했다. 그러고나니 미안하게도 자연스럽게 아내에게 화장실 청소하는 일이 돌아갔다. 미국에 와서 살 생각을 한이상 각오했다면서 아내는 한마디의 불평도 하지 않았다. 그러니 더욱 미안한 일이지…..
기초일을 배우고 나니 수퍼바이저를 하라고 해서, 맡은 건물의 청소감독을 위해 먼 거리출장도 몇일씩 다녀오기도 했다. 수퍼바이져일은 청소를 하청 준 업체가 일을 잘하는지 점검하는 것이다. 건물을 처음 맡으면 누구나 초기에는 누구나 휴지통 비우기나 청소를 빼 놓는 경우도 많고 실수가 많기에 그것을 점검하는 일이었다. 점검을 해보면 꼭 한 두 군데 쓰레기통을 비우지 않거나, 어떤 경우에는 방 하나를 완전히 청소하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그런 일들을 하며 하루하루 미국생활에 적응해 나갔다.
청소일은 대략 5시나 6시에 시작해서 12시나 새벽 1시에 끝이 났다. 생각해 보면 참 일하기 좋은 건물을 우리 부부에게 배정한 것 같았다. 우리 부부가 그 6~7시간을 일하면 약 $3500에서 $4000 사이의 수입이 주어진 것으로 기억된다. 그 당시와 달리 지금은 임금이 저렴한 스패니쉬들이 많이 고용되어서 부부가 새벽까지 일을 해도 $4000 만져 보기가 힘들다고 한다.
청소하는 사람은 Janitor, Cleaner, Cleaning Crew등의 이름으로 불리운다. 낮에 일하는 사람은 주로, 한 건물 전체를 한 사람이 관리하는데, 화장실을 청소하고, 낮에 청소해도 업무에 방해되지 않는 영역들의 청소를 주로 하기에, 건물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직접 대해야 한다. 그래서 영어를 어느 정도 구사하거나 합법적인 신분을 가진 사람들을 고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밤에 일하는 청소직은 레귤러(Regular), 수퍼바이져(Supervisor), 서브(Sub), 아니면 청소업자(사장)으로 분류할 수 있다. 건물주나 건물사용자와 직접계약을 맺고 일하는 사람이 청소업체 사장이고, 그 일중 일부를 맡아서 하는 사람이 서브업자이고 서브에 서브를 받아서 일하는 사람(서브업자)도 많이 있다. 레귤러는 그냥 청소하는 사람이고 그 사람들을 관리하는 사람이 수퍼바이져다. 조금 큰 업체에는 그 수퍼바이져 위에 매니져(Manager)가 있기도 하다.
청소직의 최대 장점은 주 5일 근무(100% 다 그런 것은 아니다)와 주간 시간을 활용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또한 지금은 조금 바뀌어서 일 할 수 있는 신분인 사람만 고용하는 업체도 있지만, 아직은 많은 청소업자들이 신분에 관계없이 일을 시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청소일의 단점은 첫째가 스트레스다. 개인 성격에 따라 다르겠지만, 청소를 한 다음날 '쓰레기통이 하나 비워지지 않았다'던가, 어떤 부분에 '청소가 미흡했다'라는 불평이 나오면 보통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다.
이런 경험도 있었다. 종이 파쇄기에서 나오는 쓰레기는 보안상의 이유로 청소하는 사람들이 터치하지 않도록 요청하는 업체도 있었다. 두 번째 청소 업체에서 일을 할 때였는데, 청소 일을 옮겨서 새로운 건물의 청소를 처음 시작할 때였는데, 한 사무실에 있는 파쇄기의 종이를 비워야하는지 말아야하는지가 분명하지 않았다. 그래서 수퍼바이져에게 문의를 했더니 그냥 놔두란다. 하지만 다음날 다시 청소를 하러 그 사무실의 문을 연 순간 '뭔가 크게 잘못 되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무실이 온통 아수라장이었다. 그 사무실 테넌트가 파쇄기의 종이를 꺼내서, 온 사무실에 뿌려 놓은 것이었다. 헐~
청소부를 무시하는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청소하면서 각 분야의 친구도 많이 사귀었다. 땡스기빙이나 크리마스에 봉투에 약간의 돈을 넣어서 감사를 표하는 사람도 있고, 언제나 웃음을 잃지 않고 말을 건네 오는 사람도 많이 있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아무리 미국이라도 직업에 귀천을 구분하는 게 보였다는 것이다.
먹고사는 문제는 일단 청소일로 해결이 된 셈이고, 그 다음 과제는 살 집을 구하는 문제와 운전면허증 취득, 학생비자로의 변경, 아이들 학교문제였다. 한국에서 보낸 짐이 도착할 때까지의 처음 얼마간은 그 친구 집에 거하면서 살기로 했다. 쇼셜시큐리티넘버가없고 크레딧이 없으니 집구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친구가 보증을 서 주어서야 겨우 살 집을 구 할 수 있었다.
그 다음 과제는 운전면허증 취득이었다. 당시 버지니아는 관광비자소유자에게는 미국 입국시에 I-94양식에 받았던 체류기간까지만의 면허증을 발급해 주고 있었다. DMV에 따라서 시골로 가면 담당자들이 규정을 잘 몰라서 5년짜리도 받을 수 있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인터넷을 검색하며, 고민하던 차에 택사스주에서는 ‘관광비자 소유자에게도 5년에서 7년짜리 면허증을 발급해준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부리나케 수소문해서 텍사스 주에 거주하는 아는 사람을 찾아내었고, 텍사스 행 비행기에 올랐다.
미국에서 운전면허증은 단순한 운전면허증 이상의 의미가 있다. 면허증이 없으면 운전을 못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미국에는 한국처럼 따로 주민등록증의 역할을 하는 것이 없기에, 운전면허증이 곧 한국의 주민등록증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모를 학생비자변경거절에 따른 불체자가 될 가능성이 있었기에 무엇보다도 긴 유효기간의 운전면허증의 취득이 절실히 필요했던 것 이었다. (쇼설시큐릿넘버가 주민증과 비슷하지만 쇼셜시큐리티 카드에는 사진이 없기에 신분증을 대신 할 수는 없다.)
텍사스의 분위기는 버지니아와는 너무도 달랐다. 울타리가 없거나 아주 낮은 버지니아의풍경과는 너무도 다르게 내 키보다도 높은 담장들이 유난히 기억에 남는다. 당일에 모든 시험이 끝이 났다. 면허증은 지인의 주소지로 보내준단다. 휴 또 한고비를 이렇게 넘기는 구나.
첫댓글 재미있네요 ㅎ
다음 이야기가 기대되요^^
십년전 제 생활이 스쳐지나가고 있습니다..
운전면허증...저는 시카고에서 있었는데 고놈 받을려고 내쉬빌까지 간 일이 생생합니다..
지금은 웃고 있지만 당시에는 이것 받을려고 필사적이었지요.. 하루밤에 560마일을 두번 왔다 갔다 했었으니까요...에~~효...
지금도 면허증 쉽게 받을 수 있는 주가 있나요?
혹시 있다면 써 주시면 도움 되실 분들도 있을텐데요.
작년 초까지만해도 워싱톤주와 유타주에선 받을 수 있다고 들었던것 같은데 말입니다.
불혹님 참 대단하십니다 존경스럽구요 근데 지금 비자는 어떻게 하고 게신가요
울아들도 뉴욕에서 학생 비자로 3년이 넘었는데 자꾸 들어 오라고 하네요
난10년관광비자가 있거든요 이투비자도 많이힘이드는것 같더군요 알고싶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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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경험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