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머위대 설거지
지난 해 학교 운동장에서 야영을 할 때였다. 우리는 저녁을 해 먹고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설거지 하는 수돗가에 와서 지켜보던 별꽃선생님이 다희언니네 프라이팬을 들여다보고 말했다.
“기름때가 많네? 돼지고기 볶았구나?”
“예.”
“어떡하니? 천연세제는 기름때가 잘 안 질 텐데?”
우리 학교에선 시중에서 파는 독성이 강한 세제는 쓰지 않는 것이 전통이다. 그래서 야영을 하거나 요리실습을 하여 음식을 해 먹고 나서도 세제를 쓸 수는 없다. 이번 야영에서도 특별히 선생님들이 준비해 준 세제는 천연세제다.
“세제 안 써요. 이거 있잖아요.”
다희 언니는 학교 울타리와 산으로 연결 되어 있는 연못가에 달려가서 잎사귀가 넓적한 풀을 한 움큼 뜯어 왔다. 별꽃선생님이 그 풀을 보고 빙긋 웃었다.
“오, 머위로구나.”
“예. 이걸로 닦으면 기름때가 잘 빠져요.”
“호, 다흰 그걸 어떻게 알았어?”
“할머니가요. 우리 할머니가 가르쳐 주셨어요.”
“역시! 다희로구나.”
별꽃선생님이 다희언니에게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다희언니는 머윗대로 프라이팬을 쓱쓱 닦았다. 재미있어 보여서 나도 머위를 뜯어다가 냄비를 닦았다. 기름기 묻은 그릇이 없는 모둠도 너도 나도 머위를 뜯어다가 그릇을 닦았다.
“그만, 그만! 세제 안 쓰려다 머위 다 죽이겠다.”
별꽃선생님이 소리를 한 번 지르고 나서야 아이들이 머위 뜯는 걸 멈췄다.
다희언니는 신기한 면이 많다. 사람들이 힘들다고 싫어하는 농사일이 무지 즐겁다고 한다. 다희언니네 집은 학교 바로 밑에 있어서 다희언니가 일 하는 걸 여러 번 봤다. 언니네 엄마가 트랙터를 몰고 언니는 볏단을 들고 그 뒤를 따라가는 걸 본적도 있다. 마침 비가 내려서 머리카락이 비에 뭉치고 옷이 젖어서 몸에 착 달라붙었는데도, 하얀 김을 몸에서 피워 올리며 일을 하고 있었다. 언니네는 한우도 백 마리 정도 기르고 있다. 먹이 주는 일과 거름 쳐내는 일을 언니는 아빠와 같이 한다.
다희언니보다 두 살 많은 언니인 수희언니는 얼마 전 학교에 놀러 왔다가
“다희가 언니 같아.”
말하면서 배시시 웃은 적이 있다.
지금은 중학교 일학년인 다희언니는 자주 놀러 온다. 시험을 봐서 일찍 끝나는 날에는 틀림없이 놀러 온다. 가끔은 우리 교실에 들어와서 오후 수업을 같이 받을 때도 있다. 일 학기 기말고사를 보고 놀러 온 다희언니는 유미와 나에게 말했다.
“야, 중학교 너무 재미없어.”
“왜, 언니?”
“맨날 보충하고 야자하고 툭하면 시험이야. 아, 초딩이 그리워.”
“아, 정말. 언니 말 들으니까, 중학교 가기 싫다.”
유미가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중학교 안 가는 방법은 없나?”
“뭐, 그냥 확 안 가면 되지. 난 우리 엄마가 학교 가기 싫으면 가지 말래. 가지 말고 집에서 밥하고 청소하고 그러래.”
엄마가 농담 삼아 자주 하는 말을 나도 농담 삼아서 한마디 했더니 유미는 고개를 흔들었다.
“밥하고 청소하는 건 더 싫다.”
“휴-, 맘에 안 들지만 할 수 없이 다녀야 해.”
다희언니가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내가 궁금해서 물었다.
“왜? 왜 할 수 없이 다녀야 해?”
“고등학교 가려면, 중학교 졸업해야 하니까.”
“고등학교는 더 괴로운 거 아냐? 대학교 시험 공부해야 되잖아.”
“아니, 고등학교는 행복할 거야. 내가 꼭 가고 싶은 고등학교가 있거든.”
“응? 어딘데?”
유미와 나는 눈을 반짝이며 다희언니에게 바짝 다가앉아서 물었다.
“자영농고. 유석이 오빠 다니는데.”
“아.”
유미와 나는 한 입처럼 똑같은 감탄사를 내 놓으며 한꺼번에 고개를 끄덕였다. 자영농고는 여주 시내에 있는 농업고등학교다. 나라에서 세운 국립학교라고 한다.
“논농사, 밭농사, 축산업, 과수원 같은 농업과 관계있는 학과는 다 있대.”
다희언니가 흥이 나서 말했다.
“언니는 무슨 과에 갈 건데?”
“글쎄, 그건 생각 중이야.”
“유석이 오빠는 무슨 과야?”
“그 오빠는 축산과야. 젖소 기르는데.”
“언니는 좋겠다. 가고 싶은 데가 있어서.”
유미가 부러운 눈으로 다희언니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서 꾹 참고 중학교 다녀야 돼. 내신 성적이 중간 이상은 돼야 하거든.”
다희언니는 단단한 각오가 어린 얼굴로 말했다.
다희언니도 가고 유미도 집에 가고 혼자 남은 난 생각했다. 나는 과연 뭘 하고 싶은 걸까? 이제 한 학기만 더 다니면 초등학교를 졸업하는데. 보충학습, 야간학습, 시험, 시험…게다가, 인사 잘 못하면 선배들이 때린다고 하는 중학교. 정말 걱정된다. 재작년에 졸업한 은비언니는 대안학교를 다닌다는데, 그곳은 폭력을 쓰는 선배가 없다고 한다. 또 공부도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정해서 한다고 하였다. 하지만 내가 그런 대안학교를 가고 싶다고 말했을 때 엄마는
“안돼! 중학교 때는 안 돼! 고등학교라면 몰라도.”
하고 한마디로 딱 잘랐다. 생각을 하면 할수록 다희언니는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자기가 뭘 하고 싶은지 확실하게 알고 있고 또 그걸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니까. 뭔가를 하기 위한 목표가 있다면 지금 좀 힘들더라도 얼마든지 참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중학교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해서라도 나도 뭔가 목표를 세워야 할 것 같다. 나는 과연 무슨 목표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