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제께서 조정산 도주님께 종통을 계승하다
도주 옥황상제님께서는 15세 되시던 1909년 4월 28일에 전 가족과 함께 창원역에서 신의주로 가는 기차를 타고 만주 봉천(奉天)으로 망명길에 오르셨다.
바로 이날 상제님께서 김보경(金甫京, 1861~1934)과 이치복(李致福, 1860∼1944)을 비롯한 몇몇 종도를 앞세우시고 대전역 근처의 철도주변에 이르셔서 혼자 말씀으로 「올 때가 되었는데.......」 하시고 멀리 바라보시며 누구를 기다리는 표정이시니라.
종도들이 이상이 여겨 여쭈기를 『누구를 그렇게 기다리시옵니까?』 하였으나 답을 않으시고 바라만 보시더니 마침 남쪽에서 달려오는 기차를 보시고 반겨 하시며
『이제 나의 일은 다 이루었도다. 남자가 15세면 호패를 차느니 무슨 일을 못하리요.
과연 인유기인(人有其人) 시유기시(時有其時)로다.』 하시고 한참동안 서 계시니라.(태극진경9장153절)
* 증산께서 기유년(己酉年) 화천하시기 2개월 전 대전역 부근의 일이다.
봉천(奉天)으로 망명길
1909년 4월 28일 도주님(조정산,1895~1958년)께서는 15세 되시던 때에 한일병합이 결정단계에 이르자 부조전래(父祖傳來)의 배일사상을 품으시고 전 가족과 함께 창원역에서 신의주로 가는 기차를 타고 만주 봉천(奉天)으로 망명길에 오르셨다.
창원역을 출발하신 후 처음에는 망명준비의 과로로 피곤하셨으나 미시(오후1시30분 3시30분사이)경 대전부근에 임하셔서는 정신이 맑아지시고 기운이 충천하신 중에 마음공부를 조금도 늦추지 않으시니라.
이때 갑자기 일광 같은 모습에 황금색 용포의 신인(神人) 한 분이 나타나셔서 우뢰같은 음성으로 말씀하시기를 『내 그대를 기다린지 오래노라.
그대는 삼계의 진주니 이는 막중한 천기라. 그대가 나의 도통을 이어 치천하도수(治天下度數)로 무극대운(无極大運)의 대공사를 성취하되 내 명교(命敎)를 받들어 태극(太極)의 진법(眞法)을 용(用) 하면 무위이화(無爲而化)로 광구삼계(匡救三界)하리라.
그대의 호는 정산(鼎山)이니 나와 그대는 증정지간(甑鼎之間)이며 이도일체( 以道一體)니라.
나는 구천(九天)의 천존상제(天尊上帝)노라.』하시니라.
옥황상제님께서는 이 말씀에 정신이 더욱 환해지셔서 이 신인이 바로 진리의 당체이신 구천상제님이심을 깨닫는 동시 봉천명(奉天命)의 기쁨 속에 몸소 태극진주(太 極眞主)임을 대오(大悟) 자각(自覺)하시고 삼계를 광구하실 각오를 마음속에 굳게 다지시니라.(태극진경1장39절)
1910년(경술) 도주님께서는 15세에 만주 봉천(奉天)으로 망명하시어 구국제세의 뜻을 정하시고 입산 공부를 시작하셨습니다. 도주님의 이 역사적 행적을 ‘봉천명(奉天命)’이라 하며 이로부터 도주님의 ‘포교 오십년 공부’가 시작되었다.
* 망명지의 성도(省都) 심양(瀋陽)이 봉천(奉天)으로 개명됨이 어찌 우연이며 인위(人 爲)였으랴 하시듯이 심양에서 봉천으로 그리고 현재는 다시 심양(랴오닝성 선양) 으로 불린다.
이에대한 상제님의 공사가 증산도의 경전인 도전에도 실려있다.
증산도경전 도전(구판) 5편 천지공사 104절에 있는 도주님 종통 내용
4월 28일에 김보경, 등 몇명의 성도를 거느리시고
태전역 근처의 철도주변에 가시어 동서남북으로 오가시며 혼자 말씀으로
"올때가 되었는데...."하시고 멀리 바라보시며 누구를 기다리는 표정을 짓고 계시니라.
성도들이 이상히 여겨 여쭈기를 "누구를 그렇게 기디리시옵니까?"하니
아무말씀을 않으시고 바라만 보시더니 마침 이때 달려오는 기차를 보시고 반기시며 말씀하시기를
"이제 나의 일은 다 이루었도다 남아(男兒) 15세면 호패(號牌)를 차느니 무슨 일을 못하리요"하시고
한참동안 서 계시며 공사를 행하시니라.........하략
<증산도 경전 도전에 나와 있는 내용이다. 다만 이 부분이 걸렸는지 신판에는 삭제되어 찾을 수 없다.>
내 일이 어찌 이렇게 더디냐.
1903년(계묘) 겨울 어느 날 보경 등의 종도들이 모시고 앉아 있는 자리에서 혼자 말씀으로
『내 일이 어찌 이렇게 더디냐.』하시니라.
보경이 여쭈기를 『무엇이 그리 더디나이까?』하니
『내 이제 신명을 시켜 진인(眞人)을 찾아보니 아직 아홉 살 밖에 되지 않은 지라.
내 일과 때가 이렇듯 더디니 어찌 딱하지 않으리요.』 하시니라.
보경이 다시 그러하오면 『저희들은 모두 쓸모없는 사람이요, 또한 지금까지 헛되이 따름이오니까?』하고 아뢰니
상제님께서 『체유기체 용유기용(體有其體 用有其用, 체에는 그 체가 있고, 용에는 그 용이 있음)이며,
시유기시 인유기인(時有其時 人有其人, 때에는 그 때가 있고 사람에는 그 사람이 있음) 이니라.』 하시니라.(태극진경3장59절)
내 덕을 펼 사람은 지금 초립동년(草笠童年)이니라
하루는 대흥리에 계시더니, 제자가 명을 받고 삿갓을 사와서 비치하니라.
말씀하시기를, 내 덕을 펼 사람은 지금 초립동년(草笠童年)이니라.
하루는 말씀하시기를, 공우야. 비록 나이가 적은 사람이라도
지위가 너보다 높고, 덕이 너보다 높거든 만날 적에 반드시 공경하라.
어떤 날은 말씀하시기를, 공우야. 때가 와서 한 사람이 허락하지 않으면,
너희들은 내가 있는 곳에 함부로 들어오지 못하노라.(이중성 천지개벽경7편8장)
* 1907년 주요 인물들의 행적을 살려보자.
- 선도교 고수부 : 본명은 고판례로 1907년 당시 28세
- 천지개벽경 저자 이중성은 1907년 당시 11세
- 대순전경 저자 이상호 선생은 1888년 생으로 1907년 당시 20세
- 증산도 안운산(본명-안세찬)은 1922년생으로 1907년엔 태어나지도 못했다.
위의 인물들 중에서 강증산으로 부터 종통을 받았다고 하는 사람은 고수부와 조정산이다.
그러나 고수부는 여자로써 초립동이 아니였고,
조정산께서 증산상제 님으로 부터 종통을 받아 덕을 펼칠 그 초립동이 맞다고 볼 수 있다.
* 초립동(草笠童)은 초립(草笠)을 쓴 사내아이로 1907년 당시 도주님은 13세 이셨다.
구천상제님으로부터 종통을 받으심
망명 9년 후인 1917년(정사) 2월 10일 23세시에 구천상제님의 삼계대순(三界大巡)의 진리를 감오득도하시고 구천상제님으로부터 종통계승의 계시를 받으셨다.
주문을 송독하시던 어느 날 「왜 조선으로 돌아가지 않느냐. 태인에 가서 나를 찾으라」는 구천상제님의 계시에 따라 그 해 봄에 수로를 통해 고국으로 돌아오시게 되고 4월 안면도 정당리에 우일재를 마련하시고 공부를 하셨다.
* 구천상제님과 옥황상제님 두 분께서 실제 만나신 적이 없지만, 종통 전수는 계시 로 이어지셨다.
23세시의 감오득도(感悟得道)
이러한 도주님의 감오득도에 관하여 도전님께서는 “도주님께서 진주(眞主:15세)로 봉천명(奉天命)하시고 23세시에 득도하심은 태을주(太乙呪) 23자의 수리가 일치하는 본령합리(本領合理)를 이룬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 본령합리(本領合理)란 본령(本領: 본래의 특성)이 진리에 부합된다는 말로서, 천부 의 종통 계승을 하실 도주님께서 득도하신 1917년 2월 10일은 도주님의 연세가 23세 되시는 해로, 23은 태을주 글자 수 23과 서로 상응이 되기 때문에 진리와 조금도 틀림없이 꼭 들어맞는다는 의미를 표현한 것이다.
마동(馬洞)에 계신 상제님의 누이동생 선돌부인으로부터 봉서(封書)를 받으시다.
1919년(기미) 도주님께서는 정월 보름에 이치복과 함께 정읍 마동(馬洞) 김기부의 집에 이르러 그곳에서 대사모님과 상제님의 누이동생 선돌부인과 따님 순임(舜任)을 만나셨다.
이때 선돌부인은 「상제께서 재세시에 늘 을미생이 정월 보름에 찾을 것이로다.」라고 말씀을 전하며 도주님께 봉서를 내어드렸다.
이렇게 상제님께서 선돌부인에게 남기신 봉서는 10년 후 을미생 이신 도주님께 전해졌으며, 상제님의 친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봉서를 전해 받으신 것은 세상 사람들에게 종통을 계승하실 분이 도주님이라는 사실을 알리는 또 하나의 징표이다.
마동(馬洞)의 마(馬)는 조씨(趙氏)를 뜻한다고 한다.
상제님께서는 도주님께서 조씨(趙氏)이기 때문에 조씨(趙氏)를 상징하는 말(馬), 즉 마동(馬洞)에 봉서를 숨기신 것으로 보여지며, 이는 마동을 통한 도주님의 종통 계승이 천부적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도주님의 종통계승은 계시와 봉서로 이루어져 도주님은 상제님을 인세에서 직접 만나지 않으셨고, 따라서 상제님의 가르침을 들으신 적도 없었다. 하지만 도주님은 멀고 먼 만주 봉천에서 상제님의 대순진리를 감오득도 하시고 귀국하시어 상제님의 진리를 선포하심으로써 진주임을 증명하셨다.
상제님의 종도 그 어느 누구도 하지 못한 상제님의 도덕을 펴시고 밝히셨을 뿐만 아니라 상제님을 구천상제님으로 봉안하시어 상제님이 우주 삼라만상을 주관하는 조화주이심을 명확히 선포하셔서 삼계대순 개벽공사의 실상을 보여주셨으며 오십년 공부로 대순진리의 진법을 완성하셨다. 즉 도주님에 의해 상제님의 진리가 밝혀지고 도법이 짜짐으로써 교리적 정통성이 세워진 것이다. 따라서 도주님의 종통계승이란 천부적인 이치에 의해 완성되고 계승됨을 의미한다.
1919년(기미) 9월에는 보천교 본부에 보관 중이던 둔궤를 통사동 재실로 옮기시어 상제님의 대순하신 진리를 설법하셨다.
1920년(경신) 2월 17일 재실에서 밤낮으로 불면불식 공부하시던 중 둔궤가 봉안된 곳에서 벼락소리가 나더니 둔궤가 저절로 열렸다. 둔궤 속에는 호피 한 장과 반쯤 핀 국화 한 송이가 그려있고 양피(羊血) 스물넉점이 궤에 찍혀있고 오강록(烏江錄) 팔문둔갑 설문(舌門)이란 글자가 궤에 쓰여 있었다.
1921년(신유) 7월 대원사에서 백일도수를 마치시고, 9월 5일 동곡 장탯날에 가매장되어 있던 상제님의 성골을 통사동 재실로 모시고 와 치성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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