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학 연구자들의 소통불능에 관한 한 가지 생각
news letter No.383 2015/9/8
일전에 연구소 회의에 참석해서 내년 심포지엄 주제에 대하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몇 가지 느낀 점이 있어 적는다. 필자는 중국종교연구회라는 작은 공부 모임에 참여하고 있었는데, 이 모임이 최근 연구소 분과로 정식 등록하면서 심포지엄에 참여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동아시아 전통 시기 희생제의를 심포지엄의 주제로 채택하기로 분과 구성원들끼리 잠정적인 합의를 본 상태이다. 원래 심포지엄의 주제나 일정에 관한 모든 사안들은 연구소 운영위의 검토를 거치는 것이 상례라서 중국종교연구회가 정한 심포지엄 주제도 함께 논의하게 되었다. 필자는 마침 이 회의에 참석할 수 있어서 해당 주제에 대하여 다른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를 살필 수 있었다. 몇 가지 코멘트가 있었지만 이를 간추려 보면 대체로 이런 이야기였다. 주제가 지나치게 전문적이어서 이 분야를 잘 모르는 사람들과 문제의식을 공유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러니 발표 준비를 할 때 전문가 중심의 폐쇄성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신경을 써주길 바란다. 희생제의 자체는 종교학의 고전적인 주제이기 때문에 전문가만의 독점 분야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희생제의를 중심으로 분석의 대상이 되는 영역이 동아시아 근대 이전 전통 시기라는 점이 약간의 거리감을 느끼게 했을 가능성이 있다. 게다가 발표자 각각이 다루겠다고 하는 분야도 밖에서 보면 온통 알아듣지 못하는 외국어처럼 들리지 않았을까 판단된다. 연구소 회의에서 제기된 문제는 어찌 보면 연구자라면 누구라도 새겨들어야 할 조언이다. 연구자치고 전문가 아닌 사람은 없겠지만 자신의 발언이 혼자만의 독백에 그친다든가 주위의 공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면 얼마나 공허한 일이겠는가. 그러나 누구보다도 이 말을 경청할 사람들은 소위 전통시기 종교 연구자들이 아닐까 반성해본다. 종교학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주요 의제가 무엇인지 도통 무관심한 채 자신만의 세계 안에 갇혀 메아리 없는 말들의 성찬에 스스로 만족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일이다. 한국 종교학계에서 전통이란 말은 소통을 가로막는 일종의 장벽에 지나지 않은 것은 아닐까. 과연 전통시기 종교 연구자들의 성과가 진지한 토론의 대상이 된 적이 단 한번이라도 있는가. 요즘 한국에서 꽤 많은 주목을 끌고 있는 조나단 스미스는 원래 전공이 헬레니즘 시대의 종교라고 한다. 연구자로서 출발 지점이 전통시기의 종교인 셈인데, 그의 글을 읽은 독자들은 그가 전문가적 폐쇄성에 머물렀다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가 발설하는 종교학적 의론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문제의식과 통찰력을 심어준 데는 전통시기 종교에 대한 관심이 밑거름이 되지 않았을까. 아마도 그의 생산적 글쓰기는 전통에 대한 전문가적 안목을 종교학적 공론의 장에서 풀어내고자 했던 의지에서 기인한 것은 아닐까 추정해본다. 여기서 한 가지 더 말한다면 한국의 종교학자들 사이에 전통과 근대의 시기 구분이 너무 뚜렷해서 서로 넘을 수 없는 영역으로 인식되고 있지는 않은지 따져볼 필요도 있을 것 같다. 사실 한 가지 예로 한국종교 연구자들만 하더라도 전통시기 전공자와 근대시기 전공자로 나누어져서 평생토록 이러한 구분을 신주단지 모시듯 살아오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아도 한 사람의 연구자가 자신이 전공하는 한국의 종교를 이해하는 데 전통과 근대를 구분한 채로 한쪽만을 고려해서는 온전하게 목표를 달성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단적으로 전통시기 종교를 모르고서는 근대 종교를 말할 수는 없지 않을까. 그렇다면 과감하게 이 보이지 않는 구분선을 무너뜨리고 종래의 연구 방법과 태도를 새로운 방향으로 틀어보려는 노력을 시작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전통시기 종교 연구자들이 부닥친 소통불능의 이면에는 이와 같은 시기 구분의 한계가 작용한 측면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임현수_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원temps82@hanafos.com최근의 논문으로 〈중국 고대 무교 연구와 기원의 문제〉, 〈종교와 문자: 상대 종교적 매개로서 갑골문의 본질과 기능〉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