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생을 주노니
말씀 / 요한복음 10 : 19-41
요절 / 요한복음 10 : 28
최근에 어떤 사람이 캐낸 산삼 115뿌리가 가짜라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산삼이 높이 평가 받는 것은 예로부터 뛰어난 약효가 있다고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산삼을 사람이 밭에서 재배한 것이 인삼인데, 산삼과 인삼의 차이도 약효 면에서 산삼이 더 낫다고 보는 것입니다. 진짜 산삼이 약효가 뛰어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진짜 목자가 우리에게 영생을 주십니다. 영생을 주시는 우리의 참 목자 예수님을 깊이 영접하여 모시기를 기도합니다.
1.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19-30)
19-21절을 보십시오. 15-18절 말씀에서 예수님께서 스스로 목숨을 버리신다고 하자 유대인들 가운데 이 말씀을 가지고 논란이 벌어졌습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귀신들려 미쳤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어떤 사람은 귀신들린 사람의 말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귀신은 소경의 눈을 뜨게 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이 ‘귀신들렸다’ ‘미쳤다’고 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너무나 열정적으로 하나님의 복음역사를 섬기는 것을 보고 하는 말입니다. 어떤 때에는 식사도 하지 못하시고 생명역사를 위해 헌신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식사도 하지 않고 뭔가에 힘을 쓴다고 하며 이 말을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얼마나 간절하게 양들의 생명을 살리고자 애쓰셨는가 배웁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생명구원역사를 위해서 복음이 널리 전파되도록 하기 위해서 큰 열심을 지속적으로 내야 하겠습니다.
22-24절을 보십시오. 때는 수전절이었습니다. 수전절은 성전을 회복한 날을 기념하는 명절입니다. 이날 예수님께서 성전의 솔로몬 행각에 다니시자 유대인들이 알아보고 에워싸며 말했습니다. “당신이 언제까지나 우리 마음을 의혹케 하려나이까 그리스도여든 밝히 말하시오” 예수님께서는 이미 수많은 말씀과 하시는 표적을 통해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드러내셨습니다. 이들은 그동안 본 것과 들은 것을 잘 생각하기만 해도 충분히 예수님이 누구신가 알 수 있습니다. 왜 또다시 예수님께 이런 질문을 하는 것입니까? 불신에 기초하여 예수님을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 어떤 역사가 일어나도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점점 많은 증거들이 심상치 않은 상황임을 알게 했습니다. 문제는 그들이 예수님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인정하지 않고 싶은데 상황은 심상치 않고... 그래서 그들은 의심하고 불신하는 마음으로 직접적인 멘트를 들어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들의 자세는 교만합니다. 이들의 마음은 불신과 의심이 가득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속 시원하게 예수님이 그리스도라 말씀해주시지 않으시는 것입니까? 베드로를 비롯한 12제자들에게는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밝히셨는데 왜 유대인들에게는 그 말씀을 해주지 않으시는 것입니까? 그릇된 메시야 사상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 사람들의 메시야관은 무력혁명을 통해서 로마와 전쟁을 벌이는 메시야였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내가 메시야다”라는 선언을 하면 그들은 예수님을 억지로 왕 삼고자 하며 복음역사, 생명역사를 방해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에게 어떻게 대답하십니까?
25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니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하는 것이어늘”
예수님이 누구이신가? 2가지 분명한 증거가 있습니다.
첫째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말씀으로 예수님이 누구신가 말씀해왔습니다. 이미 말씀하셨고 그동안의 말씀을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말씀을 기초로 충분히 믿을 수 있습니다.
둘째는 예수님의 기적들입니다.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행하신 능력의 역사는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게 해줍니다. 감옥에 갇힌 세례요한이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려야 하오리까? 사람을 보내어 질문했을 때 예수님께서 어떤 답을 주셨습니까?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가서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고하되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눅7:22) 이 말씀은 구약성경 이사야서35:5,6절에 기록된 메시야에 대한 예언의 말씀을 인용한 말씀입니다. 메시야가 오셨을 때 일어나게 될 일들이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하시는 기적들을 보고 구약말씀과 조금만 참고해 보아도 예수님은 메시야이심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왜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도 깨닫지 못하며 놀라운 하나님의 기적들을 보고도 구약성경을 떠올리며 예수님이야말로 오신 메시야이심을 믿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것입니까?
26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양은 자기 목자의 음성을 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알지 못한다는 것은 음성을 구분할 수 없는 다른 주인의 양이라는 증거입니다. 무엇이 이 유대인들의 주인이었습니까? 어떤 주인의 양이었기에 예수님의 음성을 듣지 않은 것입니까? 이들은 세상욕심이 주인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사람들의 인정과 사람들의 존경을 내려놓고 싶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백성들을 일깨우셔서 자신들이 가르쳐온 율법과 규례를 부정하면 자기들이 가진 것을 모두 잃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유대인들은 땅위에서 사람들로부터 훌륭한 종교지도자로 인정받고 칭송받는 것에 대한 욕심이 너무 강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았습니다. 백성들이 예수님을 따르고 예수님을 좋아하고 예수님의 인기가 올라가는 것을 견딜 수 없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진리를 사모하며 영생을 소망하지 않고 사람을 좋아하고 자기영광을 구하며 땅위에서 안녕을 추구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양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첫째, 예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27절 전반절을 보십시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예수님의 양은 예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이는 성경말씀을 인격적으로 영접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듣고 마음에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말씀을 들을 때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어야 합니다. 마음에 믿고 영접해 들여야 합니다. 마귀는 우리의 마음에 악한 생각을 심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빼앗아 버리는 일을 합니다. 예수님께 속한 사람은 이런 의심의 생각, 미움의 생각을 부인하고 성경말씀을 굳게 붙잡을 줄 아는 사람입니다.
둘째, 예수님께 순종합니다. 27절 후반절을 보십시오.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예수님의 양은 예수님을 따릅니다. 예수님의 양은 예수님께서 자기를 생명의 길로 인도해주실 것을 알고 신뢰합니다. 예수님의 양은 예수님을 따라갈 때 영생이 있음을 알고 믿습니다. 예수님의 양은 예수님을 통해서만이 풍족하게 먹을 수 있음을 확신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비장한 각오나 엄청난 결단을 통해서 이루어지기 보다도 인격적인 신뢰와 사랑을 바탕으로 하여야 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면 반드시 승리하게 하신다’. ‘예수님을 따라가면 예수님이 반드시 나를 행복하게 하신다’는 인격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예수님과의 관계가 이루어져야 바람직합니다. 이런 양은 언제든지 어느 때에든지 무슨 일에든지 예수님을 안심하고 따르게 됩니다.
이런 예수님의 양들을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해주십니까?
첫째, 예수님은 양들을 알아주십니다. 세상에 누가 나를 압니까? 세상에 누가 나의 아픔과 나의 고난과 나의 눈물을 압니까? 사람은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도 나를 알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나를 아십니다. 나에게 필요한 것을 아시고 나의 개성과 인격을 아십니다. 나의 갈 길을 아시며 나의 모든 것을 가장 정확하게 아시되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해하시는 유일하신 분이십니다. 여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 인생을 걸고 남자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하여 인생을 건다는 말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나를 가장 사랑하시는 분이시며 나를 가장 잘 알아주시는 사랑의 목자이십니다.
둘째, 예수님은 양들에게 영생을 주십니다. 28절을 보십시오.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께서는 양들에게 영생을 주십니다. 영생은 예수님께서 양들에게 주시는 최고의 선물입니다. 인간은 죄로 인하여 영원히 죽게 되었습니다. 영원하기를 원하지만 영원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실체입니다. 그래서 괴롭습니다. 이 문제 때문에 인간은 불행합니다. 절망스럽습니다. 그러나 이 깊고 심각한 문제를 예수님께서 해결해주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멸망에서 벗어나 영생을 얻게 해주시는 분이십니다.
셋째, 하나님과 함께 우리를 영원토록 지켜주십니다. 28절 후반절과 29,30절을 보십시오.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우리는 자신을 발견해 보면 내 스스로도 나를 믿을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는 얼마나 유혹이 많은지 모릅니다. 정욕문제, 장래문제, 인본주의, 상대주의, 자유주의... 예수님께로부터 나를 떼놓고자 하는 세력들은 너무나 많고 다양하고 그 세력이 강해 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우리를 지켜주십니다. 우리는 연약하고 마귀는 강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더 강하십니다. 천지 만물을 지으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과 함께 우리를 영원토록 지켜주십니다. 로마서 8:38,39절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그러므로 목자되신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안심할 수 있습니다. 영원토록 주와 함께 기뻐하고 찬양할 수 있습니다.
2. 나를 믿지 아니할지라도 그 일은 믿으라(31-41)
31절을 보십시오. 유대인들은 방금 전까지 그리스도여든 말해 달라고 했었습니다. 그러던 그들이 이제는 갑자기 태도가 돌변하여 예수님을 돌로 치려합니다. 예수님께서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는 말씀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그동안 예수님과 함께 하시는 놀라운 기적들과 말씀을 듣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 시각이 여전히 예수님을 하나의 사람으로만 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방금 말씀하신 전체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고 단지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는 부분에 흥분하였습니다. 신성모독을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34,35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시편 말씀중 아삽의 시를 예로 들어서 그들이 이성을 되찾도록 하셨습니다.
36-38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흥분을 구약말씀으로 가라앉힐 수 있게 하신 후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고 하나님의 일을 하신 것을 다시금 생각하게 하셨습니다.
“만일 내가 내 아버지의 일을 행치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려니와 내가 행하거든 나를 믿지 아니할지라도 그 일은 믿으라 그러면 너희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리라 하신대” 편견과 아집에 사로잡힌 자들은 말을 찬찬히 듣고 생각해보려 하지 않습니다. 흥분하여 큰 죄를 범합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부인할 수 없는 증거, 하나님의 능력이 드러난 기적들을 예로 들며 그들이 깨달을 수 있도록 하십니다. 39절을 보십시오. 그들은 자기들의 교만과 고집과 편견을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떠나가셔서 이전에 세례요한이 세례를 베풀던 곳으로 가셨습니다.
사람들은 그곳에서 예전에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어떻게 증거 했었는가? 기억났습니다. 과연 예수님은 세례요한이 증거하던 바와 꼭 같았습니다. 세례요한의 증거를 되살려 기억하고 예수님의 역사를 생각해보았을 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말씀을 통한 역사요 증거자들의 증거를 통한 역사입니다. 사람이 자기 생각에 사로잡히지 말고 말씀을 인격적으로 되새겨 보면 예수님을 만나고 알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우리의 목자이십니다. 영생을 주시는 목자이십니다. 예수님의 음성을 들으며 예수님께서 주시는 영생을 풍성하게 누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