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선봉
《한강문학》시부문 신인상 수상(2018), 〈한두뼘 미래문화창작소〉 멤버
아욱국을 끓이며
전 선 봉
초여름
아욱국을 끓인다
씻고 다듬은 아욱 체에 밭치고
멸치 대가리 떼어내고
다시마 조각내어
냄비에 된장 풀어 육수를 낸다
마른 보리새우 없어도
다슬기 없어도
무엇보다 엄마의 손 맛 대신할
비기秘技 없어도
감칠 맛 위에 정성 조금 얹어
아욱국을 끓인다
가을 아욱국은 아니라서
문 열고 먹는다
들어오는 사람들과 함께 먹는다
하하 호호 웃으며 먹는다
아욱국 한 그릇에도
정이 넘쳐
우리는 언제부터
아욱국 한 그릇에도
사랑이 넘쳐 끓었을까?
북극의 얼음이 녹으면
북극의 얼음이 녹으면
북극곰도 녹는다
북극 여우도 녹는다
순록도 길을 잃고
바다표범도 쉴 곳을 잃는다
북극의 얼음이 녹으면
땅이 마르고
계곡도 마른다
강이 마르고
모래무지도 살 곳을 잃는다
북극의 얼음이 녹으면
너도 녹고 나도 녹는다
너도 마르고 나도 마른다
북극곰처럼
모래무지처럼.
그냥 나왔어
한 여름 낮
느티나무 그늘 아래
벤치에 앉은 노파가
인사를 한다
“어디 가는가?”
한 손에 부채 들고
휘적휘적 걸어오던 노파가
대답을 한다
“그냥 나왔어”
세상에 그냥 나오지는 않았지만
모든 일 마친 후 외출은
그냥 나와도 되는 것이다
그렇게 바람처럼 다니다
그냥 돌아가도 멋진 것이다
노파의 그 물음과 답이
앞서 걷던 내 귀에 박혀서
다시 내게 묻는다
어디 가는가?
일하러 가요
그래서 어디 가는가?
살기 위해 가요
사는 게 뭔데?
움직이는 거요
뭘 위해 움직이는데?
심장이 뛰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