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스님’은 생전에 미국에 왔을 때, ‘헨리 쏘로우’가 외롭게 살았던 ‘왈든 호수’ 옆 숲속의 통나무 집터를 3번이나 방문했다.
‘왈든 호수’의 영문 이름 ‘Walden Pond’를 우리말로 직역하면 ‘왈든 연못’이지만, 우리 한국인 눈에는 큰 호수로 보인다. 그래서 호수라 불러주어야 현지에 갔을 때 실감이 그대로 느껴진다.
미국에는 크고 큰 호수들이 너무나 많아서 웬만한 크기의 호수들은 그저 연못(Pond)로 취급된다. 그들은 작은 산 정도는 그저 언덕(Hill)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서울의 남산도 언덕이라고 말을 한다.
용산 인근 부대에 근무하는 미군들에게 ‘남산’을 “Mountain Namsan”이라고 이름을 가르쳐 주었지만, 막상 뒤돌아서면 “Namsan Hill”, 또는 “Hill Namsan”이라고 말을 한다. 그들 눈에 남산은 언덕 정도의 작은 산으로 보이는데, 한국인들은 ‘남산’에 ‘Mountain’을 붙여서 영어로 말해주면, 킥킥대고 웃는다. 노루를 가리키며 사슴으로 부르라는 투로 들리는 모양이다. 하기야 미국은 땅덩어리가 너무나 크고, 5대호 등 큰 호수도 너무나 많고 록히 산맥 등 큰 산맥도 많아서, 우리의 눈에는 호수로 보이지만 그들의 눈에는 연못으로 보이고, 우리가 말하는 산이 그들의 눈에는 자그마한 언덕(Hill)으로 보이는 모양이었다.
그래 잘 났다! 미국인 눈은 왕 눈이고, 우리 눈은 좁쌀 눈인가 보다. 그래서 나는 우리 시각으로 ‘Walden Pond’를 ‘연못’이 아니라 ‘왈든 호수’로 크게 보려고 한다.
나는 평행이론을 신봉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미국에 가면 법정 스님처럼 왈든 호수를 3번쯤 찾아보려고 일찍 마음먹은 바 있었다. 그랬기에, 이번이 두 번째 온 길이다. 첫 번째는 2012년 5월, 작은딸이 컬럼비아 대학원 졸업식을 할 때였다. 그때는 뉴욕에서 당일치기 방문이었다. 새벽에 뉴욕에서 고속버스를 5시간 정도 타고, 보스톤에 내려서 택시를 타고 와서, 또 5시간 걸려 뉴욕으로 당일에 귀환했었다.
왈든 호수는 보스톤과 같은 주인 매사추세츠에 있었다. 가는 도중에 하버드대 캠퍼스와 MIT 공대 캠퍼스도 주마간산 격으로 잠깐 들려 구경했었다. 왈든 호수도 헨리 쏘로우의 복제 통나무 하우스도 왈든 호수 남쪽 호반만 부랴부랴 허겁지겁 구경했었다. 왜냐하면 택시를 대기시켜 놓고 구경했기에 시간에 쫓겨 구경할 여유가 없었다. 그저 겉도는 식으로만 왈든 호수를 구경해야만 했었다. 그때는 우리 집사람과 작은딸 셋이 갔었다. 서울에 있을 때부터 작은딸에게, 만약에 미국 쪽에 유학 가게 되면 꼭 왈든 호수를 찾아가 보자고, 약속한 적도 있었다. 왜냐하면 2002년 서울대 대학원 영문과 입학시험 중 필수 과목인 영미문학 과목에서, 〈왈든 클럽과 초월주의〉에 관해서, 아는 바를 설명하라는 문제가 나왔는데, 바로 이 문제는 작은딸과 내가 예상했던 것으로써 적중하였고, 아무튼 대학원 입학에 다소 도움이 된 것이다. 그래서 나도 그때 쏘로우의 ‘왈든’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고 그 책도 읽게 된 것이다.
이번에는 작은딸 내외가 아예 자동차를 렌탈해서 보스톤에서 1박 2일 코스로, 왈든 호수와 헨리 쏘로우가 살았다는 북쪽 해안 뒷켠에 있는 집터도 찬찬히 살펴볼 수 있었다.
2016년 7월도 끝나가는 31일, 왈든 호수에도 석양이 질 때 나는 그곳을 떠나왔다. 그리고 다시 한번 더 오리라는 묵언의 약속을 왈든 숲과 호수에 하면서 아래와 같이 잔잔히 느낌을 정리해 보며 그곳을 떠나왔다.
〈왈든 호숫가에서〉
인적도 드물어진 왈든 호숫가 오늘 밤도 어두움만 살포시 찾아든다. 묵묵히 사는 일이 이리도 저허되어 사릿문 제끼고 호숫가로 나선다. 김매고 나물 먹고 어둠 속을 걷노라면 어둠 속에 별빛이 호반 위를 수 놓는다. 형상 없는 꿈만이 호숫가에 가득한데 멀리서 외기러기 울음 적막을 뚫는다. 식어가는 젊은 날의 열정 호숫가를 맴도는데 속절없는 산새 노래 그 맘속에 잦아든다. 대지 위엔 폭염이 어제처럼 여전한데 아, 그 열기 오늘 밤엔 식혀지려나 탐내는 일은 솔찬히 줄여 줄여 오늘 밤도 왈덴 호숫가에 가만히 뿌려본다. 소식 반찬에 끼니를 아깝게 때웠건만 꿈틀대는 남은 식탐 호수보다 깊고 깊다. 실없이 피어진 저 들꽃아 이제 그만 시들거라 내년을 예비했거늘 하염없이 돋아진 저 푸성귀여 이제 시들거라 내년을 예비했거늘 라일락도 아니련만 네 향기 그리도 뽐내 싶어 오늘밤도 왈덴 호수에 발들만 굴리느뇨.
▲헨리 쏘로우도 법정 스님도 산책을 했던 왈든 호숫가
◆ 헨리 쏘로우는 누구인가?
인도의 간디, 미국의 마틴 루터 킹 목사도 큰 영향을 받았다는 쏘로우(Henry Thoreau)는 1817년 매사세츠 주, 콩코드에서 태어났다.
▲마틴 루터 킹(우측) ▲헨리 쏘로우 ▲인도의 간디(우측)
명문 하버드 대학 문학부를 졸업하고, 28세가 되던 1845년에 콩코드 지방에 있는 왈든 호수 가에 통나무집을 짓고, 자급 자족을 하면서 2년 2개월 2일을 숲속에서 살았다. 우리나라가 일제로부터 해방되기 전인 100년 전이다. 그 당시 하버드대 문학부 졸업생은 변호사, 의사, 목사 등 화려한 직업을 가지고, 금수저 집안을 만들며 부유하게 떵떵거리며 잘 살 수 있던 때였다.
그는 왜 금수저 복권을 버리고 외로운 호숫가 숲속으로 갔을까? 그는 자연을 몸에 입고 그대로 스스로 자연이 되고 싶어서 숲속으로 간 것이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이것이 이유이다. “나는 죽을 때 아, 헛되게 살았구나! 하고 탄식하지 않기 위해서 숲으로 왔다” 손수레 하나에 싱글 침대, 책상, 거울, 솥, 접시 몇 개 그리고 칼, 포크가 살림살이 전부였다. 그가 입산, 아니 숲에 들어 온 것은 1845년 3월이었다. 그는 2년 2개월, 26개월 동안 숲속에서 자급 자족하며 살아 보았다. 날짜로 계산하면 총 793일이었다. 그는 이 기간 동안 어떤 물건도 돈으로 산 적이 없었다. 그는 최소한의 조건 속에서 무소유 생활을 실천한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간의 체험을 그의 저서 《Walden》(왈든)에 담았다. 그는 그 책을 통하여 돈과 물질에 찌들어가는 사람들에게 자연의 소중함과 무소유 정신을 깨우쳐 주려고 했다. “간소하게, 더 간소하게 살아 보자”가 그의 모토였다. 그는 이 기간 동안 은거, 은둔 두문불출하면서, 도구를 최소한으로 이용하고, 소비도 극한적으로 줄이며 살아 보았다. 그는 오로지 자연을 관찰하며 자연 속에서 ‘초월주의’ 사상을 체득하려 하였다. 법정 스님이 이곳을 세 번이나 방문하고, 그의 통나무 집과 간단한 세간 살림을 보고 그 역시 ‘무소유’ 정신을 더욱 굳혔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의 ‘초월주의’에 대해서 공감을 했을 것이다.
쏘로우의 통나무 집은 실내 면적이 가로 4.6m, 세로 2.4m였다. 총면적은 약 11㎥, 그러니까 평수로는 약 3평 정도였다. 즉 한국의 오피스텔 원룸 1인실, 스튜디오 정도였다.
왈든 호수는 현재 관광지가 되어 있었다. 둘레가 4Km, 수심은 깊은 곳이 약 20m였고 5월부터는 물놀이, 수영이 허용되었다. 7월 말이라 많은 수영객이 모여들어 허용된 구역에서 수영을 즐기고 있었다. 수상구조 전망대도 다섯 개 정도 설치되어 있었다. 알바생 같이 보이는 20대 초반 구조 요원들 10여 명이 전망대 위에서 또는 비치에서 긴급 구조상황에 대비하여 상시 근무 중이었다.
◆ 법정 스님은 누구인가?
법정 스님의 속명은 박재철이다. 그는 1932년 전남 해남에서 출생하였다. 목포 상고를 졸업한 후, 전남대학교 상대에서 3년을 수료하고 20세가 되던 해에 경남 통영 ‘미래사’로 출가하여 효봉 스님을 모시고 불경을 배웠다. 28세가 되던 1959년에 ‘통도사’에 있는 금강계단에서 자운 스님으로부터 수계를 받았다. 1997년에는 요정 ‘대원각’을 통째 시주받아, ‘길상사’를 창건하고 주지가 되었으나, 이곳에서는 단 하루도 숙박하지 않았다. 법정 스님은 순천 ‘불일암’에서 17년간을 수행했으며, 그 후 대부분은 강원도에 있는 암자에서 불도에 정진하였다. 1976년에는 《무소유》라는 타이틀로 에쎄이 풍의 산문집을 출간하였다. 《무소유》는 무려 370만 여권이 판매되기도 했다. 법정 스님은 2010년 3월 11일 열반에 드셨다. 그는 유언으로 “내가 죽거든 화려한 장례식을 하지말라”, “관도 짜지 말거라”, “화장 후 분골은 강원도 살았던 오두막 뜰 꽃밭에 뿌려달라”, “이미 출간된 책들도 더 이상 발행하지 말라” 이런 말들을 남기고 떠났다.
법정 스님은 성철 스님에게서도 수행을 배웠다. 1960년 처음으로 친견했고, 1967년 성철 스님이 해인사 방장을 하실 때 ‘백일법문’에 참여했다. 그때 36세였던 법정 스님은 성철 스님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고 한다. “스님, 우리 같은 중이 정말 성불할 수 있습니까?” 그 물음에 성철 스님은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인간이란 금광과도 같은 대광맥이 가슴 속에 숨어 있다. 이것을 찾으면 성불할 수 있다. 바로 이것을 찾아 소개하는 것이 불교의 근본이요, 불교의 생명선이다” 그리고 성철 스님은 성불이 될 때까지 다음의 다섯 항의 수행 준칙을 전해 주었다.
첫째 : 잠을 많이 자지 말라. 둘째 : 말을 많이 하지 말라. 셋째 : 간식을 하지 말라. 넷째 : 책을 보지 말라. 다섯째 : 함부로 돌아다니지 말라.
▲성철 스님(중앙)과 법정 스님(우측)
◆ 법정 스님이 쏘로우를 만나다
법정 스님이 쏘로우의 옛 집터를 방문하였을 때 마치 쏘로우를 만나서 서로 인사를 나누듯이 이렇게 말하였다고 한다. “쏘로우 선생, 저는 법정이라는 사람이외다. 한국에서 왔습니다. 안녕하셨습니까?” 꼭 살아 있는 ‘헨리 쏘로우’를 상면한 것처럼, 첫인사를 교환하듯이 인사말을 집 빈터를 향하여 던졌다 한다.
쏘로우는 ‘초월주의’를 신봉했던 철학자이며, 동시에 문학가이며, 오늘날 시민운동과 환경운동의 선구자였다. 그리고 ‘무소유’의 실천자로 평생을 미혼으로, 독신으로 살다가 타계했다.
법정 스님도 일면은 철학자였다. 그는 청년 시절에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를 탐독했고, 니체의 ‘무신론’, 헤겔의 ‘변증법’, 칸트의 ‘순수이성 비판’을 탐독했다. 그리고 ‘보들레르’ 등 문학 서적도 탐독했다. 그는 허무주의가 무엇인지를 깨달은 사람이다. 그리고 스님이니까 평생을 독신으로 살면서 ‘무소유’를 주창했다. 그의 ‘무소유’란 전혀 물건과 재산을 갖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삶에 꼭 필요한 것만 가지고, 그 이상의 것을 포기하라는 것이었다.
그는 《무소유》에서 ‘무소유’ 실천의 한 사례를 이렇게 들었다. 만년필이 이미 있는데, 독일을 다녀온 친지에게서 만년필을 선물로 받았다. 그 후로는 글을 쓸 때마다 어떤 만년필로 쓸까, 또는 어떤 만년필이 더 비쌀까 등 부질없는 잡념이 끼어들더라는 것이다. 그는 만년필이 추가로 불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그것을 아랫사람에게 공짜로 주어버렸다 한다. 그러고 나니 마음도 개운하고 글도 더 집중해서 잘 쓸 수 있었다 한다.
법정 스님은 《무소유》라는 책자를 통해서, ‘소유욕을 줄이고, 필요 이상의 물건을 탐내거나 얻으려고 하지 말라’는 삶의 지혜를 우리에게 깨우쳐 주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면들에서, 쏘로우와 법정 스님은 평행이론에 서로가 부합되는 인물로, 막상막하의 쌍립하는 인물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이런 점에서 법정 스님이 월든 호수와 쏘로우의 집터를 세 번 방문한 것은 사실상 법정 스님과 쏘로우가 세 번 만나서, 세 번째 대화를 나누었다고 보아야 한다. 나 또한 이곳에 와서, 지난번도 그렇게 생각해 봤고, 이번에도 역시 그렇게 생각해 보았다. 특히 법정 스님은 정신적으로 쏘로우의 〈초월주의 사상〉에 대해서 공감하고, 불교의 〈무아론無我論〉과 상통함을 알았을 것이다. 또한 쏘로우의 ‘간단한 생활’과 그의 ‘무소유 사상’이 교류한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 에머슨 & 쏘로우의 ‘초월주의’란 무엇인가?
▲에머슨(Emerson)은 자신의 저서 《자연(Nature)》에서, ‘초월주의’와 ‘큰 영혼’(Over Soul)을 주창한다.
18세기는 인간이 종교의 속박에서 벗어나 합리적인 사고와 이를 뒷받침하는 이성이 높이 평가되는 시기였다. 이에 따라 과학의 발달이 시작되고 그에 부응하여 산업도 발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19세기에 들어가면서 이성주의에 대한 반발로, 보편적이며 인도주의 적인 사고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바로 이런 시기에 쏘로우가 출생하여 성장했다. 특히 쏘로우의 출생지인 콩코드는 학문과 문화가 발달한 보스톤에서 불과 32Km 떨어진 곳이어서, 새로운 사조를 빨리 접하고 수용할 수 있는 여건이 좋은 곳이었다.
매사추세츠주는 영국의 식민지 시대에, 미대륙에서는 내륙 지방에서는 맨 처음으로 식민지가 정착된 곳이었다. 특히 콩코드는 매사추세츠주에서도 하버드 대학교, MIT, 보스톤 대학 등이 인근에 있어 문화적 혜택을 받기에 여건이 좋았다. 그런데다가 보스톤은 미국 독립운동의 발상지였고, 콩코드는 미국 독립군이 영국군과 처음으로 전투를 치렀던 곳이어서, 종래의 영국적인 요소나 전통적인 문화나 관습을 배격하고, 새로운 기풍과 사상을 추구하려는 기운이 강했던 곳이다.
에머슨의 시집인 《콩코드의 찬가》는 당시의 분위기를 잘 말해 주고 있다. 그리고 그의 명저 《자연(Nature)》에서는 ‘초월주의’와 ‘대령大靈’, 즉 ‘큰 영혼(Over Soul)’에 대해서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콩코드는 말하자면 당시의 미국 문화인들에게는 ‘예술촌’이나 다름이 없었다. 특히 에머슨은 쏘로우의 정신적인 멘토였고, 동시에 초월주의 사상을 공유하는 친구이기도 했다. 에머슨도 하버드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한때 목사가 되었으나 기독교가 성경 말씀 보다도 권위를 앞세우는 교조적 관행에 반발하여 목사직을 사임하고 강연과 저술에 몰두하였다. 콩코드에는 에머슨과 쏘로우를 중심으로 하는 〈초월주의〉를 추종하는 문인들이 모여들어 살기 시작했다. 그들은 브룩 농장도 같이 설립해서 일부는 유토피아 공동체를 실현하기 위한 공동체 생활도 시도해 보았다. 그리고 계간지 《다이알(The Dial)》을 4년간 간행하기도 했다.
당시 왈든 호수 주변에서, 초월주의에 대해 담론하고, 시나 소설을 썼던 사람들을 일러 〈왈든 클럽〉이라는 별칭을 쓰기도 했다. 이들 중에는 《주홍글씨》의 작가 ‘나다니엘 호손’, 페미니즘 작가 ‘마가렛트 풀러’, 시인 ‘윌리암 엘러리’, ‘채닌’, ‘브론슨 올컷트’ 등이 있었고 이들은 거의가 초월주의자들이었다. 현직 목사인 ‘오레스테스 브라운슨’, ‘시어도어 파커’도 참여했었다.
에머슨은 인간이 자신의 자아와 영혼의 내면을 잘 들여다 볼 때 ‘신神’을 가장 잘 발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인간의 정신적 재생은 자기 안에 있는 자기 몫의 ‘대령’(Over Soul)을 개인적으로 체험함으로써 이루어진다는 것이었다. 아울러 ‘대령’은 모든 창조물과 생물 안에 스며들어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인간이 그것을 찾으려 노력한다면, ‘대령’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 말은 마치 법정 스님이 성찰 스님을 만났을 때 들었던 말과 유사하다. 성철 스님도 “우리 마음속에 금맥보다 더 귀한 ‘대광맥’이 있고, 이 대광맥을 찾으면 성불할 수 있다”고 했다. 법정 스님이 헨리 쏘로우가 살았던 왈든 호수를 찾아간 것은 바로 이 ‘대광맥’, 다시 말해서 에머슨의 ‘초월주의’ 사상인 ‘대령’을 공감하고, 이를 더 깨닫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에머슨은 ‘이성’(Understanding), 즉 감각 자료의 수집이나 물질세계의 논리적 인식에 의존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게 ‘자연’, ‘우주’, ‘세계’, ‘인간’, ‘자아’ 그리고 자신을 이해하려 하였다. 에머슨은 종합적 판단력으로 인식하는 이성이 아니라 사물을 직관으로 파악하고 인식하는 것을 ‘이성’(Understnding)으로 보았다. 그래서 그는 모든 사람에게 숨어 있는 정신적 잠재력을 크게 믿었다. 아울러 자연에 대한 무한한 경외심을 갖추고 있었다.
쏘로우도 이 점에서는 마찬가지였다. 이는 두 사람이 자연과 신을 인식하는 뿌리를 ‘초월주의’ 철학에 두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쏘로우는 그의 멘토였던 에머슨의 이론에 따라 ‘완전한 자연인 상태’로 돌아가기를 원했다. 바로 이 이유가 그를 2년 동안 숲속에 붙잡아 살게 하였다. 그는 그곳에 있는 동안 ‘노예제도 폐지’를 지지했고, ‘미-멕시코 전쟁에 반대’하여 ‘인두세 납부’를 거부하기도 했다. 그래서 한때 친척이 그 세금을 대납해 주기까지 했고, 구속되어 수감 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때 그는 옳지 못하고 부당한 권력을 행사하는 국가나 정권에 대해서는 납세 반대나 비폭력 평화시위 등 시민운동을 주창하기도 했다. 바로 이 비폭력 평화적 시민운동이 인도의 ‘간디’나 미국의 ‘마틴 루터 킹’에게도 큰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아무튼 에머슨과 쏘로우는 죽은 후의 사후 세계를 크게 중요한 것으로는 여기지는 않았다. 지금 바로 여기에 있는 이 순간과 나를 둘러싸고 있는 자연이 중요했다. 특히, 이 거대한 자연에서 ‘자아’, ‘자연’, ‘대령[神]’이 ‘상호 작용하는 통일성 법칙’을 깨닫는 일이, 그리고 그 법칙에 따라 충실하게 사는 것이 행복이며 또한 그것이 삶의 목표라고 보았다.
이러한 초월주의는 원래 그리스 철학자인 ‘플라톤’의 ‘이데아’ 세계에서 그 연원을 찾을 수 있다. 플라톤은 눈에 보이지 않는 내면의 세계가 바로 이데아 세계라 했다. 자연현상과 우리 인간 세상은 바로 이데아 세계의 일부 현상으로 본 것이다.
어떤 면에서 에머슨과 쏘로우가 말하는 ‘초월주의 세계’는 힌두교에서 말하는 ‘인간과 신의 합일체’로도 보인다. ‘인간’, ‘신’, ‘자연’은 각각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들은 통일체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의 같은 통일체 안에 있는 눈으로 신을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자연’은 바로 신의 물질적 표현이며, 심지어 그 자체라고 말한다. 인간의 영혼은 이데아 세계에 뿌리를 박고, 육체라는 일시적 현상으로 나타난 것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성공적인 삶을 위해서는 우선 물질적 차원에서 건강을 잘 관리하고, 문명의 흐름에 잘 순응해야 하며, 동시에 자연의 이중적 모습 중에서 ‘신神’ 또는 ‘영혼’에 해당하는 ‘Over Soul’을 알아볼 수 있도록 자연 속에서 내공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다.
이 말은 자연의 고독함 속에서 내면의 정신세계 수준을 또는 자신의 숨은 직관력을 성장시켜야 ‘대령’을 발견하게 된다는 말로도 들린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고집하는 것, 내 생각이 옳다는 것을 믿고, 그것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사는 사람만이 이 세상을 방문자로 살다가 간 사람이 아니고, 주인으로 살다가 간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런 주인적인 삶을 산 사람을 에머슨은 ‘천재’라고 불렀다. 이것은 동양의 ‘노장사상’으로 말하자면 ‘도인’이라는 것이다. 우리의 삶에는 사소한 일들이 우리의 의지를 꺾고, 우리의 마음을 쫄게 하거나 주눅이 들게 한다.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기 때문에 생기는 열등감도 어떤 때는 거인인 우리를 난쟁이로 생각하게 한다. 침묵과 고독의 시간을 가져볼 수 있다는 것은 오늘날 우리에게 축복의 기회가 될 수 있음을 에머슨이나 쏘로우는 말해 주고 있다.
그들은 이런 말들도 해 주고 있다. 누구는 나보다 훨씬 기술이 좋고, 재능이 탁월하여 나를 기죽게 한다. 누구는 재산이 나보다 훨씬 많아서, 누구는 나보다 얼굴이 더 잘 생기고, 더 매력적이어서 나를 쫄게 만든다. 그러나 이 때문에 쫄거나, 기가 죽어서 전전긍긍하며 시간을 보낸다면 이것은 어리석은 생각이며 시간을 낭비하는 짓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연은 인간에게 특정한 것에 대해서 독점이나 예외를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연은 거지나 부자나, 건강한 자나 노약자나, 미인이나 추녀나 똑같이 공평하게 대우해 준다. 에머슨은 이 세상의 모든 재능과 재산의 넘침은 반드시 그 양에 상응하는 결점을 준다고 했다. 사람들은 오만해지거나 경솔해지기 쉽고, 재산이 많은 사람은 그 재산 때문에 똥파리 떼처럼 몰려드는 사람들의 아부와 ‘시기’, ‘질투’, ‘협박’ 등 때문에 곤경에 처할 때가 많으며, 잘못하면 재산 때문에 생명을 단축시키는 일도 벌어진다는 것이다.
미모가 매력적인 사람은 원만한 인격과 지혜를 갖추면 금상첨화이지만, 무식하고, 성격이 악할 때는 인간관계에서 여러 가지 문제로 ‘지옥’을 만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러나 외로운 사람! 고독한 사람! 그들은 그만큼 자신의 시간을 가지고 조용한 고독 속에서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고 아울러 성장을 도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참된 영혼은 고독 속에서 성장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 에머슨은 《자연》이라는 책을 썼고, 쏘로우는 왈든 호수 통나무 집에서 2년간을 살고 난 후에 《왈든》, 즉 ‘숲속의 생활’이라는 책을 남기고 갔다. 왈든, Walden, 숲∼ ‘Wald’는 독일어에서 숲을 말한다. 그리고 그 발음은 ‘봘트’라고 한다.
끝으로 법정 스님이 에머슨이나 쏘로우의 ‘초월주의’ 사상이나 ‘대령’(Over Soul)에 대하여 공감했을 것으로 보여져, 불교에서 말하는 ‘무아론’이나 ‘물아일체’에 대해서 잠깐 고찰해 보려고 한다.
‘무아’란 원래 ‘윤회하는 주체가 있어야 하지 않느냐’는 까다로운 질문에 ‘알라야식’을 말한다. ‘알라야식’이란 모든 과거의 기억을 저장하는 ‘초특대 의식’을 말한다. 요즈음 IT 용어를 빌려 쓰자면 ‘초대형 클라우드’를 말한다.
통속적인 불교에서는 모든 생명체는 시간상 시작 없이 존재해 왔다고 본다. 왜냐하면 부처님은 우주 삼라만상의 시작과 끝에 대해서 특히, 그 유무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일 우주의 삼라만상이 무한한 삶을 존재했거나, 살아왔다면 ‘알라야식’ 용량은 사실상 무한대의 크기이어야 한다. 우리 인간의 두뇌는 유한한 용량체이다. 무한의 기억을 유한한 인간의 두뇌에 저장할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 두뇌 밖의 무한한 여러 기억들을 무한으로 저장할 수 있는 초대형, 무한대의 저장 탱크로 일종의 클라우드가 필요하다.
‘달라이라마’는 과거의 모든 일을 낱낱이 빠짐없이 다 기억한다는 부처는 분명히 ‘무한대의 저장 탱크’ 즉, ‘무한대의 클라우드’ 소유자이다. 말하자면 초능력의 기억력 소유자이시다. 전생은 무한한 윤회의 결과이므로, 무한한 전생들의 기억을 유한한 인간의 두뇌는 용량 저장 능력 부족으로 감당하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 인간의 뇌 밖에 있는, 무한 용량의 저장 탱크인 클라우드가 있다고 상정해야 한다.
이러한 상정은 결국에는 초월적인 ‘무아론’을 불러온다. 만일 우주가 유한한 공간이라고 가정해 보자. 그리고 그 우주 속에서 무한히 윤회하는 무수한 생명체가 있다고 또한 상정해 보자. 간단없이 윤회하는 생명체들이 생산해 내는 누적된 사건들과 기억량은 무한대에 달할 것이다. 따라서 유한한 공간인 우주에는 저장할 곳이 부족할 것이다. 그래서 무한한 양의 정보 저장소가 유한한 우주 공간 밖에 있어야 한다는 추론이 나온다. 이 추론의 결과로서 ‘우주 밖’을 관할하는 ‘초월적 존재’의 필요성이 대두된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무아론’을 위배하지 않기 위해서 ‘알라야식’이라는 변화하는 의식을 상정하게 된다는 것이다.
개는 색깔을 구별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모든 사물과 경관을 흑백으로 인식하고 개 두뇌에 저장한다. 만일 개가 윤회설에 따라 인간으로 환생하였다면, 과거 전생에 개였을 때 본 꽃들이나 짐승들의 색깔을 자동적으로 인코딩하여 천연색으로 변환할 수 있을까? 하기야 불교에서는 부처님은 ‘천안’, ‘혜안’, ‘법안’, ‘불안’ 등 4개의 눈이 있어 형태의 유무와 관계없이 모든 사물을 보신다 했으니, 개의 기억량을 마음대로 변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에머슨이나 쏘로우가 말하는 ‘큰 영혼’인 ‘대령’ 즉, ‘Over Soul’은 얼마나 큰 기억 용량을 가지고 있을까? 그것도 무한대의 클라우드 소유자일까? 이 점에 대해서 법정 스님과 쏘로우는 어떤 대화를 교류하였을까? 그리고 그들은 서로 상통하였을까?
성철 스님은 법정 스님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수많은 종교 중에서 불교만이 ‘영원한 진리’라고 말하지 않으련다. 만약 앞으로 불교 이상의 진리가 나온다면 그리고 그것이 확실하다면 나는 이 중 옷을 당장 벗어 버리겠다” 그리고 성철 스님은 뒷 말을 이었다. “나는 진리를 찾기 위해서 불교를 택한 거야. 불교를 위해서 진리를 찾으러 중이 된 것은 아니야”
법정 스님은 이런 관점에서 천주교 김수환 추기경과도 친교를 했고, 에머슨이나 쏘로우가 쓴 책들도 읽어 보고 심지어 쏘로우가 살았다는 콩코드의 왈든 호숫가에 있는 통나무 집도 무려 세 번이나 찾아갔던 것이다.
진리! 오직 진리를 찾고자∼, 혹시 ‘초월주의’의 ‘오버 소울’, ‘대령’ 속에 더 좋은 참 진리가 있나를 비교해 보기 위해서∼, 법정 스님은 큰 스님을 벗어난, 아마도 에머슨이 말한 ‘자연인 천재’였는지도 모르겠다.
법정 스님도 삶의 파란곡절을 겪으신 분이다.
-. 일제 강점기 -. 해방전후 좌우 대립 -. 1948년 여순반란 사건 -. 4.3 제주도 앙민 학살사건 -. 6.25 동란 -. 4.19 혁명 -. 5.16 군사 쿠데타 -. 5.18 광주 시민항쟁 -. 12.3 비상계엄 사태 등
에머슨이나 쏘로우도 여러 시대 상황을 겪었다.
-. 노예 해방문제 -. 미국 남북 전쟁(1861∼1865) -. 링컨 암살 사건 -. 미-멕시코 전쟁 -. 서부개척 시대 -. 1849년 골드 러시 시대 등
다음은 3대 초월주의 사상가들이다.
(1) 에머슨(1803∼1882) (2) 헨리 쏘로우(1817∼1862) (3) 윌트 휘트먼(1819∼1892)
미국의 1840년대는 서북 개척시대였다. 서부에서 금광이 발굴되어 서북으로 황금과 돈을 찾아 몰려드는 ‘골드 러시’ 시대였다. 1850년대는 ‘노예 문제’가 미국 내에서 큰 이슈였다. 1860년에 링컨(1809∼1865)은 공화당 대통령 후보가 되었고 1861년 3월 4일, 16대 미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그러나 링컨 대통령은 1865년 4월 15일, 워싱톤 포드 극장에서 남부 출신인 배우 J. 부스에게 암살당하였다.
이런 시대적 상황과 분위기 속에서 물질과 돈에 찌들리는 사람들을 보고 에머슨과 쏘로우는 미국인에 필요한 참다운 철학을 ‘자연’에서 찾아 주려고 했다. 이런 점에서 여러 역경을 겪은 법정 스님도 이들이 추구했던 ‘자연 외경’ 사상과 ‘초월주의’ 속에서 〈무소유〉 사상과 ‘물아일체’, ‘무아론’의 불교 철학을 견주며, 더 나은 참 진리를 추구하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메사추세츠 콩코드에 있는 왈든 호수와 쏘로우의 통나무 집을 세 번이나 찾았는지 모른다.
■ https://m.blog.naver.com/swlee8585/22078213394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