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葆光의 수요 시 산책 18)
두 번은 없다
두 번은 없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런 연습 없이 태어나서
아무런 훈련 없이 죽는다.
우리가, 세상이란 이름의 학교에서
가장 바보 같은 학생일지라도
여름에도 겨울에도
낙제란 없는 법.
반복되는 하루는 단 한 번도 없다.
두 번의 똑같은 밤도 없고,
두 번의 한결같은 입맞춤도 없고,
두 번의 동일한 눈빛도 없다.
어제, 누군가 내 곁에서
네 이름을 큰 소리로 불렀을 때,
내겐 마치 열린 창문으로
한 송이 장미꽃이 떨어져 내리는 것 같았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함께 있을 때,
난 벽을 향해 얼굴을 돌려버렸다.
장미? 장미가 어떤 모양이더라?
꽃인가, 아님 돌인가?
야속한 시간, 무엇 때문에 너는
쓸데없는 두려움을 자아내는가?
너는 존재한다 ― 그러므로 너는 사라질 것이다
너는 사라진다 ― 그러므로 아름답다
미소 짓고, 어깨동무하며
우리 함께 일치점을 찾아보자.
비록 우리가 두 개의 투명한 물방울처럼
서로 다를지라도……
- 비스와바 쉼보르스카(1923-2012). 시선집 『끝과 시작』, 문학과지성사,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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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개하는 시는 지난주 루이즈 글릭의 시를 소개하면서 언급한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시입니다. 비스와바 쉼보르스카는 1996년 여성 시인으로는 처음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폴란드의 시인입니다. 이 시는 시인의 실질적인 등단 시집으로 1957년 발간된 『예티를 향한 부름』에 수록된 시입니다. 이 시집 이전에 두 권의 시집을 발간했으니 세 번째임에도 실질적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것은 이전의 두 시집이 당에서 요구하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기준에 따라 출판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이란, 사회주의 국가의 예술 창작의 유일한 공식적인 방법론으로, 기본 원칙은 예술의 궁극적인 목적은 피지배 계급을 사회주의 이념에 맞추어 사상적으로 개조하고 교육시키는 데 있으며, 예술가는 혁명적 발전을 역사성의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구조에서는 창작의 형식과 내용은 철저하게 통제됩니다. 결국 도식을 면할 수가 없게 되지요. 몇 주 전에 소개한 백석 시인의 경우도 1948년 「南新義州 柳洞 朴時逢方」(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을 마지막으로 시작을 그만두는데, 이 시는 알려진 바로는 북한에서 발표한 유일한 시입니다. 이후 1956년부터 동화시라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새로운 시를 발표하지만 갈수록 내용의 참신성이 떨어지고 도식성이 강해지다가 결국 1962년에 이마저도 끝을 냅니다. 아마 창작에 대한 통제를 견디기가 힘들어서였을 겁니다. 최근 김유섭 시인은 「南新義州 柳洞 朴時逢方」에 대한 해석에서 “인간 누구나가 겪을 수 있는 상실의 체험과 극복의 과정을 담담하게 그려 냈다.”는 주류 해석을 비판하면서 “이 시는 반성문이고 자아 비판서”라는 새로운 해석을 내놓았습니다. 제가 보기에도 매우 일리가 있는 해석입니다. 통제는 창작이 절대 감당할 수 있는 몫이 아닙니다. 정부의 탄압과 독재, 창작의 자유를 억압하는 구조적 모순에 강한 회의를 느낀 쉼보르스카 시인이 당과의 결별을 선언하고 발간한 시집이 『예티를 향한 부름』입니다. 시인은 생전 12권의 시집을 발간합니다. 노벨문학상 수상은 아홉 번째 시집인 『끝과 시작』 발간 후입니다. 오늘 소개하는 이 시는 폴란드의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려 있는 폴란드 전 국민이 애송하는 시인의 대표작입니다. 지난주 시인을 언급하자 누군가가 바로 이 시를 이야기했는데 시인의 시 중 아마 우리에게도 가장 친숙한 시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쉼보르스카 시의 가장 큰 특징은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것들로부터 건져 올리는 비범한 삶의 지혜로 시가 대부분 쉽고 단순한 시어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시 또한 그러합니다. “두 번은 없다.” “두 번의 똑같은 밤도 없고,/두 번의 한결같은 입맞춤도 없고,/두 번의 동일한 눈빛도 없다.” 결별로까지 이어질 오해(?)의 순간에 서로 다름을 인정하면서 다시 나아갈 깨달음을 얻는 과정은 우리가 늘 일상에서 겪는 삶 그대로입니다. 죽을 것만 같은 어떤 엄청난 현실에 직면한 듯해도 결국에 그 “시간”은 “쓸데없는 두려움을 자아내는” “시간”으로 “사라질 것”입니다. 존재해서 아름답기도 하겠지만 사라지기에 “아름답다”는 시의 화자의 목소리는 그대로 저에게도 닿아 지금의 시간을 아름답게 합니다. (20231101)
첫댓글 오늘은 무언가 허둥대다가 이 좋은 시와 해설을 늦게 읽었습니다. 11월입니다. 시를 가까이 하는 가을날이길 길벗님들에게 청합니다.
야속한 시간, 무엇 때문에 너는
쓸데없는 두려움을 자아내는가?
너는 존재한다 ― 그러므로 너는 사라질 것이다
너는 사라진다 ― 그러므로 아름답다
미소 짓고, 어깨동무하며
우리 함께 일치점을 찾아보자.
비록 우리가 두 개의 투명한 물방울처럼
서로 다를지라도……
클래식채널에서 소개받아 가입하게됬네요~
좋은시 많이 소개부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