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혜향문학회에서 발행하는
‘혜향(慧香)’ 제7호가 나왔다.
권두 에세이 - 조명철의 ‘너도 부처 나도 부처’
내가 만난 고승들 - 오홍석의 ‘월하(月下) 큰스님’
불교와 나 - 시몽 스님, 진행남 박사, 이춘기 작곡가
초대작품 - 시ㆍ시조 임병호, 이우걸
특집 - Ⅰ. 근대 제주불교 중흥조 봉려관 스님 이야기(2회) 오영호
Ⅱ. 4ㆍ3 광풍에 희생된 승가의 혼(2회) 이병철
제2회 전국 신행수기 입상작 외에 많은 문학작품이 실렸다.
그 중시 몇 편을 옮겨
요즘 피기 시작한 제주수선화와 같이 올린다.
♧ 석불의 말씀 - 임병호
더 바랄 게 무엇인가
더 가질 게 무엇인가
바람도 구름도 아니거늘
어디로 이제 떠날 것인가
역서 이대로 살라고 어깨를 두드려 주시네.
♧ 섬 - 이우걸
너는 위안이다 말 없는 약속이다
짓밟혀서 돌아오는 어두운 사내를 위해
누군가 몰래 두고 간
테라스의 불빛 하나
♧ 돌담, 소유의 완성 - 김병택
마소들을 막아내는 것이
원래의 역할이라고들 하지만,
짐작컨대, 실제의 의도는
소유의 완성에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제주 화산암의 그 많은 조각들로
이런 돌담을 만들 수는 없었을 것이다.
마소들이 마음만 먹으면 쉽게 뛰어 넘을 수 있는
돌담 부근에 서서
기나긴 역사를 지켜보았던
소나무의 증언에 의하면,
사람들이 험한 과정 다 거쳐 만든 돌담의
원래의 역할은
마소들을 막아내는 데에 있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세계의 곳곳을 날아다녔던
철새들의 증언에 의하면
마소들과는 다르게
보통, 사람들의 소유의 완성은
돌담을 통해서도 확인이 가능했다고고 한다.
돌담은 소유 완성을 의도하는
표식임이 분명하다.
♧ 유수암 팽나무 - 김성주
팽나무 가지 따라 골목 끝 그 집
내 외갓집이었으면 좋겠다
난간에 앉아 햇살에 볼 비비며
옆집 누님과 부침개라도 먹었으면 좋겠다
유수암 삼거리를 꽉 붙들고 있는 팽나무 뿌리
먼 기억 속, 외할아버지 맨발에 불거진 심줄 같다
마을을 뒤덮은 千手千眼
작은 바람의 낌새에도
장독대 위랑 돌담 위로 건네는 식겟반 위랑 한 잎 한 잎 얹히겠지
주름투성이 손등에선 구들방 냄새가 나겠지
♧ 영실을 찾아서 - 김승범
태고의 원시림
겹으로 병풍을 둘러
창공 향해 침묵한다
신록과 샘물의 조화에
새소리도 반갑고
오백나한도 정겹구나
계절마다 새 옷 입는 영실
한라신령이 살고 있는가
노루샘 한 방울 반짝인다
♧ 파도 - 김용길
강물이나
냇물들이
바다에 이르면
이름을 버린다
흘러오는 동안
이끼 같은 세월의 빈 껍질들
다 벗고 나서
하얗게 하얗게 새 물결로 일어선다
파도여 끊임없이
반복되는 윤회(輪廻)여.
♧ 있는 것과 없는 것 - 김정희
생선은 쟁반에 오롯이 누워 신부처럼 나를 기다리고 있다
저 한 마리 완전한 것이
이제 온전하게 나에게 올 시간
놀랄 틈도 없이 하이에나처럼 덤벼든다
고스란히 빼앗긴 살
남은 것은 대가리와 꼬리 그것을 지탱하던 등뼈
쉴 새 없는 젓가락질에 남은 것은 나의 배부름
아쉬운 헤어짐의 시간을 알리는 절차는 필요 없다
내 배가 채워질 때마다
저 것의 온전한 자세는 사라지고
나는 있고
저것은 없어지는 시간이
연기처럼 타오른다
미타의 신부는 사라지고
남은 것은
생선의 가시처럼 솟아나는
서러운 기억과 시릿한 조각들
빈 접시를 받드는 영혼의 49제
♧ 현중화 - 김종석
까맣지만 까맣지 않은 흑색 오만 가지 얼이
액자 흔적 없이 부수는
바람으로
검지만 검지 않은 묵색 오만 가지 바람으로
분다
죽이고 살리면서
호오오 ~~~
오 -
흰 수염 붓글씨가
까맣지만 까맣지 않은 흑색 오만 가지 얼빛,
입김으로
참살이 참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