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인 강과 다뉴브 강의 크루즈 낭만 여행 낭만
제12화 독일의 작은 베네치아 밤베르크(Bamberg)
- 2016년6월23일-
아침에 일어나도 우리 배는 계속 항해중이다
아침을 먹고 나니 선내 방송으로 마인 강과 다뉴브강을 잇는 운하에
대하여 상세한 설명이 그림과 함께 진행하고 있었다
밤베르크에서 켈헤임(Kelheim)까지 1968년 착공을 시작하여 1992년
완공한 The Main Danube Chanel은 라인강과 마인 강 그리고 다뉴브 강을
잇는 수로로 장장 3500KM나 되는 북해에서 흑해까지의 수상 통로를 만든
거대한 사업이었다고 힌다
이 운하는 총길이가 171KM이며 운하의 폭은 12M 길이는 190M 이며
수문이 최소 52개가 설치되었으며 12개의 다리가 건설되었고 운하는
선박을 176M가지 끌어 올렸다가 다뉴브강의 켈 하임에서는 65M까지
내려야 하는 불편함과 느린 속도로 예상 경제 효과는 매년 감소되고
있으며 32년에 걸쳐 23조 유로 달러가 들어간 RMD운하는 생태계 파괴도
일어나고 매년 물동량도 줄어들어 “가장 비싼 유람선 전용 운하”라는
비아냥을 받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운하 계획에 큰 교훈이 되었다고 한다
밤베르크는 마인 강의 지류인 레그니츠 강변에 자리 잡고 있으며
뉘른베르크에서 60km 쯤 떨어진 곳에 위치한 아름다운 도시이다
구시가지 전체가 1993년 “Twon of Bamberg”라는 이름으로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될 만큼 아름다운 도시이다
악 2300여채의 바로크양식의 중세 건물이 보존되고 있는 도시이다
대성당과 수많은 수도원이 서 있는 일곱 개의 언덕은 ‘프랑켄의 로마’라고 하며
레그니츠 강변의 아름다운 경치는 ‘작은 베네치아’라는 별명을 갖고 있어
밤베르크는 독일의 작은 이탈리아라고 불리기도 한다.
오후 1시경 우린 밤베르크까지는 5시간 걸리는 운하를 통과해야 하기에
우리 승객만 Hassfurt라는 시골에 내려주고 배는 운하로 갔으며 우리는
버스를 타고 약1시간을 달려 밤베르크에 도착하여 관광을 시작하였다
구시가지에서 버스에 내려 처음으로 만나는 교회가 엘리자베스 교회 (St. Elisabeth) 이다
박애의 여왕으로 알려져 존경받았든 성녀 엘리사 베스를 기리는 교회이다
엘리사베스는 1207년 헝가리의 왕 안드레아 2세의 공주로 태어나 독일
투린지아의 영주 루도비코와 결혼을 하였고 그녀는 항상 가난한 자와
병든 자를 위하여 헌신하였다
어느날 그녀는 신분상 머리에 금관을 쓰고 한 성당에 가서 기도를 드리는데
예수께서 머리에 가시관을 쓰고 있는 것을 보고 머리에 쓰고 있는 금관을
벗어 놓을 정도로 신앙심이 두터운 엘리사베스였지만 남편이 전사하는
불행한 날들이 닥쳐왔지만 그녀는 그래도 병든 자와 가난한 자를 위하여
헌신 하다가 1231년에 영민하였는데 그녀의 공덕이 너무나 훌륭해 사후
4년 만에 성인으로 추대되었다고 한다
우린 대성당을 보기 위하여 시내를 걸어가는데 보이는 집들이 모두가
다 문화재 급이다
이곳에는 독일 맥주라고 자랑하는 훈제맥주가 유명하다고 한다
1405년부터 영업하는 유명한 슈렝케를라(Schlenkerla) 훈제 맥주집이 보인다
훈제 맥주는 불에 구운 맥주로 흑맥주이며 맛은 화근내가 나는 것 같고 그래서 그런지
깊은 맛과 향이 나는 맥주로 독일에서도 이곳의 훈제맥주를 제1이라고 한다
우리는 Dom광장에 도착하여 밤베르크 대성당부터 관광하기 시작하였다
밤베르크 대성당 (Bamberg Kaiserdom)은 황제라는 뜻의 카이세르와
교회(Chathedral)라는 뜻이 합쳐진 것으로 로마 제국의 황제가 봉헌한
곳이거나 황제의 대관식을 한곳이라 든지 황제의 시신이 안치된 성당
이라는 것을 표현하기 위하여 카이세르 돔이라고 불려진다고 한다
밤베르크 대성당(Bamberg Kaiser)은 황제 성당 카이제르 돔(Kaiser Dom)이라고
하는데 황제 하인리히2세의 명에 의하여 1012년 5월 6일 이 성당이 완공되었으며
그 안에는 하인리히 2세와 황후 구니쿤데의 무덤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두 차례의 화재로 인하여 1237년에야 지금의 모습으로 재건되었으며 4개의
첨탑은 마치 이 성당을 하늘나라로 모시고 올라가는 양탄지 위의모습으로
묘사된다
로마네스코 양식과 고딕양식이 가미된 건축물로써 길이 94M 넓이 28M 높이 26M의
성당으로 동쪽 첨탑 2개는 로마네스크 양식, 서쪽 첨탑 2개는 고딕양식으로 첨탑까지의
높이는 81M나 된다고 한다
리멘슈나이더가 제작한 하인리히 2세와 황후 쿠니쿤데(Cunigunde)의 무덤도
제단 아래에 자리 잡고 있었다
성당 내부는 엄숙하고 웅장하며 예술적인 조각품으로 된 제대가 많이 있어
더욱 화려해 보였다
마치 중세의 유럽 조각 박물관처럼 보였다
1523년에 조각가 베이토 슈토스 (Veit Stoss) 가 만든 제단은 예수의 탄생이 묘사되어
있으며,마리아의 펼쳐진 망토 위에 아기 예수를 보여주고 있다고 한다 .
북쪽 주교관이 있는 대성당 광장을 향한 정문은 왕자의 정문으로 아취부분에는 최후의
만찬이 그려져 있었고 선지자와 사도들도 양 옆으로 조각되어 있었다
동쪽 출입문과 서쪽 출입문이 있는데 동쪽 출입문에는 2개의 문이 있는데 오른쪽의 출입구
문을 마리아의 문이라고 하며 미리아를 경애하는 문으로 무릎에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마리아의
오른쪽에는 대성당의 후원자인 게오르기우스와 베드로가 있고, 왼쪽에는 교구 창설자인 하인리히와
쿠니군데가 있다고 한다
왼쪽의문을 아담이 조각된 문이라고 하며 신자들의 출입구 문이라고 하며 장식이
없는 문이였으나 다고 한다었습니다. 나중에 일련의 6개 조각상이 추가되었으며
왼쪽 벽에는 신성 황제 하인리히, 쿠니군데 성 황후, 성 스테판, 오른쪽 벽에는 성 베드로와
아담과 이브가 있다고 한다
특히 동쪽 문으로 들어가 북서쪽 기둥 옆에는 밤베르크의 기사(Banberg
Horseman)라는 조각품이 아름답게 전시되어 있었다
또한 교황 클레멘트 2세의 무덤도 1240년에 이곳에 만들었으며 로마 교황이
이탈리아 이외의 외지에 무덤을 두는 것은 예외적인 것으로 클레멘트교황은
밤베르크를 너무 좋아 하여 여기애서 묻히기를 원헀기 때문이라고 한다
1904년 조셉 반 쇼르크 (Josef van Schork) 대주교에 의하여 만들어진
성좌로써 중앙 제단에 놓여 있었으며 조각품으로도 대단하 율륭한 작품이었다
우린 대상당을 나와 바로 옆에 있는 구 성당으로 같다
하인리히 2세의 궁전이라고 불리는 구 궁전은 신궁전을 마주보고 있다
구 궁전은 돌과 나무로 만든 르네상스식 건물이며 원래는 왕궁으로 사용
하였는데 알테 호프할등(Alte hofhaltung)이라는 것으로 보아 주교들의
거처로 사용했으며 지금은 밤베르크의 역사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독일의 부르크(Burg)는 방어 목적의 성으로 즉 영주의 성을 말하며
슐츠(Schloss)는 왕족이나 영주들이 직접 거주하는 성으로 궁전 (Palace)을
말하며 레지턴트는 대성당에 딸린 주교들의 거처를 의미하나 부르크에서
내려온 영주나 왕족의 거처를 의미한다고 한다
신궁전은 레지텐트(Neue Residenz)라고 하며 18세기 대주교들의 거처로
사용했다고 하며 1695~1703년까지 8년에 걸쳐 르네상스식과 바로크양식
으로 지어진 밤베르크의 신궁전은 화려하게 건축되었으며 이곳의 영주이자
선제후였던 로타 프란트 본 쇤브론 백작의 지시에 따라 건축가 요한
레온하르트 디엔첸호포가 지은 건물이다.
신궁전 내부의 천정과 벽면의 프레스코화도 화려한 색조로 마치 움직이는
듯한 그림으로 그려져 있어 유명하며 이 그림은 화가 멜히오르
슈타이들이 그렸다고 한다
밤베르크의 묵시록이 보관된 공립 도서관도 이 신궁전에 만들어 져 있었다
궁정에 장미로 정원을 만들어 장미정원이 있어 독일에서는 가장 아름다운 궁정 정원이며
1757년 완공한 파밀리온 장미공원은 4,500개가 넘는 장미가 품어내는 꽃과 향기는
여름동안 장관을 이룬다고 한
우린 장미 궁정 정원을 나와 밤베르크를 대표하는 랜드마크인 밤베르크
구청사(Altes Rathaus Bamberg)로 내려왔다
레그니츠 강을 중심으로 주교의 영역과 시민들이 거주하는 지역이 다르므로
1386년 시청사를 주교 영역에 지으려 했으나 시민들의 반발에 의하여 결국
두 영역의 중간 지점인 11세기에 세워진 오버레 브뤼케(Obere Brücke)와
운터레 브뤼케(Untere Brücke)다리의 중앙에 삼각 섬을 만들어 시청사를
고딕 양식으로 지었으나 1744~1756년 바로크 양식과 로코코 양식으로
보수 되면서 지금의 구 시청사 모습을 갖추었다고 한다
밤베르크를 대표하는 랜드마크인 외벽의 프레스코화는 시청사로서의 가치를
충분히 가지고 있었다
현재는 특별전이 열리는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다리의 마지막 부분에는 금지팡이를 들고 금관을 쓴 여인의 동상이 있는데
성인으로 추앙된 쿠네쿤트 왕비의 동상이라고 한다
작센 왕조 최후의 독일 국왕이며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인 하인리히(Heinrich)
2세의 왕비이며 착실한 기독교의 교리대로 살아오면서 황제와 함께
밤베르크를 크게 발전시킨 성인을 존경하는 뜻으로 이곳에 그녀의 동상을
세웠다고 한다
미헬크 베르크언덕에 있는 성 미하엘 성당(Kirche St. Michael)은 1015년
베네딕투스회의 수도원으로 건립되었으며 1121년에 고딕양식의 성당으로
바뀌었으며
17세기에는 신궁전을 설계했던 요한 레온하르트 디엔첸호포가 바로크
양식의 첨탑을 추가로 증축하면서 성당 천장에는 약 600송이의 꽃과
약초의 그림을 그려 넣어 아름다운 천정 디자인의 성당이 되었다.
1102년부터 1139년까지 밤베르크의 주교였든 오토 폰 밤베르크의 묘가
여기에 있으며 “포메른의 사도”로 존경받고 있으며 그의 무덤에 참배하는
모든 사람의 병이 치유된다는 전설이 있는 곳이라고 한다
이 수도원은 800년간 이어 오다가 19세기초 수도원이 해체되면서 시민 병원재단으로
되었다가 현재에는 양로원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밤베르크하면 음악가 호프만을 잊을 수 없다
1816년 발표한 호두까기 인형으로 유명한 에른스트 호프만(Ernst Hofmann)은
후기 낭만파의 대표적인 작가일 뿐 아니라 음악가이며 법률가로써
밤베르크에는 그의 이름으로 박물관을 짓고 극장도 지어 그의 업적을
자랑하고 있다고 한다
우린 오후6시에 출항하는 선박의 스케줄에따라 밤베르크의 관광을 끝네고
밤베르크이야기
레그니츠강 과 마인강이 도시를 관통하기 때문에 강가에 집을 짓고 살아가는
도시로서 물이 풍부한도시로 베니스와 같은 아름다운도시이다
1007년부터 신성로마제국 황제 하인리히 2세가 이곳을 가톨릭 주교령을 선포하고
통치하면서 크게 발전한 도시로써 지금도 중세의 문화가 남아 있는 문화도시이다
1010년경에 제작된 요한 묵시록의 필사본 밤베르크 묵시록(Bamberg Apocalypse)
을 보관하고 있는 밤베르크 도서관은 독일의 문화 보고로 알려졌있다
29.5센치 X 20.5 센치의 금박을 입힌 삽화 49개로 이루어져 있으며 103쪽의
금박글자로 수록되어있다고 한다 사람들이 성경의 내용을 쉽게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기위하여 삽화를 그렸고 오늘날 예술적으로도 탁월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고 한다
요한 묵시록 18장에 기록된 바빌론의 패망이다
하늘에 있는 천사가 거꾸로 묘사된 바빌론 도시를 가리킨다. 대 바빌론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타락한 도시는 하느님에 의하여 멸망하고 사라지고 있는 것을 세사람은
하나님의 소리에 귀를 기우리고 앞의 6사람은 눈물을 흘리고 있는 바빌론의 패망을
이야기한 묵시록이라고 한다
인구 7만의 작은 도시이지만 지나치면 아쉬운 역사적인 이야기가 숨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