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2009 법무부 민법개정위원회'가 출범했다. 그간 여러 번 민법 개정작업에 참여해온 필자로서는 이번 출범을 보고 몇 마디 개정의 방향을 논의하고 싶다. 첫째, 민법전은 시민이 읽어서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시민의 법'이어야 한다. '판사·변호사 등 전문인의 법'이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외국에서는 오래전부터 논의되어 온 민법전 개정의 선결 과제이다. 민법전은 적어도 보통의 교육을 받은 시민이라면 읽어서 이해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민법전은 법조인이 읽어야 겨우 이해할 수 있는 1118개 조문의 '난해한 법'으로 돼 있다. 원래 로마법상의 권리는 소권(訴權)이었으므로 시민법은 극도의 '전문적인 기술법'으로 발전하였는데 이것이 거의 그대로 프랑스 및 독일을 거쳐 일본에 계수(繼受)되었고 우리 민법에 승계된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민법은 시민에게 '적용되는 법'이지만 이를 적용하는 법률 전문인만이 이해할 수 있게 전락(?)한 것이다.
복잡다단한 시민의 생활관계를 짧은 조문에 포괄하여 규정하여야 하는 입법의 속성 때문에 법조문은 추상적으로 될 수밖에 없고 법률 용어는 암호처럼 '기호화'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결국 민법전은 시민이 단지 전문인을 통하여 권리를 실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모든 시민은 자기의 자유로운 의사 결정에 따라 자기의 생활관계를 형성할 수 있고 그 결과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 한다. 이것은 하나의 공리이다. 여기서 시민은 자기 결정·자기 책임의 법적 의미와 법률효과를 미리 알아야 합리적으로 그의 생활관계를 형성할 터이므로 민법전을 시민이 이해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들어 주지 않으면 안 된다.
법전의 조문 특히 법률 용어를 풀어서 한글화하고, 지극히 추상적인 민법총칙을 분해하여 계약법 등에 흡수하고, 물권법·채권법의 총칙·총론적 규정을 해체하고, 준용 규정방식을 지양(止揚)하기만 해도 민법전은 시민들에게 보다 친절하고 이해하기 쉬운 법이 될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시민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소비자 계층을 보호하기 위해 여기저기에 임시방편으로 만들어 놓은 소비자보호법규 등의 특별법과 상행위법을 민법전에 끌어들여 단일 체계화하면 민법전은 명실상부한 '시민생활의 기본법'으로서 그 위상을 유지하게 될 것이다.
둘째, 새 민법은 세계의 민법과 맥을 같이해야 한다. 유엔국제매매협약(1980), 유럽계약법원칙(1998), 국제상사계약원칙(1994) 등 세계 민법은 통일로 진입하고 있다. 특히 유엔국제매매협약은 대륙법과 영미법을 그런대로 잘 조화한 '부분통일법'으로서 우리나라를 비롯한 대부분의 유수한 나라가 이를 비준하였다. 따라서 이 협약은 우리나라에서도 국제 매매에 관한 한 우리 민법에 우선하여 적용되는 강력한 법이다.
많은 나라가 여기에 맞추어 자기 나라의 민법을 손질하고 있다. 독일 민법의 개정(2002), 프랑스 민법의 개정 준비, 일본의 '2006 민법(채권법)개정검토위원회'의 구성 등이 그러하다. 특히 중국합동법(채권법에 해당·1999)도 이러한 유엔협약 등의 법원리를 크게 흡수하고 있다.
셋째, 일본 민법전으로부터 '해방'돼야 한다. 일제 강점이 시작된 1910년부터 해방을 거쳐 우리 민법전이 발효한 1960년 1월 1일까지 50년간 일본 민법전이 한국에 의용(依用)되었다. 이로 인해 1960년 발효한 우리 민법전은 체재에서 개개 조문의 내용에 이르기까지 역시 일본 민법전을 많이 답습했다.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다시 50년이 흐르고 있다. 이번 우리 민법전의 개정이 앞에 얘기한 방향으로 완성되면 이런 상태는 저절로 종식될 것이다.
법의 개정은 제정보다 더 어려울 수 있다. 이미 작년에 한국민사법학회와 공동으로 '민법개정학술대회'를 개최하는 등의 준비를 거쳐 과거 유례없는 커다란 규모의 민법개정위원회를 출범시킨 법무부의 노력이 돋보인다. 이번 민법개정위원회의 차분한 정진을 바란다.
첫댓글 hena님은 법에 대해 관심이 많으신것 같습니다. 이런 자료를 찾아 올리기가 쉽지 않으셨을 텐데..감사히 잘 봤습니다.
헤나님의 글이 좋아서 "법령확인하기"란으로 이동하였습니다. 민법개정의 대강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