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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장 刺客의 憤怒
유시(酉時) 무렵,
불그레한 노을을 배경으로 금룡장의 대문이 열리더니
한채의호화로운 교자가 서서히 나왔다.
그 교자의 앞뒤로는 건장한 체격의 대한 두명이
교자를 어깨로걸치고 있고,
교자의 뒤로는 오 명의 무사가 따르고 있었다.
금룡장의 맞은편에 자리한 장원에서
금룡장을 감시하고 있던 자운유의 눈빛이 번쩍 빛났다.
{송대호(宋大虎)! 지부에 연락을 취해라.
나는 저 교자를 따라가겠다.}
함께 감시하던 수하에게 말함과 동시에
자운유는 급히 밖으로뛰어나갔다.
금룡장을 빠져나온 교자는 항주성의 북문을 벗어나 관도로 들어섰다.
지나가던 행인들이 호화로운 교자의 모습에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지붕은 온통 금칠을 입히고 주렴은 칠채구슬로 장식했는데
햇빛을 받아 눈부신 광채가 눈을 어지럽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오 리 정도 갔을까?
교자 일행은 관도를 벗어나 샛길로 접어들었다.
샛길의 양쪽으로는 무성한 숲이 나타났다.
해가 서서히 서산을 넘어가자
숲속에는 어둠의 그늘이 깔리기시작하여
갈수록 스산한 분위기를 풍겼다.
헌데 한동안 숲길을 가던 교자가 갑자기 방향을 틀어
왼편 숲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멀찌감치 뒤를 따르던 자운유의 몸도
비쾌하게 왼편 숲속으로쏘아들어갔다.
교자는 숲속에 나있는 좁은 오솔길로 느릿하게 전진했다.
점점 깊은 숲속으로 들어가는 교자를 따라가며
자운유는 문득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이상한 일이군.
이쪽으로는 더 이상 길이 없는 것같은데 어디로가는 걸까?)
느낌이 안좋았지만
이제 와서 추적을 포기하고 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자운유는 입술을 깨물며 계속 뒤를 추적했다.
어느덧 해도 완전히 저버렸다.
나무가 울창한 숲 속은 갈수록 어두어져가
마침내는 앞뒤를 제대로 분간하기도 어렵게 되었다.
(벌써 두 시진은 지난 것 같은데 아직까지 아무런 연락이 없다니...!)
자운유는 연신 뒤를 돌아보았다.
이 정도 시간이라면 지부에 달려간 수하들이
벌써 지원병을 이끌고 도착했어야만 한다
*
놈!
자신이 오지 않고 다른 사람을 보내다니...!)
내심 석무심은 담사의 철두철미한 행동에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마삼노인은 석무심이 말없이 노려보자
그의 무서운 눈빛에 침을꿀꺽 삼켰다.
(이철(李鐵)아! 힘내라!
이 사람에게 물건만 받아가면 그가 이십냥의 은자를 줄 것이다.)
내심 기대감에 부풀며 마삼노인은 말했다.
{공...공자가 석씨 성의 공자이시지오?}
[담사라는 사람은 지금 어디 있소?]
석무심은 대답할 필요도 없다는 듯이 냉랭히 물었다.
{그..그건 저도 모릅니다요.]
마삼노인은 두려움에 떨며 더듬거렸다.
[그 사람이 말하기를 이곳에 있으면...
석씨 성의 공자가 무언가를 줄테니
그것을 받아가지고 있으면
며칠 안으로 찾아온다고 했지요 네!}
문득 석무심은 우수를 뻗었다.
{아이고 나리! 살려 주십시요.}
마삼노인은 찢어지는 목소리로 비명을 질렀다.
어느 새 석무심의우수가 그의 어깻죽지를 잡아 비틀고 있었다.
연신 식은땀을 쏟으며 비명을 지르는 마삼노인은
어디서나 흔히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노인의 견정혈을 쥐어
노인이정말 무공은 전혀 익힌적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석무심은
이를부득 갈았다.
(죽일 놈! 교활하게도 이런 자를 보내다니..)
노인을 노려보는 석무심의 눈빛이 스산해졌다.
살기가 치밀어 오른 것이리라.
헌데 바로 그때였다.
[석사형, 그를 죽이면 안되어요.]
한 줄기 여인의 전음성이 석무심의 귓 속을 파고들었다.
{그 자를 죽이면 담사라는 자객을 찾을 수가 없어요.}
막 내공을 투여하여 노인의 오장육부를 으스려 버리려던 석무심은
움찔하며 손을 멈추었다.
여인의 전음성은 잠시 멈추었다 다시 들려왔다.
{내 생각으로는 어디선가 그 자가 저 노인을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우선 돈을 주어서 노인을 보내도록 하세요.
제가 그 노인의 뒤를 은밀히 따라갈 테니까요.}
석무심은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우수를 거두어들였다.
이어품 속에서 가죽주머니를 꺼내든 그는
그것을 마삼노인의 수중에들려주었다.
{이것을 그 사람에게 전해 주시오.}
마삼노인은 어깻죽지가 몹시 아픈 듯 오만상을 찡그리며
가죽주머니를 받아들었다.
하지만 석무심의 살벌한 기세에 항의 한 번 못해보고는
고개를 꾸벅 숙인 다음 휑하니 어둠 속으로 달려갔다.
직후 한줄기 가냘픈 인영이 소리없이 숲 사이를 흘러
노인의 뒤를 따라갔으나 노인은 그것을 알 리가 없었다.
이윽고 노인과 그 뒤를 따르는 왜소한 인영은
어둠 속으로 온전히 사라졌다.
[교활한 놈!]
석무심은 담사를 떠올리며 이를 부득 갈고는
노인이 달려간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헌데 바로 그때였다.
{무심! 오랜만이군.}
갑자기 어디선가 석무심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차분한 이 목소리에는 어딘가 스산한 느낌이 깃들어있었다.
흠칫 놀라 재빨리 돌아서던 석무심은 다음순간 눈을 크게 떴다.
불영탑의 어두운 그늘 속에 누군가 유령처럼 서있는 것을 발견한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그 인물이 누군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석무심이 무상(武相)께 인사드립니다.}
석무심은 급히 허리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무심, 비록 우리는 신분의 차이가 있지만
따지고 보면 사형제(師兄弟)사이가 아닌가?
무상이라는 소리는 관두게.}
탑 그늘에 선 사내는 소탈하게 말하며 천천히 그늘에서 걸어나왔다.
(사형제 사이라고?)
석무심은 그 인물의 말에 내심 고소를 지었다.
자신을 비웃는 듯한 웃음이랄까, 웬지 허무한 느낌을 주었다.
{아직 막북에 계신줄 알았는데...항주에는 언제 오셨읍니까?}
석무심이 물을 때 한 줄기 달빛이 구름을 벗어나
어둠을 희미하게 밝혔다.
그러자 불영탑의 그늘에서 걸어나온 인물의 모습이
비로소 확연히 들어나 보였다.
헌앙하고도 강인해 보이는 용모의 준미한 청년,
그는 바로 마교 (魔敎)의 비전장법인 천마산수(天魔散手)로
자운유를 살해한 모용천위(慕容天威)라는 신비 청년이었다.
*
무상(武相)-!
이것이 모용천위가 그들 신비조직에서의 지위인 듯 했다.
{항주에는 사흘 전에 도착했네.}
모습을 들어낸 모용천위의 그 말에
석무심의 눈빛이 한 순간 어리둥절해졌다.
그는 이 인물이 항주에 와있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죄송합니다. 오시는 줄 알았다면 소제가 마중을 나갔을 것인데...
{미안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네.}
석무심의 사과에 모용천위의 표정이 갑자기 음울해졌다.
{나는 일부러 자네에게 알리지 않았으니까!}
순간 석무심의 표정이 굳어지면서 주춤 뒤로 물러섰다.
{저...저로서는 그 말씀을 이해하기 힘들군요.}
어떤 불길한 예감으로 석무심의 음성이 자신도 모르게 떨렸다.
그런 그를 보며 모용천위의 입가로 깊은 한숨이 흘렀다.
{무심! 자네는 나의 말뜻을 알고 있으리라 생각하네.
그렇지 않은가?}
한 순간 두 사람 사이에 질식할 듯한 침묵이 흘렀다.
불신과 회의, 그리고 은은한 분노가 실린 석무심의 눈길과
역시복잡한 상념이 담긴 모묭천위의 시선이 허공에서 뒤엉켰다.
{계획이... 잘못되기라도 한 것입니까?}
이윽고 석무심이 질식할 것같은 침묵을 깨며 물었다.
이미 어떤상황을 연상한 그의 목소리는 극히 침울했다.
{소림사가 강호에 나왔네.
그것도 달마원주와 오나한이 북천뇌보 에
몇 달 전부터 머물고 있었다는 것이 확인되었네.}
모용천위가 우울한 한숨과 함께 말했다.
그의 이 말에 순간 석무심의 표정이 창백하게 변했다.
{계...계획을 변경해야 되겠군요.}
석무심은 식은 땀을 흘리며 말했다.
그의 말에 모용천위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괴로운 표정을지었다.
[이십오년전의 좌절에서도 보았듯이...
소림사는 잠자는 사자와도같은 존재네!
소림사가 자신들의 진정한 힘을 세상에 풀어놓는다면
천하를 장악하고 있다는 무림맹조차도 그들에 비할 바가 못돼지!]
모용천위의 눈빛이 더욱 침울해졌다.
[그 소림사가 움직이기 시작한 이상,
또 그들이 출도한 목적과확실한 동정을 모르고 있는 지금
우리는 당분간 잠적할 수밖에 없 는 일이네.]
석무심은 절망적인 표정으로 모용천위를 주시했다.
{그렇다면... 저는 성숙해(星宿海)의 성지(聖地)로 돌아가야 하겠군요?}
그는 한가닥 희망을 품고 모용천위에게 말했다.
그러나 그이 간절한 기대와는 달리 모용천위는 가만히 고개를저었다.
{무심! 성숙해로 돌아간다고 한들
무림맹의 손길을 완전히 떨쳐버릴 수는 없네
. 그들은 지옥이라도 자네를 찾아올 걸세.}
순간 석무심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두 눈을 부릅떴다.
그는 모용천위의 그 말에서 설마하던,
그리고 어쩌면 예상하고 있었을지도모를 답을 얻은 것이다.
{설마...나를 제거하려고..!}
석무심은 분노와 충격에 몸을 떨며 쥐어짜듯 내뱉았다
. 영리한도마뱀은 꼬리를 짤라버려 몸통을 지키는 법이다.
그리고 석무심의 말은 채 이어지지도 않았다.
{나는 이 일을 반대했지만 어쩔 수 없네.}
모용천위가 진심으로 유감이 담긴 표정으로 말했다.
그의 말을 듣는 석무심의 표정이 기묘해졌다.
우는 듯, 웃는 듯,
흡사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을 눈앞에 둔 사람처럼
그는 자조의웃음까지 떠올렸다.
{이 일은...문상(文相)의 머리에서 나온 것입니까
아니면 적용화련(狄容華蓮), 그 여우년의 생각입니까?}
어느덧 최초의 충격에서 벗어난 듯
차분한 어조로 묻는 석무심의 표정은
그러나 무겁게 일그러져 있었다.
모용천위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것은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닐 것이네.
자네의 말뜻은 자네와우리 형제의 사부이기도 한
혁(赫)어른께서 이 일을 아느냐고 묻고싶겠지?}
{알고 있으니 제가 입을 더 놀릴 필요는 없겠지요.}
냉랭한 석무심의 말에 모용천위는 쓸쓸한 미소를 흘렸다.
{그 분은 자네의 사부이니 나보다 자네가 더 잘 알고 있을 거야.
그 분은 모르고 있다는 것을..!}
석무심은 그의 말에 만족한 미소를 띄었다.
{무상! 나는 무림맹 따위에 몰살을 당한
전륜교(轉輪敎)의 제자가 아니라
천년의 전통을 지닌 위대한 마교(魔敎)의 제자요
. 내 비록 무상의 적수는 아니지만
결코 호락호락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오.}
석무심은 허리에 찬 검을 검집째 뽑아들었다.
창_!
일순간 어둠을 밝히는 삼엄한 검기가 번쩍 빛이 났다.
서릿발 같은 예기를 품고 있는 예리한 검날은
시퍼런 광채를 뿌렸다.
이어 석무심은 검집을 땅에 던졌다.
무사가 검집을 버린다는 것은 이미 생사를 도외시한 것이다.
모용천위는 석무심의 단호한 태도에 표정이 신중해졌다.
그가 비록 석무심에 비해
한 단계 높은 무공을 지니고 있음은 사실이나
무사로서 적을 대함에 있어 방심한다는 것은 금물중의 금물이다.
그리고 사실 모용천위는 석무심이란 이 사나이를
한 사람의 무사로서 대단히 높이 사고 있었다.
{무상의 천마산수(天魔散手)를 이 검으로 받아보겠소!}
석무심은 장검을 쳐들어 형형한 에기를 토해내며
음산하게 말했다.
극도의 분노와 충격으로 격랑을 일으키던 그의 마음은
이 순간이미 무섭도록 고요해져있었다.
아주 짧은 시간에
이토록 기백과 정신이 자신의 검과 혼연일체가 되는 재능은
결코 쉽게 찾아볼 수 있는것이 아니었다.
모용천위도 말없이 자세를 갖추었다.
그는 더 이상 말은 불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또한 상대의 투지가 최고조에 이른 이상
조그마한 실수도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임을
그는 잘 알고있었다.
어느덧 하늘에는 만월(滿月)이 둥그렇게 솟아올랐다.
어둡던 숲속이 환한 달빛 아래 다시 태어났다.
하지만 그 달빛아래 마주 선 두 사람의 일류고수들 사이에는
터질 듯한 침묵이 말없이 흘렀다.
*
시간이 흘렀다.
모용천위와 석무심은 아무도 먼저 움직이려 들지 않았다.
모용천위의 자세는 한치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오른발로 공중을밟고 우수는 가슴 앞으로,
좌수는 가슴을 보호하듯이 가리고 있었다.
그의 표정은 고요하리만큼 무심했다.
석무심은 내심 감탄을 했다.
(과연...모용천위이다.
사부께서 이자가 마교(魔敎) 창립 이래제일고수라고 하더니...)
두눈을 스산하게 빛내며 그는 검 끝을 날카롭게 세웠다.
치_ 치짓_ 칙!
그의 검으로부터 강렬한 검기(劍氣)가
흡사 독사의 혀 끝에서 독이 뿜어지듯 솟아나왔다.
그 싸늘한 검기에 사위는 무서리라도 내린 듯이 얼어붙어갔다.
석무심의 두 눈에서 번갯불 같은 광채가 번뜩였다.
그때 모용천위의 몸이 서서히 움직였다.
그의 움직임은 너무나 미세하고 느려 지루할 지경이었다.
하지만그와함께 음유한 암경이 소리없이 일어나
사방에서 석무심을 압박해왔다.
석무심의 검 끝이 가늘게 흔들렀다.
모용천위의 몸에서 일어나는무형의 압력은
흡사 천근만근의 무쇠덩이처럼 그의 전신을 내리눌러오고 있는 것이다.
(으음 과연! 이대로 가면 천마산수의 압력에 손도 채 써보지 못하고 당한다.)
석무심은 이를 악물었다.
시간을 끌면 끌수록
내공에서 현격한차이가 있는 자신이 불리 할 뿐이다.
그리고 일단 판단이 서는 순간
석무심의 행동은 추호의 주저함도 없었다.
{천마도천세(天魔屠天勢)-!}
그의 입에서 벽력 같은 대갈성이 터졌다.
순간 그의 검 끝에서폭죽 같은 검광이 쏟아져 나왔다.
츠츠...츠츳... 츳!
번갯불이 일 듯 연속 십팔검이 작렬했다.
서릿발같은 반 고형의검기가
모용천위가 피할 수 있는 모든 방위를 차단하며 발휘되었다.
그 예리한 검기에 스치기만 해도
잘라지지 않는 것이 없을 정도였다.
허나 모용천위는 여전히 느릿느릿하게 움직이며
검끝을 따라 몸을 띄웠다.
흡사 바람에 깃털이 날리는 듯
그는 검기의 자락을 타고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무엇이든 잘라버릴 듯하던 석무심의 일격은
너무도 어이없이 파해된 것이다.
{탓_!}
일격에 실패한 석무심의 입에서 기합성이 터지고
두사람의 신형이 스쳐지났다.
가쁜 숨을 몰아쉬는 석무심,
비록 두 발을 땅에 딛고 서 있었지 만
그의 몸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에 비해 모용천위의 자세는 자리는 뒤바뀌었으나
한 점의 변화도 없었다.
{후후.. 과연 무상의 무예는 천하제일이요.}
괴소를 흘리며 말하는 석무심의 얼굴은 핏기가 사라졌다.
그는이미 이 대결의 결과를 잘 알고 있었다.
모용천위가 지닌 바 실력을 무리없이 구사하는 것을 본 순간
석무심 자신에게 이길 수 있는 기회는 영영 없어진 것이다.
{석무심! 미안하네.}
모용천위는 진심으로 유감을 담아 말함과 동시에
우수를 앞으로쭉 뻗었다.
순간 석무심의 입에서도 대갈성이 터졌다.
{마도귀천행(魔道鬼天行)-!}
쩌어엉!
폭발하는 듯한 검광이 현란하게 빛을 뿌리며
검과 함께 석무심의 신형이 허공으로 치솟아 올랐다.
꽈릉!
검과 장이 부딪치며 요란한 금속음이 터져 사위를 뒤흔들었다.
그와함께 두 사람의 위치가 다시 후딱 바뀌었다.
서로 자리를 바꿔 마주 선 두 사람 사이에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두 사람 다 굳은 얼굴을 하고 있어서 결과를 알 수가 없었다.
툭_!
그러다가 문득 땅바닥에 석무심의 검이 떨어졌다.
그것은 이미검날이 산산이 부서진 파검이었다.
주르르!
그와함께 굳게 다물고 있던 석무심의 입가로
한줄기 선혈이 흘러내렸다.
{천마산수...! 과연.. 마교 제일의 비전절예답군.}
다음순간 쥐어짜듯 중월거리던 석무심의 입에서 핏물이 확 터져나왔다.
쿠웅!
그와 동시에 석무심 몸은 흡사 전신의 모든 뼈와 근육이
부서지고 끊어지기라도 한 듯이 그 자리에 맥없이 무너져내렸다.
{왁!}
동시에 그의 입에서 조각조각 끊어진 내장이 섞인
한 사발의 피가 왈칵 쏟아졌다.
그의 가슴이 삽시간에 시뻘건 피로 물들어 갔다.
석무심의 손이 부들부들 떨며 땅을 짚었다.
{사..사부가...이 일을 안다면.. 결코 가만. 있지는 않을 거요.}
석무심의 말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그의 얼굴은 땅에 기댄채 쓰러졌다.
그렇게 그들 신비조직과 담사를 연결하던 한 고리는
세상에서사라지게 되었다.
{죽은 자는 말이 없는 법이지.}
모용천위는 석무심의 시체를 응시하며 나직이 독백했다.
{게다가 자네를 죽인 것은 무림맹이 될 것이네.
그것은 누구도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
모용천위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
{자네가 당한 상처는 천마산수가 아니라
소림의 수법인 격산타우(擊散打牛)의 수법이거든!}
그는 독백하며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잠시 후 그의 모습은 어둠 속에 묻혀 버리고 말았다.
*
석무심으로부터 가죽주머니를 받은 마삼노인은
벌써 반 시진 동안 걷고 있었다.
멀리 불야성을 이룬 항주성의 모습이 보이자
노인은 대로에서왼쪽으로 난 숲길로 접어들었다.
약 백 장쯤 더 갔을까?
어둠 속에서 하나의 희미한 불빛이 보였다.
불빛이 흘러나오는 곳은 한채의 황폐한 사당묘(祠堂廟)였다
. 몇십 년 동안 손질을 하지 않은 사당묘는
무성한 잡초와 들짐승의은신처로 변해 버렸다.
마삼노인은 사당묘에 도착하자 불안한 눈으로 사방을 살펴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염병할... 내 이럴 줄 알았으면
이십 냥이 아니라 백 냥을 준다해도 이 일을 하지 않았을 것인데...}
마삼노인은 귀기마저 감도는 버려진 사당묘를 쳐다보며 진저리를 쳤다.
그러나 노인은 이내 할 수 없다는 듯이
불빛이 새어나오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공포로 인해 그의 두 다리가 후줄근히 떨려왔다.
(꼭..귀신이라도 나올 것 같군.
그 늙은이도 이상하지.
하필이면 이런 곳으로 오라고 하다니..)
노인은 내심 투덜거리며 사당 안으로 들어섰다.
*
마삼노인이 완전히 안으로 사라지자
어둠 속에서 그를 지켜보던한쌍의 눈초리가 가늘어졌다.
(호호! 여기서 만나기로 한 모양이군.)
내심 만족한 교소를 흘리며 복면여인은 서서히 몸을 움직였다.
헌데 바로 그때였다.
피핑-!
돌연 공기를 가르는 날카로운 파공음이 들리고
측면의 어둠 속 에서 두 가닥의 백광(白光)이
그녀의 천돌혈(天突穴)과 기문혈(奇門 穴)을 향해
섬전같이 쏘아왔다.
{흥! 이따위 암습으로 어림도 없다.}
하지만 복면여인은 차갑게 코웃음을 치면서
식지(食指)와 중지 (中指)를 뻗었다.
그러자 두 가닥의 지풍이 쏘아져 나가
날아들던 백광과 부딪치고,
두 가닥의 백광은 이내 힘없이 뚝 떨어졌다.
쉬잇!
거의 동시에 복면여인의 몸이
비조처럼 백광이 쏘아져온 좌측의숲속으로 날아갔다.
실로 재빠른 임기웅변에 날렵한 경공이었다.
쉬쉬쉭!
그녀의 신형이 숲 속으로 파고들자
다시 세 가닥의 백광이 벼락같이 날아왔다.
흠칫한 그녀는 소맷자락을 휘저었다.
강력한 진기가 주입된 그녀의 소맷자락은 강철보다 더 단단했다.
헌데 소맷자락과 백광이 부딪치는 순간
그녀는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퍼펑!
별안간 백광이 폭발하면서 뿌연 연기를 피웠던 것이다.
{이런 치사한 자 같으니...}
그녀는 깜짝 놀라며 다급히 섬섬옥수를 뻗었다.
한 순간 그녀의양 소맷자락에서 강렬한 경풍이 일어나며
폭발한 백연을 허공으로말아올랐다.
(휴...자칫 잘못 했으면 그 놈의 암수에 당할 뻔했어.)
독연(毒煙)을 날려버린 그녀는 내심 안도의 숨을 삼키며 주위를살폈다.
그녀가 날아든 숲 속은 어둠만이 앞을 가릴 뿐
고요한 정적에 휩싸여 있었다.
헌데 바로 그때였다.
{으악__!}
갑자기 사당묘 쪽에서 한소리 처절한 비명이 들려왔다.
(아차! 도적놈의 조호이산지계(調虎離山之計)에 속았어.)
복면여인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황망히 사당묘를 향해 날아갔다.
비연천림(飛燕穿林)의 신법으로 날아가는 그녀의 경공은
섬전처럼 빨랐다.
[이...이런!]
사당묘 안에 들어서던 복면여인은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그 작자에게 당하고 말았어.}
그녀는 노기를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발을 구르며
이를 바득 갈았다.
{내가 이 따위 술책에 넘어가다니...
내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자만은 꼭 잡고 말겠다.}
흐릿한 등잔 불빛 아래 심부름을 한 마삼노인이
가슴에 검이 박힌 채 널브러져 있었다.
입가에 가득 묻은 피, 그리고 가슴도 피로 물들어 있었다.
재빨리 노인의 시신을 살펴보던 복면여인은 문득 눈을 빛냈다.
피로 물든 마삼노인의 가슴 섶에 삐죽이 튀어나와있는 가죽주머니는
바로 석무심이 그에게 건네준 돈주머니가 분명했다.
{호호호...}
가죽 주머니를 발견한 그녀는 득의의 교소를 흘렸다.
{흥! 그 작자는 급히 달아나는 바람에 저것을 가져가지는 못했구나.}
그녀는 흐뭇한 미소를 띄우며 허리를 숙여 가죽주머니를 잡아챘다.
헌데 가죽주머니는 무엇에 걸렸는데 잘 빠져나오지 않았다.
흠칫한 그녀는 시신 쪽으로 좀더 가까이 허리를 숙이고 가슴을풀어헤쳤다.
헌데 바로 그 순간이었다.
파팟!
노인의 시체가 갑자기 눈을 부릅 뜨더니 벼락같이 그녀의 기문,
장대 양혈을 짚어오는 것이 아닌가?
{하악_!}
깜짝 놀라 그녀가 비명을 지르며 피하려고 했으나 이미 늦은 후였다.
대표적인 마혈(痲穴)인 두 혈도를 짚인 그녀는
그대로 전신이 석고상처럼 굳어졌다.
그와함께 피를 흘리며 누워있던 시체가 벌떡 일어섰다.
{흥! 감히 날 부려먹은 뒤 죽이려고 하다니...!}
죽은 척 하고 있던 노인은 입가에 묻은 피를 쓰윽 닦으며
스산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복면여인은 이 갑작스런 사태에 까무러질 것만 같았다.
{당...당신은...?}
{그렇다! 네가 쫓고 있는 담사라는 사람이지.}
그는 냉랭히 대답을 하며 입가에 묻은 핏물을 닦았다.
담사!
그렇다! 죽은 척 하고 있던 그 노인은 바로 담사였다.
그는 복면여인이 자신의 심부름을 한
이철(李鐵)이란 노인의 뒤 를 밟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해서 암기로 암습하여 멀찍이 유인한 뒤 사당으로 돌아왔고,
심부름을 한 노인이 가져온 가죽주머니를 이용하여
그 노인으로 위장했던 것이다.
팟!
담사는 자신의 가슴에 박혀있던 검을 뽑아내었다.
빠져나온 그검의 칼날은 너무나 얇아 종잇장처럼 흔들렸다.
그때서야 자신이 속았다는 것을 깨달은 복면여인은 눈앞이 캄캄했다.
이 자는 자객이다.
그것도 보통사람처럼 인정이나 세상의 관습따위에는 얽매이지 않는
잔악무도한 자객이다.
이런 자의 손에 걸린 이상 그녀는 자신의 생이 끝났다는 것을 느꼈다.
그의 말뜻을 보아
이미 그도 자신이 그를 죽이기 위해 온 줄 알고 있는 것 같다.
그녀는 이 늑대같은 자의 손에 떨어진 이상
살아날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여기서 조금만 시간을 끈다면 혹시라도 모용천위가 와 줄지 모른다.
그녀의 눈빛은 공포에 젖었다가 다시 절망에 빠졌다 하면서
담사를 응시했다.
{당신이라는 사람은 정말 교활하군요
. 어떻게 해서 마삼노인과 당신이 바뀔 수 있었죠?}
복면여인의 말에 담사는 돼지피에 젖어있는 겉옷을 벗어버리며
냉혹하게 웃으며 말했다.
{흐흐흐! 시간을 끌려는 수작인 모양인데...
천위란 자는 절대 오지 않아. 오고 싶어도 올 수가 없겠지.}
순간 복면여인은 놀라움에 두 눈이 휘둥그래졌다.
놀라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담사는 잔인한 미소를 떠올렸다.
{그것은 별 개 아니야.
내가 너의 뒤를 따르면서 표시해 놓은 것을 모조리 지워 버렸지.}
담사는 말하며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담사의 그 말에 복면여인은 아득한 절망의 구렁텅이로 빠져들었다.
{어쨌든간에 잠시 동안 시간이 있으니 설명을 해 주지.
의문을풀지 못하고 염라대왕 앞에 간다면
그가 너에게 한동안 설명해야할 테니!}
*
문득, 담사는 조롱섞인 미소를 지었다.
{너희들은 계략을 잘 세웠지.
어떻게 해서 그렇게까지 되었는지모르지만
동료였던 석무심도 죽이고 나 까지도 죽이려고 말이야.}
복면여인의 눈꼬리가 파르르 경련을 일으켰다.
{모용천위라는 자의 무예는 정말 고명하더군.
그 대단하다는 철혈무정을 단 삼초에 죽였으니 말이야!}
그는 생각하면 할수록 모용천위의 존재가 뇌리에 크게 부각되었다.
사실 모용천위의 살인적인 무예는 그로서 난생처음 보는 절정의 무공이었다.
그의 손에 죽은 범천대공 연대강도 대단한 고수였지만
모용천위라는 이 자에게는 역시 미치지 못했다.
그는 힐끗 복면 여인을 주시한 다음 말을 계속했다.
{나는 불영탑 꼭대기에 숨어 있었지.
너희들은 주위만 살폈지 불영탑을 조사하지는 않더군.}
복면여인은 이 말에 새삼 그를 다시 쳐다보았다.
탑의 꼭대기에 있었다니...
본래 사람이란 동물은 원래 하늘을 잘 쳐다보지 않는다.
첫째는눈이 부시기 때문이고,
둘째는 눈의 구조가
좌우, 정면, 땅을 쳐다 보며 살게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일설에 의하면 죄를 많이 지어서 그렇다는 말도 있지만
이것은신빙성이 없는 소리다.
등하불명이랄까?
지척인 불영탑 위에 숨는 것은 참으로 간단하면서도
기발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복면여인은 그의 혜지에 감탄을 느꼈다.
담사의 말은 조용히 울려퍼졌다.
{석무심이 죽고나자 나는 너의 뒤를 쫓아왔지
. 물론 오면서 네가표해둔 표식을 완전히 지우고 말이야
. 그 다음은 내가 너를 유인한다음
재빨리 이곳으로 돌아와서 노인을 죽인후 너를 기다린 것이지.}
담사의 치밀함과 잔혹함에 복면여인은 자신도 모르게 진저리를쳤다.
{변장은 처음부터 그 노인과 똑같이 했으니까
아무런 문제가 될것은 없었지.}
복면여인은 그의 절묘한 계책에 고개를 흔들었다.
담사는 역시 보통의 평범한 자객이 아니다.
뛰어난 음모와 무예,
그리고 대담한 철담을 고루 갖춘 초일급 자객인 것이다.
{나를 어떻게 할 생각인가요?}
구원의 손길은 오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절망한 복면여인은
힘없이 물었다.
담사는 씨익 웃었다.
가지런한 치아가 드러나자
문득 여인은 눈앞의 이 사람이 매우젊다는 것을 느꼈다.
{나는 아직까지 나를 건드린 사람은 아무도 살려둔 적이 없어.
너도 예외는 아니지.}
담담한 그의 목소리는 그녀에게 있어서
지옥의 사자가 손짓하는것처럼 느껴졌다.
복면여인은 체념한 어조로 말했다.
{강호의 율법은 피에는 피로 이에는 이로니까 할말은 없어요!
죽이려면 어서 죽여요!
당신의 생명을 노리다가 이렇게 잡혔으니
죽어야 당연한 일이예요.}
주르르!
말하는 복면여인의 눈에서 문득 한 줄기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 렸다.
막상 죽는다고 생각하니 그리운 얼굴들이 생각나고 눈물이쏟아졌다.
{그러나 내가 죽고 나면
천위오빠는 비록 십팔층지옥의 아비지옥이라고 해도
당신을 찾아내서 원한을 풀어 줄 것이예요.}
울먹이며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에는
그 누구도 꺾을 수 없는 확고한 신념이 담겨 있었다.
그 말에 담사의 눈길이 기묘해졌다.
{모용천위라는 놈을 사랑하는 모양이군?}
순간 복면여인의 눈빛이 매서워졌다.
{흥! 그 분은 당신 같은 사람이
함부로 이름을 부를 수 있는 분이 아니예요.}
그녀의 교갈에 담사의 입에서 음산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훗훗훗....!}
솟구치는 분노를 표출하는 것인가?
복면여인은 문득 오싹 소름이 돋았다.
그의 괴소는 무어라 표현하기 힘든 것이었다
. 흡사 황량한 들판에서 상처입은 늑대의 부르짖음이랄까,
그녀는 힐끗 자신을 쳐다보는 담사의 눈을 보며 숨을 죽였다.
유리알처럼 생기가 없는 한쌍의 눈동자가
무기력하고 힘이 없으며
절망감이 엿보이는 여인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고 있었다.
문득 그녀는 담사의 눈동자 깊은 곳에서
활화산처럼 분출되는억압된 분노의 불길을 보았다고 생각했다.
그의 눈동자에 실린 그 격렬한 감정을 보는 순간
복면여인은 섬뜩한 한기를 느꼈다.
역린(逆鱗)이라고나 할까?
자신이 무언가 건드려선 안되는 것을 건드린 듯한 예감이
그녀의 교구를 떨게 만들었다.
{그래, 난 자격이 없지. 없고 말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그의 목소리는
언 듯 듣기에는 아주 차분하게 느껴졌다.
아무런 감정도 실려있지 않는 듯 고저 장단도 없는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녀는 착 갈아앉은 그 음성을 듣는 순간
마치 눈앞에서한 마리의 상처입은 늑대가
자신의 상처를 핥고 있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 직후였다.
퍼억!
돌연 눈앞이 흐릿해짐과 동시에
복면여인은 얼굴에 수십 개의바늘이 찌르는 듯한 고통을 느끼고
날카로운 비명을 내질렀다.
{아...아악!}
담사가 갑자기 그녀의 뺨을 후려쳤던 것이다.
여인은 세상에 태어난이래 이런 엄청난한 고통은 처음이었다.
귀하디 귀하게 자란 그녀가 언제 남에게 손찌검을 당해봤던가?
허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담사는 무어라고 악에 바친 소리를 지르면서
미친 듯이 그녀를 때리기 시작했다.
퍼퍽! 철썩!
얼굴, 가슴, 배 할 것 없이 담사의 주먹은 잔인하게 그녀의 전신을 격타했다.
[네...네놈이! 아악! 이 개같은... 흐윽!]
복면여인은 구타당하면서 부르짖었다.
처음에는 욕설이 튀어나왔 으나 그것은 일순간 뿐이고
그녀는 구슬 같은 눈물을 뿌리며 담사 에게 애원을 했다.
{제발...그만...그만 때려요. 아악! 그만....!}
아파도 너무나 아팠다.
마혈이 제압되어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그녀는
꼼짝도 못하고 사내의 주먹세례를 고스란히 맞을 수밖에없었다.
그녀는 이제 비명도 나오지 않았다.
몸에 가해지는 연속된 엄청난 고통에
눈앞이 흐릿해져 가고 자신이 이대로 죽어간다는 것을느꼈다.
그녀는 자신이 알고 있는 신(神)들의 이름을 외우며 빌었다.
이 끔찍한 고통을 어서 빨리 끝나게 해달라고 빌고 또 빌었다.
*
그러던 어느 순간
그녀는 일순
자신에게 가해지던 잔인한 매질이멈추어졌다는 것을 느끼며
감겨드는 눈을 억지로 부릅떴다.
눈앞에 온통 땀에 젖어있는 사내의 얼굴이 있엇다.
그는 거친 황소처럼 연신 숨을 푹푹 몰아쉬고
땀에 흠뻑 젖은 그 얼굴은 그녀로써 처음보는 얼굴이었다.
얼굴에는 여기저기 때 같은 것과 수염이 아무렇게나 붙어 있었지만
뚜렸한 이목구비와 약간 치켜올라간 입술은
그의 고집이 세다는 것과
턱 밑의 선은 그의 굳건한 의지를 나타내고 있었다.
비록 절세미남은 아니었으나
그녀로서는 이토록 강한 이질감을풍기는 얼굴은 처음이었다.
황야를 누비는 고독한 늑대의 모습이랄까?
그의 몸 전체에서 강렬한 야수의 지질이 풍겨나왔다.
그녀는 한동안 막연한 얼굴이었으나
곧 이 사나이가 변장했던노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쏴아아아!
제단 앞에 켜져있는 등잔불빛이
부서진 사당문 틈으로 불어온바람에
금방이라도 꺼질 듯이 위태롭게 흔들렸다.
흔들리는 그 불빛 아래 담사의 얼굴은 기괴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변장이 벗겨진 그의 모습은 이제 많아야 이십 이삼 세 가량으로 보였다.
꽉 다물어져 있던 그의 엷은 입술이 천천히 벌어졌다.
[키키! 그래! 나는 버려진 몸이었다.
날 낳아준 부모란 것들은
열냥인가를 받고 나를 부자집에다 팔아넘겼단 말이다.
그때 나의 나이 겨우 칠 세, 일곱 살 때였지.]
담사의 입에서 상처입은 늑대가 으르렁대는 듯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흐흐! 뼈가 빠지도록 일했지!
하지만 어린 난 언제나 굶주렸고...
돌아오는 것은 매와 멸시 뿐이었다.}
옛일을 회상하는 그의 목소리는 차라리 피를 토하는 듯
부르짖는 절규였다.
[나는 주인집의 개가 부러웠어.
왜냐구? 그 놈은 매일 하는 일없이 꼬리만 흔들어도
고기를 먹을 수 있었으니까 말이야.
나는 그놈이 정말 한없이 부러웠었다!]
담사의 악 문 이빨 사이로 소름이 오싹 끼치는 금속성이 새어나왔다.
[그리고 주인 집에는 딸이 하나 있었지.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고 귀여움이란 귀여움은 모두 받고 자란
예쁜 딸이 말이야.]
담사의 두 눈에서 잔혹했던 유년(幼年)의 기억이
어둠의 빛처럼음사한 광채로 피어올랐다.
[그 애도 나를 괴롭혔지.
매일 나를 채찍으로 때리고
조금이라고반항하면 사흘씩 밥도 주지 않았어.
헌데 말이야! 킥킥! 열두살인가열세살인가 되었을 때
주인집 딸년은 나에게 기묘한 짓을 시키기시작했어.]
담사는 복면여인을 응시했다.
그의 두 눈에서 느릿하게 붉은 핏발이 서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욕정(欲情)의 불길이었다.
[나보다 네 살이 위인 그년은 어느날 밤...
아무도 없는 제방으로날 불러들이더니 갑자기 옷을 벗는거야!]
온몸이 쑤셔대는 고통에 떨고 있던 복면여인은
담사의 말에서무언가 끔찍한 일을 연상하고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리고 그녀의 그 예감은 담사의 이어진 말로 확인되었다.
[그래 맞았어! 난 그년의 노리개가 된거야!]
복면여인의 눈빛을 읽은 담사는 재미있다는 듯이 키득이며 말했다.
이어진 그의 이야기는 엄격한 훈도를 받고 자란 그녀로서는
실로 상상도 못할 것이었다.
[날 즐겁게 해봐! 그럼 저건 네거야!]
주인집 딸은 이제 막 여자 티가 나기 시작한 알몸을
자랑스럽게들어낸 채 눈웃음을 쳤다.
백옥같이 희고 매끄러운 피부,
이제 막 봉긋이 돋기 시작한 앙증맞은 젖가슴,
뽀얀 허벅지 사이의 도독한 둔덕에는 자잘한 솜털이
제법 덮여있었다.
난생 처음보는 여자의 알몸이었다.
남자와는 전혀 다른 구조를지닌 여자의 몸은
어린 소년에게는 호기심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여자의 벌거벗은 알몸따위는
어린 담사에게는 아무래도좋았다.
그의 최대의 관심사는
소녀가 대가로 내놓은 맛있는 음식이었다.
주인집 딸은 어디서 배웠는지
사내가 여자를 기쁘게 하는 방법을 알고있었다.
아마도 부모나 집안의 아랫것들이
부주의하게 정사를 벌이는 것을 보고 배웠을 것이다.
굶주린 배를 채울 수 있다는 유혹과 또 소년다운 호기심으로
담사는 기꺼이 그녀를 위해 봉사했다.
그는 두손뿐 아니라 혀와 입술까지 다 동원하여
주인집 딸을 애무해주었고,
그녀는 그 생경하고 강렬한 쾌감에 발정난 짐승의 암컷처럼
신음하며 몸부림쳤다.
오래지 않아 담사는 주인집 딸이
어디를 어떻게 애무해주어야가장 좋아하는지 알게 되었다.
겨우 모양을 갗추기 시작한 젖무덤을 쥐어 비틀고 흡입하면
그녀는 견디지 못하고 자지러졌다.
그래도 역시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치부에 대한 직접적인자극이었다.
그녀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 그리고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서
담사는 솜털이 덮이기 시작한 소녀의 그곳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핥아야만 했다.
계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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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 드립니다
ㅈㄷ
감사합니다
~♡♥♡~ 아싸,쵝오 항상 감사~♡♥♡~
즐감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즐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