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vNDy26twvoM
지난 시간에 엘리야의 등장에 대해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세상적으로 말할 것 같으면 듣보잡에 지나지 않는 인물이지만 믿음의 눈으로 보면 혜성같이 나타난 인물입니다. 하나님은 때마다 일마다 엘리야와 같은 인물을 보내셔서 우리를 도우시고 구원하신다는 것을 묵상했습니다.
하지만 엘리야를 통해 하신 역사는 3년 반의 가뭄이었습니다. 북이스라엘 아합 왕을 비롯해서 백성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한 결과였던 것입니다. 아무리 열심히 노력하고 힘을 써도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시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비도 안 내리고 이슬도 내리지 않는데 힘을 써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비가 내리지 않아봐야 비로소 한계를 인식하게 되는데 이것 또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엘리야는 아합 왕에게 가뭄을 선포하고 그릿시냇가로 피신합니다. 아합 왕이 엘리야를 찾아내지 못할 정도의 까마귀가 사는 죽음의 땅이었지만 하나님은 그 부정한 짐승으로 여겨지는 까마귀를 통해 떡과 고기를 나르시고 엘리야의 생명을 유지시키셨습니다. 엘리야에게 까마귀는 이스라엘에 보내신 엘리야와 같은 관계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신앙인들에게도 까마귀를 보내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릿시냇가에 피신했던 엘리야였습니다만 가뭄이 오랫 동안 계속 되다 보니 그릿시냇가도 바닥을 드러내게 됩니다. 이때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시돈 땅에 있는 사르밧 성읍에 가면 과부를 만나게 될 텐데 과부를 통해 음식을 제공받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릿시냇가에서 시돈까지는 상당히 먼 거리입니다. 굳이 그곳까지 가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과연 그곳에 가면 계시를 받은 대로 과부를 만나게 될는지 의심이 들 수도 있겠지만 엘리야는 말씀에 순종함으로 시돈 땅으로 이동하게 됩니다.
사르밧 성문에 이를 때에 한 과부가 나뭇가지를 줍는 것을 엘리야가 목격하게 됩니다. 물론 이 때 당시 이 여인이 과부인지는 나중에 알게 된 사실입니다. 다만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 과부인지 물을 좀 달라고 했을 때 순종하는 것을 통해 과부인지를 짐작하게 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엘리야는 물보다 더 어려운 것을 부탁하는데 떡을 한 조각 만들어서 갖다 달라고 하자 통에 가루 한 움큼과 기름 조금 밖에 없어서 하나 밖에 없는 아들과 나누어 먹고 나면 먹을 것이 없어 굶어죽을 형편이라고 대답합니다.
엘리야는 이에 포기하지 않고 이번에는 작은 떡을 만들어달라고 요구를 합니다. 그냥 떡 한 조각에서 작은 떡으로 바뀐 것입니다. 엘리야도 사람인지라 차마 떡이라고 표현을 할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다만 떡을 요구하면서 만일 떡을 갖다 주면 하나님께서 도우셔서 양식이 떨어지지 않게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놀라운 것은 이 여인은 엘리야의 요구를 들어주었고 양식이 떨어지지 않는 놀라운 역사를 경험하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과부가 가진 가루 한 움큼은 북이스라엘의 영적상태를 상징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기근이 바로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기근을 의미하는 것처럼 가루 한 움큼은 영적인 기근 가운데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가진 자가 매우 적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 가루 한 움큼에 해당되는 인물이 바로 엘리야와 사르밧 과부였던 것입니다. 이 가루 한 움큼을 통해 기적의 역사가 일어난 것처럼 두 사람의 믿음을 통해 양식이 떨어지지 않는 기적의 역사를 체험하게 된 것입니다.
■눅 4:24. 또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는 자가 없느니라 25.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 시대에 하늘이 삼 년 육 개월간 닫히어 온 땅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으되 26. 엘리야가 그 중 한 사람에게도 보내심을 받지 않고 오직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 뿐이었으며
예수님이 행하신 오병이어의 기적과 같은 패턴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남자만 오천명이 모여 있는 상황이니까 여인과 아이들 합치면 2만명 정도 되는 곳에서 먹을 것이라고는 오병이어 밖에 없었습니다만 한 아이가 믿음으로 이 오병이어를 바침으로 인해 열 두 광주리나 남을 정도로 2만명이 배불리 풍족하게 먹는 역사를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매우 작은 것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다음장 18장에도 나오는 내용입니다만 엘리야가 영적대결에서 승리한 후에 비를 경험하게 되는데 이때 엘리야는 비를 내려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합니다. 3년 반동안 비가 내리지 않았으니 하늘은 그야말로 구름 한 점 없는 상태입니다. 그렇게 간절히 기도하는 가운데 옆의 사환에게 바닷가쪽으로 가서 뭐가 보이는지 살펴보라 했을 때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대답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또 기도하는 가운데 이번에는 손바닥만한 구름이 보인다고 대답합니다. 그리고 또 기도했더니 손바닥만한 구름이 온 하늘을 덮더니 엄청난 비가 쏟아짐으로 가뭄이 비로소 끝나게 되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갑자기 엄청난 소낙비로 내리는 것이 아니라 손바닥만한 작은 구름으로부터 시작하는 것과 본문의 가루 한 움큼으로 역사가 일어난 것과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가 가진 것이 가루 한 움큼 밖에 없다 할 지라도 실망하지 마시고 절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가루 한 움큼 안에 우리의 믿음과 순종이 합해지기만 하면 본문의 사르밧 과부처럼 가뭄 동안에 먹을 수 있도록 끊임없이 나오는 양식이 된다는 것을 믿으시고 또한 체험하시는 모두가 되시길 축복합니다.
결과적으로 놓고 볼 때 엘리야가 과부의 도움을 받은 것보다 과부가 엘리야의 도움을 받은 것이 더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엘리야를 살리시기 위해 사르밧으로 보내신 것이 아니라 이 사르밧 과부를 살리시기 위해 엘리야를 보내신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조금전 보았던 누가복음 성경말씀처럼 하나님은 사르밧 과부의 믿음을 이미 이전부터 보고 계셨던 것입니다. 이 믿음이 놀라운 것은 그야말로 삼년반 기근으로 모든 식물이 죽은 것처럼 다 영적으로 죽어 있는 상태인 상황에서 이 여인만큼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버리지 않았던 것을 하나님은 기뻐하시고 이 여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엘리야를 보내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기뻐하시는 백성을 그냥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기억하시고 반드시 은혜 가운데 인도하신다는 것을 묵상할 수 있습니다. 당시 과부는 그야말로 약자 중의 약자입니다. 남편도 죽고 먹을 것이 없어서 아들과 함께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서 그래도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던 것인데 그 보상을 엘리야를 통해 받게 된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 잃어버려도 믿음만은 잃지 않기를 힘쓰는 신앙인들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17절부터 분위기가 바뀌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 외아들이 죽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사실 아들이 죽은 것과 엘리야와 아무 상관이 없지만 여인은 아들의 죽음과 엘리야를 연결을 시킵니다. 어쩌면 자연스러운 결과라 할 것입니다. 받은 은혜는 잊어버리고 아픔만 기억나는게 사람의 본능입니다. 엘리야가 집에 들어옴으로 인해 양식의 기적을 체험한 것은 잊어버리고 아들이 죽은 것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18절과 같이 원망을 합니다만 여기서 또 반전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죽은 아들을 엘리야가 살린 것입니다.
양식이 떨어지지 않은 것보다 더 큰 충격적인 기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이를 안고 다락에 올라가서 엘리야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는 가운데 죽었던 아이에게 아이의 혼이 돌아오고 살아나게 된 것입니다.
기도의 엄청난 역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실 엘리야가 매일 하는 일이 아마 기도였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당시 무슨 책이 있는 것도 아니고 성경책이 있는 것도 아니고 간단한 노동이나 집안일을 제외한다면 기도만 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는데 그 기도의 능력을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아이의 부활사건으로 인해 여인의 믿음이 온전해지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24절의 고백을 통해 여인의 믿음이 이전의 믿음과는 다른 차원으로 변화되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쩌면 바로 이것을 위해서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아이가 죽게 되었던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정말로 원하시는 것은 육의 구원보다 영의 구원이라는 것을 묵상할 수 있습니다. 양식을 통해 여인을 살리신 것도 하나님의 은혜요 사랑이지만 이 여인이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믿음을 가지기를 하나님이 원하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엘리야에게 행한 순종과 자비 베풂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양식도 얻고 아들도 다시 얻게 되었고 하나님을 온전히 만나게 되었습니다.
만남의 역사, 순종의 역사, 기적의 역사를 동일하게 체험하시는 믿음의 백성들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