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음악교육은 서민에게 열려있는가
대한민국에서 서민이 전문 클래식 음악인으로 성장할 수 있는 확률이 과연 얼마나 될까?
정글 같은 천민 자본주의가 판을 치고 있는 현실을 직시한다면 어렵다고 밖에 할 수 없을 것 같다.
불행한 사실이지만 언젠가부터 클래식 음악가로 성공하기 위한 우선적인 조건은
음악가로서의 재능보다 주변을 잘 꾸며 줄 수 있는
재력이다.
이러한 금전적인 배경 조차 재능으로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다.
한국 교육의 문제는 앞으로 두고두고 국가의 미래를 어둡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 될 것이다.
이미 교육을 통한 계층이동의 가능성과 성공에 대한 갈망은 무너지고 있다.
모든 학생이 똑 같은 조건 내에서 정당하게 경쟁한다는 것은 이미 현실에서는 이루어 질 수 없는 꿈이다.
경제력이 있는 부모 밑에서 편하게 공부하는 학생들과 학원 등록금 조차 없어 눈물을 곱씹는 아이들이
같이
공부하여 경쟁을 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이미 공정하지 않다.
더 큰 문제는 이런 구조적인 문제를
가정과 학생들이 정규 교육과정에 들어오기도 전에 납득해 버린다는 것이다.
음악계의 문제는 일반 교육계보다 몇 배 더 심각하다.
사실상 일반
중산층으로서는 감당하기 불가능할 정도로 교육 비용이 늘어나 있다.
중,
고등학교 때부터, 일부는 초등학교 때부터 어느 선생의 문하로 들어갔는지에 대한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이럴 때 제일 좋은 연결고리가 되는 것은 부모의 재력,
권력이다.
한번 레슨 비용이 대학 교수 급이면 적어도
15만원. 일반 서민가족의 일주일 먹거리 비용보다 많이 든다.
만일 15만원으로 어떻게 일주일 동안 가족이 사는가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은 적어도 서민이 아니다.
일주일에 한번씩 레슨을 간다고 해도 한달이면 4~50만원. 연간 5~600만원 정도가 교육비로 들어간다.
물론 이것은 최대로 적게 잡은 액수고 일반적으로는 이 금액의
2~3배 정도는 기본으로 들어간다.
유명한 교수나 해외 연주자에게 따로 마스터클래스를
받고 연습실 대여 및 악기 문제까지 생각한다면
실제로 교육을 위해서 쓰여지는 금액은 일반인이 상상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간다.
그렇다고 대학에서 서민들을 생각해서 문을 개방하는 것도 아니다.
비근한 예로
서울대학교의 작곡과 입시 사례를 들어보자.
올해부터 서울대학교는
8월에 1차 예비 심사를 하고 연말에 2차
최종심사를 해서 합격여부를 결정한다고 한다.
근데 그
2번의 입시관문이 험난하기만 하다.
변주곡에,
시창청음에, 건반화성, 피아노까지. 이 정도가 단지 1차 관문이다.
서울대학교 교수들은 기초가 잘되어 있는 학생들을 뽑기 위해서 이런 과목을 설정했는지 모르겠지만
실제 학생들 입장에서는
재앙이다.
저 과목들을 공부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사교육을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교수들은
모르는지 궁금하다.
1차 심사는 어느 정도 자격만 되는 학생들을 추리기 위해서라고 한다.
학생과 부모의 입장에서는 ‘추린다’라는 말보다 ‘이번에 떨어지면 기회가 없다’가 더 눈에 들어오게 된다.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무리를
필사적으로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만일 서울대학교가 국립 대학이 아니라면 이렇게 까지 딴지 걸고
말할 필요가 없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서울대조차 자신들의 결정이
음악계에, 사회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해 심사숙고 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나마 비용이 많이 들지 않는 작곡과만 해도 그런데 기악과, 성악과는 언급할 필요가
있을까?
선생들이 떼돈을 번다는 입시철이 연간 두 번 생긴 꼴이다.
있는 집 학생들을 대놓고 받으려고 서울대학교를 법인화 하려는 것인가.
원래 설립목적이 서울대학교와 달라서 언급하려고 하지 않았지만,
한국
예술종합학교의 교수들은 예비학교가 대학보다
어려운 관문이라고 이야기 하는 것을 심각하게 받아 들일 필요가 있다.
두다멜이 이슈화 되고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이유는 그의 경우가 희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는 희귀한 것이 아니라 불가능으로 변질되고 있다.
꿈이 없는, 신데렐라가 없는 사회 구조는 반드시 붕괴한다.
우리가
있는, 살아가는 이 사회가 무너진다는 거다.
한국에서 음악을 전공하고자 하는 학생들에게 과연 어느 정도의 가능성과 기회가 열려있는지 한번
살펴보자.
일단 음악을 전공하려면 재능을 알아볼 만한 좋은
선생님이 필요하다.
적어도 가능성 정도는 살펴 볼 수 있는 이가 필요한 것이다.
자기 자식이 재능이 있다고 믿는 것은 어느 부모나 마찬가지니
뭔가 객관적인 평가를 해 줄 수 있는 전문가의 존재가 필수인 것이다.
그런데 음악의 경우 전문가로 키우고자 하면 많은 경비가 들어갈 뿐 아니라
사회적인 네트워크가 필요하다.
이름있는 음악전문가-우리가 흔히 말하는 교수급-을 만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사회적 인맥을 가지고 있거나 재력이
없으면 대단히 힘들다.
뭐 천민 자본주의도 자본주의니 시대를 잘못 타고난 학생들에게 미안하지만 사정이 그러하니 뭐 그렇다고 하자.
이런 어려운 관문을 거쳐 재능이 있을 것 같다고 판단된 학생들
또한 더욱 어려운 일을 겪게 된다.
가장 먼저 닥치는 것은 경제적인 문제다.
분명히 불법이지만 교수들의 레슨은 엄연히 존재한다.
이를 위해서
많은 학생들과 교수들은 은밀한 범법자가 되어 검은 카르텔을 형성한지 오래다.
이 카르텔에 끼려면 재정적인 뒷받침은 필수일 뿐 아니라 그것이
보험의 성격도 가진다.
하지만 이런 패거리 문화는 한국 전체의 암담한 현실이니 어찌할까. 뭐 그렇다고 하자.
그 학교 내에서도 치열한 연공서열과 줄이 필요하다.
곧 은퇴할
교수 아래에 들어가는 철부지 제자는 아무리 노력해도 그 위에 쌓인 선배들의 벽을 넘기가 보통 힘들지 않다. 실력보다는 나이와 활동을 중시하는
한국에서 몇몇 콩쿠르에서 입상한 경력은 오히려 표적이 되기 쉽다.
기가 막힌 것은 요즘 활발하게 활동하며 세계적인 캐리어를 쌓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기존 음악가가 보내는 냉소와 질시가 도를 넘었다는 거다.
하다못해 대놓고 ‘넌 잘나가는 음악가가 왜 대학교수가 되려고 하냐’고
폭언을 날리거나
잘나가는 후배교수의 연주횟수를 줄이라고 노골적으로 요구하기도 한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데에 중점을 두라는 건데 이렇게 말하는
사람치고 제대로 가르치는 교수를 본적이 없다.
그래도 학생들을 빌미로 시비 거는 것이니, 학생에 대한 애정을 뭐라고 그러기가 뭐하니 뭐 그렇다고
하자.
외국에 나가서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학부모들이 몇 십 년간
물을 흐려놓아서 그런지 외국 교수들이 한국 학생에게
자기 캠프에 거액을 내고 참가하라고 종용하거나 별도의 렛슨비를 받는 것도 비일비재하다.
잘나가는 선생의 경우 콩쿠르나 연주, 입학시험, 악기 등을 빌미로 거액의 사례금을 받는 것이 일상화 되었다.
자기 연주단체에 자기 학생들을 끼워
놓고 부모에게 스폰서를 뜯어내는 선생이 한국뿐 아니라
외국에도 생겼다는 것은 참으로 대단한 교육 문화 전파가 아닐 수 없다.
이 또한 아이들을
아끼는 부모의 마음으로 만들어진 해프닝으로 치고 뭐 그렇다고 하자.
뭐 재벌가나 상류층의 잘배운 사람들이 아이를 아끼는 마음에서 국제중 사태를
만들었지 나라를 망가트리려고 그랬을까.
또 짚어 볼 것이 돈 좀
있는 사람들의 행위다.
얼마 전 꽤 유명한 사립연주단체의 연주를 찾았다.
그런데 도저히 그곳에서 연주할 실력이 아닌 이를 협연자로 세워 연주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 연주자는 유명 재벌가 집안으로 신문에도 오르내린 사람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에 이 단체에서 기획한 연주회에서 그
재벌이
버젓이 스폰서가 되어 있는 것을 보면서 정말로 소름이 끼쳤다.
정말로 열심히 하려고 주야로 애쓰는 모든 음악인들에게 미안할 따름이다.
염치없는 것은 상류층 한국인들의 특징이니깐 뭐 그렇다고 하자.
여기까진 다 이해 하겠는데 진짜 못봐 주겠는 것은
고만고만한 사람들끼리 서로 욕하고 칭찬하는 거다.
무슨 말인지 모르는 독자는 아직 이 늪에 빠지지 않은 분들이니 이해하시지 못한다 해도 뭐 그렇다고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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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은 퍼온글인데, 공부에 돈이 걸림돌인것을 지적했네요.
공교육이 없는 나라는 이런 문제를 안고 가겠죠....
첫댓글 반칙이 난무하는 세상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