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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5월 27일, 목요일, Cajamarca (고도 2,750m, 인구 16만), Hotel Plaza
(오늘의 경비 US $27: 숙박료 20, 점심 2, 저녁 16, 식료품 3, 식수 3, Cajamarca 버스표 15, 1일 관광 15, 20, 인터넷 1, 환율 US $1 = 3.50 sole)
어제 밤 9시 반에 Huaraz를 떠나서 오늘 아침 6시 반에 Trujillo에 도착하였다. 밤중에 높은 Andes 산악 지대에서 태평양 해안으로 내려온 것이다. 어제 버스 여행은 힘들었다. 좌석이 불편해서 거의 잠을 잘 수 없었다. 너무나 편했던 Amazon 강 여행의 해먹 생각이 또 났다. 밤중이라 틀림없이 아찔아찔했을 길은 안 보고 내려온 것만은 다행이었다.
Trujillo에는 볼 것이 없어서 10시 반 버스로 다시 Andes 산악 지대에 있는 Cajamarca로 올라가기로 했다. 다행이 같은 회사 버스로 가기 때문에 버스 터미널을 바꾸지 않아도 되었다. 페루에는 여러 버스 회사들이 함께 사용하는 버스 터미널이 있는 것이 아니고 버스 회사마다 자기네 터미널이 따로 있다. 그래서 한 도시에서 도착할 때와 떠날 때 다른 버스 터미널을 사용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생각해 보니 중미 나라들도 그랬던 것 같고 미국도 그렇다.
페루에는 외국 여행자를 베껴 먹으려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가난해서 그런 모양이지만 나 같은 배낭 여행자들을 너무 피로하게 만든다. 이곳에서 또 당했다. 아침에 버스 터미널에서 커피를 만들어 마시려고 매점에서 뜨거운 물을 사는데 바가지를 썼다. 뜨거운 물 한 잔에 30전이라고 하는 줄 알고 달라고 했더니 30전이 아니고 3 sole이란다. 콜라 두 병 값이다. 거절했어야 하는데 잠이 덜 깨서 그랬는지 돈을 내고 말았다. 20 sole 짜리 지폐를 냈는데 잔돈이 없다면서 한 시간 후에나 거스름돈을 준다. 거스름돈을 주면서 다시 베껴 먹으려한다. 17 sole을 돌려줘야 하는데 7 sole 만 돌려주는 것이다. 내 항의를 받고 나서야 10 sole을 더 준다. 20여세의 여자 직원인데 물 값이 너무 비싸다 했더니 생글생글 웃기만 한다. 페루 여행할 때는 정신 바짝 차리고 다녀야한다.
Cajamarca 버스가 떠날 때까지 3시간 정도 여유가 있어서 Trujillo 시내 구경이나 해볼까하고 터미널을 나서니 택시 운전사 여러 명이 덤벼든다. 자기 택시를 타라는 것이다. 걷겠다고 하고 시내가 어느 쪽이냐고 물으니 방향을 가르쳐 주면서 멀고 위험하다면서 2 sole에 시내까지 데려다 주겠단다. 2 sole이면 싸기는 하지만 시내 갈 생각이 갑자기 없어져서 (날씨도 흐리고 쌀쌀했다) 조금 걷다가 인터넷 카페가 보여서 대신 한 시간 반 동안 인터넷을 했다.
Cajamarca는 좀 외진 곳에 위치해 있어서 외국 여행자들의 발길이 잘 미치지 않는 곳이다. 그러나 페루의 중요한 역사가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스페인의 약탈자 Pizarro가 Inca의 마지막 황제 Atahualpa를 비겁한 계략을 써서 생포하고 엄청난 액수의 금은보화를 몸값으로 받아 챙긴 다음에 살려주겠다던 약속을 어기고 목을 매어 죽인 곳이다.
Cajamarca 가는 길은 매우 험했다. 500년 전 Pizarro 일당도 이 길로 갔다. Pizarro 일당 300여명은 1532년 당시 스페인 식민지이던 Panama를 출항해서 이곳 Trujillo 근처의 해안에 상륙하여 원주민들로부터 Inca 왕 Atahualpa가 Cajamarca에 머물고 있다는 정보를 얻어낸 다음에 내가 지금 가고 있는 길을 갔던 것이다.
Atahualpa는 자기 세력의 거점이었던 지금의 Ecuador 수도 Quito를 떠나서 Inca 제국의 수도 Cuzco로 가고 있었다. Atahualpa의 아버지인 전 Inca 왕이 죽으면서 Inca 제국을 남북으로 양분해서 두 아들에게 나눠주었는데 Quito 주위의 북쪽 지역을 물려받은 Atahualpa가 Inca 제국의 수도 Cuzco 주위의 남쪽 지역을 물려받은 자기의 이복동생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Cuzco에 자기의 원정군에게 잡혀있는 이복동생을 응징하고 Inca 제국 전체의 수도인 Cuzco룰 차지하려고 가는 중이었다.
170여명의 이상한 차림을 한 Pizarro 군인들을 보았을 때 이곳 사람들의 생각은 어땠을까? 특히 난생 처음 보는 말을 탄 군인을 봤을 때는 매우 혼돈스러웠을 것이다. 1520년 또 다른 스페인 정복자 Cortez가 멕시코를 (Aztec) 정벌했을 때 Cortez의 기마병들을 본 멕시코 사람들은 사람과 말이 함께 붙은 신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이들도 그렇게 그랬을까?
버스는 좁은 계곡을 따라서 계속 올라간다. 계곡 주위는 민둥산들이다. 계곡 앞쪽으로는 높은 산이 보인다. 도대체 저 높은 산 너머에 무엇이 있기에 이렇게 올라가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시계로 고도를 계속 체크하니 500m, 1,000m를 지나서 3,000m에 도달한다. Cajamarca가 가까워 오는 것 같았다.
산정 주위에는 안개가 자욱하다. 해안은 매년 이때쯤이면 항상 생긴다는 짙은 안개로 아주 우중충했고 산으로 오르면서 하늘이 밝아지기 시작하더니 고개를 넘자 청명한 날씨로 바뀐다. 그리고 멀리 산 아래로는 Cajamarca 평야가 보인다. 흡사 지리산 중턱에서 구례 평야를 내려다보는 것 같았다. 지금까지 본 페루의 풍경과는 전혀 다르다. 푸른 들판에 주위의 산들 역시 푸른데 높이가 300m 내지 600m 정도 되는 별로 높지 않은 산들이다. 너무나 아름답다. Pizarro 일당이 보았을 때도 마찬가지 느낌이었을 것이다.
Inca 제국이 왜 이렇게 높은 지역에 자리를 잡고 있는지 이해를 하겠다. 이 지역의 자연 환경은 고지대는 천국 같고 저지대는 지옥 같다. Chile 남부에 가면 기후나 지형이 유럽이나 아시아의 온대 지방과 같지만 Inca 제국이 있던 Peru, Bolivia, Ecuador 지역은 서쪽 태평양 해안은 사막, 동쪽은 아마존 정글이고 그 중간이 Andes 산악 지대인데 대부분 산은 나무 하나 없는 흙산이고 사람 살 곳이라고는 고도 2,000m와 4,000m 사이에 있는 Andes 산맥의 눈 녹은 물이 흐르는 계곡들뿐이다. 그 계곡들은 보통 매우 좁지만 Cajamarca나 Cuzco 같이 한국의 평야만큼 넓은 곳도 있다.
이런 계곡들이 북쪽 Quito 주위에서부터 남쪽 Cuzco 주위까지 2,000m 내지 4,000m 고지대에 남북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고원지대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이 지역이 바로 Inca 제국의 중심지인 셈이다. 이 고원지대에 사는 Inca 사람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높은 곳에 산다는 생각이 별로 없었을 것 같다. 주위를 둘러보면 별로 높아 보이지 않으니까.
Cajamarca 버스 터미널에 내려서 직원에게 Cajamarca의 중앙광장인 Plaza de Armas 광장이 몇 블록이냐 되느냐고 물으니 15 블록이라면서 택시를 타면 2 sole이란다. 버스 터미널을 나서니 택시 기사들이 덤벼든다. Plaza de Armas 광장까지 2 sole을 주겠다고 하니 실망한 표정으로 타라고 한다. 아마 5 sole이나 10 sole 정도 요구할 작정이었던 것 같다.
Plaza de Armas 광장에 당도하니 광장 주위가 멋있다. Cuzco의 중앙광장과 흡사하다. 중남미에서는 도시의 중앙광장은 이름이 Plaza de Armas인 경우가 많다. Plaza de Armas는 직역을 하면 “무기 광장”이다. 아마 옛날에는 중앙광장에 시청과 대성당과 함께 도시 방어를 위한 무기고를 두었던 모양이다. 중앙광장은 Plaza de Armas 외에도 Plaza Mayor, Parque Central이라고도 불린다.
Plaza de Armas 광장에 있는 Hotel Plaza에 들어가서 Lonely Planet에 쓰여 있는 대로 광장이 내려다보이는 발코니가 있는 방을 요구하니 그렇지 못한 방보다 5 sole가 비싼 20 sole을 요구한다. 옛날 건물을 개조해서 만든 호텔인데 방이 널찍하고 조용하고 분위기도 좋다. 2층 방이라 광장 경치도 그만이다. 호텔 주위에는 여행사, 음식점, 은행, 인터넷 카페 등, 내가 필요로 하는 곳들이 모두 있다. 며칠 푹 쉬어 가고 싶다.
근처 여행사에 가서 내일과 모래 가는 1일 관광 둘을 예약했다. 호텔 근처에 있는 El Zarco 라는 음식점에서 저녁을 먹었는데 음식이 맛있고 가격도 쌌다. Cajamarca가 참 마음에 든다. 이곳에 오기를 잘 했다.
해안은 황량하기 짝이 없다
계곡에는 쌀농사를 짓는 농촌들이 보인다
내가 Huaraz로부터 타고 온 밤 버스, 버스회사 이름 Linea가 보인다
Cajamarca 근처 산정 근처에 오니 갑자기 안개가 낀다
Plaza de Armas 광장에 있는 Hotel Plaza, 건물 오른쪽 끝 녹색 발코니가 내 방이다
호텔 근처 길 풍경, 남미에는 Cajamarca같이 잘 보존된 도시들이 참 많아서 부럽다
Plaza de Armas 광장은 항상 사람들로 붐빈다
중앙광장 공원 벤치에 앉아서 쉬고 있는 두 여인
Cajamarca 대성당, 세금을 피하기 위해서 종탑을 안 세웠단다
대성당 건너편에 있는 Iglesia de San Francisco에는 멋있는 종탑이 있다
나무의 큼직한 꽃들이 아름답다
2004년 5월 28일, 금요일, Cajamarca, Hotel Plaza
(오늘의 경비 US $29: 숙박료 20, 점심 6, 저녁 5, 식료품 13, 입장료 4, 머리 염색약 21, 인터넷 2, Chiclayo 버스표 25, 택시 4, 환율 US $1 = 3.50 sole)
Cajamarca는 Quito와 Cuzco 중간에 위치하고 있는 Inca 제국의 교통의 요지였다. 어쩌면 수도였던 Cuzco보다 수도로서 더 적당한 위치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Quito는 Inca 제국 말기에 편입된 곳이고 Cuzco는 Inca 제국의 발상지인 Titicaca 호수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어서 일찍 수도가 되었다.
아침 일찍 Inca의 마지막 왕 Atahualpa가 Pizarro에게 잡혀서 감금되었던 El Cuarto del Rescate를 가봤다. El Cuarto del Rescate는 "몸값 방" 혹은 몸값을 받아내기 위해서 가두었던 방이라는 뜻이다. Plaza de Armas 광장에서 반 블록 떨어진 곳에 있는 한 20평정도 크기의 흙벽돌집이었다. 그 위치로 추정해보아서 Plaza de Armas 광장이 그 당시에도 Cajamarca의 중심지였던 것이 틀림없다. 바로 이 광장에서 Pizarro 일당이 Atahualpa를 납치했고 그 와중에 처참한 Inca 사람들 살육을 자행했던 것이다.
입구에는 그림 둘이 있었는데 하나는 Pizarro 일당이 자행한 살육 장면이고 다른 하나는 Atahualpa가 한 팔을 높이 올려서 벽을 가리키며 자기를 살려주면 이 높이까지 금을 채워주겠다고 제의를 하는 장면이다 (한 방은 금, 다른 두 방은 은으로 채웠다). 너무나 생생하게 그린 그림이다. 아,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Inca 제국의 종말이여! 인구 600만의 Inca 제국이 불과 300여명의 Pizarro 일당에게 무너지다니.
Atahualpa는 너무나 순진하고 방심했다. Pizarro 일당이 얼마나 흉악한 가를 몰랐던 것이다. 당시 Pizarro 일당은 Cajamarca 시내에 묵고 있었고 Atahualpa는 시내에서 6km 정도 떨어진 곳에 군영을 차리고 있었다. Pizarro는 Atahualpa를 Cajamarca 시내 자기네 있는 곳으로 초대를 하고 Atahualpa는 이 초대에 응해서 불과 수백 명의 비무장 호위병만 거느리고 Pizarro가 쳐 놓은 함정으로 자진해서 걸어들어 온 것이다.
비무장 호위병이라니 말도 안 돼는 얘기다. 왜 이렇게 방심했을까. 장창으로 무장하고 숨어서 기다리고 있던 Pizarro의 기병대는 아무런 의심 없이 다가온 비무장의 Inca 군인들을 순식간에 살육하고 Atahualpa를 납치했던 것이다. 이 술책은 10여 년 전에 Cortez가 멕시코를 정복했을 때 썼던 방법이었는데 Pizarro가 다시 페루에서 쓴 것이다. 이 두 번의 납치 극으로 당시 신대륙의 최대 제국이던 Aztec 제국과 Inca 제국이 멸망하게 된 것이다.
오늘 재미있는 친구를 하나 만났다. El Cuarto del Rescate 구경을 끝내고 Plaza de Armas 광장으로 돌아와서 주위 사진을 찍고 있는데 영어로 누가 말을 건다. 차림새는 누추하지만 유창한 영어다. 등산모를 쓰고 큰 배낭을 옆에 놓고 공원 의자에 앉아있었다. 잡상인 같기도 하고 나처럼 여행하는 사람 같기도 하다. 얘기를 해보니 매우 지식인이다. 스페인어와 영어 외에도 독일어, 불어, 이탈리아어도 한단다. 영어로 Political Activist이고 우리말로는 시민운동가다. 자기는 페루의 무장 게릴라 조직인 Shining Path의 일원은 아니지만 그들을 지지한다고 한다. 한때 많은 활약을 하던 이 집단은 근래에는 잠잠하다. 아주 없어지지는 않고 자기네 거점인 산악지대와 정글에서 나오지 않고 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수년 전 Shining Path가 거의 승리 직전까지 갔었는데 일본계인 Fujimori가 대통령으로 들어서면서부터 세력이 꺾였다 한다. Fujimori도 현재 대통령 Toledo도 나쁜 대통령이라 한다. 다음 대통령 선거에는 못사는 사람들을 위해서 일할 대통령이 선출되기를 바란다 한다. 40대의 이 친구는 차림새는 누추해도 눈빛은 초롱초롱하다. 자기는 이제 경찰에 찍힌 몸이 되어서 언제고 쥐도 새도 모를게 잡혀가서 죽음을 당할지도 모른다 한다. 그러나 최악의 경우를 각오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도 무섭지 않다고 한다. 무서운 친구다. 배낭에서 정치적 문구가 적힌 조그만 포스터들을 꺼내서 보여 주면서 자기는 주로 대학 근처로 다니면서 대학생들 상대로 일을 한다고 한다.
오후에는 Inca 공동묘지인 Inca Cemetery 관광을 갔다. 산 중턱에 바위에 구멍을 뚫고 묘지를 만든 것이 특이했다. 그곳 외에도 Cajamarca의 명물이라는 치즈 공장과 어느 화원 구경을 갔는데 나는 그런 곳보다는 Cajamarca 들 풍경이 더 좋았다. 푸른 들에는 소, 말, 양 등 가축이 많았다. 그리고 신기한 것은 우기가 아닌데도 냇물이 폭포처럼 내려오는 것이었다. 산에서 내려오는 물인데 보이는 산은 매말아 보이는 민둥산이다. 한국 산도 5, 6 월에는 내가 마르는데 이곳은 산 위에 저수지가 있는지 우기처럼 내에 물이 많다
우리 관광 그룹은 15명인데 외국인은 나 혼자다. 페루 관광객들 가운데 영어를 하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미국 뉴욕 시에 있는 한 대학에서 유학했다 한다. Lima에서 수출, 수입 사업을 하고 있는데 사업관계로 한국 사람들도 많이 안다고 한다. 현 대통령은 엉터리고 자기는 열렬한 Fujimori 전 대통령의 지지자라고 한다. 현재 일본에 피신해 있는 Fujimori가 돌아와서 다시 대통령이 되기를 바란다고 한다.
오전에 만난 시민운동가와는 정반대다. 둘 다 자기네 주장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한쪽은 뒤엎고 다시 시작하자는 주장이고 다른 쪽은 현 상태를 유지하면서 문제를 해결하자는 주장이다. 전자는 낭만적이고 후자는 현실적이다. 광장에서 만난 친구는 이라크, 팔레스타인을 지지하고 김일성을 칭찬한다. 실패한 김일성은 칭찬하면서 성공한 박정희 얘기는 없다. 이런 친구가 정권을 잡으면 페루는 더 엉망이 될 것이다. 남미에는 이런 친구들이 너무나 많다. 사회가 불안하다는 증거다. 500년 전 Cortez, Pizarro 때부터 "첫 단추"가 잘 못 끼워져서 생겨난 일이 아닌가 하다.
Inca 제국의 마지막 왕 Atahualpa가 Pizarro에게 잡혀서 감금되었던 건물 El Cuarto del Rescate
스페인 군인들이 Atahualpa Inca 왕을 납치하는 장면을 그린 그림이다 Atahualpa가 몸값으로 손을 들어서 이 높이까지 금으로 채워주겠다고 약속한다
오후 관광 그룹에 외국인은 나 혼자뿐이었다, 다행히 가이드가 영어를 조금 했다
바위를 파서 만든 Inca 묘지 Copyright (c) 2004- By 박일선. All Rights Reserved. 이 글과 사진은 상업적으로 이용하지 않고 수정하지 않고 저작자를 박일선으로 (혹은 Elson Park) 표시하는 조건으로 아무나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