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몽골의 침입-1 : 이자겸의 난부터..
04.09.18
(대하서사시를 읽는 기분으로..)
1206년 인류사 불세출의 영걸인 테무진이 몽골 초원의 88개 부족을 통합하고 황제 '칭기스칸'에 올라 세계 제패의 야망과 웅지를 불태우고 있을 무렵, 우리 선조들이 살고 있던 고려에서는 과연 무슨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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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내우즉외환內憂卽外患
얼른 지우자 하여도, 슬며시 덮자 하여도
이때 바로 1206년을 이름이니.
마침 고려땅에는 1170년의 정중부의 난이 터지고도.
이미 35년을 넘도록 '망나니의 밤'이 검붉은 피에 끈적이며, 칠흑같은 내홍의 어둠을 지새움이라.
무참한 외침을 바삐 손짓하여 부르는 그 음산한 저주.
그 '망국 살생'의 주문, 길게도 급히도 이어지거늘.
중화 유아원 모퉁이의 간지러운 소화 소꿉장난에 얼빠지나니,
그 고려의 권문 세도가들의 눈에는 하잘것없을 터,
이 들쥐 같은 유목 '오랑캐' 아이들의 '야만'을 견주어 배우리라.
바르고 참된 뜻, 어이 광견 짖음에 기를 놓고 움츠림이며,
굳고 곧은 넋, 어이 발광하는 말발굽에 엎드린 채 부서짐이던가?
이들 사이에 펼쳐지던 '원초적 본능'에 순응하는 질서를 잘 새길지니.
이들의 그 '동물적 애정'의 순수함에 부끄러워할지니,
숨막힐라, '망나니'들의 어설피 배운 뒤틀리는 널뛰기를,
자칫 잊을라, 이를 따라하던 먼 훗날 어느 피 튀기는 난리를.
이는 앞차기로도, 돌려차기로도 어차피 당할 수 밖에 없는,
너절하고 흐트러진 기품 품세에 다름없으리니,
누구랴, 어찌 오랑캐의 침략만을 나무랄 수 있으리?
쪽에서 푸른빛에 홀려 따라다니되, 이내 쪽의 찌꺼기만을 건져버린,
그 시절의 모화라는 유인원적 '진화'를 읽거늘,
마침내 그 필연적 궤도 일탈의 우스개 빤히 보이나니.
거기로 하여, 색 바랜 블루진 꼴로 희부덕덕 너덜대는,
외래숭모와 자기바하의 얼빠진 오늘이 못내 우울함이니.
마침내 자아부정과 방향상실의 내일이 유령되어 날름대거늘,
아수라장 및 금국정벌론
부디, 한분도 빠짐없이 극락왕생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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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디 문벌귀족 간의 숨막히는 세력균형으로 유지되던 고려 정정의 아슬아슬한 안정은, 한 집안의 둘째 딸이 왕을 출산하여 어머니가 되자, 셋째와 넷째 딸, 즉 그 왕의 이모들이 줄줄이 이 외조카에게 시집을 가서 왕후가 되는 정신 못 차릴 수의학적 교배로 하여, 왕의 외할아버지면서 장인이 된 불세출(?)의 위인 이자겸의 등장으로 무너진다.
인륜과는 도무지 연결지어 볼 방도가 없는 이 고려 역사의 거목(?)은 천방지축 날뛰는 무사 척준경을 교사하여 선수를 치더니 준동하는 저항세력을 꺾고 외손자이자 사위가 되는 임금을 자신의 집에 가둬버리기에 이르거늘, 세상 천지 동서고금에 그 유래를 알기 어려운 1126년의 이 집권광기를 동방예의지국의 소맷자락에 후딱 감추어 이자겸의 난이라 얼버무린다.
이어 척준경은 백성들의 만세 속에 이자겸을 타도하여 유배 보내거니와, 결코 그 공으로도 탕감되지 못할 대역죄인 척준경 또한 정지상의 탄핵을 받아 사라진다. 그 광란 도중에 왕궁이 싸그리 불에 타버리니, 왕의 권위 또한 새까만 숯덩이로 변하되, 사회 윤리관에 총체적 위기감 내지는 무력감이 팽배하여, 백성들의 피를 빨고 고름마저 탐하는 가렴주구의 발호는 사뭇 극치에 달한다.
이같이 불안한 정황을 타고서 풍수지리상 개경의 지세가 다하였음을 내세운 서경 천도파의 움직임이 고요 속에 부산하다. 그러한 기운의 선봉에 선 묘청 등은 혼탁한 국가기강을 대거 일소하고자 금과의 사대관계를 전면 거부하니, 이 또한 고구려의 정기와 강인한 기상을 승계하여 국가적 위엄을 회복하자는 민족자존의 대의명분 바로 따르던 바다.
그러나 이 움직임은 막강한 금의 세력을 업고 개경을 근거로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보수강경의 문벌 귀족, 그리고 개혁 지향적이자 서경 천도파인 혁신세력 사이에 벌어지는 전형적인 권력 쟁탈전의 양상으로 돌변, 혹은 유도되고 만다.
한편 보수세력의 무한대적 타락과 발호에 환멸과 위협을 느끼던 고려 조정은 늘어지고 지쳐 있는지라, 묘청의 이러한 대안에 매우 이끌린다. 이래저래 서경에 천도를 위한 토목 건설이 진행되고, 왕이 그 곳에 친히 행차하는 등 관심을 크게 보이기 시작한다.
이에 심히 초조한 개경파의 선두주자 김부식은 농사와 천재지변 등을 들먹이며 우국목민의 충정을 내세운 필사적인 설득 공작 끝에 왕의 번의를 얻는 데 성공한다.
일이 이렇게 틀어져 버리자 진퇴유곡에 몰린 묘청은 서경을 긴급히 접수 또는 불법 점거, 이와 함께 1135년 금국 정벌의 기치를 드높이 내걸고, 국호마저 따로 하여 초지일관 밀고 나가기로 작심한다.
당대의 문벌 귀족세력인 김부식과 부의 형제는 이렇듯, 사대의 예를 거스르는 역모를 초동 진압함으로써, 종주국의 심기를 거스르지 아니하고 기존의 주종 관계를 정상화하고자 멸사봉공에 절치부심의 노력을 아끼지 아니한다.
학문은 물론 병법에도 탁월한 것으로 알려진 문반의 대표 실세 김부의는 자신의 형을 도와 국가적 혼란의 수습에 나선다. 그들은 자신들을 비롯한 개경의 보수 기득권층의 이익을 수호하고자 온갖 경륜과 재능을 다하여 살신의 희생과 성인의 패기를 십분 과시하니, 일진회를 이끌어 구국의 험로에 나선 한일합방 열사들의 애환과 미덕이 어디 이만하리오?
서경을 평정하자는 평서십책平西十策을 기안, 서경의 포위와 고립화를 도모하는 지구전 원칙을 수립한 김부의는 차단과 선무를 통하여 반도들의 내분을 획책한다.
그들은 진압작전의 출진에 앞서 개경에 잔류한 정지상과 백수한 등 서경 천도파에 대한 일대 청소를 실시한다.
김부식이 총사령관이 되고 김부의가 좌군 사령관 자리를 차지한 진압 토벌군은 1년 가까이 보급로를 차단하고, 회유를 비롯한 갖가지 분열책동을 펼친 끝에 반군의 내분과 상호불신 조작에 성공한다.
하여, 북진천도와 대륙진출의 꿈을 실현하여, 이를 민족자존과 국가증흥의 대약진의 계기로 삼으려던 묘청의 꿈은 동지라 부르던 자들이 휘두른 배신의 칼에 허망하게 베이고, 감언이설의 술수에 걸려들어 그의 목을 들고 찾아간 이 가련한 자들의 목은 또 다른 배신의 칼이 침 뱉으며 앗아가거늘.
지긋한 눈길로 당시의 대체적인 주변 사정을 일별하건데,
묘청의 야망은 당대의 국내외 정치적 역학관계의 안전한 틈새를 꿰뚫었으며,
이를 비집고 들어서기에 충분하고도 정확한 주변정황의 분석,
그리고 냉철 명료한 역사인식으로부터 확신있게 출발해야 하나니.
하여, 묘청의 금국정벌론을 사마귀가 앞발 들어 수레바퀴를 가로막는 당랑거철螳螂巨轍의 무모함에 성급하게 갖다 대기 전에, 있는 대로 볼지니.
여진은 그 본거지인 만주벌판의 풍천노속 생활이 지겨워, 촘촘하고 푸근하기 그지없어 보이는 중원의 침대 날름거리다 기어코 침대 핑계로 안방까지 소유하거늘. 그즈음에 이르러 그들의 금은 유교적 정착사회라는 고탄력 스프링에 허리 튕겨진 나머지 척추 디스크의 초기 자각증상을 보이더라.
게다가 그들이 방기하여 둔 힘의 공백 지대인 고비사막 이북의 지역에서는 몽골의 이리가 떼를 이루어 여러 늑대들과 함께 춤을 추는 즉, 몽골리아 출신의 그 유명한 '핏덩이 쥐고 일어서'를 맞이할 채비에 한창이라.
양자강 이남으로 쫓겨 내려간 남송은 또 어떻고?
중원의 방 빼라고 허구헌 날 아우성이요, 저기 감숙성 서쪽에 떡 하니 자리 잡은 서하는 믿기엔 영 꺼름직하니.
묘청의 차가운 눈매는 침대에서 밀쳐져 버린 이 쭉정이 여진들만이 검불되어 흩어져 굴러다니던, 그 비어 있는 만주 벌판의 구석구석을 샅샅이 가늠하였음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