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0여 년 전 실크로드를 개척한 신라 혜초스님에 대한 기념비가 중국에서 이같이 푸대접을 받아서야 되겠습니까. 도대체 정부는 뭘 하는 건가요." 16일 오전 10시(현지시간) 중국 시안(西安)시 도심에서 남서쪽으로 차를 타고 2시간 정도 달려 도착한 산시(陝西)성 저우즈(周旨)현 선유사(仙遊寺) 옆에 위치한 혜초기념비는 우리정부가 해외의 문물 보존에 대해 얼마나 무관심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역사의 현장이었다. 이곳에는 최근 새로 세워진 콘크리트 지지대 2개가 언제 무너질 지 모르는 혜초기념비 정자를 겨우 떠받치고 있었다. 기둥에는 '위험'이라고 쓴 글자가 선명했고, '신라국고승혜초기념비'라고 적힌 3m 높이의 기념비 뒷면에는 글자 절반 이상이 벗겨져 있었다. 정자 곳곳은 낙서로 훼손돼 있었고 주변은 과자봉지와 담배꽁초 등 쓰레기로 넘쳐나고 있었다. 중국 국보급 사찰인 선유사의 창하오(常浩) 스님은 "한국에서 비석과 정자만 세워놓고 관리에 무관심해 생긴 결과"라고 말했다.
중국 현지에 세워진 우리나라 고승의 유일한 기념비인 '혜초기념비'가 정부와 불교계의 무관심으로 방치, 훼손되고 있다. 신라의 고승인 혜초(慧超ㆍ704∼787)는 722년 경주를 떠나 페르시아, 시리아, 파미르고원을 넘어 당나라 수도인 장안(지금의 시안) 등을 누빈 후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을 남긴 국내 첫 실크로드 개척자다. 이날 한국실크로드학회 준비위원장인 정수일(78) 한국문명교류연구소장의 안내로 어렵사리 도착한 이곳의 혜초기념비는 2001년 6월 조계사와 선유사 양측의 한중 불교 교류협력 차원에서 건립됐다. 기념비 건립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친필로'혜초기념비정'이란 현판을 직접 썼을 만큼 역사적 의미는 컸다. 그러나 이날 현장에서 받은 느낌은 한마디로 안타까움뿐이었다. 건립 10년을 겨우 넘긴 기념비가 그 동안의 심한 훼손 탓에 족히 몇 백 년이 된듯한 몰골이었기 때문이었다. 선유사 측은 "한국 측이 기념비 건립 후 매년 유지보수비로 1만위안(172만원)을 지원하기로 약속해놓고 감감 무소식이어서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며 "정자 지붕이 심하게 기울어져 있어 임시방편으로 콘크리트 기둥을 받쳐 놓았다"고 설명했다. 내년 초 한국실크로드학회를 정식 출범시킬 예정인 정 소장은 "여행객들이 당나라 수도였던 시안에서 진시황 병마용을 구경하는 것도 좋지만 우리 조상의 흔적을 찾아보는 것도 의미가 크다"며 "혜초기념비가 이같이 방치돼 너무나 안타깝다"고 말했다. '실크로드 동쪽 끝이 시안이 아니라 한반도 경주'라는 사실을 현장 입증키 위해 이번에 시안을 방문한 경북도 실크로드 프로젝트팀과 정 소장은 이날 오후 시안총영사관을 찾아 혜초기념비 보존대책을 건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