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의 나라 독일은 음주가 생활의 일부다. 맥주가 이들의 기록에 등장하는 것은 10세기쯤. 그러니까 천 년 정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맥주를 마신 역사가 오래된 만큼 독일인의 술문화 또한 상당히 성숙됐다고 볼 수 있다. 성숙된 독일의 음주 문화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음주는 대화를 즐기기 위한 하나의 도구다. 라인강변에 자리자고 있는 쾰른과 뒤셀도르프의 술집 거리는 주말이면 새벽 2시까지 흥청거린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취흥이 도도해져도 결코 고함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맥주는 대회를 윤기있게 하는 촉매제 역할만을 하는 것이다.
둘째, 음주는 하되 법 테두리를 지킨다. 독일에는 곳곳에 비어가르텐으로 불리는 맥주집이 산재해 있고 주택가에도 술집이 자리잡고 있다. 이 맥주집들이 아무런 문제없이 영업을 하는 데는 사생활 보호를 위해 밤 10시 반 이후에는 옥외에서는 술을 팔지 못하도록 하는 엄격한 법이 있고 이를 업주들이 철저히 지킨다는 것이다. 주택가의 비어카르텐이 인기를 끄는 데는 음주운전을 피하려는 독일인들의 지혜도 배어 있다. 독일인들은 요즘 술자리가 있는 날이면 으레 순번을 정해 그날의 운전자 1명을 정하고 이 운전자는 술자리에서 대화만 즐기되 음주는 거의 하지 않는다. 엄격한 독일경찰의 법집행과 그에 걸맞는 독일인의 합리적인 음주문화가 형성된 것이다.
셋째, 더치페이로 음주량을 조절한다. 독일의 맥주는 유난히 구수하고 맛이 좋다. 16세기에 제정된 독일 특유의 맥주 순수법에 따라 맥주보리에다 호프와 효모, 물만으로 맥주를 숙성시키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번 마시게 되면 구수한 맛에 빠져 폭음하게 될 것 같은데 현실은 다르다. 독일의 술집에서는 술값 계산을 치사하게(?) 각자 해야 한다. 따라서 남에게 술을 강요하고 싶으면 자기가 술을 사야만 한다. 그러나 독일같이 비자금이나 촌지가 없는 맑은 사회에서 술값을 대신 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자연히 강권이나 폭음하는 술자리는 거의 없고 주량은 스스로의 주머니 사정에 따라 절제될 수밖에 없다. 뮌헨의 10월 축제를 보면 보름 동안 7백만 명이라는 대규모 인파가 전세계에서 몰려와 독일의 맥주만을 위해 축제를 벌인다. 마시고 싶은 만큼 마시고 얘기하고 싶은 만큼 얘기한다. 그러나 불상사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1인당 맥주소비량 세계 1위, 최초의 맥주 양조법에 관한 기록, 세계 최초의 맥주 박물관 개관, 세계 최초의 플젠식 맥주 생산, 맥주공장 종업원이 대통령이 된 나라… 맥주의 천국으로 불리는 체코를 수식하는 말들이다. 영원한 보헤미안들의 안식처이며 중세 예술의 보고인 프라하를 중심으로 전국에 흩어져 있는 수많은 맥주 양조장과 선술집에는 누구든지 환영받고, 누구든지 마음껏 마실 수 있는 세계 최고 품질의 맥주가 기다리고 있다. 왁자지껄하고 담배연기 자욱한 선술집에서는 남녀노소, 인종, 종교적인 차이도 금새 허물어진다. 맥주 한잔만 있으면 누구나 친구가 될 수 있고 누구나 이야기에 참여할 수 있다.
체코인들은 집에서 맥주를 마시기보다는 선술집에서 마시는 것을 더 좋아한다. 맥주 마시는 행위가 바로 친구를 사귀고 토론을 할 수 있는 그 자체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대화주제는 태양아래 존재하는 그 어떤 것이라도 상관없다.
선술집의 정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체코민족의 가장 중요한 특성인 유머를 이해해야 한다. 불확실한 미래와 역사로 인해 체코인들의 의식 속에는 자신들의 말을 절제해야 한다는 생각이 사로잡혀 있다. 흔히 슈베이크주의로 알려진 가벼운 자기 빈정거림은 수세기에 걸친 외세의 점령과 소위 상위정치에 대한 민족적 저하에 영향을 받아왔다. 유머는 일반인들에게 희망이 없어 보이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낙관적인 시각과 자신에 대한 믿음을 유지토록 해주었으며 사람들은 정치, 경제상황에 대한 실망감과 좌절을 유머감각과 선술집에서의 쓰잘데기 없는 말로 보상받으려 했다.
따라서 체코의 선술집은 오랜 기간 동안의 역사와 위기상황에서 유래된 친분을 넓히려는 경향, 시끌벅적함, 열린공간 그리고 체코인의 민주적 성격과 사회성을 대변해 주는 수다스러움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선술집에서의 모임은 불안한 역사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고 위안 받을 수 있었던 유일한 보상이었다. 맥주를 통해 사회와 문화를 이야기하고 사람들과의 논쟁에 참여하며 정치와 경제를 토론해 왔다. 왁자지껄한 분위기와 구수하고 쌉싸름한 호프냄새 가득한 선술집의 풍경과 그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은 고스란히 체코의 예술에 드러나 있다. 삶의 모습이 곧 맥주의 모습이고 선술집의 모습과 동일시되는 것이다